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고창 (10) 선운사, 시왕의 웃음 번지는 유쾌한 명부전

모산재 2011. 3. 15. 16:37

 

선운사 너른 절마당, 서쪽 축대 위에 맞배지붕 건물이 하나 서 있다. 염라대왕(염마왕)이 다스리는 저승 세계를 나타낸 명부전(冥府殿)이다.

 

퇴색한 모습이지만 선운사를 찾으면 내가 꼭 그 내부를 들여다보게 되는 유쾌한 전각이다. 여느 절의 명부전과는 달리 선운사 명부전에는 봄바람이 부는 듯 시왕의 웃음이 피어나고 있다.

 

 

명부전은 대개 법당 오른쪽 뒤에 있는데, 절 안에서 격이 떨어지므로 건물의 크기나 양식에서 차이가 난다. 죽은 이의 넋을 제도하는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시고 있어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하며, 지옥의 심판관인 시왕을 모시고 있어 시왕전(十王殿), 저승과 이승을 연결하는 곳이므로 쌍세전(雙世殿)이라고도 한다.

 

본래는 지장전과 시왕전이 각각 독립된 전각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고려말 이후 부처님께 공양을 바칠 것을 권하고 저승의 풍경 등을 표현한 경전인 <시왕경>이 편찬된 뒤에 그간의 현세 기복신앙이 내세 구원신앙으로 바뀌면서 명부전으로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

 

 

선운사 명부전도 원래는 지장보살을 봉안한 지장전과 시왕(十王)을 봉안한 시왕전이 별도로 있었던 것을 17세기 이후에 두 전각을 결합하였다고 한다.

 

 

 

 

 

명부전 안 불단은 ㄷ자형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가운데에 지장보살을 모시고 도명존자(道明尊子)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협시하고 있으며, 그 좌우에 128개 지옥을 나누어 다스리는 시왕을 둔다. 그리고 동자 · 판관 · 기록과 문서를 맡는 녹사(錄事) · 문 입구를 지키는 인왕 등을 마주보게 한다.

 

시왕들은 모두 나무로 만든 의자에 앉아 왕관 모양의 관을 쓰고 발을 가지런히 한 채 홀을 잡고 있는데, 홀 대신 책을 들고 있는 시왕도 있고, 반가상을 취하고 있는 시왕도 있다. 시왕상들은 대체적으로 얼굴이 길고 온화하며, 상체가 낮은 반면에 하체는 긴 편이다. 판관들 역시 시왕상과 유사하지만 사자는 다소 작은 편이며, 상체를 벗은 상태의 금강역사상은 한손으로 주먹을 들어 위압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지장보살 뒤에는 지장탱화를, 시왕의 뒤에 명부시왕탱화가 걸려 있다.

 

 

▼ 명부전 내부 : 천정에는 천도의식을 거행한 망자들의 이름이 적힌 하얀 등이 달려 있다.

 

 

 

 

 

 

저승 세계를 표현한 명부전은 고통 받고 있는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자비심이 충만한 공간이다. 주존인 지장보살은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기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는 것을 미루겠다는 대원을 세워 도리천에 살면서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는 보살이다. 그래서 명부전은 죽은 이의 넋을 천도하여 극락 왕생하도록 기원하는 종교적 기능을 한다.

 

사람이 죽으면 49일 되는 날까지 일곱 시왕에게 이레 동안씩 생전의 죄업에 대하여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 이 시기에 맞추어 행하는 천도의식이 바로 49재로, 죽은 이가 다음 생에 극락에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살면서 죄업을 많이 지은 자는 49일 이후 3명의 대왕에게 다시 심판을 받는데, 죽은 후 100일이 되는 날은 제8 평등대왕, 그리고 1년이 되는 날에는 제9 도시대왕, 3년째에는 제10 오도전륜대왕의 심판을 받아 총 3년의 기간 동안 명부시왕의 심판을 받는다. 망자는 자신의 업보에 따라 지옥도·아귀도·축생도·아수라도·인간도·천상도 등 육도 중 하나에 태어나게 된다.

 

 

 

 

 

그러면 어째서 선운사 명부전이 유쾌한 공간인가 살피기 위해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하자.

