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경주 남산 (3) 자비로운 미소 번지는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모산재 2010. 12. 25. 21:54

 

남산에는 유난히 마애불이 많다. 남산의 석불 80체 중에는 입체로 된 것이 29체인 데 비해 바위면에 새긴 마애불상(磨崖佛像)이 51체나 된다. 석불상이 가장 많이 분포하는 삼릉계곡에도 마애불이 많다.

 

마애불은 자연 그대로의 암석에 불상을 새긴 것이다. 마애불이 많다는 것은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믿어온 고대의 암석신앙에 불교신앙이 결합된 흔적으로 설명된다. 바위 속에 영검이 있다고 믿어온 신라 사람들은 바위 속에 부처(영검)가 있다고 믿게 되면서 많은 마애불을 만들게 된 것이다.

 

경주 남산의 삼릉계곡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마애불은 관음보살입상이다. 자연 암석을 그대로 살려 새긴 이름다운 노천불(露天佛)이다.

 

 

 

 

■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 경북 유형문화재 제19호

 

 

머리 없는 불상에서 왼쪽 산허리 쪽으로 30여 m쯤 오르면 급경사진 언덕에 너럭바위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너럭바위 위에 절리로 형성된 바위 기둥을 깎아 돋을새김한 아름다운 관음보살입상을 만나게 된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듯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관음보살은 때맞춰 비추는 아침햇살을 받아 신비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다.

 

 

 

 

 

돌기둥에 새긴 불상의 높이 약 2.4m이다. 연꽃무늬 대좌(臺座)위에 서 있는 관음보살은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만면에 미소를 띤 얼굴은 부처의 자비스러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손에는 보병(寶甁)을 들고 있어 보관과 함께 이 불상이 현세에서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불상 뒷면에는 기둥 모양의 바위가 광배(光背) 역할을 하고 있다.

 

 

 

 

 

 

 

입술가에는 마치 채색을 한 듯 붉은 빛깔을 띠고 있어 불상의 미소가 더욱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탑골의 불상군에서도 이와 같은 붉은 빛깔이 있어 인공적인 채색인지 자연 암석의 빛깔인지 논란이 있지만, 자연 암석의 빛깔로 보는 모양이다.

 

가슴에는 영락(瓔珞), 팔에는 팔찌를 끼고 있다. 오른 손을 굽혀서 가슴에 대었고 U자형의 천의(天衣) 자락이 두 다리로 각각 내려가 부드러운 옷주름을 형성하고 있다. 양감있는 얼굴과 신체의 묘사, 잘룩한 허리의 표현 등 통일신라시대의 이상적인 사실주의 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 영락(瓔珞): 부처나 보살이 자기 신분을 교리에 맞게 드러내기 위하여 아름다운 보석,금속,옥,병 등으로 몸을 치장하는데 쓰이는 장엄구(裝嚴具)

 

 

 

 

 

 

 

이 불상은 정확한 연대와 조각가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불상이 어찌하여 국가급 문화재인 보물이 아니라 지방문화재인 경북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 경주 남산의 불상들

남산에는 많은 불상과 탑들이 남아 있다. 그 대부분은 석탑(石塔)과 석불(石佛)로서 특히 마애불(磨崖佛)이 많다. 이처럼 많은 유물들이 돌로 만들어진 데에는 질 좋은 화강암이 많기도 하지만,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신앙된 바위 신앙과도 관련이 깊다. 아득한 옛날부터 남산 바위 속에는 하늘나라의 신들과 땅위의 선신(善神) 들이 머물면서 이 땅의 백성들을 지켜준다고 믿 었으며, 불교가 전래된 이후에는 산 속, 바위 속의 신들이 부처와 보살로 바뀌어 불교의 성산(聖山)으로 신앙되어 왔다.

남산에 불상이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7세기 초로 추정되고 있다. 7세기 초에 조성된 동남산 부처골 감실여래좌상은 투박한 시골 할머니가 돌로 만든 집 속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고즈넉한 주변 분위기와 어울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안온하게 해주는 한국 최고(最古)의 감실불(龕室佛)이며, 7세기 중엽의 장창곡 석조미륵삼존불의상(石造彌勒三尊佛倚像)과 선방곡 석조여래삼존불(石造如來三尊佛)은 티없이 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웃음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삼국의 통일을 기원하여 조성한 탑골부처바위도 있으며, 통일된 나라의 영광을 위해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칠불암(七佛庵)불상군도 있다. 그리고 왕정골(王井谷)여래입상이나 삿갓골여래입상(파편)처럼 우리 민족예술의 황금시대인 8세기 중엽에 조성된 것도 있다. 또 보리사(菩提寺) 여래좌상처럼 화려하고 섬세하던 8세기말 내지 9세기 초반의 것도 있고, 9세기 중엽의 것들도 있어 수백 년 이어온 신라 불교미술의 흐름을 이곳에서 모두 볼 수 있다. 7세기 후반에 불세계(佛世界)를 만다라적(曼多羅的)인 기법으로 새겨 놓은 탑곡 마애조상군(磨崖造像群)은 사방의 불보살과 비천(飛天)들이 시시각각 햇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나타나는 웃는 모습들은 가히 환상적인 불세계를 표현하고도 남음이 있다.

삼국통일후 남산은 불보살이 머무는 신령스런 성산(聖山)으로 신앙되어 더욱 많은 탑과 불상이 조성되기에 이르렀다. 남산 불상 중에는 입체로 된 것이 29체이고 바위면에 새긴 마애불상(磨崖佛像)이 51체이다. 큰 것은 10m 가량 되는 것도 있지만 보통 4~5m 되는 것이 많다. 또 작은 것은 1m 정도 되는 것도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절터는 112곳이며, 탑은 61기이고, 불상은 80체를 헤아린다. 절터의 수는 암자로 짐작되는 곳도 독립시켜 계산한 것이므로 정밀히 조사하면 달라지겠지만 40여 계곡 중 절터가 없는 계곡은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