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강릉 경포대, 다섯 개의 달이 뜨는 관동팔경의 제1경

모산재 2014. 4. 1. 13:41

 

기대하지 않았던 별당형 정자, 보물인 해운정을 둘러본 뿌듯한 마음을 안고 경포대로 향한다.

 

도로를 따라 가는 길이 썩 내키지 않아 산과 들을 가로지르는 길로 들어섰다. 선교장 뒤로 흘러내린 산줄기에는 아름드리 적송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바람이 실어온 솔향기을 맡으며 걷는 걸음이 상쾌하기만 하다.

 

 

 

 

 

농로를 따라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데, 멀리 눈덮인 백두대간의 늠름한 줄기를 바라보니 눈이 시원스럽게 정화되는 듯하다. 

 

하얀 두루미들이 먹이를 찾다가 인기척에 놀라 일제히 퍼드득 날아오른다.

 

 

 

 

 

보니 재두루미들도 있다.

 

 

 

 

 

들판 하나 건너니 금방 경포대가 눈 앞에 와 섰다.

 

앞쪽이 절벽이라 경포대 오르는 길은 이렇게 측면 뒤쪽에서 접근하도록 되어 있다.

 

 

 

 

 

 

경포해수욕장은 사철 가리지 않고 찾는 이들로 붐비지만 관동팔경인 경포대를 찾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선교장을 찾는 이들도 바로 가까운 언덕 위에 있는 경포대는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나도 그랬으니까...

 

 

 

 

 

관동팔경이지만, 건물은 강원도지방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어 있을 뿐이다. 정면 6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 누대.

 

고려 말인 1326년에 안무사 박숙정이 현 방해정(放海亭) 북쪽에 세운 것을 1508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가 그 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경포대에는 정면과 측면 양쪽에 현판이 걸려 있다.

 

 

 

 

 

 

측면에 걸린 이 예서체의 현판은 유한지가, 정면에 걸린 정자체의 현판은 이익회가 썼다고 한다.

 

 

 

 

 

유한지는 영춘현감을 지낸 조선 후기의 명필로 추사 김정희로 부터 "예서에 조예가 깊었으나 문자기(文字氣)가 적다."라는 평을 받은 분이다. 과연 현판의 필치를 보니 우아한 기품은 있으나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정면에 걸린 정자체의 이 현판은 조선 후기 대사헌을 지낸 문신 이익회가 쓴 것이다.

 

 

 

 

 

위의 사진을 보면 누각 안 호수를 바라보는 쪽 면에다 단을 하나 더 높여 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경포호를 보는 시야를 좀더 넓히려 배려한 것이라 한다.

 

 

정자 내부에 걸린 '제일강산(第一江山)'이란 현판은 명나라 사신 주지번의 글씨라고도 하고 양사언의 글씨라고도 하는데 확실치 않고, '江山' 두 자를 잃어버려 후세인이 써 넣었다고 한다. 글씨체의 차이가 뚜렷하다.   

 

 

 

 

 

 

바다와 호수를 안고 있는 빼어난 경치로 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아든 경포대인지라 많은 현판이 걸려 있다. 오죽헌에 있던 율곡이 10세 때에 지었다고 하는 '경포대부', 숙종 임금의 시를 비롯하여 여러 명사들의 기문(記文) ·시판이 걸려 있다.

 

경포대에서 볼 수 있는 여덟 경치를 일러 경포팔경이라 부르는데 다음과 같다.

 

녹두일출(綠荳日出) : 호수 남쪽 해안의 녹두정(지금의 한송정터)에서 보는 일출
죽도명월(竹島明月) : 호수 동쪽에 솟아 있는 산죽이 무성한 죽도에서의 달맞이 광경
강문어화(江門漁火) : 강문 입구에 고기배의 불빛이 바다와 호수에 비치는 아름다운 밤의 모습
초당취연(草堂炊煙) : 초당마을 저녁 무렵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
홍장야우(紅粧夜雨) : 경포호 북안(北岸)에 있는 홍장암에 내리는 밤비로 홍장의 전설이 얽힌 장소의 정경
증봉낙조(甑峰落照) : 호수 서북쪽 시루봉 구름 사이로 저녁 노을이 반영되는 일몰의 낙조
환선취적(喚仙吹笛) : 시후봉 신선이 바둑을 두고 피리를 부는 신선경
한송모종(寒松暮鍾) : 호수 남동쪽 한송정에서 해질 무렵 치는 종소리

 

 

 

 

 

호수가 거울처럼 맑다는 경포호에는 달이 네 개가 뜬다는 말이 있다.