 

지장삼존상과 제1, 제2 시왕의 표정을 보면 참 재미있다. 주존불 지장보살이 가운데 앉아 있고 좌우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협시하고 서 있는데, 표정이 사뭇 엄숙하다. 고통에 빠진 중생을 제도해야 할 막중한 책임감으로 굳어진 얼굴에는 자비심이 넘쳐난다.

 

하지만 그 좌우에 있는 제1시왕 진광왕과 제2시왕 초강왕은 파안대소까지는 아니지만, 얼굴 가득 참을 수 없는 웃음이 번지고 있다. 한순간 모든 두려움을 씻어낼 듯한 웃음은 지장 삼존상의 엄숙함과 대비를 이루는 듯 하면서도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저승의 문 앞에서 심판받아야 할 할 망자의 입장에 생각해 보라. 저승 세계를 표현한 명부전이 이렇게 환한 웃음으로 밝은 절이 있던가!

 

 

 

 

 

지장보살 왼쪽에 젊은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가 도명존자이다(조선시대엔 주로 젊은 스님의 모습으로 묘사하지만 고려 불화에선 눈을 부릅뜬 노승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도명존자는 중국 양주 개원사의 승려로서 <환혼기>라는 중국의 영험설화에 따르면 778년 저승사자에 의해 지옥에 불려가 석장을 들고 두건을 두르고 있는 지장보살을 만나고 저승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승으로 돌아와 저승에서 본 것을 전하고 그림을 그렸는데, 이후 지장보살을 협시하여 지옥을 살피는 것을 보좌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지장보살이나 명부의 그림은 그때 도명존자가 본 모습이라고 전한다.

 

 

지장보상의 오른쪽 문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가 무독귀왕이다. 그는 이름처럼 사람들의 악한 마음과 나쁜 기운을 물리쳐 윤회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고 전해진다. 귀신 왕임에도 불구하고 문관 또는 왕의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지장보살의 전생 이야기 <지장경 도리천궁신통품>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 브라만(바라문)의 딸이 항상 삼보를 업수이 여겨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집을 팔아서 탑과 절에 크게 공양을 올리며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기도해 무간지옥에 들어간다. 거기서 무독귀왕이 나타나 바라문의 딸에게 여러 지옥에 대하여 설명하고 안내하였다. 딸의 지극한 효심과 공덕으로 무간지옥에 떨어진 어머니와 함께 있던 이들이 모두 천상에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이에 감명을 받은 딸이 미래 겁이 다하도록 육도의 중생을 구원하리라는 서원을 세우고 나중에 다시 태어나 지장보살이 된 것이다.

 

 

무독귀왕은 재수(財首)보살의 전신이다. 무독귀왕은 지장보살의 전생인 바라문의 딸을 안내하는 인연으로 지장보살의 협시가 되었다고 한다.

 

 

▼ 진광왕(秦廣王)의 웃음

 

 

 

 

▼ 초강왕(初江王)의 미소

 

 

 

 

 

지장보살상을 중심으로 시왕상은 오른쪽으로는 제1 진광대왕, 제3 송제대왕, 제5 염라대왕, 제7 태산대왕, 제9 도시대왕이 있고, 왼쪽으로는 제2 초강대왕, 제4 오관대왕, 제6 변성대왕, 제8 평등대왕, 제10 전륜대왕이 배치되었다. 이중 다섯 번째인 염라대왕은 시왕 중의 우두머리로 여겨진다.

 

첫째 진광왕(秦廣王)은 부동명왕 (不動明王)의 화신으로 죽은자가 첫 번째 맞이하는 칠일간의 일을 관장한다. 여러 관리들을 거느리고 죽은 자를 질책하여 사람들이 악행을 그만두고 선행을 하도록 만드는 일을 맡고 있다.

