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경주 남산 (16) 탑곡 마애불상군 /북면과 서면

모산재 2011. 1. 4. 15:04

 

보리사에서 탑골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남산에서 흘러 내리는 능선 하나를 지나 골짜기가 다시 나타났다 싶은 곳에 탑골이 있다. '탑골'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곳에는 대단한 탑이 있거나 많은 탑들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게 되는데, 막상 골짜기에 들어서 보면 한없이 밋밋한 풍경만 이어져 있을 뿐이다.

 

그래도 입구에는 제법 많은 민가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어서 따스한 풍경을 이룬다. 마을 앞에는 남산과 경주시내를 가르는 남천이 형산강을 향해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보리사가 있는 갯마을에서는 들판 너머로 멀리 보이던 강물이 이곳에서는 마을에 바짝 붙어 흐른다. 

 

남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을 따라 길이 나 있다. 그런데 개울이 콘크리트로 도배되어 있어 실망스럽다. 그것만 빼면 숲을 이룬 길은 정겹고 평화롭다. 산길로 들어섰다 싶은데, 금방 개울 건너편으로 암자 하나가 나타난다. 

 

옥룡암에서 개울로 흘러내리는 물이 하얀 고드름으로 주렁주렁 달렸다. 구름다리 안양교(安養橋)를 건너면 다시 부처님이 거처하는 세계다. 작은 다리 이름에도 이런 뜻을 담았으니, '안양(安養)'은 극락의 다른 이름이다. 

 

 

 

 

 

 

옥룡암에서 엎어지면 허리 닿을 곳에 집채만 한 바위가 우뚝 솟아 있다. 민중들은 이 바위를 '탑골 부처바위'라는 정겨운 이름으로 부르지만, 글 배운 사람들은 '탑곡 마애불상군'이라는 어려운 이름을 쓴다. 

 

대강 말해서 높이 9m, 둘레 30m 큰 바위 사면에 여래상, 보살상, 비천상, 나한상, 신장상, 탑, 사자 등 33체를 새긴 자연 바위이다. 일종의 사방불인 셈이다. 이러한 조각들이 그리고자 한 세계를 '사방불정토(四方佛淨土)'라고 한다.

 

우주에는 영원불변하는 본체가 있으니 온 누리에 빛을 비춘다. 이 빛을 형상으로 나타낸 것이 법신불인 비로자나불로, 사방불의 근본에는 이 비로자나 부처님이 계셔서 동서남북 사방으로 나타나심을 표현한 것이다.

 

 

부처바위는 신라시대 사방불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내용이 풍부하다.

 

 

 

 

 

부처바위가 있는 이 일대는 통일신라시대에 '신인사(神印寺)'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제강점기 1940년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탑곡의 유적>과 <경주 남산의 불적>이란 기록에 따르면 일본인 오오사까(大坂金太郞)가 '신인사(神印寺)'라 명문이 새겨져 있는 기와를 발견하였다 한다. 사실이라면 이 부처바위는 신인종(神印宗)에 속한 가람이라 추정할 수 있는데, 신인종은 7세기에 명랑법사(明朗法師)에 의해 개종된 밀교 계통의 불교 종파다. 이런 근거로 부처바위의 연대를 7세기로 추정하기도 한다. 

 

 

부처바위의 남쪽은 다른 3면과는 달리 높은 대지(臺地)이고 기와조각 등 목조건물이 섰던 흔적과 석탑 등이 남아 있어, 남쪽면의 불상을 주존으로 한 남향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북쪽 골짜기에 남향 사찰이 있었다면 흥미로운 일이다.

