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섬 여행

굴업도 목기미해변, 동섬과 서섬을 잇는 모래톱

모산재 2010. 7. 9. 08:23

 

아침 일찍 눈이 떠졌건만 발가락만 꼼지락거리며 자리에 누운 채로 게으름을 핀다. 날이 훤해졌지만 바쁠 일도 없거니와 아침상을 일곱 시에 차려 준다고 했으니 어딜 다녀오기도 어중간하지 않은가.

 

 

식사 시간이 가까워져서야 백사장으로 나가 바람을 쐰다.

 

 

물가에 서 있는 한 여인, 아침바다를 혼자 다 가지고 섰다. 아득한 수평선...

 

 

 

 

 

비짜루로 보기도 방울비짜루로 보기도 어중간한 길이의 꽃자루를 가진 독특한 형태의 아스파라거스속 식물이 꽃이 피어 있는 것을 만나 한참을 지켜본다. 갈래가 덜 진 꽃으로 보아 천문동은 아니고 덩굴성 줄기나 꽃색이 방울비짜루와 다르다. 그렇다고 저렇게 기다란 꽃자루를 가진 비짜루는 없지 않은가. (나중에 이것이 '망적천문동'이란 것을 알게 된다.)

 

 

 

 

 

갯방풍꽃이 군데군데 피어 있다. 그러고보니 민박집 할머니가 내 놓은, 저 잎으로 겉절이하듯 만든 반찬이 그리 향기롭지 않던가. 모래언덕을 이룬 곳에는 재배하는 것이 아닐까 싶게 밭을 이루고 있다.

 

 

 

 

 

식사를 위해 숙소로 돌아오는 길 공터에 광대나물 꽃이 한가득 피어 있어 눈길을 끈다. 이른봄에 피어야 할 꽃이 이른 여름에 피었다.

 

 

 

 

 

아침밥도 정말 맛나게 먹는다. 향기로운 갯방풍 무침에 음나물과 취나물, 그리고 독특한 미각을 느끼게 하는 해초 까실이 등... 두 할머니는 내가 맛있게 먹는 것을 지켜보며 뿌듯해 하신다.

 

 

식사를 마치고 사람이 살지 않는 동섬에 우뚝 솟은 연평산과 덕물산 산책길을 나선다. 연평산이 덕물산보다 더 높은 줄 알았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덕물산(138.5m)이  연평산(128.4m)보다 더 높다. 두 산 모두 목기미해변으로 이어진 동섬에 자리한다.

 

원래 굴업도는 두 개의 섬이었다고 한다. 현재 주민들이 살고 있는 개머리구릉이 있는 서섬과 연평산과 덕물산이 있는 동섬이 그것이다. 동섬과 서섬이 연육사빈(聯陸沙濱)인 모래톱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 해변을 목기미해변이라 한다.

 

 

마을 주변에 울타리를 이룬 병아리꽃나무엔 흰꽃이 띄엄띄엄 피어 있다. 병아리꽃나무는 풍도나 덕적도 등 서해 섬들 곳곳에 자라는데 이곳 굴업도도 그 자생지의 하나이다.

 

 

 

 

 

흐드러지게 핀 보리수나무꽃 진한 향기에 코를 움찔거리며 고개를 넘어서자 목기미해변의 한쪽에 발달한 모래언덕(사구)이 눈에 들어온다. 모래언덕을 연구하는 사람들 이야기로는 동남풍에 실려온 모래로 해마다 수십센티미터씩 모래가 쌓일 정도로 현재 급격히 모래언덕이 발달되고 있다고 한다.

 

 

 

 

 

작은멋쟁이나비 한 마리를 만난다.

 

 

 

 

 

꽃을 만나지 못해 애를 태웠던 노랑장대가 볕 좋은 곳에 환하게 피고 있어서 얼마나 반가운지... 하지만 솔숲 그늘의 노란장대는 아직 꽃망울을 겨우 올리거나 아직 꽃망울이 없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굴업도해수욕장이라 불리는 목기미해변으로 내려선다. 두 개의 섬을 이어주면서 두 섬의 남동 해안으로 길게 발달한 백사장 해안은 굴업도가 자랑할 만한 대표적인 풍광이다.

