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 15

악견산과 금성산을 바라보는 합천호 광암정(廣巖亭)

가을빛 짙어 가는 합천호, 그 푸른 호숫가에 우두커니 서서 물 건너 악견산과 금성산을 바라보며 광암정은 자리잡고 있다. 억새 출렁이는 합천호 가을 풍경 지금으로부터 180여 년 전, 갑신정변이 일어나던 바로 그 해에 매와거사(梅窩居士) 권정기(權正基)라는 분이 아버지 병덕(秉德)을 위하여 지은 정자라고 한다. 아버지 권병덕은 중추원 의관 등을 지냈는데 호를 광암(廣巖)이라 하여 정자 이름도 광암정(廣巖亭)이라 하였다. 원래는 대병면 창리 산9번지 황강변 경관이 수려한 자연 암석 위에 세워져 있었는데, 합천댐 건설로 수몰 지역이 되어 1985년 지금의 장소로 옮겨 복원하였다고 한다. 앞쪽을 보기 위해 아래로 내려서는 데크 길을 따라 돌아간다. 앞면 4칸·옆면 3칸의 누각식 겹처마 팔작지붕집이다. 가운데에는..

선조의 피난길을 밝히기 위해 불탄 파주 화석정

율곡의 고향인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임진강을 내려다보는 언덕에 서 있는 화석정(花石亭). 임진년인 1592년 4월 13일 700여 척의 함선으로 부산에 상륙한 왜군은 조령을 넘어 4월 28일 신립이 이끄는 조선군을 충주 탄금대에서 패퇴시키고 한양으로 진격한다. 29일 패전 소식을 들은 선조는 다음날인 30일 새벽 2시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빗속에 궁궐을 버리고 바로 피난길에 오른다. 왜란에 대비해 주장했던 십만양병설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율곡은 미래를 예견하고 드나들던 화석정 기둥과 서까래에 들기름을 먹여 두었다고 하는데, 4월 29일 밤 선조가 강을 건널 때 이항복이 화석정에 불을 질러 어둠을 밝히고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고 전한다. 부산에 상륙한 지 불과 20여 일 지난 5월 3일 한양은 왜군에 ..

강릉 경포대, 다섯 개의 달이 뜨는 관동팔경의 제1경

기대하지 않았던 별당형 정자, 보물인 해운정을 둘러본 뿌듯한 마음을 안고 경포대로 향한다. 도로를 따라 가는 길이 썩 내키지 않아 산과 들을 가로지르는 길로 들어섰다. 선교장 뒤로 흘러내린 산줄기에는 아름드리 적송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바람이 실어온 솔향기을 맡으며 걷는 걸음이 상쾌하기만 하다. 농로를 따라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데, 멀리 눈덮인 백두대간의 늠름한 줄기를 바라보니 눈이 시원스럽게 정화되는 듯하다. 하얀 두루미들이 먹이를 찾다가 인기척에 놀라 일제히 퍼드득 날아오른다. 보니 재두루미들도 있다. 들판 하나 건너니 금방 경포대가 눈 앞에 와 섰다. 앞쪽이 절벽이라 경포대 오르는 길은 이렇게 측면 뒤쪽에서 접근하도록 되어 있다. 경포해수욕장은 사철 가리지 않고 찾는 이들로 붐비지만 관동팔경인 ..

청송 (2) 섶다리, 망미정과 우송당

용전천 강언덕에서 현비암을 바라보다보니 섶다리가 보인다. 웬 섶다리인가. 청송객사에서 출발하는 외씨버선길이 지나는 길인 듯 싶었는데... 그런데, 이 섶다리도 원래는 청송심씨의 시조묘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전사일(奠祀日)에 용전천 강물이 불어 건너지 못하는 사태에 대비하기 위하여 만들었다는 것이다. 근대화 바람 속에서 한동안 사라졌던 섶다리는 1996년 처음 복원되었고 그후 관광 청송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명물로 매년 설치된다고 한다. 청송교에서 바라본 청송 전경 청송교를 건너다가 동쪽의 강가에 절벽이 솟아 있고 그 위에 정자 하나가 자리잡고 있는 풍경을 만난다. 궁금하여 발길을 옮겨 다가서보니, 정자의 이름은 망미정(望美亭)이다. 기암절벽 위에 자리잡은 정자는 용정천을 굽어보며 한폭의 그림을 이루고 ..

