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섬 여행

굴업도 개머리 구릉의 초원, 바다 위 그림 같은 섬들

모산재 2010. 7. 6. 15:30

 

큰말해수욕장의 서쪽 모래언덕 곁을 지나 개머리 구릉으로 오른다. 굴업도의 동쪽 구릉인 개머리구릉은 거의 초지여서 여느 섬에서 보기 힘든 이국적인 풍경을 이루고 있다. 어찌 보면 시베리아의 푸른 눈, 바이칼 호수의 알흔섬 끝 사보이의 초원 능선길을 걷는 듯푸른 바다 위로 펼쳐진 초원의 길은 아스라한 환상적인 느낌에 젖어들게 한다.

 

 

개머리 구릉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섬 아래쪽을 두르고 있는 숲지대를 통과해야 한다. 굴업도의 숲속에는 큰천남성이 거대한 군락을 이루며 자생하고 있다. 독이 있는 풀이라 방목되고 있는 염소와 꽃사슴도 건드리지 않으니 지천이다.

 

 

 

 

 

이 섬에는 큰천남성 외에도 두루미천남성도 지천이다. 육지의 깊은산 숲속에서 자라는 가녀린 녹색의 두루미천남성과는 달리 이곳의 두루미천남성은 분백색이 돌고 통통하고 실해서 종이 다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볕이 잘 드는 초지라는 생태 환경 때문에 나타난 특성일 것이다.

 

 

컴컴한 숲속에서 뜻밖에도 꽃이 피어 있는 현호색을 만난다. 예전 같으면 댓잎현호색으로 부르면 될 잎모양을 가졌다.

 

 

 

 

 

숲지대를 벗어나 초지 언덕으로 오르다 갑자기 날아오른 비단 무늬의 벌레를 만난다. 고향의 산길에서도 종종 만났던 곤충인데 워낙 민첩하게 날아다닌다. 이름에 비단이 들어갈 것 같아서 검색해보니 이름이 '비단길앞잡이'라는 녀석인 듯하다. 이름 그대로 사람이 나타나면 꼭 몇 걸음 앞서서 풀쩍 날아가 길앞잡이 노릇을 하는 듯하다.

 

재빠르게 이 녀석의 이미지를 담으려고 하다 어두운 숲속에서 맞춘 조리개값과 셔터스피드를 조절하지도 못한 채 빛 바랜 이미지 하나 겨우 얻었다.

 

 

 

 

 

초지 언덕으로 올라서자 먼저 와서 쉬고 있던 노인들이 좋은 사진 많이 찍었느냐 말을 건네며 참외 한 조각을 건네준다. 나와 같은 민박집에서 점심을 먹었던 분들이다. 벌써 섬 서쪽 끝까지 다녀와서 내려가는 길인 모양이다.

 

 

개머리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시원스럽다.

 

큰말해수욕장과 토끼섬 너머로 덕적도와 소야도가 보이고...

 

 

 

 

 

토끼섬 앞의 등대는 바닷물 속에 발목을 담그고 섰다.

 

 

 

 

초지 능선에는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사람들도 있다.

 

멀리 보이는 꽤 커다란 섬은 선갑도. 평지가 거의 없고 험한 바위산이라 사람이 살지 않는다.

 

 

 

 

 

그 동쪽으로 각흘도, 울도, 백아도 등의 섬들이 아스라히 펼쳐진다. 서해의 가장 바깥에서 울을 이루고 있는 덕적군도의 가족섬들이다.

 

 

 

 

 

서쪽으로 길게 벋어 있는 이 능선은 개의 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지형이라 개머리라고 한다. 초지로만 이어진 이 구릉을 따라 걷는 길이 굴업도 산책의 백미라고나 할까. 시야가 툭 트인 전망이 몹시 상쾌하고 행복하다.

 

두어달 지나 가을 바람이 불어올 때면 이 능선 주변의 초지는 온통 금방망이 노란 꽃들이 장관을 이룰 것이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마르고 거친 지난해의 풀섶 위로 억새가 무성히 자라나면 억새꽃이 장관을 이룰 것이다.

