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업도 25

늦가을 굴업도 (5) 토끼섬의 절경, 거대한 해식와

세번째 찾은 굴업도에서 비로소 토끼섬(목섬) 오르는 감격을 맛본다. 밀물과 썰물의 차가 커지는 그믐이나 보름 가까운 때라야 바닷길이 열리니 때를 맞춰 방문하기가 좀 어려운 일인가. 능선 오르는 것은 뒤로 미루고 해안을 돌며 해식절벽부터 돌아보기로 한다. 바로 보이는 토끼섬의 북서쪽은 해식절벽이 그리 발달되지 않은 모습이다. 토끼섬의 동쪽으로 돌아들자 거대한 해식와의 장관이 펼쳐진다. 토끼섬은 "국내의 다른 장소에서 찾아보기 힘든 해안지형의 백미"라고 하여 작년 4월 1일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 지정을 예고하였다. 위에서 보듯 해안 절벽 아랫부분에 깊고 좁은 통로 모양의 지형을 해식와(海蝕窪, notch)라고 하는데, 바닷물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것이다. 길이 120m, 높이 5~10m 정도로 대규모로 발달..

우리 섬 여행 2010.12.17

늦가을 굴업도 (3) 걷는 즐거움, 목기미 해변과 연평산

슬로시티라고 하여 청산도와 증도와 같은 섬이 있지만, 이들 섬이 진정한 위미에서 슬로시티라 할 수 있을까. 육지에서 차량을 가지고 가서 쌩쌩 달리며 관광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면 그건 무늬만 슬로시티일 뿐이다. 전주 한옥마을도 슬로시티를 내세우지만 태조로나 기린로 같은 도로는 강박감을 줄 정도로 차량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선유도나 거문도, 매물도, 그리고 굴업도 정도라면 진정 슬로시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달리는 차량의 편의성과 위험성, 그 어느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때 슬로시티는 명실상부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굴업도야말로 최고의 슬로시티 자격을 가진 섬이다. 작은 섬이지만 동서남북으로 혹은 긴 머리를 내밀고 절벽 섬을 내밀어서 나고 드는 해안선이 어디 한군데도 밋밋한 곳이 없다. 머리..

우리 섬 여행 2010.12.16

늦가을 굴업도 (2) 늦은 햇살 비치는 서쪽해안, 느다시 매바위

개머리 능선을 넘어서 굴업도의 서쪽 끝 해안으로 내려선다. 구름에 가리긴 했지만 바닷물결이 몸을 뒤틀며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반사하는 빛에 눈이 부신다. 덕물산이 있는 굴업도의 동쪽 끝을 동뿌리라 하고 매바위가 있는 서쪽 끝인 이곳을 '느다시뿌리'라 부른다. '느다시'란 '해가 늦게까지 지지 않는 곳'이란 뜻을 가진 말로 해를 늦도록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해안은 절벽이다. 절리가 진행된 바위 벼랑은 붉은 빛깔을 띠며 단풍처럼 아름답다. 절벽 바위틈에는 노란 산국과 연보랏빛 해국 꽃들이 환하게 피어나 늦가을의 정취를 한껏 돋우고 있다. 구름 사이로 은은히 배어 비치는 햇살을 배경으로 낭자들이 포즈를 잡았다. 벼랑에 핀 산국과 해국 절벽 위의 숲은 거의 관목상에 가까운 소사나무들이 군락을 이루었다. 이곳에..

우리 섬 여행 2010.12.15

늦가을 굴업도 (1) 다시 찾은 굴업도, 당혹스런 개발 목소리

여행이 화제에 오를 때마다 굴업도만큼 아름다운 섬 없다고 하도 떠들어 댔더니, 굴업도 가자고 조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굴업도 사랑이 지나쳐 이제 사람들이 나만 보면 굴업도를 말하게 되었다.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고 함께 가자고 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래서 두 번이나 함께 가려는 시도를 하였는데, 두번 다 실패하고 말았다. 작년 12월 초엔 아침에 출발하였다가 풍랑으로 배가 뜨지 못한다는 전화를 받고 급히 다른 데로 가야했고, 지난 6월에는 배표 예약에 실패하는 바람에 못 가기도 하였다.(단체 예약에 실패했지만 표 하나를 겨우 구한 나는 혼자 다녀왔다.) 그런 반면에 지난 여름에 모 선배 부부는 굴업도에서 5일간이나 야영생활을 즐기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10월 23일, 지난 6월에 예매 실패로 포기해야..

