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삼척, 동해 물결 소리 시원한 추암 해암정(海巖亭)

모산재 2011. 5. 18. 22:18

 

백두대간을 넘은 영동선 철길이 강릉을 향해 북상하는 삼척 해변. 해돋이로 유명한 추암, 촛대바위 입구 모래 언덕 위에는 해암정(海岩亭)이라는 아담한 정자, 해암정이 있다.

 

정자 앞으로는 거울처럼 맑은 추암천이 추암해수욕장을 가르며 바다로 흘러든다. 개울 건너에는 민박집들이 해수욕장을 둘러싸고 늘어서 있어 갯마을다운 풍경을 이루고 있다.

 

다만 제방처럼 높게 쌓은 둑 위로 철로가 지나고 있어 해안 경관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음이 못내 안타깝다.

 

 

 

해암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인데, 사방의 문을 열어놓으면 시원한 바람이 통하는 누마루 형식으로 되어 있다. 뒤쪽 문을 열어 젖히면 숲을 이룬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 서 운치를 더한다.

 

정자의 전면에는 모두 세 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흘림체로 쓴 '해암정(海巖亭)'이라는 현판이 가운데 걸려 있고 그 양쪽에 예서로 쓴 '해암정(海巖亭)'과 행서로 쓴 '석종남(石鐘襤)'이라는 두 개의 현판이 있어 눈길을 끈다. 가운데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썼고, 예서체로 쓴 현판은 이 지역의 명필가인 계남 심지황이 썼다고 한다.

 

 

 

'해암정'이라는 현판의 '정(亭)'자는 물고기(또는 오징어)를 연상시키는 모양으로 새겨져 있어 재미있다.

 

 

 

이 정자는 고려 공민왕 10년(1361) 삼척심씨의 시조 심동로()가 낙향하여 건립했다고 한다.

 

 

심동로는 한림원사 등을 지내고 고려 말의 혼란한 국정을 바로잡으려 하다 권세가의 비위를 거슬려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는데, 이를 만류하며 왕은 그에게 동로(:노인이 동쪽으로 간다는 뜻)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후학을 양성하고 풍월로 세월을 보내던 그를 왕은 진주군()으로 봉하고 삼척부를 식읍()으로 하사하였다고 전한다.

 

 

 

지금의 해암정(海巖)은 본래 건물이 소실된 후 조선 중종 25년(1530)에 심언광이 중건하고, 정조 18년(1794) 다시 중수한 것이다.

 

누마루에 들어서면 안쪽 벽에는 많은 명사들의 시와 글을 담은 많은 현판이 걸려 있다.

 

특히 삼연(三淵) 김창흡의 이름이 많이 보인다. 삼연 선생은 청음 김상헌의 증손자이자 영의정 김수항의 아들로 성리학과 문장이 빼어났지만 기사환국(1689년 장희빈의 아들을 세자로 삼는 것에 반대한 서인들이 숙청당한 사건)으로 아버지가 사사되자 벼슬에 뜻이 없어 설악산에서 은거한 인물이다.

 

 

 

 

 

 

해암정이 있는 이 해안은 신선이 노닐던 '해상선구(海上仙區)'라 하엿으니 서쪽바위 위에는 신선들의 수레가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다거나 언덕 위에는 용의 시체를 묻은 용묘(龍墓)가 있다는 전설이 전하기도 한다.

 

서인의 거두 송시열이 '2차 예송논쟁'에서 남인에 밀려나 덕원()으로 유배되어 가는 도중 이곳에 들러 '(풀은 구름과 어우르고 좁은 길은 비스듬히 돌아든다)'라는 글을 남겼다 한다.

 

 

해암정을 지나면 해돋이 명소인 추암 언덕으로 오르게 된다. 언덕으로 오르며 뒤돌아보면 해암정 뒤편으로 석림(石林) 같은 멋진 해안 절경이 펼쳐진다.

 

왕명으로 이 지역의 군정과 민정을 총괄하는 도체찰사(使)로 파견되어 있던 한명회는 이 바위군이 만들어 내는 절경을 '능파대()'라 불렀다 한다.

 

 

 

추암은 뛰어난 경승지로 해금강이라고 불려오기도 했던 곳.

 

'능파(凌波)'란 물결 위를 가볍게 걸어 다닌다는 뜻'으로 '미인의 가볍고 아름다운 걸음걸이'를 이르는 말이다. 소설 <구운몽>에서 양소유가 만난 여덟번째 선녀가 바로 동해 용왕의 딸인 '백능파'가 아니던가. '능파'는 미인의 이름으로 통용되기도 했을 것이다.

 

희대의 모사꾼 한명회도 이 아름다운 바위 절경과 밀려오는 동해의 물결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과 함께 '능파(凌波)'라는 이름을 순간적으로 떠올렸을 것이다.

 

'능파대기'의 내용을 보자.

 

삼척 동쪽 십리쯤 가면 한 곳에 경치 좋은 곳이 있는데 솟아오르기도 하고 구렁이 나거나 절벽을 이룬 것이 바다 가운데 있다. 그 위는 매우 넓어 수십명이 앉을 수 있고 흰색 기암이 늘어서 있다. 사람이 눕거나 비스듬히 서 있는것 같기도 하고 호랑이가 꿇어 앉거나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으며, 눈덩이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모양도 보인다. 천태만상이다. 게다가 소나무가 우거져 그 사이로 비치니 참으로 조물주의 작품이다. 강릉 경포대와 통천 총석정과는 그 경치를 견줄 만하고 기이한 점에 있어서는 이 곳이 더 좋다. 속되게 '추암'이라고 한 것은 무슨 이유인가. 이제나마 향후 부끄러움이 없겠금 '능파대'라고 이름을 고치노라.

 

해암정 뒤꼍으로 돌아들면 숲처럼 서 있는 해안 바위들을 배경으로 비석 하나가 서 있다. 세워진 지 그리 오래지 않은 비. 이자리에 왜 서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