둘째 초강왕(初江王)은 석가모니의 화신으로 죽은 자가 두 번째 맞이하는 칠일간의 일을 관장한다. 초강 가에 관청을 세우고 죽은 이가 선악의 경중에 따라 강을 건너는 것을 감시한다. 초강왕이 있는 곳에 가기 위해서는 삼도내를 건너야 한다. 강가에는 늙은 귀신들이 지키고 있어 죽은 사람의 옷을 벗기고 벌거숭이의 몸으로 강을 건너게 한다. 선업을 쌓은 사람만이 다리를 걸어서 건널수 있다.

세째 송재왕(宋宰王)은 문수보살의 화신으로 죽은 자가 세 번째 맞이하는 칠일간의 일을 관장한다. 대해(大海)의 동남쪽 아래의 대지옥에 거주하면서 대지옥 안에 별도로 16지옥을 두어 죄의 가볍고 무거움에 따라 죄인을 각각의 지옥으로 보내는 일을 맡으며, 주로 사람들의 사음(邪淫)의 일을 다스린다.

네째 오관왕(五官王)은 보현보살의 화신으로 죽은 자의 네 번째 칠일간의 일을 관장한다. 업칭이라는 저울에 사람들의 죄를 달아서 그 경중에 따라 벌을 내린다. 오관은 수관, 철관, 화관, 작관, 토관으로서 각각 살인, 도둑질, 사음, 망어, 음주를 금하게 하는 일을 맡아본다. 원래는 도교의 인물로 염라대왕 밑에서 지옥의 여러 일을 맡아보았으나 후에 불교 체계 안에 흡수되어 시왕 중 네 번째 왕이 되었다고 한다.

다섯째 염마왕(閻魔王)은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죽은자가 다섯번째 맞이하는 칠일간의 일을 관장한다. 염라대왕 앞에서 죄인이 머리채를 잡힌 채 머리를 들어 업경을 보고 비로소 전생의 일을 분명히 깨닫게 되며, 이 업경에는 죄인들의 생전에 지은 일체의 선행과 악행이 비춰진다고 한다. 원래 인도에서는 천상의 교주였다고 하나 지옥신앙이 발달하면서 지하 지옥의 왕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여섯째 변성왕(變成王)은 미륵보살의 화신으로 죽은 자가 여섯 번째 맞이하는 칠일간의 일을 관장한다. 앞의 오관대왕과 염라대왕 앞에서 업칭에 죄를 달고 업경에 죄를 비추어 재판을 받고도 죄가 남은 사람이 있으면 지옥에 보내 벌을 받게 하는 일을 맡으며, 사람들에게 악을 멈추고 선을 행하도록 권장한다.

일곱째 태산왕(泰山王)은 약사여래의 화신으로 49일째 최종 판결을 내려 죽은 사람의 다음 생을 결정한다. 거해지옥(鉅解地獄)을 관장한다. 태산대왕 앞에서 최종판결을 받기 전에 커다란 톱니바퀴들이 망령들을 으깨어 죽이는 암철소(暗鐵所)에서 7일 밤낮동안 고통을 겪어야 한다. 태산대왕은 죽은 자에게 죄상을 묻고 각각 지옥세계, 아귀세계, 축생세계, 아수라세계, 인간세계, 천상세계로 통하는 여섯문 중 하나를 택하도록 하는데 이는 망령의 지업으로 정해진다.

여덟번째 평등왕(平等王)은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죽은 자가 맞이하는 백일의 일을 관장한다. 공평하게 죄와 복을 다스린다는 뜻에서 평등대왕이라 부른다. 8한8열지옥(八寒八熱地獄)의 사자와 옥졸을 거느린다. 안으로는 자비를 머금고 밖으로는 분노의 상으로 나타나 교화를 베풀면서 또한 형벌을 가하는 왕이라고 한다. 몸은 형틀에 매여 채찍질로 상처를 입지만 노력하여 공덕을 쌓으면 자비로 천당을 보게 된다고 한다.

아홉번째 도시왕(都市王)은 대세지보살의 화신으로 죽은자가 맞이하는 1년째의 일을 관장한다. 도제왕 또는 도조왕이라고도 하며 사람들에게 법화경 및 아미타불 조성의 공덕을 말해 주는 왕이다. 죽은 자의 태어날 곳을 정하기 위해서는 친족들이 좋은 일을 해야 한다고 권장하고 있다.

