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경주 남산 (13) 남산동 삼층석탑(보물 제124호), 염불사 삼층석탑

모산재 2011. 1. 2. 01:21

 

서출지 앞쪽으로 나 있는 큰 길을 따라 남쪽 방향으로 3~4분 정도 걸어가면 가면 남산리 삼층석탑이 나타난다.

 

그런데 도중 안내판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동네로 들어서서 잠시 헤매기도 하였다.

 

 

동네에는 조선 간장을 대량으로 제조하는 집이 있다.

 

볕살 잘 드는 정원엔 메주가 주렁주렁 복스럽게 매달려 있다. 잠시 메주가 부처님같다 엉뚱한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천불전에 들어 있는 부처님을 연상했다기보다는 저 넉넉하고 푸근한 모습에서 얼핏 떠올린 것이다. 된장, 간장이 되어 뭇 중생에게 따사로운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을 모습도 부처님의 모습일 것이다.

 

 

 

 

 

 

 

동네로 들렀다 길을 따라 내려오니, 남산쪽으로 대나무숲이 울을 이룬 곳에 삼층 쌍탑이 솟아 있는 것이 보인다. 남북으로 길게 벋은 남산 위로 솟아 푸른 하늘을 이고 있는 탑의 모습이 그림처럼 아릅답다.

 

이 삼층석탑은 '남산리 사지 삼층석탑', '남산리 삼층석탑' 등으로 불려왔는데, 행정구역이 경주시 남산동이므로 현재는 남산동3층석탑이라 부른다.

 

 

 

 

■ 경주 남산동 삼층석탑 / 보물 제124호

 

 

쌍탑이 있는 터는 원래 양피사(讓避寺) 터로 추정된다. 현재 탑 동쪽에 있는 못을 양피못이라 하고 그 동쪽 들을 양피들이라 부르고 있는 점이나 안쪽 마을의 다른 이름이 피촌(避村), 피리촌이라고 하는 데서 알 수 있다.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은 염불스님(念佛師) 이야기가 나온다. 

 

 

피리촌에 있는 절 피리사에 스님 한분이 있어 나무아미타불만 외웠다. 염불 소리는 온 서라벌 360방 17만 호에 들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모두 이 기이한 스님을 공경하여 염불스님(念佛師)이라 불렀다. 돌아가신 뒤 생전에 기거하던 피리사를 염불사로 고쳐 불렀다. 염불사 옆에 또 한 절이 있어 양피사(讓避寺)라 하였는데, 마을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남산동 삼층석탑은 양피사 삼층석탑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은 탑 서쪽에 불탑사라는 이름의 작는 절이 지키고 서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쌍탑은 대체로 동일한 양식으로 만들어지는데 비해, 이 남산동 삼층석탑의 동·서 두 탑은 각각 양식이 다르게 표현되어 있어 흔치않은 모습이며,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면서 마주 서있다. 동탑은 하나의 기단 위에 세워진 3층 석탑인데 벽돌을 쌓은 듯한 전탑 형식으로 만들어졌고, 서탑은 이중기단 위에 목탑을 본뜬 전형적인 신라 석탑으로 세워졌다. 

 

탑은 부처님의 유골인 사리를 모신 곳으로 불교가 전래된 초기에는 절집에서 중심되는 건축물이었다. 그래서 하나의 탑을 웅장하게 건립하였는데 황룡사 9층 목탑이 그 예다. 그러다가 불상을 모시는 법당 건물이 점차 중시되기 시작하였고, 하나뿐이던 탑은 쌍탑 양식으로 변화하게 된다.

 

쌍탑 양식은 통일신라 초기부처 나타나기 시작해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탑 양식이 되었다. 감은사터 3층쌍석탑(682년)은 쌍탑 양식의 초기 대표작으로 금당 불상과 이등변삼각형을 이루는 지점에 두 탑을 세운 것이다.

남산리 쌍탑도 그런 양식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대개의 쌍탑이 같은 형태인 것과는 달리 이 탑은 동탑과 서탑이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 불국사의 쌍탑인 석가탑과 다보탑도 그러한데, 의도적으로 대칭적인 구조를 깨뜨리면서 새로운 조화를 추구한 것이라고 할수 있겠다. 

 

 

 

 

 

● 동탑

 

동탑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서 쌓아 올린 모전 석탑의 양식을 취하고 있다. 탑의 토대가 되는 바닥돌이 넓게 2중으로 깔려있고, 그 위에 크기가 서로 다른 여덟 개 장대석을 엇갈려 쌓아 기단을 만들었다. 단조로운 십자형 이음선이 아니라 면마다 다른 이음선이 생기게 배려한 점이 매우 독특하다.

 

기단 위에 기둥 모양을 새기지 않은 1층 몸체 돌을 얹었다. 1층 지붕돌은 층급받침은 아래는 5단, 위는 7단으로 안쪽으로 너비를 줄여갔다. 2층과 3층 몸체 돌은 1층보다 높이는 반이나 줄었는데, 너비는 조금씩 줄어서 지붕 돌의 너비가 감소하는 비례와 같아 안정감을 주면서 상승감을 느끼게 한다.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은 돌 하나로 만들었다. 지붕돌과 층급받침이 모두 수평선으로 경직된 모습이다.