 

 

더보기

※ 신인종(神印宗)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에 활약한 명랑(明朗)을 종조(宗祖)로 하는 밀교 계통의 불교 종파다. 명랑은 문무왕 초에 당나라에서 밀교를 수학한 뒤 귀국하여 자신의 집을 고쳐 금광사(金光寺)라 하고 이 곳을 중심으로 밀교 신앙 운동을 전개하였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명랑(明>朗)은 사천왕사 창건에 관련된 고승이다. 당나라 고종이 신라를 침략하려 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의상은 귀국하여 이 사실을 조정에 전했는데, 신하들이 당시 용궁에서 신통력을 배워왔다는 명랑법사를 모셔와 대책을 상의하자고 권했다. 명랑법사는 낭산 남쪽에 사천왕사를 지으라고 하였다. 그러나문무왕 10년(670), 미처 절을 다 짓기도 전에 당나라 군사들이 쳐들어 온다는 소식이 들리므로 오색비단으로 절을 짓고, 풀로 오방신장을 만들어 유가명승 12명과 문두루비법으로 기원을 드리자 사나운 풍랑이 일어 당나라 배가 모두 침몰하였다. 그 뒤 절을 완성하여 사천왕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문두루(文豆婁, mūdra:神印) 비법은 <관정경(灌頂經)>에 의한 밀교 의식으로, 이 경에는 불법을 믿는 사람이나 나라가 고난을 겪을 때 오방신상(五方神像)을 만들어 문두루비법을 행하면 모든 재난을 물리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 탑곡 마애불상군 / 보물 201호

 

남쪽 바위면에는 삼존과 독립된 보살상이 배치되어 있고, 동쪽 바위면에도 불상과 보살, 승려, 그리고 비천상(飛天像)을 표현해 놓았다. 불상·보살상 등은 모두 연꽃무늬를 조각한 대좌(臺座)와,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 한 광배(光背)를 갖추었으며 자세와 표정이 각기 다르다. 비천상은 하늘을 날고 승려는 불상과 보살에게 공양하는 자세이지만 모두 마멸이 심해 자세한 조각수법은 알 수 없다. 서쪽 바위면에는 석가가 그 아래에 앉아서 도를 깨쳤다는 나무인 보리수 2그루와 여래상이 있다.

 

하나의 바위면에 불상·비천·보살·승려·탑 등 다양한 모습들을 정성을 다하여 조각하였음은 장인의 머리속에 불교의 세계를 그리려는 뜻이 역력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조각 양식은 많이 도식화되었으나 화려한 조각을 회화적으로 배치하여 보여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특이한 것이다.

 

 

 

● 북면 / 석가가 설법하는 영산정토(靈山淨土)

 

옥룡암에서 올라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바위면이 북면이다.

 

북면에는 부처님 나라를 지키는 사자들과 웅장한 두 탑이 새겨져 있다. 탑과 탑 사이 천상계에는 부처님(석가여래좌상)이 앉아 계시는데, 머리 위에는 천개(天蓋)를 새겨 법당임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그 위로는 비천상이 새겨져 있다.

 

특히 이곳에 새겨진 9층탑과 7층탑은 신라시대 목탑의 원형을 추정하게 하는데, 탑들은 신라의 목탑을 사실적으로 새긴 것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서라벌의 목탑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특히 9층탑은 황룡사 9층탑을 새긴 것으로 주장되기도 한다.

 

 

 

 

 

☞ 다음 그림 자료들은 '경주남산연구소'에서 인용한 것이다. 설명 내용의 많은 부분이 동 연구소의 글을 참고한 것임을 밝힌다.

 

 

 

 

높이 9.9m, 너비 6.1m로 가장 높은 바위면을 살려 9층탑과 7층탑을 좌우에 새기고 탑 사이 중앙에 보개가 있는 주존불을, 그리고 상단에 비천 2구를, 하단에 사자 2마리를 각각 새겨 놓았다.

 

북면은 영산정토를 나타내는데, 영산정토는 석가여래가 여러 보살들과 나한들에게 설법하고 계신 곳이다.

 

벽면 중앙에 석가모니가 앉아 계시고, 머리위에는 천개(天蓋)가 공중에 떠 있다. 부처님 앞에는 양쪽에 쌍으로 된 목조탑(木造塔)이 웅장하게 솟아 있고 그 위로 비천이 날고 있다.

 

 

목탑 앞에는 사자 두 마리가 마주 앉아 있는데, 얼른 보면 불국사와 같은 법당 앞에 서 있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더보기
※ 정토(淨土)에 대하여

 

'정토'란 부처님과 보살이 머무는 세계란 뜻으로 '불국토' 또는 '보살국토'라고 한다. 중생이 사는 번뇌로 가득 찬 고해(苦海)인 현실세계를 '예토(穢土)'라고 부른 데 대한 상대어이다. 예토, 즉 사바세계는 '감인세계(堪忍世界), 인토(忍土), 감인토(堪忍土), 인계(忍界)' 등으로 한역되고 있는데, 이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삼독에 의해서 이루어진 중생의 세계를 말한다.