열번째왕 전륜왕(轉輪王)은 죽은 자가 맞이하는 3년째의 일을 관장한다. 2관중옥사를 부하로 거느리고 중생의 어리석음과 번뇌를 다스리는 왕인데, 죽은 자는 사후에 여러 왕을 거치며 그 죄를 심판받고 최후로 오도전륜대왕 앞에 이르러 다시 태어날 곳을 결정하게 된다.

 

 

 

<시왕경>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경(僞經)이지만, 세속적인 권선징악적 요소가 짙기 때문에 선찰(禪刹)에서도 시왕을 모시는 경우가 있다. 또 욕계(欲界)의 6천(六天 :사왕천,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낙변화천, 타화자재천)과 4선천(四禪天)의 왕들을 일컫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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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부전과 시왕

 

인도와 불교, 중국, 우리나라의 지옥관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옥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구사론(俱舍論)> '세간품(世間品)'에서 확인할 수 있다. 8번째 바다 가운데 동서남북으로 4개의 대륙이 있는데, 이 중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곳이 ‘염부제(閻浮提)’라는 대륙이다. 지옥은 바로 이 염부제의 땅 밑 깊숙한 곳에 있다. 염부제에서 땅 밑으로 16만㎞ 정도 내려가면 아비지옥(阿鼻地獄) 또는 무간지옥(無間地獄)이 있고, 아비지옥의 위로 차례대로 대초열지옥(大焦熱地獄)·초열지옥(焦熱地獄)·대규환지옥(大叫喚地獄)·규환지옥(叫喚地獄)·중합지옥(衆合地獄)·흑승지옥(黑繩地獄)·등활지옥(等活地獄)이 있어, 이를 통틀어 ‘팔열지옥(八熱地獄)’이라고 부른다. 팔열지옥 하나 하나의 옆에는 극한(極寒)에 시달리는 지옥이 하나씩 배치되는데, 이를 ‘팔한지옥(八寒地獄)’이라고 한다. 팔열지옥이나 팔한지옥의 위에, 염부제 땅 밑으로 지하 4,000㎞쯤 떨어진 곳에 지옥의 주재자인 야마(yama, 閻魔)가 머문다.