 

 

 

 

 

 

수미산 위 천상의 세계,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 서탑

 

서탑은 위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모습으로 전형적인 삼층석탑의 양식이다. 1층 몸체 돌의 너비에 비해 위 기단의 너비는 배, 아래 기단의 너비는 3배의 비율로 돼 있어 매우 안정감이 있다. 그 위로 2, 3층이 알맞은 비례로 줄어들며 솟아올라 아름답게 느끼지는 탑이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돌 하나로 되어 있고 각 층에 모서리기둥을 조각하였다. 지붕돌 밑면의 층급받침은 5단이다.

 

 

이중기단은 한 면을 둘로 나누어 팔부신중(八部神衆)을 새겼다. 팔부신중은 신라 중대 이후에 등장하는 것으로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탑을 부처님의 세계인 수미산으로 나타내려는 신앙의 한 표현이다. 이런 형식은 초기 왕궁지였던 창림사지 삼층석탑에도 나타난다.

 

 

 

 

 

 

 

<서탑의 팔부중상>

 

팔부중상은 팔부신중, 천룡이라고도 한다.  ‘천룡팔부중’에 관한 기록은 <법화경(法華經)> 등 대승불교 경전에 보이며, 사천왕(四天王)의 전속으로 기술되고 있다. 경주 석굴암의 조각은 경전의 묘사와는 달라 신라시대 신앙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빼어난 작품이다.

 

 

이 탑에서는 남쪽에 건달바와 아수라, 동쪽에 야차와 용, 북쪽에 긴나라와 마후라가, 서쪽에 천과 가루라가 배치되어 있어 지옥에서 하늘까지를 나타내고 있다. 그 위는 수미산 꼭대기 사왕천이고, 사왕천 위는 도리천, 도리천 위는 맑고 깨끗한 부처님 나라인 것이다.

 

팔부중상은 사천왕의 장수이니 탑의 기단부가 수미산이 되는 것이다. 탑에 십이지신상이나 팔부신중, 사천왕상을 새겨서 배치하는 것은 부처님 나라를 나타내기 위한 불교의 우주관이 반영된 것이다.

 

 

 

 

 

<동면 / 야차와 용> 용은 물 속에 살면서 바람과 비를 오게 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 호국의 선신으로 간주된다. 야차(夜叉)는 고대 인도에서는 악신으로 생각되었으나, 불교에서는 사람을 도와 이익을 주며 불법을 수호하는 신이 되었다.

 

 

 

 

<남면 / 건달바와 아수라> 건달바(乾闥婆)는 인도 신화에서 천상의 신성한 물 소마(Soma)를 지키는 신. 그 소마는 신령스런 약으로 알려져 왔으므로 건달바는 훌륭한 의사이기도 하며, 향만 먹으므로 '탐향(眈香)'이라고도 한다. 아수라(阿修羅)는 인도 신화에서 여러 개의 얼굴과 많은 팔을 가진 악신으로 간주되었으나, 불교에서는 조복(調伏)을 받아 선신의 역할을 한다.

 

 

 

 

<서면 / 천과 가루라> 천(天)은 천계에 거주하는 신들로 삼계(三界: 欲界 ·色界 ·無色界) 27천으로 구분되나, 지상의 천으로는 세계의 중심에 있는 수미산 정상의 도리천(忉利天: 三十三天)이 최고의 천이며, 제석천(帝釋天)이 그 주인이다. 가루라(迦樓羅)는 새벽 또는 태양을 인격화한 신화적인 새로서 금시조(金翅鳥)라고도 한다. 불교 수호신이 되었다.

 

 

 

 

<북면 / 긴나라와 마후라가> 긴나라(緊那羅)는 인간은 아니나 부처를 만날 때 사람의 모습을 취한다. 때로는 말의 머리로 표현되기도 한다. 가무의 신이다. 마후라가(摩睺羅迦)는 사람의 몸에 뱀의 머리를 가진 음악의 신. 땅속의 모든 요귀를 쫓아내는 임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탑을 두루 살펴보고 나오는데 한 무리의 탐방객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들은 금방 탑돌이를 한다. 좋은 풍경이다.

 

 

 

 

 

탑 동쪽으로 나와서 돌아본 풍경. 바로 앞에는 연꽃을 가꾼 작은 습지가 있다.

 

 

 

 

 

그리고 위의 연꽃 밭 바로 앞에는 마을로 이어지는 큰길이고, 큰길 앞으로는 마을 앞 들판이다.

 

 

 

바로 그곳에는 서출지보다 훨씬 깊고 길게 파인 양피못(讓避堤)이 있고, 마을 쪽 큰길 옆에는 산수당이라는 지은 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 당당한 정자가  서 있다. 원래 있던 정자가 낡아서 철거하여 새로 지은 것이라는데 이 정자 역시 풍천 임씨가 지은 것이라 한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진짜 서출지가 사실은 양피못이라 부르는 이곳이라 한다.