 

시방(十方) 세계에 제불(諸佛)의 정토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1세계에 2불(佛)이 병립해서는 안 되므로 제불이 나타날 국토가 현실세계 외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논리인데, 특히 아미타불의 서방 극락세계, 약사불의 동방 정유리세계(淨瑠璃世界)를 정토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아미타불의 서방극락 정토, 약사여래의 동방정유리세계, 아촉불의 동방묘희세계 등이 불국정토로 알려져 있고, 미륵보살의 도솔천, 관음보살의 보타락가산 등은 보살정토로 불려지고 있다. 이러한 불국정토는 이들 제불(諸佛)이 보살이었을 때 세운 원을 완성한 결과로 만들어진 국토이다. 정토교가 성행한 이후에는 거의 대부분 정토의 세계는 아미타불의 서방극락 정토를 나타내고 있다.

 

이와 같은 불국토에 대하여 현실의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나 번뇌를 맑은 눈으로 보았을 경우에 그대로 정토라고 부르는 사고방식이 있다. 이를 '사바즉적광토(裟婆卽寂光土)'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석가모니불의 '영산정토(靈山淨土)'나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등이다.

 

선종(禪宗)에서는 "오직 마음이 정토요, 자신의 마음이 미타(彌陀)"라고 하여 사람들이 본래 갖추고 있는 일심(一心) 외에 정토는 없다고 말한다. <유마경>에서는 “마음이 청정하면 국토도 청정하다”고 하면서, "깨달음을 성취하면 사바세계가 그대로 정토가 된다."고 설하고 있다.

 

 

<동탑> 동탑은 이중기단을 새기고 그 위에 9층 기와집으로 된 목탑을 새겨 놓았다. 1층은 비교적 높고 다음 층부터는 낮으며 점차로 축소되고 있다.

 

 

 

 

 

상륜부에는 노반, 복발, 앙화 위에 수없이 많은 풍경이 달린 다섯 겹의 보륜, 수연, 용파, 보주가 정연하게 조각되어 있다. 지붕의 귀는 물론 다섯겹의 보륜에도 수없이 많은 풍경이 달려 있어 지극히 찬란하다. 각 층마다 두 개씩 창문이 열려 있는데,열린 쪽을 더 깊게 새겨 입체감을 주었다.

 

 

 

<서탑> 7층으로 모양이나 조각수법이 동탑과 같다.

 

 

 

 

 

<사자> 두 탑 앞에 각각 새겨 놓은 두 마리의 사자는 불국정토를 지키는 성스러운 짐승이다.

 

동쪽의 사자는 얼핏 천마총에 그려진 천마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입을 벌리고 오른쪽 발은 힘차게 땅을 딛고 왼발을 들어 올렸는데, 꼬리가 깃발처럼 세 갈래로 날리고 있다. 목에 털이 없어 암사자로 보인다.

 

 

 

 

서쪽의 사자는 입을 다물고 오른발을 들고 있는데 꼬리는 더욱 복잡하다. 목에 긴 털이 많아 숫사자로 보인다.

 

 

 

 

입을 벌린 사자는 '아사자'라 하고, 입을 다문 사자는 '훔사자'라고 하는데, 닫힌 세계와 열린 세계, 즉 음과 양을 합친 온 누리를 지키고 있다는 뜻이다.

 

 

 

<석가여래좌상> 두 탑 사이 높이 떠 있는 넓은 연꽃 위에 석가여래가 앉아 있다.

 

 

 

 

 

 

 

여래의 표정은 밝고 자세는 단정하다. 두 손은 무릎 위에 선정인(禪定印) 을 표시한 듯한데 옷자락에 두 손이 가려져 있기 때문에 확실하게 알 수 없다. 둥근 두광에는 햇살같이 연꽃을 새겼으므로 부처님 얼굴이 더욱 밝고 생기에 넘치는 듯하다.