고대인들이 생각한 지옥은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곳이 아니었다. 우리의 세계의 한 곳에 지옥을 배치시키는, 이러한 지옥관은 한국 고전 문학 곳곳에도 나타나는데, 〈만복사저포기 萬福寺樗蒲記〉와 〈남염부주지 南炎浮洲志〉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한편, 지옥의 관념은 윤회 및 업(業) 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불교에서 윤회 세계는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天)의 육도(六道)로 대별되는데, 지옥은 그 최하층에 속한다. 생명체는 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끊임없이 업을 짓고, 그 과보로 생사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해 육도의 이곳 저곳에서 태어나고 멸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윤회 관념이다. 그 점에서 보면 지옥이나 천상도 업에 따른 생사고리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불교의 지옥 설화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이 아비지옥(阿鼻地獄)이다. 아비지옥은 오역죄(五逆罪)라 불리는, 불교에서 제일 무겁게 여기는 죄를 지은 자가 태어나는 곳이다. 오역죄로 거론되는 항목은 첫째, 아버지를 죽인 죄, 둘째, 어머니를 죽인 죄, 세상의 존경을 받을 만한 성자(聖者)를 죽인 죄, 넷째, 깨달은 자(부처)의 몸을 상하게 하여 피를 흘리게 한 죄, 다섯째, 교단의 화합을 깬 죄이다. 대승불교 시대에는 이 다섯 가지 항목에 ‘대승을 비방한 죄’ 등이 첨가되는 등 시대에 따라 또는 교파에 따라 아비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업의 내용에 조금씩 차이가 생기게 된다. ‘지옥’이나 지옥의 관념이 거슬러 올라가면 불교 및 인도사상에서 유래한 말이라 하더라도, 한국 사람이 지금 가지고 있는 지옥 관념은 다양한 문화적 전통을 경유하며 새롭게 바꾼 것이기 때문에 순수한 불교적인 의미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인도의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되면서 인도사상 및 불교의 지옥 관념도 중국 문화에 의해 변형된다. 중국적인 형태의 지옥 관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시왕신왕(十王信仰)이다. 시왕신앙은 중국의 도교적 민간신앙과 불교의 중유(中有·中陰:죽은 후 다시 태어나기까지의 시간) 사상이 뒤섞여 생긴 신앙 형태인데, 한국인의 지옥 관념에도 이러한 시왕신앙이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경(僞經)인 <시왕경 十王經>, 그리고 시왕경을 그림으로 나타낸 '변상도(變相圖)'는, 중국인이나 한국인이 생각했던 저승세계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시왕경에 의하면, 죽은 자가 새로 태어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7·7일 곧 49일이다. 이 동안에 일주일에 한 왕씩 만나게 되어 일곱 왕에게 생전에 행한 업에 대해서 일일이 조사를 받게 된다. 변상도(變相圖)에 묘사된 정경을 살펴보자. 첫 주에는 저승의 다리를 건너 진광대왕(秦廣大王)을 만나게 된다. 둘째 주에는 저승의 강을 건너 초강대왕(初江大王) 앞에 끌려가 결박된 채 괴로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셋째 주에는 멀고 험한 저승의 행로가 나오며 송제대왕(宋帝大王)을 만나게 된다. 넷째 주에는 죽은 자가 칼을 쓰고서 오관대왕(五官大王) 앞에 끌려와 생전에 지은 죄업의 경중을 저울질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섯째 주에는 죽은 자가 염마대왕(閻魔大王) 앞에 끌려와 업경대J37962(業鏡臺J37962)에 생전의 일을 비추어 보는 장면이 나온다. 여섯째 주에는 죽은 자가 변성대왕(變成大王) 앞에 끌려와 문책당하는 장면이 나오고, 일곱째 주에는 태산대왕(太山大王) 앞에서 죽은 자의 중음신(中陰身)이 과보에 따라 다시 생을 받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한편 지옥 변상도의 여덟째 그림은 죽은 자가 100일을 지나 평등대왕(平等大王) 앞에서 형벌을 받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홉 번째 그림은 죽은 자가 1년이 지나서 도시대왕(都市大王) 앞에서 고통 당하는 모습을 그린다. 마지막 열번째 그림에서는 죽은 자가 3년이 지나서 마지막 열번째 대왕인 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 앞에 칼을 쓴 채 등장하고, 그 옆에는 육도환생(六道還生)의 모습이 묘사되어 지옥의 과보를 받은 이후에 또 다른 세계에 태어나는 정경을 그리고 있다.

시왕신앙은 지옥의 고통을 미리 알게함으로써 생전에 선행을 하도록 인도한다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의미를 지닌다. 중국 불교에서, 시왕경에 등장하는 열 명의 대왕을 차례대로 부동명왕·석가·문수보살·보현보살·지장보살·미륵보살·약사여래(藥師如來)·관세음보살·세지보살(勢至菩薩)·아미타여래의 화현(化現)으로 간주하는 점을 보면, 지옥에 대한 구체적 묘사는 중생구제를 위한 교훈의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사찰에는 주불(主佛)을 모신 금당(金堂) 곁에 명부전(冥府殿)이란 곳이 있는데, 이 명부전에는 한국인의 민속신앙에 반영된 지옥관이 잘 나타나 있다. 명부전의 종교적 기능은 일반적으로 ‘49재’로 알려진, 죽은 이의 넋을 천도하기 위한 의식을 행하는 곳이다. 명부전은,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서원(誓願)을 세우고, 자신의 성불을 뒤로 미룬 지장보살을 주존(主尊)으로 모시고, 그 좌우로 시왕과 그 권속이 배치되는데, 후불벽에는 지장도와 시왕도가 놓이는 것이 일반적인 배치 구조이다. 지옥이란 장소가 죄과에 대한 심판과 과보만 받는 무시무시하고 살벌한 곳만으로 간주되지 않는 것은 큰 자비심을 갖고 있는 지장보살이 나타나 구원해 주기 때문이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불이 열반에 든 후 미래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고통받는 중생을 제도하는 일을 물려받은 보살이다.

