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강릉 경포대와 경포호 전설

모산재 2007. 8. 8. 17:08

 

2007. 07. 22  일요일

 

 

 

선교장을 둘러 보고 나니 점심 때가 좀 늦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초당두부 전문 식당에서 두부 전골과 모두부를 시켜서 점심을 먹는다. 동동주 한잔을 서비스로 받고...

 

동두천 두 아가씨가 점심값을 낸다.

 

 

 

점심을 먹고 나니 여전히 땡볕이 뜨겁기만한데, 경포대와 경포호를 돌아보기로 한다.

 

경포대는 관동팔경의 하나로 유명하지만 지금은 사람들로 붐비는 경포해수욕장에 비해 정작 관동팔경의 주인공은 발길이 뜸해 쓸쓸하기만하다. 어쩌면 강릉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은 경포대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리라.

 

 

 

경포대로 오르는 길은 다행히 소나무숲이 짙은 그늘을 만들었고 때맞춰 바람까지 불어오니 시원하기만하다.

 

 

 

 

 

관동팔경을 동해안을 따라 북쪽에서 남쪽으로 차례대로 들어 보면

 

통천의 총석정(叢石亭)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간성의 청간정(淸澗亭)

양양의 낙산사(洛山寺)

강릉의 경포대(鏡浦臺)

삼척의 죽서루(竹西樓)

울진의 망양정(望洋亭)

평해의 월송정(越松亭)

 

 

월송정 대신 흡곡의 시중대(侍中臺)를 넣기도 한다. 

 

해방 전까지 강원에 속했던 울진의 망양정과 평해의 월송정은 현재 경북으로 편입되었고, 또 삼일포와 총석정은 해금강 지역으로 북한 땅에 속해 있다.

 

다행스럽게도 삼일포는 금강산의 해금강 코스로 자유롭게 가볼 수 있다.

 

 

 

 

 

경포 호수와 주위의 넓은 들을 감상할 수 있는 비교적 높은 장소에 지어진 이 건물은 기능적인 다양한 공간 구성과 자연과의 융합성이 돋보인다.

 

정면 5칸, 측면 5칸 규모인 단층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는 이 건물은 내부의 높이를 달리하고 흙과 마루를 적절히 사용하여 좋은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중간에 다른 기둥보다 특별히 높은 2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높은 기둥에 동자기둥을 걸어 다섯 개의 보를 짠 2고주 5량의 구조를 하고 있다.

 

 

 

 

 

 

 

 

신발을 신은 채로 마루를 다니게 하여 마루의 훼손이 심한 것이 안타깝다. 삼가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올라 멀리 강호를 바라보며 청풍명월을 즐기지는 못할지언정 정자마루에 신발까지 신고 올라가야 하는 것인지...

 

 

 

 

 

내부 천장은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난 연등천장(椽燈天障)으로 되어 있는데, 들보의 단청이 아주 화려하다.

 

 

 

 

 

 

저 멀리 경포호 너머 바다와 경계를 이룬 모래언덕(사주)가 있고 흑송이 울창한 사주 너머 바다쪽이 바로 경포해수욕장이다.

 

날씨가 좋다면 소나무숲 너머로 푸른 동해도 뚜렷이 보이련만...

 

 

 

 

 

호수와 바다가 함께 바라보이는 풍경이 주는 낭만에 경포대에서는 다섯 개의 달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나는 하늘의 달이요, 둘은 호수의 달이요, 셋은 바다의 달이요, 넷은 술잔의 달이요 다섯은 님의 눈에 비친 달!

 

 

 

그리고 경포호에는 '장자못 전설' 유형인 전설 두 가지와 기생 홍장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는데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전설 1 > 에미바위 전설

옛날 이곳에 모녀(母女)가 살았는데 하루는 노승이 시주를 청하니 철이 없고 성질이 괄괄한 딸이 인분을 떠서 노승이 들고 있는 쪽박에 던졌다. 노승은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받아 들고 돌아섰는데 이 사실을 안 어머니가 허겁지겁 노승을 쫓아가 딸의 무례함을 사과했더니 『너의 집 문 앞에 키가 넘도록 물이 차리라 어서 몸을 피하여라.』라는 말을 남기고 노승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해질 무렵이 되니 노승의 말대로 명주 도읍지의 일부가 물바다로 변하면서 많은 가축이 떼죽음을 당했다. 물을 피하여 달아나던 어머니가 문득 집에 있는 딸 생각이 나서 물을 헤쳐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몸이 굳어 만들어진 에미바위가 호수 한 가운데 있다.