 

 

 

 

 

아마도 이번 6.2 지방선거 결과가 좋지 않았더라면 어찌되었을까.

 

CJ그룹의 한 자회사는 내년부터 당장 이곳을 절개하여 평지로 만들고 골프장 잔디를 까는 공사를 하려고 했던 것인데, 다행스럽게도 골프장 건설을 반대한 인물이 인천시장에 당선되면서 급한 불은 꺼진 모양새가 되었다.

 

그렇다고 하여 CJ그룹이 골프장 건설을 포기한 것 같지는 않다. 환경영향평가 등 각종 까다로운 조건을 피해 가기 위해 온갖 궁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옹진군청에서도 사활을 걸고 개발에 앞장서고 있었던 판이었으니까...

 

 

아까 바닷가를 산책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를 앞질러 지나가고... 바쁠 것 없는 나는 기분 좋게 불어오는 상쾌한 바닷바람을 폐부 깊숙히 느끼며 수평선에 떠 있는 섬들을 둘러보기도 하고 풀꽃들을 살피기도 하면서 시간에서 해방된 여유를 만끽한다.

 

망망대해 위 서늘한 바람이 거침없이 늘 불어대는 지형적인 특성 때문인지 이곳의 식물들은 육지에 비해 계절적으로 늦은 성장 모습을 보여 준다. 아마도 장마철 비바람을 한번 겪고나야 이 초지도 훨씬 풍성해지고 생명들도 번성할 것 같다.

 

생각해보니 해안가에 엄청난 개체를 자랑하던 풀무치도 거의 보이지 않고, 왕은점표범나비 등의 나비 종류도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남서쪽 바다에 떠 있는 덕적군도의 섬들. 가도각흘도 뒤에 선갑도, 그리고 지도 울도 백아도 등이 나란히 늘어서서 울을 이루고 있다. 세 개의 바위가 뫼산(山)자처럼 모양을 이룬 바위섬인 선단여가 아스라이 보인다.

 

 

 

 

 

저 선단여에는 남매간의 근친상간적인 애달픈 사랑이 서린 전설이 전하고 있다고 한다.

 

 

백아도 살던 부모가 갑자기 죽게 되자 외딴섬에 살던 마귀 할멈이 여동생을 납치하였고,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성인이 된 오빠는 배를 타고 고기잡이하던 중 풍랑을 만나 어느 섬에서 아름다운 처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데 이에 하늘이 오빠와 여동생, 마귀할멈에게 번개를 내려 죽게 하였고, 그곳에 이들이 변한 3개의 바위가 솟아나 선단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애통해 하던 선녀가 붉은 눈물을 흘리며 승천하였다 해서 '선단여' 불리게 되었다.

 

 

매물도 남매바위 전설과 거의 비슷한 애절한 전설이다. 아마도 사랑의 선택지가 많지 않았던 외딴섬 사람들에게 근친상간의 위험은 상존했을 성싶다.

 

 

100mm 렌즈로 갈아 끼고 멀리 보이는 선갑도를 담아 보았다. 아마도 앞에 보이는 섬이 가도, 오른쪽 일부가 보이는 섬이 각흘도일 것이다.

 

 

 

 

 

그리고 섬의 서쪽 끝은 봉우리를 이루며 솟아 오른다. 초지를 이룬 봉우리에는 머리띠처럼 두른 숲이 있어서 이채롭다. 굴업도의 서쪽 봉긋 솟아오른 저쪽 땅을 느다시뿌리라고 표기해 놓은 지도가 있는데, '느다시'란  '해를 늦도록 볼 수 있는 곳'이란 뜻이라 한다.

 

 

 

 

 

 

이곳에서 이팝나무를 만난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느다시뿌리로 오르는 숲언덕에는 이팝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있다.

 

이후 섬 곳곳에서 눈처럼 하얀 꽃들을 피우고 있는 이팝나무들을 만난다. 굴업도가 이팝나무의 자생지이기도 함을 확인하게 되었다.