일반적으로 지장신앙이 널리 유포되기 시작한 것은 중국 수나라 때인데, 7세기 후반 당(唐)나라 때는 정토신앙과 더불어 지장신앙도 널리 퍼진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신라 왕자였던 김교각(696∼794, 689∼789)은 지장보살의 현신(現身)으로 중국에서 추앙되기도 하였다.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삼고, 양쪽 협시(脇侍)로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을 배치한 독특한 구도도 보이는데, 이것은 지장보살이 부처의 삼신(三身)처럼 여겨졌던 증거로, 한국에서만 보이는 특이한 신앙 형태이다. 도명존자에 관해서는 중국의 환혼기(還魂記)라는 설화에 그 기록이 보이는데, 염라대왕에게 끌려 갔다가 다시 돌아 왔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승려로, 도교에서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다. 무독귀왕은 지장보살의 전생이야기에 나오는데, 전생에 지장보살을 저승으로 안내해 준 귀왕이라고 한다.

명부전의 후불벽에 배치되는 지옥도는 <지장경>·<시왕경>·<우란분경(盂蘭盆經)>과 같은 경전의 기술에서 내용을 빌려오고 있다. <지장경>은 지장보살이 전생에서 세웠던 서원(誓願)과 그 위력, 한 구절 한 게송만 외우고 듣더라도 끝없는 죄업을 소멸할 수 있다는 경전 자체의 공덕에 대한 찬탄 등을 담고 있는 경전이다. 원래 명칭은 <지장보살본원경 地裝菩薩本願經>인데, 당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명나라 대장경明藏)에 와서야 처음으로 수록되기 때문에 당대 이후의 번역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학계에서는 중앙아시아 성립설과 중국인들이 <지장십륜경(地藏十輪經)>을 확대 보충해서 만든 위경(僞經)이라는 설도 있다. <지장경>은 특히 조선 시대에 한국과 중국 등지에서 크게 유행했는데, 16세기 쯤에 처음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장경 구결(口訣)과 그 후대의 지장경 언해(諺解)는 <월인석보>와 함께 중세 국어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당시 지장신앙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시왕경>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경(僞經)으로 추정되며, <예수시왕경(預修十王經)>·<예수시왕칠생경> 등의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우란분경>은 부처의 십대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목련존자의 인연설화에서 비롯된 경전으로, 목련존자가 육도 가운데 하나인 아귀도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효 사상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널리 유포된 경전이다. <우란분경>에 의거해서, 죽은 조상의 영혼을 위로하고 정토에 왕생토록 기리는 의식이 바로 '우란분재'이다. 한국에서는 오늘날까지 절에서 음력 7월15일을 우란분절 또는 백중(百中)이라 하여 크게 재를 올릴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민속명절로 기리고 있다. 고려시대에 우란분재를 자주 행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민속행사로까지 발전하였다.

한국인이 지옥을 어떤 곳으로 생각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자료는 그림일 것이다. 한국에서 지옥과 관련된 그림은 우란분경변상도(盂蘭盆經變相圖)·감로왕도(甘露王圖)·시왕도(十王圖)·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지장도(地藏圖)·삼장도(三藏圖)·인로왕도(引露王圖)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지옥의 정경을 직접적으로 그리고 있는 그림은 시왕도가 대표적이며 지장시왕도에도 부분적으로 지옥을 묘사한 경우가 있다. 우란분경변상도는 우란분경을 근거로 해서 그린 그림이다. 감로도(甘露圖)는 우란분경 및 <유가집요구아난타라니염구궤의경(瑜伽集要救阿難陀羅尼焰口軌儀經)>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그림이다. 감로도의 도설 내용은 아귀도를 떠도는 죽은 영혼에게 단이슬(甘露)로 상징되는 음식물을 베풀어서 배고픔과 목마름을 달래고 아미타불의 서방정토 극락에 왕생토록 인도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죽은 이의 넋을 천도하기 위해 재를 베푼 사람의 공덕을 그의 조상에게 회향한다는 조상 숭배적인 요소와 함께, 끝없는 윤회의 굴레를 헤매고 있는 여러 중생도 그러한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 극락에 태어날 수 있다는 바람을 눈으로 보여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하겠다.

