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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18

5월 중순의 석곡, 나도수정초, 약난초, 골무꽃, 금난초, 은난초 5월 중순의 일요일, 남도 지방으로 석곡, 나도수정초, 약난초, 새둥지란 등을 만나러 간다. 먼저 들른 곳은 선운산. 몇 년 만에 찾은 선운사 도솔암 관음전 앞에 커다란 누전을 조성해 놓았다. 호젓하던 암자가 독립사찰 모양의 구조를 갖추어 나가는 모습이 좀 거북스럽게 느껴진다. 그래.. 2017. 5. 17.
보춘화, 상산, 수리딸기, 자주괴불주머니 꽃 피는 선운산 봄꽃 산행 여러 가지 과제가 쌓여 있어 주말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책상 앞에 앉아 책장을 넘기며 머리를 써야 하는데, 창 밖으로 화사하게 핀 산벚나무 꽃들과 연초록 신록이 짙어가는 대모산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도무지 책이 손에 잡힐 것 같지 않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무작정 집을 나서 .. 2016. 4. 10.
고창 (15) 호남의 내금강 / 선운산 용문굴, 낙조대, 천마바위 도솔천내원궁을 마지막으로 선운사와 도솔암의 문화재 관람은 모두 끝났다. 이제 등산을 할 차례. 내원궁을 내려와 다시 미륵불 앞을 지나 용문굴로 행하는 등산로로 들어선다. '호남의 내금강'이라 일컫는 선운산의 절경, 낙조대와 천마바위를 돌아 내려오는 것으로 1박 2일의 고창 여행을 모두 끝내기로 한다. 골짜기로 들어서니 사방이 절벽으로 에워싼다. 그곳을 지나 산등성이를 향해 얼마쯤 오르니 금방 나타나는 용문굴(龍門窟). 커다란 바위가 사람이 지나기에 딱 알맞을 만큼의 문을 이루고 있다. 용문굴은 검단선사가 절을 짓기 위해서 도솔암 서쪽 용태에 살고 있던 용을 몰아낼 때 용이 가로놓인 바위를 뚫고 나간 구멍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용문굴에 이무기가 살았는데, 주민들을 괴롭히므로 이를 .. 2011. 3. 21.
고창 (14) 미륵보살의 정토 도솔암 도솔천내원궁, 금동미륵보살좌상(보물 제280호) 미륵불이 거처하시는 도솔천 내원궁(內院宮)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까마득한 절벽에 걸려 있는 굽이 도는 돌계단길을 오르노라니, 천상 정토를 찾아가는 산객은 가쁜 호흡 속에서도 가슴은 설렌다. 계단을 다 올라왔을 무렵 두 개의 바위 사이로 하늘로 이어지는 길이 열린다. 바로 그곳에 미륵보살이 거처하시는 천상 세계 도솔천내원궁이 있다. 돌아서 내려다보는 돌계단길이 장관이다. 천인암 암반 위에 앉은 도솔암 내원궁(문화재자료 제125호)은 아주 작은 전각이다. 예전엔 상도솔암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원래 도솔암은 상도솔암 하도솔암 외에 동, 서, 남, 북으로 여섯 도솔이 있었다고 하는데, 바로 이 도솔천 내원궁이 상도솔, 마애불이 있는 곳이 하도솔, 그리고 주법당인 극락전 자리가 북도솔이었다고 한다. 도솔천은 장.. 2011. 3. 20.
고창(13) 선운산 도솔암 나한전 /내원궁 오르는 계단 절벽의 암각서 우람하고 씩씩한 도솔암 미륵마애불을 돌아본 다음 이제, 마애불 위쪽에 있는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으로 향한다.  내원궁으로 오르기 전 잠시 도솔암 나한전(문화재 자료 제110호)을 들여다 본다. 조선 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나한전 내부에는 흙으로 빚은 석가모니불을 모셨는데, 가섭과 아난존자가 협시하고 있다.     삼존상 주변에는 16나한상을 모시고 있어 나한전이라 불리는데, 1910년 용문암에서 옮겨온 것이라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용문굴과 얽혀진 전설이 전하고 있다. 용문굴에 사는 이무기가 주민들을 괴롭히므로 이를 쫓아내기 위해 인도에서 나한상을 모셔오자 이무기가 사라졌다. 그리하여 이무기가 뚫고 간 바위 위에 나한전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용문굴은 낙조대로 오르는 기슭에 있다.  내원궁 가.. 2011. 3. 19.
고창 (12) 선운사 도솔암과 미륵마애불 장사송을 지나자마자 길은 오른쪽 산길로 급하게 꺾어지며 도솔암(兜率庵)으로 오른다.   도솔암은 선운사 남서쪽 약 2.5㎞ 지점, 바위 절벽이 병풍처럼 두르고 소나무가 숲을 이룬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앞산은 험준한 산이 두르고 있고, 멀리 서쪽으로 암자 건너편에는 까마득한 절벽을 이룬 거대한 천마바위가 천공에 걸려 있다. '호남의 내금강'이라더니 가히 미륵불이 거처할 도솔천궁이 자리잡을 만한 풍경이 펼쳐진다.      도솔암은 선운사와 함께 백제 때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미륵삼존의 현몽으로 신라 진흥왕이 창건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는 하지만, 백제에 대해 공세적이고 성왕을 사로잡아 죽이기까지 했던 그가 백제 영토 깊숙이 들어와 머물렀다는 것은 어불성설로 보인다. 창건에 대해 구체적인 .. 2011. 3. 18.