 

 

 

 

 

옥녀꽃대로 보이는 풀꽃들이 군락을 이룬 숲을 지나 다시 초지로 된 구릉으로 올라서니 보랏빛 산골무꽃이 나를 반긴다.

 

 

 

 

 

아, 그리고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반디지치 꽃을 만나 쾌재를 부른다. 철이 지나버려 올해도 만나지 못하고 지나치나 싶었던 반디지치 꽃이 풀밭에 숨어 늦게까지 꽃을 피우고 있지 않은가.

 

 

 

 

 

서쪽 끝 바다를 향해 내려서는 초지 구릉. 역광이어서 바다의 모습이 잡히지 않는다. 먼저 와 있던 다음 카페 산악회원들이 펼침막을 펴고서 기념 사진을 찍을 준비를 하고 있다.

 

 

 

 

 

바위 절벽을 이룬 서쪽 해안의 풍경들.

 

굴업도는 남동쪽해안이 모래로 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북서쪽 해안은 이렇게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이루고 있다. 이런 점으로 문외한인 내게도 지질학적인 관심이 절로 일어나지 않는가...

 

 

 

 

 

 

 

 

저 멀리 중국 연안에 닿을 때까지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서해를 바라보다가 절벽 끝 초지에 자라는 식물들을 잠시 살펴본다.

 

 

수영

 

 

 

 

큰개미자리

 

 

 

 

갯장구채

 

 

 

 

 

초지 구릉과 해안 절벽, 바다와 섬들의 풍경들

 

 

 

 

 

 

 

 

초지 구릉 너머로 선갑도, 백아도, 각흘도, 울도 등의 섬들이 겹쳐지며 울을 이룬 풍경. 가운데에 바위섬인 선단여가 보인다.

 

 

 

 

 

 

 

늘어선 지도, 울도, 백아도

 

 

 

 

 

그 동쪽으로 보이는 선갑도, 그 앞에 놓인 가도각흘도

 

 

 

 

 

 

해안절벽에서 올려다본 느다시뿌리의 초지 구릉

 

 

 

 

 

주민들이 농사를 그만두면서 지금은 풀밭으로 바뀌었지만 예전 밭이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두렁으로 남아 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이 언덕에서도 땅콩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한때 땅콩농사를 짓던 밭이 오랜 세월 묵어가면서 초지로 변하였고 한때는 소를 키우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1980년대 초반 소 파동이 일어나면서 방목도 중단되었고 20년 전쯤부터는 대신 염소떼와 사슴이 방목되어 살고 있다. 해안 낭떠러지 초지는 물론 동쪽의 덕물산 등 숲속에서도 야생화한 짐승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방목하다보니 그 수가 얼마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다시 발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간다.

 

서쪽 구릉을 지나오면서 커다란 망원렌즈를 멘 젊은이 그룹들을 만난다. 굴업도 조류를 탐사하러 온 환경단체 사람들일 거라 생각되어 말을 붙여 보았더니 과연! 굴업도지킴이 노릇에 앞장서온 한국녹색회 회원들이다.

 

섬의 서쪽 끝 절벽과 어우러진 숲에 천연기념물인 매들이 서식하고 있는데 이들을 촬영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해안절벽 끝에 앉은 매와 매 새끼들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보여 준다.

 

작은 섬이지만 굴업도에는 매와 황조롱이 등의 조류와 먹구렁이, 왕은점표범나비 등의 희귀동물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느다시뿌리 언덕에서 내려다본 개머리 구릉의 풍경

 

이 구릉을 깎아서 골프장을 만들겠다니 될 말인가...

 

 

 

 

 

 

 

개머리 구릉 들머리로 되돌아와 마을 뒤 송신탑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향한다. 텐트를 치고 야영을 즐기는 모습이 평화롭다.

 

오른쪽으로 굴업도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연평산 바위봉우리가 살짝 보인다. 그리고 멀리 뒷편으로는 덕적도의 서쪽 끝섬인 선미도로 보이는 섬이 수평선 위에 떠 있다.

 

 

 

 

 

구릉에서 본 남쪽 해안과 섬 풍경

 

 

 

 

 

 

 

 

※ 옹진군 섬들과 굴업도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