조선조의 억불정책 속에서도 유교의 효사상과 맞물려 왕실에서는 우란분재가 설치되었다. 우란분재의 의식은 각 사찰 영단에 감로왕도를 모셔 놓고 우란분재를 올리는 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우수한 감로왕도가 여럿 제작되었다. 정조 임금이 선친인 사도세자를 위해 세운 원찰(願刹)인 용주사에 있는 감로도는 정조의 효심이 어린 것으로 보인다. 한편 흥국사 감로도는, 임진왜란 당시 승군(僧軍)의 활약이 두드러진 사찰이기 때문에, 전란으로 인한 영혼 천도의 엄숙한 뜻이 담겨 있다고 보인다. 이러한 감로도는 한국에서만 널리 유행한 것으로 한국불화의 특색과 불교신앙의 성격을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다음 문화원형백과>

 

 

 

 

 

 

■ 조사전(祖師殿), 산신각(山神閣)

 

팔상전의 서쪽, 선운사의 가장 안쪽에 조사전이 있다.

 

조사전은 절에서 후세에 존경받는 승려들의 영정이나 위패를 모신 건물로 조사당, 국사전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조사는 불교에서 한 종파를 열었거나 그 종파의 법맥을 이은 선승을 가리키는데 선종 사찰에서 조사당을 세워 영정과 위패, 조각상 등을 모신 데서 비롯되었다. 조사전이 없는 절에서는 영각을 짓고, 국사를 배출한 절에서는 국사전을 짓기도 하였다.

 

조사전은 성현의 위패를 모신 사묘를 뒤에 두고 그 앞쪽에 처소를 배치시키는 후묘선학 배치법에 따라 사찰 안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게 된다. 선운사 조사전은 작년(2010년) 4월에 낙성했다고 한다.

 

 

▼ 산신전 앞에서 본 조사전. 팔상전 지나 정면으로 보이는 백골집(단청 없는 전각)이 조사전이다.

 

 

 

 

조사전 내부에는 일곱 분의 조사를 모셨다. 1500여 년 전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스님을 비롯하여 참당사를 창건한 의운, 설파, 백파, 경담, 환응, 석전스님 등의 진영이 봉안되었다.

 

화엄학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설파(雪坡, 1707∼1791), 조선시대 선문(禪門)의 중흥주로 추앙받는 백파(白坡, 1767∼1852), 조선 말기 불문(佛門)의 3걸로 손꼽혔던 경담(鏡潭, 1824~1904), 한말의 율사(律師)로서 명망이 높았던 환응(幻應, 1847∼1929), 박한영(朴漢永)이라는 속명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으며 근대불교의 선구자적 역할을 한 석전(石顚, 1870∼1948)

 

 

 

 

 

영산전 뒤 팔상전 동쪽에는 작은 맞배지붕 전각이 있는데, 바로 산신각(山神閣)이다. 산신각은 우리 나라 절에만 있는 독특한 전각으로 불교가 토착 신앙을 수용하여 나타난 신앙 공간이다. 1614년에 조성된 이후 여러 번의 중수가 있었다.

 

일반적인 산신각과 달리 선운사의 산신각은 중앙에 선운사의 창건주인 검단선사와 참당사의 창건주인 의운스님을 함께 그린 진영을 봉안하였다. 산신각의 주인인 산신탱은 옆 벽면에 걸려 있다.

 

 

 

 

 

 

선운사의 전각들을 모두 둘러본 뒤에 성보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금동지장보살(보물 279호)과 백파율사비 등은 보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성보박물관 문은 꽉 닫혀 있다. 정문 앞에는 분명 개관 시간이 또렷이 적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 입구가 다른 곳에 있나 싶어 한 바퀴를 도는데, 관리인인 듯 싶은 분이 지금 문을 열지 않는단다. 왜냐, 고 하는 말에 사람들이 많이 찾을 때가 되면 열 거란다. 그게 무슨 말인지...

 

참 어이없다 생각하면서 발길을 돌리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