 

작은 섬 굴업도는 우리 나라 어느 섬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해변이 3개나 있다. 마을이 있는 큰말해수욕장과 바로 이 목기미해변, 그리고 목기미해변 너머 덕물산과 연평산 사이 붉은색 암석이 침식돼 쌓인 빨간모래해변이 그것이다.

 

 

 

 

 

 

모래톱 입구에 아까 보았던 커다란 모래언덕(사구)이 절로 시선을 끈다.

 

굴업도는 겨울철에는 북서풍이, 여름철에는 동풍이나 남동풍이 불고 있어 동섬과 서섬을 이어 주는 목기미 모래톱은 바람길이 되어 동섬과 서섬 남동해안은 바람(상승기류)이 실어나른 크고작은 모래언덕(해안사구)이 발달하고 있다. 서쪽 섬 큰말해수욕장 서편 산언덕에 그러했던 것처럼...

 

 

 

 

이들 모래의 상당 부분은 한강 하구에서 공급돼 덕적군도 일대에 쌓여 있는다 바람을 타고 날아들어 쌓인 것이라고 한다. 지금 목기는 위쪽의 소사나무와 찰피나무 숲을 잠식하며 확장하고 있다고 한다. 바람 통로 곁에 자리잡은 모래언덕에 바깥 바다에서 모래가 무제한 공급되기 때문이다.

 

저렇게 모래언덕이 발달하다보니 명주잠자리 애벌레인 개미귀신이 서식하는데, 굴업도 모래언덕은 우리나라 최대의 개미귀신 서식지라고 한다.

 

 

빼어난 자연 풍광을 자랑하는 굴업도 목기미 모래톱에 참으로 뜻밖에도 문명의 흔적이 남아 있다. 흥성했던 한 시절을 회상하듯 늘어선 전봇대의 행령이 그것이다.

 

 

 

 

 

1920년까지만해도 굴업도는 해마다 민어(백조기) 파시(波市)가 형성되며 성황을 이루던 어업전진기지였다고 한다. 수천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북적이던 이곳에는 작부들까지 찾아들어 작부들의 집인 가옥인 '작사'가 한줄로 늘어설 정도로 번영을 누렸으며, 부천경찰서에서 일본인 순사를 파견해 치안을 담당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전봇대 행렬이 끝나는 동섬의 등성이 언덕에는 당시에 거주했던 민가의 흔적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고 구릉을 깎아 만든 경작지 터도 그대로 남아 있다.

 

 

 

 

 

영광 칠산바다를 지나 연평도 백령도를 거쳐 회유하는 이곳의 민어가 워낙 유명해 1960년대는 개고기보다 민어를 먹어야 여름을 난다고 할만큼 민어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밤에는 민어떼들이 밀려들어 '꾸륵꾸륵' 시끄러운 소리를 내어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3.1운동이 있던 해인 1919년 기미년, 엄청난 해일이 굴업도를 덮쳐 목건너 해변에 정박중인 100여 척의 민어잡이 배들이 모두 파괴되어 굴업도 앞바다에 수장되고, 작부들의 집인 '작사'도 해일에 모두 쓸려 파괴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고 한다. 그 뒤로 이곳 모래톱은 파시로서의 영광을 잃고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동섬 모래언덕에서 바라본 목기미 모래톱의 북쪽 해안 풍경

 

 

 

 

 

 

이렇게 섬 전체가 모래땅이 풍부하니 민어잡이가 쇠퇴해지면서 섬사람들은 대대적으로 땅콩 농사를 짓고 소를 방목하며 먹고사는 일을 해결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땅콩 농사를 짓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고, 섬 주민들은 모두 외지에서 찾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민박집을 운영하고 식사를 제공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곳에는 운향과 여러해살이풀인 백선이 서식하고 있기도 한다. 볕이 잘 드는 초지에 자라는 백선은 육지에 비해 튼실한데, 꽃은 꽤 늦게 피는 편인 듯 대부분 꽃망울이 맺힌 상테이다.

 

 

 

 

 

 

구릉에 올라 바라본 목기미 모래톱. 평소엔 늘 연결되어 있는 모래톱(사주)이지만 해수면이 높아지는 사리 때가 되면 잠시 물에 잠기는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덕물산과 연평산 중에서 먼저 북쪽 방향으로 솟은 연평산을 오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