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섬 여행

늦가을 굴업도 (1) 다시 찾은 굴업도, 당혹스런 개발 목소리

모산재 2010. 12. 15. 08:30

 

여행이 화제에 오를 때마다 굴업도만큼 아름다운 섬 없다고 하도 떠들어 댔더니, 굴업도 가자고 조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굴업도 사랑이 지나쳐 이제 사람들이 나만 보면 굴업도를 말하게 되었다.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고 함께 가자고 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래서 두 번이나 함께 가려는 시도를 하였는데, 두번 다 실패하고 말았다. 작년 12월 초엔 아침에 출발하였다가 풍랑으로 배가 뜨지 못한다는 전화를 받고 급히 다른 데로 가야했고, 지난 6월에는 배표 예약에 실패하는 바람에 못 가기도 하였다.(단체 예약에 실패했지만 표 하나를 겨우 구한 나는 혼자 다녀왔다.) 그런 반면에 지난 여름에 모 선배 부부는 굴업도에서 5일간이나 야영생활을 즐기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10월 23일, 지난 6월에 예매 실패로 포기해야 했던 팀들이 다시 뭉쳐 굴업도를 가게 된 것이다. 이미 두번이나 다녀왔던 터라 또 가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지만 이 아름다운 섬을 1박2일 안겨주는 것은 큰 선물이지 싶은 것이다.

 

 

 

덕적도 선착장에서 간재미 회에 가볍게 한잔하다 굴업도행 해양호를 타고 또 한잔. 굴업도 전 이장님이 배를 탔다는 소식을 듣고 수배하니 금방 달려와 한잔을 나눈다. 지방선거로 인천시장이 바뀌면서 굴업도 골프장 건설이 물 건너간 줄 알았더니, 이장님은 골프장 찬성을 외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져 큰 고민에 빠져 있다. 씨제이측의 압력도 큰 모양이다.

 

 

 

세번째 찾는 섬이지만, 백번은 본 듯 낯익은 목기미해변의 해안사구와 연평산.

 

 

 

 

 

선착장에 내리니 해안의 절개지에는 황금빛 산국이 만발이다. 자랑을 너무 많이 하여 기대 수준을 잔뜩 높여 놓은 터라 동료들 반응이 어떨까 싶었는데, 정말 좋아하는 표정이다. 좋다.

 

 

 

 

 

마을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는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환경단체 출입 반대 굴업도 개발 찬성'이라니. 예기치 못한 주민들의 이런 반응이 씁쓸하기만 하다. 나를 빼고는 모두 초행길인 분들도 모두 같은 감정인 듯하다.

 

 

 

 

 

 

 

수백만 년 하늘이 지은 그대로 간직돼온 뭇생명들의 아름다운 삶의 터전을 절개하고 밀어내고 제초제로 관리해야 하는 잔디를 입혀서 골프장을 만들자는 데 일부 주민들이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열 집도 안 되는 주민들이 편이 갈려서 골프장 건설 찬성 목소리가 커져 버린 모양이다. 

 

 

그 앞에는 굴업도가 제10회 아름다운 숲 생명상 대상을 받았음을 알리는 표지판과 '2009 꼭 지켜야할 자연문화유산'으로 환경부 장관상을 수상하였음을 새긴 동판이 나란히 서 있어 플래카드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고갯길을 넘어서면서 마을 앞 바다와 백사장이 환하게 펼쳐지자 여성 동지들은 아주 신이 났다. 바다를 배경으로 늘어서서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어 달랜다.

 

길가 언덕은 지천으로 핀 꽃향유꽃들로 장관을 이룬다. 그런데 잎이 꽃향유에 비해 훨씬 좁고 작은 애기향유다. 작년 9월에 왔을 때 줄기와 잎을 보고 무엇인지 궁금했던 풀이 바로 애기향유였음을 확인한다.

 

 

 

 

 

이번에는 전 이장님 댁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예약된 손님이 많아 결국 지난번에 묵었던 고씨네 민박으로 간다. 자매지간인 할머니 중 언니는 덕적도에 가고 없고 동생분이 아들과 함께 우리를 맞아 준다.

 

갑작스럽게 받은 손님인데도 점심상은 고객 백배 만족으로 맛있다. 굴업도의 밥상은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간결한 밥상이지만 작은 섬이 길러준 채소와 나물과 해산물에 미각은 감동에 젖는다.

 

 

 

평상에 앉아 잠시휴식을 취하다 섬 안내에 나선다. 고향마을처럼 속속들이 아는 길이니 마음 편하다.

 

 

 

큰말해변으로 나간다. 순비기나무와 좀보리사초가 붙들고 있는 모래언덕, 풀무치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유난히 비가 많아서였을까. 그 많던 풀무치가 올해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손바닥 길이만 하던 큰 개체도 없다.

  

 

 

 

 

이 분들, 어느새 천진난만한 애들이 되었다.

 

 

 

 

아직도 꽃들이 피어 있을 법한 계절이련만, 이곳의 순비기나무는 모두 열매를 달았다.

 

 

 

 

 

지난 6월에 보았던 서쪽 해변의 모래언덕은 많이 사라져 버렸다. 짧은 기간에도 굴업도의 사구는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사마귀 한 마리. 백사장으로 나와 뭘 하고 있는 건지... 천적이 없는 섬이라 겁이 없나 보다.(먹구렁이가 있긴 하지만 웬만해선 모습을 보여야 말이다.)

 

 

 

 

가을을 맞이한 담쟁이

 

 

 

 

 

개머리 언덕에서 돌아보는 큰말해수욕장과 토끼섬

 

 

 

 

 

 

서해안 일대에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 예보가 있더니 하늘에 구름이 점차로 많아지며 해는 구름 속으로 숨고 날씨가  어둑해진다.

 

개머리언덕의 능선 풍경. 작년에 비해 억새군락이 많이 줄어들었다. 단조로운 풍경이 쓸쓸함을 자아낸다. 이 능선과 저 앞에 보이는 숲언덕을 절개해서 땅을 고르고 골프장 만들자는 CJ그룹의 주장에 주민들이 맞장구치는 사태로 가고 있는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금방망이는 대개는 꽃이 져버린 모습이지만 군데군데 환하게 꽃을 피운 모습도 보인다. 굴업도는 남한 땅 최대의 금방망이 군락지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 금방망이가 이 언덕에서 사라지는 날이 오지 말아야 할 것을...

 

 

 

 

 

 

서쪽 높은 언덕으로 올라서서 돌아본 풍경. 망망대해를 향해 사방으로 탁 트인 초지를 걷는 즐거움, 굴업도를 찾는 이유이다. 골프장이 건살되면 골퍼들이야 아주 별천지를 맘껏 누릴지 모르지만, 이 섬의 자연을 사랑하는 나 같은 사람은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곳이 될 것이다.

 

 

 

 

 

구릉 너머로 구름 속에서 내뿜는 빛을 반사하는 바다 풍경

 

 

 

 

 

남서쪽으로 보이는 백아도 등 덕적군도의 바깥섬들...

 

 

 

 

 

서쪽 끝, 바위섬

 

 

 

 

 

예전에 땅콩밭으로 일구었던 흔적이 남아 있는 계단꼴의 초지 언덕. 지금은 수크령이 넘실대는 밭이 되었다.

 

 

 

 

 

이곳에서 내려서면 굴업도의 서쪽 끝, 천연기념물 매가 서식하며 바다를 향해 힘차게 비상하는 매바위가 나타난다.

 

내려가는 길은 온통 보랏빛 꽃향유들로 꽃밭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