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보춘화, 상산, 수리딸기, 자주괴불주머니 꽃 피는 선운산 봄꽃 산행

모산재 2016. 4. 10. 15:48


여러 가지 과제가 쌓여 있어 주말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책상 앞에 앉아 책장을 넘기며 머리를 써야 하는데, 창 밖으로 화사하게 핀 산벚나무 꽃들과 연초록 신록이 짙어가는 대모산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도무지 책이 손에 잡힐 것 같지 않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무작정 집을 나서 남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날씨는 맑은데도 미세먼지가 짙은 탓인지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안개가 낀 듯 뿌애 산행을 나선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닌지 괜한 걱정이 들기도 한다. 




5년만에 찾는 선운산! 하지만 봄꽃 산행은 처음이다.



연일 20도를 오르내리는 따뜻한 봄날씨가 이어지면서 봄에 피는 모든 꽃들이 한꺼번에 피는 현상이 생기고 있다. 서울의 벚꽃도 한창을 지나 벌써 지고 있는 상황인데 뜻밖에 이곳 벚꽃도 한창인 듯하다.






벚꽃 길을 따라 걷는 상춘객과 등산객들







아직은 4월 초순인데 동백꽃이 만발하였다.


동백꽃의 북한계선, 4월 하순에도 꽃이 피지 않는 경우도 많은 선운사 동백꽃인데...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송창식의 '선운사' 노래를 떠올리고 조용히 불러보는데 애절한 감흥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너무 따뜻한 날씨 탓일 게다. '바람 불어 설운 날'이거나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계절이라야 이 노래는 맛이 난다.



추사의 글이 적힌 백파선사의 부도비가 있는 부도밭을 지나고...





선운사 앞을 흐르는 이 계곡물을 바라보며 김용택의 시를 떠올린다.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선운사는 이미 여러 번 와 봤으니 생략!


 (※ 선운사에 대해서는 => 인간의 애절한 사랑과 시왕의 너털웃음이 함께하는 선운사(http://blog.daum.net/kheenn/7049709)



그냥 익숙한 계곡 쪽으로 산책하며 하루를 즐길까, 아니면 산행을 할까 잠시 고민하다 석상암과 마이재 쪽 등산로로 향하는 사람들 뒤를 따르기로 한다. 





등산로 언덕에 핀 수리딸기 꽃으로부터 오늘의 꽃산행은 시작된다.





석상암 앞 골짜기 풍경 





남산제비꽃





잎 모양이 다양한 현호색






석상암을 지나 마이재로 





계곡 주변은 자주괴불주머니가 지천~.





좁쌀만한 꽃을 피운 개구리발톱 또한 제철~.





어디선가 진한 향기가 살랑이는 바람에 실려 코끝을 간질인다.


산객들은 하나같이 "더덕 향기 죽인다~"고 외치는데,

이 냄새를 맡아본 사람이면 상산이라는 걸 금방 눈치 챈다.


과연 계곡 주변에는 상산이 지천인데 이미 꽃이 지고 있는 상태...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암꽃을 단 나무는 보이지 않고 죄다 수꽃나무뿐이다.






흔히 보던 큰구슬봉이와는 느낌이 사뭇 다른 구슬봉이를 만난다.


연한 하늘빛 꽃은 구슬봉이와 더 닮았는데 줄기에 달린 잎 모양은 큰구슬봉이처럼 크고 넓어

구슬봉이와 큰구슬봉이의 특성이 섞여 있는 듯하다.


꽃의 크기조차 그 둘의 중간쯤 정도로 보인다.





꽃받침이 꽃에 밀착되어 있는 점은 봄구슬봉이와 같지만 봄구슬봉이의 모습은 아닌 듯하다.




꽃이 워낙 작아 찍기 쉽지 않은 개구리발톱 한번 더 잡아본다.





개족도리풀도 흔하게 보인다.




잎 무늬가 무늬족도리풀과 구별이 어렵지만 꽃 모양은 아주 다르다.





왜제비꽃은 대부분 지고 있는 상태...







마이재에서 왼쪽 수리봉을 향하여 오른다.





300m대의 낮은 산들이지만 선운산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는 산행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고깔제비꽃도 벌써 끝물인 듯...





이곳에는 큰개별꽃은 보이지 않고 개별꽃들만 보인다.






만개한 진달래꽃. 꽃의 크기가 좀 작은 편이다.







복사꽃도 이미 절정을 지났다.





이 산에는 소사나무와 서어나무가 함께 사는 듯.



멀어서 판단이 정확하기는 어려울 듯하지만,


밝은 노란색 수꽃을단 것은 소사나무로 보이고...






짙은 갈색의 수꽃을 달고 있는 것은 서어나무로 보인다. 





서어나무는 지천으로 많은데 노란 꽃을 단 소사나무는 간혹 보일 뿐이다.




쇠물풀레나무지 싶은 나무는 꽃봉오리를 갓 달았다.






선운산 최고봉 수리봉(336m). 도솔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주능선에서 살짝 벗어나 솟아있는 개이빨산(345m)이 더 높은데 최고봉에서 제외되어 있다.





수리봉에서 바라본 풍경



바로 앞 봉우리는 연화봉.


씨가 맑으면 왼쪽으로 바다 위에 떠 있는 위도, 왼쪽으로 곰소만이 보일 텐데... 




멀리 보이는 개이빨산(견치봉, 345m)과 국사봉(325m). 너머로 보이는 산은 조진산





수리봉을 지나면 급경사로 내려서는 안부 능선길.


능선길 가장 낮은 곳에서 참당암으로 내려서는 길이 있고, 

능선길은 다시 개이빨산(견치산)으로 이어지는 봉우리로 오른다. 