 

< 전설 2 > 적곡조개 전설

옛날 경포호 자리에 큰 마을이 있었고 인색하기로 소문난 최부자가 이 마을에 살고 있었다. 한번은 도사(都事 : 지금의 군수)가 사람을 보내어 동냥을 청하니 욕설을 퍼붓고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이 소리를 전해들은 도사는 끓어 오르는 분을 참고 자신이 중으로 변장하고 최부자 집을 찾아 시주를 청했더니 최부자는 시주 대신 도사를 동구 밖의 나무에 묶어 놓았다.

그런데 최부자집 문 앞에는 여전히 시주를 청하는 도사가 서 있지 않는가? 최부자는 화가 나서 『저 중놈에게 인분 한줌을 주어서 내 쫓아라』하고 소리 쳤다. 심부름꾼이 최부자의 말대로 하였더니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면서 물이 솟아올라 마을이 호수로 변하고 최부자집 곡간에 쌓아 두었던 곡식들이 모두 조개로 변했다고 한다. 지금도 경포호에서 나는 조개를 적곡(積穀)조개라고 부른다.

 

< 전설 3 > 홍장암 전설

홍장(紅粧)은 고려말, 조선초의 강릉의 명기이다. 박신(朴信)이 강원도 안렴사로 갔을 때 그녀를 사랑하여 아주 깊이 정이 들었는데 임기가 끝나 서울로 돌아갈 때 강릉부윤으로 있던 조운흘이 '홍장은 이미 죽었다'고 하고, 그녀를 마치 신선처럼 꾸민 뒤 박신을 한송정으로 유인하여 놀려 주었다는 일화가 <동인시화(東人詩話)>에 전하고 있다.

조선 효종때, 성리학자 이익의 제자 신후담이 홍장과 박신의 이와 같은 애정 고사를 소설화하여 <홍장전>을 지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김태준의 <조선소설사>에서도 그의 <속열선전>등 여러 소설 작품들과 함께 거론된 바 있다. 경포대 호숫가에는 방해정이란 정자가 있는데 그 정자 앞에 있는 바위를 <홍장암>이라고 부른다. 홍장이 경포대에 놀러 오기만 하면 반드시 그 바위 위에서 놀았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그녀의 이름을 따서 그 바위를 <홍장암>이라고 불렀다 한다.

울며 잡은 소매 떨치고 가지 마소.
초원 장제(草原長堤)에 해 다 져 저물었네
객창에 잔등(殘燈) 돋우고 새워 보면 알리라.<홍장이 박신을 보내며 불렀다는 시조>

 

 

 

 

 

경포대 오르는 길에 철늦게 피어 있는 참골무꽃

 

 

 

 

 

 

※ 경포대와 경포호 주변 안내도

 

 

 

 

 

오늘날 동해안에서 유명한 해수욕장으로 꼽히는 경포대는 사람들이 주로 해안으로 몰리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한적한 곳으로 남아 있다. 경포호는 옛부터 시인묵객들이 예찬한 곳으로 호수가 거울처럼 맑다고 하여 일명 경호(鏡湖), 군자호(君子湖)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호수 둘레가 20리(里)에 달했으나 오늘날에는 상류 하천으로 토사가 흘러 들면서 호수 면적이 줄어들어 10리에 지나지 않는다. 늦가을이 되면 북쪽에서 철새들이 찾아와 월동을 한다. 호수 주위에는 과거 12개의 정자가 있었으나, 현재는 경포대(鏡浦臺), 금란정(金蘭亭), 경호정(鏡湖亭), 호해정(湖海亭), 석란정(石蘭亭), 창랑정(滄浪亭),취영정(聚瀛亭), 상영정(觴詠亭), 방해정(放海亭), 해운정(海雲亭), 월파만이 남아있다.

 

경포대는 고려 충숙왕 13년(1326년)에 강원도의 한 관리였던 박숙정이 당시의 인월사 옛터에 세웠던 것을 조선 중종 3년 (1508년) 강릉부사 한급이 지금의 자리에 옮겼고, 여러 차례의 중수 끝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 정철의 <관동별곡> 중 경포호와 관련된 부분

 

사양(斜陽) 현산(峴山)의 텩튝(躑躅)을 므니발와,
우개지륜(羽蓋芝輪)이 경포(鏡浦)로 나려가니,
십리빙환(十里氷丸)을 다리고 고텨 다려,
댱송(長松) 울흔 소개 슬카장 펴뎌시니,
믈결도 자도 잘샤 모래를 혜리로다.
고주해람(孤舟解纜)하야 뎡자(亭子) 우희 올라가니,
강문교(江門橋) 너믄 겨태 대양(大洋)이 거긔로다.
둉용(從容)한댜 이 긔샹(氣像), 활원(闊遠)한댜 뎌 경계(境界),
이도곤 가즌 데 또 어디 잇닷 말고.
홍장고사(紅粧古事)를 헌사타 하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