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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5) 관람지와 존덕지의 정자들, 관람정· 존덕정· 폄우사· 승재정

모산재 2010. 10. 31. 13:24

 

정조 임금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부용지와 주합루를 떠나, 또 하나의 아름다운 정원인 관람지와 존덕지를 향해 발길을 옮깁니다.

 

흰작살나무 열매들이 옥구슬처럼 예쁘게 달려 있는 모습을 보며 애련지 앞을 지납니다. 그리고 금방 또 하나의 연못이 나타납니다.

관람지(觀纜池)라는 연못입니다. 멀리 두 기둥의 주춧돌을 연못에 담그고 있는 관람정이라는 정자와 그 위쪽으로 존덕정이라는 정자도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 연못은 네모 반듯한 부용지나 애련지와는 달리 길쭉하고 언덕의 지형을 따라 자연스런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호수 주변은 숲이 우거져 있어 부용지나 애련지에 비해 훨씬 자연스럽고 호젓한 느낌이 듭니다. 

 

 

 

 

 

어째서 이름이 관람지(觀纜池)일까요. '람(纜)'은 배를 정박시키는 닻줄을 뜻하니, 아마도 이곳은 배를 띄워 놓고 풍류를 즐기는 연못쯤으로 이용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궁궐의 어떤 곳보다 조용하고 호젓한 곳이니 사색도 하고 휴식을 취하기에 좋은 곳...!

 

 

원래 이 연못은 한반도처럼 생겼다 하여 '반도지()'라 부르던 것을 관람지()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호리병 모양이었으나 일제가 연못의 형태를 고치면서 함경도 지역을 남쪽으로, 경상도·전라도 지역을 북쪽으로 지형을 바꿔놓았다고 알려지면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답니다. 

 

 

연못가에 세워진 아름다운 정자 관람정(觀纜亭)은 합죽선() 부채살을 펼친 듯 특이한 구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호수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려는 의도가 반영된 구조이지요. 이런 부채꼴 형태의 정자는 우리 나라에서는 유일한 것이라고 하네요. 

 

 

 

 

정자의 현판 또한 파격적이네요. 푸른 파초잎에다 흰 글씨를 행서로 새겨 놓았는데, 붓이라기보다는 붓펜으로 쓴 듯 필체가 날렵합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현판입니다.

 

 

 

 

천정 또한 부채살 모양을 유지하고 있답니다.

 

 

 

 

관람지 주변에는 여러 채의 정자가 있습니다. 관람정 맞은편 높은 언덕에는 승재정이 있고, 관람지 위쪽에 있는 존덕지에는 존덕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승재정과 존덕정 사이에는 폄우사가 있습니다.

 

 

이들 전각들을 둘러보려면 동선이 관람지와 존덕지 사이로 나 있으므로 존덕정, 폄우사, 승재정의 순서를 따르게 됩니다. 

 

 

존덕지 물가에  서 있는 존덕정()은 육각형 정자입니다. 두 개의 주춧돌이 연못 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존덕정은 겹지붕을 하고 있는 모습이 특이하고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보수 공사를 하느라고 접근이 차단되어 있습니다.

 

 

 

 

인조 임금 때(1644)에 세웠다고 합니다. 옛날에 다리 남쪽에는 시각을 측정하는 일영대(日影臺)가 있었다고 합니다. 

 

 

존덕지의 물이 관람지로 흘러내리는 개울을 건너는 돌다리가 아담하면서도 견고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다리 입구에 연꽃 모양의 석물을 받치고 있는 탑 모양의 석조물은 무엇일까요. 

 

 

 

 

돌다리와 그 아래로 흐르는 도랑의 모습입니다. 존덕지에서 넘치는 물이 이 도랑을 따라 관람지로 흘러들어 갑니다.

 

 

 

 

 

존덕정의 북쪽으로 작은 연못 존덕지(尊德池)가 있습니다. 반월지라고도 불렀다고 하는데, <동궐도>에는 반달형과 직사각형 연못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공사중이지만 잠시 실례를 하고 존덕정 내부의 천장 그림을 들여다 보기로 합니다.

 

육각형 정자 안, 천장도 육각형으로 구획되어 있는데 정중앙에는 황룡과 청룡이 붉은 여의주를 다투고 있는 모습을 화려하게 그려 놓았습니다.

 

 

 

 

이 정자 안에는 정조 임금이 쓴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고 하는데, 더 이상의 접근이 어려워 그냥 물러서고 맙니다. 궁궐 곳곳에 게시했다고 하는 글인데, 지금은 이곳과 주합루 부속건물인 서향각 등 두 곳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존덕정에서 조금 떨어진 서쪽 언덕에 폄우사

(砭愚榭)라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순조의 세자 효명세자가 독서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폄우(砭愚)'란 어리석음에 침을 놓는다는 것이니 독서를 통해 현명함에 이르고자 하는 효명세자의 뜻이 담겨진 이름이지요.

 

할아버지 정조 임금을 빼닮아 영특했던 효명세자의 흔적은 바로 이 전각의 뒤쪽에 자리잡은 연경당에서 이어집니다. 

 

 

 

 

 

<동궐도>에도 이 건물이 나와 있어  효명세자 이전에도 존재했던 건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동궐도>에는 ㄱ자 모양인데 지금은 자 모양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궁궐 건물들이 이익공 형식이 대부분이었는데, 이건물은 맞배지붕에 홑처마를 댄 초익공 형식이어서 소박함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폄우사의 서쪽, 관람지 주변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승재정(勝在亭)이 있습니다. 단간 사모지붕이 날개를 편듯 다른 정자들을 굽어보고 있는데, '승재(勝在)'라는 이름처럼 아름다움이 넘치는 경관을 거느리고 있는 정자입니다.

   

 

 

  

8각형 주출돌 위에 궁근 기둥을 세우고 사방에 네짝으로 된 문(四分閤門)을 달았습니다. 또한 정자기둥 밖으로도 쪽마루를 깔고 아자교란(亞字交欄)을 달아 사방으로 통로가 나 있어 전망하기에 아주 좋은 구조입니다.

 

<동궐도>에는 이 자리에 초정(草亭)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말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입니다.

 

대 양쪽에는 괴석(怪石)을 받치고 있는 석함(石函), 또는 괴석대(怪石臺)가 놓여 있어 눈길을 끕니다.

 

 

 

 

지난 여름 비가 많이 내려 관람지쪽 언덕이 무너져 내렸는지 보호천막을 쳐 놓았습니다.

 

 

관람지와 존덕지 일원 안내도

 

 

 

그럼 관람정과 존덕정 주변의 옛 모습이 어떠했는지 동궐도를 통해 잠시 살펴볼까요.

 

 

 

 

 

지금의 모습과 달라진 점을 살펴보면, 지금의 관람지 자리엔 작은 연못이 방형과 원형 등 여러 개의 작은 연못으로 되어 있다는 점, 폄우사 서쪽으로 다른 건물이 이어져 있다는 것과 승재정 자리엔 초정이 있다는 점.

 

그리고 연못에 긴 주춧돌 두 개를 담그고 있는 부채꼴 모양의 관람정은 보이지 않고 언덕 위에 일자형 정자만 보입니다. 지금의 관람정은 이후에 세워진 것이라는 이야기가 되는군요.

 

 

 

 

이제 창덕궁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정원 옥류천으로 이동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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