 

 

연꽃 대좌는 꽃잎이 네 개로 간단하나, 두 개의 꽃잎이 비행기의 날개처럼 길게 뻗어 있어 하늘을 나는 듯 보이는 것도 시원스럽다.부처님 머리 위에는 천개가 새겨져 있다.

 

천개는 인도와 같은 더운 나라에서 높은 사람들에게 햇빛을 가려주기 위한 시설로 양산 같은 것인데,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햇빛을 가리기 보다 높은 신분을 돋보이게 하는데 더 큰 뜻을 지니므로 절 금당이나 대궐의 옥좌 위에는 반드시 천개를 만들어 얹는다. 별을 뿌려 놓은 듯 절이 많았다는 신라 서울의 절마다 화려하고 찬란한 천개가 있었겠으나 지금 남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오직 이 바위에 새겨 놓은 천개가 있을 뿐이다.

 

마름모를 한 줄로 투박한 넓은 천개 위에 두 겹으로 연꽃을 장식하였고, 밑으로는 헝겁으로 접은 수실을 늘인 다음 포장을 늘여 놓았다. 일본 호오류우사에 있는 천개나 송림사 전탑에서 발견된 사리병의 황금 천개들은 대체로 이곳 천개와 비슷하다.

 

 

 

<비천상(飛天像)> 맑고 깨끗한 하늘을 인격화하여 하늘을 나는 비천상으로 새긴 것이다. 회화와 조각에서 불당의 장엄을 표현하기 위한 이미지로 장식적인 천의의 표현에 관심이 놓여져 있다. 중국에서 동방계의 비천 무늬가 나타나게 된 것은 북위시대부터이다.

 

 

 

 

탑 위로 천녀가 날고 있는데 아름다운 천녀들이 하늘을 날면서 음악을 연주하거나 꽃을 뿌리는 것은 부처님의 정토를 찬양하는 것이다.

 

 

 

 

부처바위 북면에는 이렇게 화려하게 장엄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영산세계(靈山世界)가 나타나 있는 것이다.

 

 

 

 

● 서면 / 동방 유리광정토

 

부처바위의 가장 좁은 면으로 능수버들(?)과 대나무 사이 연화대에 앉은 부처님과 비천상을 새겨 놓았다. 부처바위의 불상 가운데 가장 근엄한 표정이고 보주형 두광 또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약사여래로 추정된다. 약사여래는 12서원 중 '내 몸과 남의 몸에 광명이 비치게 하려는 원'을 첫번째 원으로 세워 중생을 모든 병고에서 구하고 무명(無明)의 고질까지도 치유하여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유리광정토에 거하는 부처님이다.

 

 

 

 

 

서면은 높이 6.1m의 암벽에 새겨진 것은 여래 1, 비천 2, 수목 2이다. 면적이 좁은 곳이어서 불상과 보리수, 그리고 비천상 2구가 동서로 조각되어 있다. 오른편에 신수(神樹)가 늘어져 있고, 왼편에는 대나무로 추정되는 나무가 뻗어 오른 사이의 큰 연꽃 위에 여래가 앉아 계신다.

본존여래상은 네모에 가까운 갸름한 머리에 자그마한 육계가 솟아 있고, 귀는 어깨에 닿아 있고, 가는 눈은 정면을 바라본다. 갸름한 코, 꼭 다문 입이 바위에 새겨진 어느 불상보다도 근엄한 표정이다.머리에 비해서 조금 갸름한 몸체는 반 듯하고 두 무릎은 연꽃 위에 평행으로 놓여 있어 안정감을 준다. 두 손은 선정인(禪定印) 같은데 옷자락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다. 머리 뒤에는 보주형으로 된 두광을 새겼다. 가운데 둥글게 연꽃을 새기고 가장자리에 구슬을 늘이고 그 밖으로 불길을 새긴 두광이 있다. 보주형 두광은 단정한 자세로 앉은 불상을 더욱 엄숙하도록 보이게 하고 있다. 불상 위로 피리를 불면서 비천이 날아가고 있다.

 

 

 

 

 

 

다음으로 가장 넓은 면으로 극락정토를 표현한 동면과 삼존불과 다양한 보살상이 새겨진 남면을 살펴보기로 한다.

 

 

 

 

<다음 글에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