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15

경주 남산 (18) 남산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 불곡 마애여래좌상

흔히 감실 보살좌상이라고 불리는 불곡 마애여래좌상은 남산의 가장 북쪽, 남산신성 바로 아래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다. 경주 시내가 한결 가까워진 곳이다. 골짜기 이름이 불곡(부처골)인 것은 바로 이 석불상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탑골에서부터 부처골(불곡)까지 가는 길은 큰 도로만 있다.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는 큰길 따라 걷자니 마음이 불편하여 도로 아래 논으로 내려서서 걷는다. 어느 순간 사람이 걷던 길을 차들이 점령하고 사람이 걷는 길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길을 걷는 사람들도 사라져 버렸다. 걷기에 딱 좋은 길이며 거리이건만, 오늘 서출지에서부터 이곳 부처골까지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침에 남산동 삼층석탑에서 만난 사람들은 관광버스를 타고 나와 같은 코스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

경주 남산 (17) 탑곡 마애불상군 남면/동면, 탑곡 삼층석탑

쌍탑이 보이는 부처바위 북면에서 왼쪽으로 돌아서면 가파른 비탈을 따라 동쪽을 바라보는 바위벽이 나타난다. 바위는 모두 셋이 나란히 키 순으로 서 있는데, 비탈을 오를수록 바위는 점차 작아진다. 절리로 틈이 벌어진 오른쪽 큰 바위만 사면에 불상이 새겨진 사방불이고, 나머지 두 바위는 한쪽 면에만 불상이 새겨져 있다. ● 동면 - 서방 극락정토 동면은 모두 세 개의 바위로 구성되어 있다. 부처바위에서 가장 넓은 면으로 장엄한 극락정토의 모습을 가장 화려하게 새겼다. 바위 높이 7.3m, 폭 12.m 규모이다. 넓은 바위면에는 중심이 되는 불상과 보살상, 이 불상을 향해 공양 올리는 스님상, 꽃쟁반을 들고 꽃을 뿌리거나 합장하며 하늘에서 내려와 솟구치는 모습 등을 한 여섯 비천상이, 가운데 바위에는 두 그루의..

경주 남산 (16) 탑곡 마애불상군 /북면과 서면

보리사에서 탑골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남산에서 흘러 내리는 능선 하나를 지나 골짜기가 다시 나타났다 싶은 곳에 탑골이 있다. '탑골'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곳에는 대단한 탑이 있거나 많은 탑들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게 되는데, 막상 골짜기에 들어서 보면 한없이 밋밋한 풍경만 이어져 있을 뿐이다. 그래도 입구에는 제법 많은 민가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어서 따스한 풍경을 이룬다. 마을 앞에는 남산과 경주시내를 가르는 남천이 형산강을 향해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보리사가 있는 갯마을에서는 들판 너머로 멀리 보이던 강물이 이곳에서는 마을에 바짝 붙어 흐른다. 남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을 따라 길이 나 있다. 그런데 개울이 콘크리트로 도배되어 있어 실망스럽다. 그것만 빼면 숲을 이룬 길은 정겹고 평화롭다. 산길로 들어..

경주 남산 (14) 헌강왕릉

오전 반나절이 지나가는 시간인데도 바람이 맵다. 바람은 매워도 햇살이 명랑하니 기분도 절로 명랑하다. 남산을 곁에 끼고 걷는 시분은 그야말로 '왔다!'다. 남산 안내소에서 안내 팸플릿과 엽서 몇 장을 챙겨 들고 통일전을 지난다. 삼국 통일의 위업을 기리며 통일에의 의지를 다진다는 명목으로 유신 말기인 1977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지은 것이다. 취지와는 반대로 그는 가장 반통일적인 인물이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하긴 전두환도 민주화 일정을 밝히기를 요구하는 민중들을 총칼로 무찌르고 '정의사회 구현'을 외치지 않았던가. 이들의 뒤를 이은 정치 세력들은 지금도 남북 대결 정책을 펼치며 전쟁 불사를 외치고 있다. 통일전 지나자마자 정강왕릉이 나와야 되는데 표지를 보지 못한 채 그냥 지나쳤다. 정강왕..

경주 남산 (13) 남산동 삼층석탑(보물 제124호), 염불사 삼층석탑

서출지 앞쪽으로 나 있는 큰 길을 따라 남쪽 방향으로 3~4분 정도 걸어가면 가면 남산리 삼층석탑이 나타난다. 그런데 도중 안내판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동네로 들어서서 잠시 헤매기도 하였다. 동네에는 조선 간장을 대량으로 제조하는 집이 있다. 볕살 잘 드는 정원엔 메주가 주렁주렁 복스럽게 매달려 있다. 잠시 메주가 부처님같다 엉뚱한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천불전에 들어 있는 부처님을 연상했다기보다는 저 넉넉하고 푸근한 모습에서 얼핏 떠올린 것이다. 된장, 간장이 되어 뭇 중생에게 따사로운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을 모습도 부처님의 모습일 것이다. 동네로 들렀다 길을 따라 내려오니, 남산쪽으로 대나무숲이 울을 이룬 곳에 삼층 쌍탑이 솟아 있는 것이 보인다. 남북으로 길게 벋은 남산 위로 솟아 푸른 하늘을..