고창 (11) 선운산의 천연기념물, 장사송 / 진흥왕의 전설이 담긴 진흥굴 선운사를 나와 도솔암으로 향한다. 장사송과 진흥굴, 도솔암과 마애불을 돌아보고 낙조대와 천마바위를 돌아서 내려올 예정이다.  산 골짜기를 따라 걷는 길 주변은 차나무와 꽃무릇 천지인데, 혹독한 한파를 견디느라 생기를 잃어버린 차나무잎과 골짜기를 파밭처럼 덮고 있는 꽃무릇 푸른 잎들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맑고 따스한 기운 풍성히 머금은 햇살이 내리는 일요일이라 무리를 지어 산을 찾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볕이 잘 들어 눈과 얼음이 녹아 사라진 개울은 거꾸로 선 나무들 모습을 비추고 있다.     길을 따라 얼마간 걷다보면 나타나는 아담한 돌부처. 연꽃 대좌 위에 앉은 불상을 깊게 돋을새김하여 자연스럽게 감실 속에 자리잡은 모습이 되었다. 길가에 앉은 부처님을 보며 지나는 산객들은 더러 합장하고 잠시.. 2011. 3. 18.
고창 (10) 선운사, 시왕의 웃음 번지는 유쾌한 명부전 선운사 너른 절마당, 서쪽 축대 위에 맞배지붕 건물이 하나 서 있다. 염라대왕(염마왕)이 다스리는 저승 세계를 나타낸 명부전(冥府殿)이다. 퇴색한 모습이지만 선운사를 찾으면 내가 꼭 그 내부를 들여다보게 되는 유쾌한 전각이다. 여느 절의 명부전과는 달리 선운사 명부전에는 봄바람이 부는 듯 시왕의 웃음이 피어나고 있다.  명부전은 대개 법당 오른쪽 뒤에 있는데, 절 안에서 격이 떨어지므로 건물의 크기나 양식에서 차이가 난다. 죽은 이의 넋을 제도하는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시고 있어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하며, 지옥의 심판관인 시왕을 모시고 있어 시왕전(十王殿), 저승과 이승을 연결하는 곳이므로 쌍세전(雙世殿)이라고도 한다. 본래는 지장전과 시왕전이 각각 독립된 전각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고려말 이후 부처.. 2011. 3. 15.
고창 (9) 선운사 관음전, 영산전, 팔상전 대웅전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관음전(觀音殿)이, 서쪽에는 영산전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영산전 서쪽 ㄱ자로 꺾어진 축대 위에는 명부전이, 영산전 뒤쪽에는 팔상전과 산신각, 그 서쪽으로는 조사전이 있다. ■ 한때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모셨던 관음전, 그리고 대웅전의 동쪽에 위치하는 관음전은 정면과 측면 모두 3칸으로 된 맞배지붕 건물이다. 관음전은 이름처럼 관세음보살을 봉안한 건물이다. 관세음보살은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로 민중들에게 가장 친숙한 보살이다. 절에서 중심 법당으로 있으면 원통전이라고 부르고, 절의 부속 전각으로 있으면 관음전이라고 한다.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강조하여 대비전이라고도 부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원래 이 건물은 스님방이었다. 원교 이광사가 쓴 '.. 2011. 3. 14.
고창 (8) 선운사, 천왕문에서 만세루 지나 대웅전으로 도솔산 계곡이 다 그렇지만, 일주문에서 선운사까지 도솔계곡을 따라 걷는 길은 참으로 고즈넉하고 아늑해서 마음이 절로 차분히 가라 앉는다. 왼쪽으로는 거울처럼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오른쪽으로는 부도밭을 품고 있는 숲이 우거져 있다. 호젓한 분위기의 선운사, 특히 5월이 가까워서야 때늦은 붉은 꽃을 피우고 꽃봉오리를 처연하게 떨구는 뒤안의 동백나무 숲은 선운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달콤하면서 아린 상처 같은 사랑의 기억을 일깨우는 낭만적인 공간이 된다. 이곳을 다녀간 시인들은 무딘 사람들의 감성조차 일깨운다. 서정주의 시처럼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이별의 애절함을 노래하는 송창식의 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 날에 말이예요. 동백꽃을 보신.. 2011. 3. 11.