 

하늘에 뜨는 달이 그 하나요
바다에 뜨는 달이 그 둘이요
호수에 뜨는 달이 그 셋이요
술잔에 뜨는 달이 그 넷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달이 뜬다고 하니 그것은 바로,

 

님의 눈동자에 뜨는 달!!!

 

 

 

 

 

경포대에서 내려가는 길, 경포대의 뒷모습만 올려다보인다.

 

 

 

 

 

경포대 동쪽 주차장에서 올려다본 경포대 전경

 

 

 

 

 

 

관동팔경의 하나로 아름다운 경포대이지만, 지금은 난개발로 주변 경관이 너무 많이 훼손되어 호젓한 맛이 많이 사라지고 말아 아쉬움이 크다. 충혼탑이니 신사임당 동상이니 송강 정철 시비니 각종 기념물조차도 너무 번잡한 느낌만 준다.

 

 

동쪽의 방해정도 보고 갔으면 좋으련만, 허균 허난설헌의 생가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바쁘게 경포호를 두르는 길로 접어든다.

 

 

 

 

 

 

경포호는 옛부터 시인묵객들이 예찬한 곳으로 호수가 거울처럼 맑다고 하여 일명 경호(鏡湖), 군자호(君子湖)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호수 둘레가 20리에 달했으나 오늘날에는 상류 하천으로 토사가 흘러 들면서 호수 면적이 줄어들어 10리에 지나지 않는다. 늦가을이 되면 북쪽에서 철새들이 찾아와 월동을 한다. 호수 주위에는 과거 12개의 정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경포대, 금란정, 경호정, 호해정, 석란정, 창랑정,취영정, 상영정, 방해정, 해운정, 월파만이 남아 있다.

 

 

가운데로 경포대가 보인다.

 

 

 

 

 

 

※ 경포호에 전하는 '장자못 전설' 전설 두 가지

 

< 전설 1 > 에미바위 전설

 

옛날 이곳에 모녀(母女)가 살았는데 하루는 노승이 시주를 청하니 철이 없고 성질이 괄괄한 딸이 인분을 떠서 노승이 들고 있는 쪽박에 던졌다. 노승은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받아 들고 돌아섰는데 이 사실을 안 어머니가 허겁지겁 노승을 쫓아가 딸의 무례함을 사과했더니 『너의 집 문 앞에 키가 넘도록 물이 차리라 어서 몸을 피하여라.』라는 말을 남기고 노승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해질 무렵이 되니 노승의 말대로 명주 도읍지의 일부가 물바다로 변하면서 많은 가축이 떼죽음을 당했다. 물을 피하여 달아나던 어머니가 문득 집에 있는 딸 생각이 나서 물을 헤쳐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몸이 굳어 바위가 되었다. 이 에미바위가 호수 한 가운데 있다.

 

 

 

< 전설 2 > 적곡조개 전설

 

옛날 경포호 자리에 큰 마을이 있었고 인색하기로 소문난 최부자가 이 마을에 살고 있었다. 한번은 도사(都事 : 지금의 군수)가 사람을 보내어 동냥을 청하니 욕설을 퍼붓고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이 소리를 전해들은 도사는 끓어 오르는 분을 참고 자신이 중으로 변장하고 최부자 집을 찾아 시주를 청했더니 최부자는 시주 대신 도사를 동구 밖의 나무에 묶어 놓았다.

그런데 최부자집 문 앞에는 여전히 시주를 청하는 도사가 서 있지 않는가? 최부자는 화가 나서 『저 중놈에게 인분 한줌을 주어서 내 쫓아라』하고 소리 쳤다. 심부름꾼이 최부자의 말대로 하였더니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면서 물이 솟아올라 마을이 호수로 변하고 최부자집 곡간에 쌓아 두었던 곡식들이 모두 조개로 변했다고 한다. 

 

해마다 흉년이 들면 조개가 많이 나고 풍년이 들면 적게 나는데, 세상 사람은 이를 '적곡(積穀)조개'라 한다. 봄여름이면 먼 곳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주운 조개를 이고 지고 갔다. 호수 밑바닥에는 아직 기와 부스러기와 그릇들이 남아 있어 헤엄을 치는 사람들이 가끔 줍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