경주 남산 (12) 서출지(書出池)와 이요당(二樂堂), 무량사

어제 강행군을 한 탓에 좀 늦게 일어났다. 숙소 옆 좀 허름한 식당에서 갈치조림을 시켜서 아침을 먹는데 맛이 그만이다. 경상도 음식맛이 별로라고 하지만 이렇게 괜찮은 집들도 간혹 있다. 오늘은 어제와는 반대편인 남산의 동쪽인 남산리로 가기로 한다. 거기서 서출지(書出池)와 삼층석탑을 구경하고 남산 언저리를 따라 북쪽으로 걸으며 탐방하기로 한다. 헌강왕릉, 보리사 석조여래좌상, 탑골마애불상군, 불곡감실보살좌상을 기본으로 삼고 시간이 허락된다면 거기서 남산신성을 지나 남간사지 당간지주, 창림사 삼층석탑, 포석정 순으로 돌아보기로 한다. 식사를 마친 후 다시 시외버스터미널로 나가 버스를 타려다가 택시를 타 버린다. 영하 5도나 내려간 날씨에 기다리기가 싫고 또 삼릉골 가는 것과 택시비가 얼마나 차이가 나랴 싶..

경주 남산 (11) 선방곡 선각여래입상,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망월사

신선암의 마애보살반가상과 칠불암의 마애불상군을 보기 위해 점심도 굶은 채 금오산을 넘고 봉화대 능선을 타는 강행군을 했는데, 역시 고생은 보람 있었다. 보람보다도 더 큰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이 밀려온다. 십수 년 전에 남산을 찾을 때는 이곳을 왜 찾지 않았을까. 남산의 진짜 최고 보물을 빼 놓다니... 벅찬 감격을 안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로 한다. 남산 안내도를 보니 삼릉계곡의 북쪽 능선과 골짜기에 배리 삼존불과 삼층석탑 등 많은 문화재들이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냥 봉화골로 내려가서는 별로 볼 것도 없고 고위산 넘어서 천룡사 삼층탑을 보러갈 수도 있겠지만 그 하나만 보기에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나중에서야 탐방 코스를 잘못 잡았고 판단도 좋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실제로 다시 금..

경주 남산 (10) 최고의 감동, 국보 제312호 칠불암 마애석불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의 감동을 가슴에 간직한 채 칠불암으로 향한다. 길은 능선을 따라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모래바위라 발이 자꾸 미끄러진다. 길가에 이층으로 포개진 바위, 그 바위틈에는 불심이 빼곡하게 놓였다. 딱히 바람이랄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도 작은 돌 하나 살며시 얹어 놓는다. 건조하고 딱딱한 모래바위(사암)에 불구하고 생명이 어찌 이리 묘한 모습으로 뿌리를 내렸을까... 급비탈에 이르러서는 제대로 된 길이 아니다. 잘 자라지 못한 소나무 줄기를 잡으며 한참을 미끄러져 내려가서야 비로소 죽죽 벋은 신이대가 싱그러운 울을 이룬 평탄한 삽작길이 나타난다. 언덕의 용틀임하는 나무 뒤로 석축이 보이고, 그 위로 두 개의 커다란 바위의 실루엣이 나타난다. 앞의 바위는 사방불, 뒤의 큰 바위삼존불을 ..

경주 남산 (9) 천상에서 굽어보는,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다시 남산 순환로로 나와 신선암 마애보살과 칠불암 마애불상을 향해 걷는다. 길은 남산에서 가장 품이 넓은 골짜기인 용장골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400m가 넘는 정상의 허리를 두르며 반듯하게 나 있다. 지도를 보니 지금 걷고 있는 이 높은 길이 삼화령(三花嶺) 길이다. 삼화령을 지나면 내리막길, 다시 산세가 가파라지는 곳에서 큰길은 남산의 동쪽, 서출지와 통일전 방향으로 구부러져 내려선다. 그 지점에서 큰길을 벗어나 이영재와 봉화대능선을 따라 한 시간 정도 걸어야 한다. 길섶에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연보랏빛 쑥부쟁이꽃이 피어 있다. 억새와 소나무가 정다운 삼화령 길이다. 오른쪽으로는 넓고 넓은 용장골... 삼화령(三花嶺)은 '삼화수리'라고도 하는데, 금오산과 고위산, 그리고 두 봉우리와 삼각형을 이루는 곳..

경주 남산 (8) 용장사지 삼층석탑, 마애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

금오산 아래서부터는 큰길을 따라서 편안히 걷는다. 삼화령으로 접어드는 곳에서 용장사터로 내려서는 샛길이 나타난다. 지금은 사라지고 절터만 남은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 머물면서 를 썼던 곳이다. 용장사터에는 보물급 문화재가 셋이나 기다리고 있다. 삼층석탑과 삼륜대좌불(석조여래좌상), 마애여래좌상이 그것이다. 안내도를 보니 용장사터까지는 약 400m쯤 가파른 능선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얼마쯤 내려선 곳에는 탑의 일부를 구성했던 것으로 보이는 석물이 방치되어 있다. 그 앞 낭떠러지로 이어지는 너럭바위에는 등산객들이 앉아서 도시락 점심을 먹고 있다. 벌써 점심시간이 되어 배는 슬슬 고파지는데 점심을 따로 준비해 오지 못한 것이 아쉬워진다. 신선암 마애불과 칠불암 마애불상군까지는 아직 가야할 길이 좀 많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