고창 (7) 선운사 부도밭 백파율사비, 백파와 추사의 서한 논쟁 일주문을 지나면 도솔천 개울을 따라 절집까지 이어지는 호젓한 길로 접어든다.  오른쪽으로는 울창한 전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는데, 그 숲속에는 꼭 들러보아야 할 부도밭이 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도밭'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오 년 전에 찾았을 때와는 모습이 많이 달라져 있다. 그냥 넓은 땅에 자연스레 늘어서 있던 부도들이 새롭게 다진 터에 위치가 조정되어 정비되었고, 주위에는 흙돌담에 일각문까지 세워 격을 갖추었다. 그야말로 부도전(田)이 부도전(殿)으로 탈바꿈했다.        이곳 부도밭은 추사 김정희가 백파선사를 기리는 글을 새긴 백파율사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부도밭이 많이 찾는 것도 바로 이 백파율사비가 있기 때문이다.   비석의 주인공인 백파 긍선(白坡 .. 2011. 3. 10.
고창 (6) 선운사 일주문, 미륵보살이 거처하는 도솔산으로 들어서다 천연기념물인 송악을 둘러보고 선운사를 향해 발길을 옮긴다. 화창한 날씨인데도 도솔산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는 바람은 시리게 차갑다. 그래도 맑은 솔향기 느껴지는 바람이 상쾌하다. 그리고 금방 부처님 세상임을 알리는 일주문이다. 선운사가 있어 선운산이라 부르지만 원래 도솔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일주문에도 '도솔산 선운사(도솔산 선운사)'라고 써 놓았다. 집안 아저씨 뻘인 김충현의 멋드러진 글씨로... 도솔산이란 이름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는 것일까. 잠시 '도솔(兜率)'이 뭔지 알아보고 가자. 그래야 도솔산과 도솔계곡에 담긴 부처님 세계가 조금 이해될 거 같다. 이 땅에는 도솔이란 말이 참 많이 쓰인다. 유리왕이 지었다는 '도솔가'도 있었고 월명사가 지었다는 '도솔가'란 말이 전해진다. 불교에는 '도솔천'이.. 2011. 3. 10.
고창 (5) 선운사 입구, 고창 삼인리 송악(천연기념물 제367호) 고창읍성을 돌아보고 난 다음날 선운사로 향한다. 오늘은 선운사를 돌아보고 난 다음에 선운사 골짜기를 따라서 도솔암과 마애불, 그리고 낙조대와 투구바위까지 돌아볼 계획이다. 선운산 정상이 336m라니 그리 힘들지는 않을 거다. 고창 버스터미널에서 선운사 가는 버스는 거의 매 시간 단위로 있어 불편함이 없다. 잠시 기다리는 시간이 있지만, 그것은 낭비의 시간이 아니라 설렘의 시간이다. 버스를 타고 다니는 여행은 느긋해서 좋다.  차창으로 명랑하게 비쳐드는 아침 햇살을 즐기며 20~30분쯤 달렸을까. 어느 새 버스는 선운사 물이 흘러내리는 도솔계곡을 들어서고 있다. 5년만에 찾은 선운사, 그리 달라진 풍경은 없다.  관자노리가 얼얼할 정도로 계곡 바람은 싸늘한데, 먼저 바로 개울 건너편으로 보이는 천연기념물 .. 2011. 3. 8.
고창 (4) 고창읍성(모양성) 동헌(평근당)· 내아-객사(모양지관)-등양루 풍화루(豊和樓)에서 오른쪽(서쪽) 언덕으로 올라서면 읍성의 중심 관아인 동헌과 내아가 있고, 그 위쪽으로는 객사가 자리잡고 있다. 동헌과 객사가 있는 언덕은 서쪽 응달이라 하얀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있다. 솔숲 사이로 오후의 서늘한 산바람이 불어내리고 있는 길을 오르노라니, 언덕길 옆으로 우물이 하나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우물은 아마도 동헌과 내아 전용 우물로 사용되었으리라. 읍성 안에는 모두 네 개의 우물이 있는데, 전시에는 주민들이 성 안으로 들어와 기거하며 싸울 수 있도록 대비해 놓은 것이다. 우물을 돌아 언덕을 오르자 금방 눈 쌓인 넓은 마당이 나타나고 동헌과 내아가 나타난다. 야트막한 산언덕을 배경으로 전망 시원한 곳에 앉은 뽄새가 아름답다. 고창읍성 동헌은 1988년, 내아는 1989년에 복.. 2011. 3. 7.
고창 (3) 고창읍성(모양성) 공북루-척화비-향청-관청-작청-풍화루 고창읍성은 고창읍의 남쪽 성주봉인 장대봉(108m) 산자락 좌청룡 우백호의 지세를 최대로 이용하여 축조한 성곽이다.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부르는데, 백제 때 고창 지역이 모량부리로 불렸던 것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나주진관, 장성 입암산성 등과 더불어 왜적의 침입을 방어하는 호남의 요충지로, 단종 원년(1453)에 세워진 것이라고도 하고 숙종 때 완성되었다고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 성곽 전체의 둘레는 1,684m, 높이 4~6m 정도이다.관아를 비롯해 22개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전란에 모두 소실되어 버렸고 동문·서문·북문 등 3문과 치(雉) 6곳, 옹성(甕城), 수구문(水口門) 2곳 등이 남아 있다.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으로 쌓은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고, 읍성으로서는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 2011. 3.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