 

 

 

쪽지 안내도엔 나타나지 않은 것이었지만(나중에 알고보니 작년에야 복원된 탓이다), 주차장 안내판에 염불사 삼층석탑이 남산동 삼층탑의 남쪽에 표시되어 있어 찾아 보기로 한다.

 

 

 

 

■ 염불사 삼층석탑

 

 

칠불암 가는 등산로를 따라 몇 분 정도 걷다보면 남산쪽으로 넓은 터가 열리며 쌍탑이 나타난다. 탑이 위치한 이곳을 쑥두듬골(봉구곡)이라 부르는데, 바로 온 서라벌에 염불 소리가 들리게 했던 염불스님이 머물렀던 염불사 불탑이다. 예전의 장엄했던 염불사는 사라지고 폐허만 남았지만 탑의 북쪽에는 지은 지 얼마되지 않아 보이는 작은 염불사가 들어 서 있다.

 

 

삼층 쌍탑은 군데군데 파손된 모습으로 새단장한 모습인데 작년 5월에 복원 공사를 한 것이라 한다. 통일신라 초기인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에 세워진 쌍탑은 오랜 세월 뒤 절이 사라지고 빈터를 지켜왔다고 한다. 20세기 들어 동탑은 거의 무너지고 서탑은 피폐해진 모습으로 있었는데, 동탑은 46년 동안 다른 곳으로 강제 이주 당했다가 2009년에 다시 고향집으로 돌아와 복원된 것이라 한다.

 

 

강제 이전되어 불국사역 앞에 서 있던 동탑(구정동 삼층석탑)

 

 

 

 

1963년 경주에 부임한 군인 출신 시장은 5·16 쿠데타 뒤에 취임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주를 순시하게 되자 대통령에게 보여 줄 생각으로 무너진 염불사 동탑을 대통령을 맞이할 장소로 옮기기로 했다. 온전치 않은 석탑 부재는 이거사터에 방치된 석탑 부재에서 골라 짜맞추어 불국사역 삼거리에 옮겨 세웠다. 1300여 년 전 염불스님의 공덕이 깃든 절의 동탑이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기념물로 동원된 것이다.

 

다른 탑의 부재와 억지춘향식으로 짜 맞춘 탑이 균형이 맞을 리 있겠는가. 이 탑은 43년간 '구정동 삼층석탑'으로 불리며 안내판조차 없이 '신라의 달밤' 노래비를 동무 삼아 역 앞에 우두커니 서 있어야 했다.

 

금세기에 접어들며 남산 정비사업 일환으로 동탑의 귀환운동이 일어났다. 염불사지 발굴 조사도 이루어지고 옮겨야 한다는 여론도 일어나며 2006년부터 본격적인 이전 복원을 시작했다. 절터 사유지를 매입하고 탑터를 다져 마침내 2009년 5월, 동탑은 46년만에 염불사로 돌아온 것이다.

 

동탑은 염불사로 돌아왔지만 동탑에 억지로 끼워 맞춰졌던 이거사터 탑 부재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동탑이 서고 난 뒤에 이거사터 탑 부재들은 염불사터에 방치되고 있다. 이거사터에 다른 탑 부재들이 온전히 남아 있어 복원이 가능하지만 탑터가 사유지인 점과 예산 등의 문제와 맞물려 해결을 미뤄둔 상태라고 한다.  * 이거사(移車寺)는 경주 도지동에 있는 신라 시대 절로 성덕왕릉의 원찰(願刹)로 알려져 있음.

 

 

동탑을 이전 복원하면서 서탑도 동시에 복원하였다. 워낙 파손되고 사라진 부분이 많아 복원 과정에서 전체 부재의 40% 정도를 새 부재를 써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복원된 탑에는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공인 사리 2과와 불상 및 불화, 불경 등을 봉안했다고 한다.

 

 

동탑과 서탑은 쌍탑 형식으로 통일 신라 초기의 양식이다. 동서탑 모양이 다른 남산동 쌍탑과는 달리 이 탑의 동서탑은 쌍동이탑이다.

 

 

동탑

 

 

 

 

서탑

 

 

 

 

 

염불사 쌍탑과 남산동 쌍탑 사이에는 훌륭한 목재로 멋지게 지은 고급 한옥들이 눈에 종종 띈다. 경관 좋은 곳을 차지한 졸부들의 별장인가 싶어 불편한 마음이면서도 부럽기도 하고, 남산의 풍경과 어울리는 집들이어서 다행스럽다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도 높은 담장과 꽁꽁 걸어 잠근 대문, CCTV 감시 등 외부세계와 차단하려는 완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못마땅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것은 남산에 머무는 부처님의 마음과는 반대편이기 때문이다. 비파골 진신석가나 문수보살님이 어느 날 홀연 나타나 꾸지람을 남기고 갈지 누가 알겠는가.

 

 

 

 

 

 

쌍탑을 둘이나 구경했으니, 이젠 또 부처님 만나러 가야 한다.

 

보리사 부처님과 탑골 마애부처님, 부처골 감실 보살님을 만나기 위해 다시 서석지를 지나 북쪽으로 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