경주 남산 (12) 서출지(書出池)와 이요당(二樂堂), 무량사

어제 강행군을 한 탓에 좀 늦게 일어났다. 숙소 옆 좀 허름한 식당에서 갈치조림을 시켜서 아침을 먹는데 맛이 그만이다. 경상도 음식맛이 별로라고 하지만 이렇게 괜찮은 집들도 간혹 있다. 오늘은 어제와는 반대편인 남산의 동쪽인 남산리로 가기로 한다. 거기서 서출지(書出池)와 삼층석탑을 구경하고 남산 언저리를 따라 북쪽으로 걸으며 탐방하기로 한다. 헌강왕릉, 보리사 석조여래좌상, 탑골마애불상군, 불곡감실보살좌상을 기본으로 삼고 시간이 허락된다면 거기서 남산신성을 지나 남간사지 당간지주, 창림사 삼층석탑, 포석정 순으로 돌아보기로 한다. 식사를 마친 후 다시 시외버스터미널로 나가 버스를 타려다가 택시를 타 버린다. 영하 5도나 내려간 날씨에 기다리기가 싫고 또 삼릉골 가는 것과 택시비가 얼마나 차이가 나랴 싶..

전주 여행 (5) 한벽당과 한벽굴, 석양의 전주천 풍경, 남천교

전주 여행지도 속에 견훤 왕궁터가 표기되어 있어 찾아 보기로 하고 이목대에서 기린로로 내려서서 한벽당 방향으로 걷는다. 여행지도에는 길 표시가 분명하지 않아서 막연히 방향만 잡고 걷는데, 동쪽으로 넘어가는 길은 좀체로 나타나지 않는다. 기린로가 전주천을 만나 다리를 건너는 지점에서 터널 하나가 나타난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벽굴'이라고 하는 터널이다. 기린로로 이어지는 그 옛날의 전라선 철길 터널이다. 지금은 동쪽 산 너머로 철길이 옮겨가고 기린로와 전주천 상류 천변길을 잇는 사람들과 차량의 통행로로 이용되고 있다. 여행 지도로 보면 이 부근에 한벽당이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산기슭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터널을 지난다. 터널을 지나면 견훤궁터로 가는 길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

창덕궁 (6) 옥류천 일원, 취규정, 소요정, 태극정, 청의정

존덕정에서 옥류천 가는 길은 그야말로 한적한 숲속 오솔길입니다. 생명감 넘치는 숲의 기운을 받으며 걸으니 상쾌함이 넘쳐납니다. 함께 걷는 이들도 모두들 좋아라며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완만하긴 해도 비탈길이라 가벼운 운동도 됩니다. 산책길로는 가장 이상적인 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길 중간에서 돌아서 내려다보니 존덕정이 늦은 오후의 햇살에 희미하게 빛납니다. 오르막길을 올라서자 후원을 순환하는 큰길이 나타납니다. 산등성이로 난 큰길로 들어서 왼쪽으로 걸어가다보면 취규정(聚奎亭)이라는 정자가 나타납니다. 이 호젓한 길을 걷다가 잠시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인 쉼터입니다. 취규정(聚奎亭)이라... 무리 '취(聚)'에 별 '규(奎)'자로 된 이름이니, 저녁에 산책을 하다 이 높은 언덕 위의 정자는 하늘의 별들을 바라..

창덕궁 (5) 관람지와 존덕지의 정자들, 관람정· 존덕정· 폄우사· 승재정

정조 임금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부용지와 주합루를 떠나, 또 하나의 아름다운 정원인 관람지와 존덕지를 향해 발길을 옮깁니다. 흰작살나무 열매들이 옥구슬처럼 예쁘게 달려 있는 모습을 보며 애련지 앞을 지납니다. 그리고 금방 또 하나의 연못이 나타납니다. 관람지(觀纜池)라는 연못입니다. 멀리 두 기둥의 주춧돌을 연못에 담그고 있는 관람정이라는 정자와 그 위쪽으로 존덕정이라는 정자도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 연못은 네모 반듯한 부용지나 애련지와는 달리 길쭉하고 언덕의 지형을 따라 자연스런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호수 주변은 숲이 우거져 있어 부용지나 애련지에 비해 훨씬 자연스럽고 호젓한 느낌이 듭니다. 어째서 이름이 관람지(觀纜池)일까요. '람(纜)'은 배를 정박시키는 닻줄을 뜻하니, 아마도 이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