우리 섬 여행 2010.12.15

돌뽕나무 암꽃과 수꽃, 잎과 수피 Morus cathayana

누에를 기를 때 쓰는 보통의 뽕나무와는 아주 다른 느낌을 주는 나무. 굴업도 큰말 뒷산 능선길 주변에서 군락으로 흔하게 만나는 뽕나무를 마을 주민들은 '개뽕나무'라고 부른다. 잎이나 줄기가 비슷한 찰피나무와 섞여 자라고 있어 찰피나무와도 혼동하게 만든다. 이 땅에 자생하는 뽕나무로는 국가표준목록상 기본종인 뽕나무를 비롯하여 산뽕나무, 돌뽕나무, 섬뽕나무, 몽고뽕나무, 꼬리뽕나무, 처진뽕나무, 꾸지뽕나무 등이 있고 가새뽕나무, 왕뽕나무 등의 변이종들이 있다. 그런데 이 나무는 이 중에서 어떤 나무에 속하는 걸까. 톱니가 예리하게 뾰족하다는 몽고뽕나무는 아닌 듯하고, 잎에 윤채가 나고 톱니가 불규칙하며 꼬리가 기다란 섬뽕나무도 아닌 듯하고, 꼬리가 긴 산뽕나무나 꼬리뽕나무는 더구나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남..

우리 나무 2010.07.15

바다빛깔 닮은 꽃, 반디지치 Lithospermum zollingeri

반디지치는 5월이면 아름다운 푸른보랏빛의 꽃을 피우는 지치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서늘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높은산에서 피는 용담꽃이 하늘빛을 닮았다면, 따스한 봄바람 산들거리는 해안 언덕에서 피는 반디지치는 바다빛깔을 닮았다고나 할까. '자목초, 마비, 반디개지치, 억센털개지치, 깔깔이풀' 등의 딴이름으로도 불린다. 영명은 Zollinger Gromwell. 유감스럽게도 반디지치란 예쁜 이름은 일본명의 번역어라 한다. 반디지치의 일본명은 'ホタルカズラ'로 '반딧불(Firefly)을 뜻하는 'ホタル'와 덩굴을 뜻하는 'カズラ'가 결합한 말인데, 일본인들은 반디지치의 꽃에서 반딧불이를 연상했던 모양이다. ↓ 굴업도 높이 15∼25cm이며 원줄기에 퍼진 털이 있고 다른 부분에는 비스듬히 선 털이 있다. 꽃이 ..

이팝나무(Chionanthus retusa)의 천국, 굴업도

굴업도만큼 이팝나무가 흔한 섬이 있을까. 6월 초에 찾은 굴업도는 쌀밥처럼 풍성하고 눈부신 하얀 이팝나무 꽃들의 세상이다. 푸른 하늘과 쪽빛 바다를 배경으로 가늘고 긴 꽃잎이 바람에 파르르 나풀거리며 출렁이는 꽃덤불은 환상 그 자체다. 느다시뿌리로 오르는 개머리구릉에도, 큰말 뒤의 능선에도, 동뿌리의 덕물산 중턱에도 하얀 쌀밥 이팝꽃은 풍성히 피고 있다. 이팝나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보다 널리 알려진 설로 꽃송이가 하얀 쌀밥(이밥)처럼 풍성하게 피어서 이팝나무라 부른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절기상 입하(立夏) 무렵에 꽃을 피워 '입하목'이라 부르던 것이 이팝나무가 되었다고 하는 설이다. 이팝나무의 종명 'Chionanthus'는 'Snow flowering(눈꽃)'을..

'해안지형의 백미', 굴업도 토끼섬 해식와 천연기념물 지정

물때가 맞지 않아서 토끼섬으로 건너가는 것은 어렵더라도 토끼섬이 있는 해안에는 가보고 싶은 것다. 그런데 벌써 점심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 다 되었다. 1시 40분에 떠나는 배에 맞추어서 12시 반에 먹기로 한 점심이다. 시간이 빠듯하지만 일단 토끼섬 근처로 가보기로 한다. 지난번에 왔을 때도 시간이 없어 보지 못했으니 이번엔 꼭 보고 가야하지 않겠는가. 목기미해변을 지나 다시 서섬으로 들어서 마을로 넘어가는 길을 따라 걷다가 고갯마루에서 왼쪽 산 능선으로 들어선다. 마음은 바쁜데 또다시 급한 봉우리를 넘어서 다시 바닷가로 내려갔다 돌아와야 하니 괜히 숨조차 가쁘고 힘겹다. 엉겅퀴 잎 위에 버드나무가지나방으로 보이는 나방이 한 마리 앉았다. 작년 가을에 왔을 때 목기미 부근의 풀밭에서 원없이 보았던 나방이..

우리 섬 여행 2010.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