수꽃이 만발한 서어나무





그런데 산의 능선을 따라 애호랑나비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닌다.


애벌레는 족도리풀을 먹이로 삼고 나비는 진달래꽃을 좋아하니

이 계절이야말로 애호랑나비에겐 천국이나 다름없는 시기!


따스한 봄날의 양기를 잔뜩 받은 탓으로 사진에 담을 수 없어 아쉽다.


(※ 애호랑나비 => http://blog.daum.net/kheenn/15856307, http://blog.daum.net/kheenn/14456226)




덜꿩나무로 생각했는데, 잎 모양을 보니 가막살나무다.






선운산 등산 안내도(참당암 뒷편 고개)





수리딸기꽃 한 번 더 ~.





층층나무에 새잎이 나고~.






이 현호색은 턱잎이 갈라지지 않고 밋밋한 것이 왜현호색과 다르지 않다.






올라선 봉우리에서 소리재를 지나 도솔봉으로 향한다.





건너편은 개이빨산(견치산)과 국사봉







애기장구채 새잎






개이빨산(견치산) 입구





개이빨산(견치산, 345m)


나란히 이어진 봉우리를 국사봉과 나누어 부르기도 하지만 동일한 산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내 소리재로 내려서며 포근한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고물고물 잼잼, 어린 고사리





숲속의 묏등에 떨어진 수꽃 이삭 하나~.




무슨 나무의 꽃인가 하고 둘러보니 이런 나무가 있다.





수꽃이 늘어지는 걸로 봐선 자작나무과의 나무로 짐작되는데, 

열매자루가 긴 걸로 봐서는 박달나무, 물박달나무, 사스래나무 중 하나일 듯...


수피는 박달나무인 듯하나 선운산에 자생하는지가 의심스럽다.


아님 물박달나무가 늙으면 수피가 이런 모습일까...


녹색빛이 도는 수꽃의 특징을 놓고 자료를 확인하다 보니 아무래도 사방오리나무인 듯!




산길에 웬 금창초가 피었을까...





솔밭이 이어지는 숲에서 보춘화를 만난다.




그런데 대부분의 난초가 이처럼 주판과 부판이 잘려 있는 모습이다.






아마도 진상 사진가들이 자신이 찍고 나서 다른 사람들이 찍지 못하도록 이런 짓을 한 듯하다.



그나마 그런 손길을 피한 것이 있어 다행이라 여긴다. 






소리재에서 도솔암, 용문굴 쪽으로 갈까 고민하다가 그쪽은 이미 갔던 적이 있고 골짜기 쪽을 탐색하고 싶어 바로 참당암 쪽 계곡으로 내려서기로 한다.



소리재에서 계곡으로 내려서는 곳부터 제법 넓은 늪지가 펼쳐지고 길을 따라 물이 흘러내린다.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 길이라 한적해서 마음조차 편안해진다.





실청사초이지 싶은 사초를 만나고...





촐삭거리며 돌아다니는 멧팔랑나비도 만난다.



(※ 멧팔랑나비 => http://blog.daum.net/kheenn/15854233)





습지여선지 버들분취 새잎이 자라나는 모습이 흔히 보이는데






이 털이 숭숭하고 쪼글쪼글한 잎면을 가진 녀석은 뭘까?


담배풀로 보기에는 좀 낯선 질감을 보인다.






흥건하게 물이 흘러내리는 길을 따라 걷는 기분이 참 좋다. 





이런 고사리삼을 단풍고사리삼이라고 불러도 되나...





노루발은 꽃대를 올릴 준비 중인 듯





가는그늘사초는 이제 씨앗을 달기 시작한 모습





참나리에 붙어 있는 이 곤충, 이름을 뭐라 불러 주랴?





네잎갈퀴나물 어린풀





그리고 이내 참당암 바로 아래에 이른다.





계곡 주변엔 나도물통이가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제주도와 전라도 일부 산에만 자생하는 나도물통이,


물통이 종류 중에서 이렇게 선명한 꽃을 보이는 것이 없지 싶다.






이 현호색은 갈래갈래 갚게 갈라진 잎 모양도 특이하고

조선현호색처럼 깊게 여러 갈래로 갈라진 포엽도 특이해서 주목해 보고 싶다.






참당암이다.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 아름드리 벚꽃나무가 참 매력적이다. 





선운사의 부속 암자임에도 대형 삼존불을 모신 웅장한 대웅전이 눈길을 끈다. 


이 사찰에서 꼭 살펴봐야 할 것은 왼쪽 명부전 뒤편의 지장전에 모신 석조 지장보살!




선운사에는 부속암자를 통틀어 지장보살만 4존이 계신다.


나 별걸 다 알고 있네...


참당암에 대해서는 따로 다루기로 한다.


(☞ 참당암 => http://blog.daum.net/kheenn/15857891)





광대나물 꽃을 담아본다.





골짜기를 따라 까치무릇(산자고) 꽃도 흔하게 보인다.





자주괴불주머니는 지천으로 피었고...






그리고 다시 나무그루터기에 기대어 꽃을 피운 보춘화를 만나 한 동안 함께 노느라 시간을 보낸다.





물이 흐르는 계곡 주변에서 사방불을 연상시키는 연복초도 만난다.





5년 전에 뵈었던 약사불을 다시 만나니 너무 반갑다.





세상이 다 변해도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부처님...




까마귀밥나무도 녹색 꽃을 피웠다.





석양에 환하게 미소짓는 복사꽃을 한번 더 담아 본다.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재촉하는 길,

봄나들이 즐기는 사람들의 발길은 느긋하기만 하다.





이 꽃만이라도 좀 더 오래 달려 있어 다오.





단풍 드는 어느 가을, 선운산과 선운사를 다시 찾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