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경주 남산 (18) 남산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 불곡 마애여래좌상

모산재 2011. 1. 5. 01:12

 

흔히 감실 보살좌상이라고 불리는 불곡 마애여래좌상은 남산의 가장 북쪽, 남산신성 바로 아래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다. 경주 시내가 한결 가까워진 곳이다. 골짜기 이름이 불곡(부처골)인 것은 바로 이 석불상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탑골에서부터 부처골(불곡)까지 가는 길은 큰 도로만 있다.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는 큰길 따라 걷자니 마음이 불편하여 도로 아래 논으로 내려서서 걷는다.

 

어느 순간 사람이 걷던 길을 차들이 점령하고 사람이 걷는 길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길을 걷는 사람들도 사라져 버렸다.

 

 

걷기에 딱 좋은 길이며 거리이건만, 오늘 서출지에서부터 이곳 부처골까지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침에 남산동 삼층석탑에서 만난 사람들은 관광버스를 타고 나와 같은 코스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계속 만난다. 목적지만 있고 과정이 없는 여행은 얼마나 삭막한 것인가. 남산만큼 걷기에 좋은 산이 있을까. 올레니 둘레길이니 따로 찾을 일이 아니다. 시간을 잊고 걸으면서 문화의 향기에 흠뻑 젖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남산인데, 걷는 이를 볼 수 없으니 아쉬울 뿐이다.

 

 

5분쯤 걸었을까. 산 모퉁이를 하나를 돌아서니 부처골 동네가 나타나는데, 몇 집 되지 않는 마을 입구 공터에 승용차들이 제법 여러 대 서 있다. 그냥 마을 사람들의 차일까, 아니면 부처님 만나러 온 사람들의 차일까.

 

 

 

 

 

십 몇 년 전에 한번 찾은 적이 있는 골짜기인데도 낯설기만 하다. 골짜기를 따라 300m쯤 오른 듯한데도 위치가 가늠되지 않는다. 등산로에 이정표라도 세워두었으면 좋으련만, 동네 입구의 이정표 외엔 더 이상의 이정표도 보이지 않는다. 그 때와는 달라지긴 했지만, 유홍준 선생도 이곳을 와서 헤매다가 결국 부처님을 찾지 못하고 이튿날 다시 와서야 만날 수 있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길을 따라 오르다가 신이대 숲이 터널을 이룬 곳에서 골짜기를 건너는 길과 오른쪽 산으로 길이 갈라지는 지점. 양지바른 메마른 산언덕이었던 기억에 오른쪽 산길로 들어서니 공터가 환하게 열린다. 바로 거기에 낯익은 바위가 보인다. 바위 속에 보살님이 앉아 계시지 앉느냐.

 

 

 

 

 

울퉁불퉁한 암반 위에 평범하게 솟아 있는 바위는 윤곽이나 면이 고르지 않다. 불상을 새기기에 그리 모양이 좋은 바위로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저런 바위에 불상을 새기려는 마음을 먹었을까 싶을 정도다.

 

바위의 높이는 3.2m, 밑너비가 4.5m라고 하는데, 바위 앞면에 가운데에 1m나 되는 깊숙한 감실(龕室)을 파고 그 안에 보살상을 새겼다. 그래서 보살상이 마치 동굴 속에 앉아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보살상은 완전한 입체를 이룬 환조 조상이 아니라 높은 돋을새김한 마애불이다.

 

 

 

 

 

 

 

■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 보물 제198호

 

 

경주 남산 동쪽 기슭 부처 골짜기의 한 바위에 깊이가 1m나 되는 석굴을 파고 만든 여래좌상이다.

 

불상의 머리는 두건을 덮어쓴 것 같은데 이것은 귀 부분까지 덮고 있다. 얼굴은 둥그렇고 약간 숙여져 있으며, 부은 듯한 눈과 깊게 파인 입가에서는 내면의 미소가 번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인왕리 석불좌상과 유사하지만 전체적으로 자세가 아름답고 여성적이다.

 

양 어깨에 걸쳐입은 옷은 아래로 길게 흘러내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까지 덮고 있는데, 옷자락이 물결무늬처럼 부드럽게 조각되어 전체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석불은 경주 남산에 남아있는 신라 석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삼국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이 불상으로 인하여 계곡 이름을 부처 골짜기라고 부르게 되었다.

 

불곡 마애여래좌상은 남산에서 가장 이른 시기, 삼국시대 말(6세기 말이나 7세기 초)에 만들어진 불상이다.

 

 

 

 

 

 

이 불상은 흔히 보는 부처님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둥근 얼굴, 단정히 넘긴 머리 매무새, 아담한 어깨선과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옷주름 등에서 중년을 넘어선 여인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래서 부처님 모습이라기보다는 불심 깊은 신라 여인, 두터운 신앙심으로 명상에 잠겨 있는 보살상에 가까워 보인다.

 

그래서일까, 이곳에는무속인들이 발길이 잦다. 감실 앞에는 무속인들이 차려 놓은 음식물들이 잔뜩 놓여 있고 내가 찾은 시간에도 무속인이 마당에 서서 중얼중얼 진언을 외고 있다. 그리고 내려가는 길에도 음식믈 박스를 머리에 이고 오는 여인을 만난다.

 

 

 

 

 

둥근 얼굴에 새겨진 이목구비는 섬세하기보다는 다소 투박한 느낌이다. 눈썹은 초승달처럼 가늘다기보다는 두텁고, 그 아래로 눈두덩은 둥글게 부풀어 올랐고, 콧날은 다소 길게 길게 윗입술을 향해 흐른다. 두 뺨은 복스럽게 봉긋하게 표현되었다. 작은 입은 살짝 다물었는데 입술은 도톰하다. 입술 양가에는 알듯말듯 고요한 미소가 번진다. 투박한 얼굴이어서 미소는 더욱 푸근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 불상은 독특하게도 손과 팔을 아래 위로 포개어 팔짱을 끼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불상의 수인에는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감실 불상 주위에는 옛 기와 조각들이 많이 흩어져 있어 보호각이 있었으리라는 설이 있지만, 감실 부처에 보호각을 세우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는 점과, 바위 위에 보호각을 세운 흔적이 보이지 않는 점 등으로 의문시되고 있다.

 

 

이 부처를 섬기던 절터는 바위 아래 약 30m쯤 떨어진 곳에 있다.

 

 

 

 

 

아침에 출발할 때는 감실보살상을 둘러보고 남산신성을 지나 그 너머쪽에 있는 남간사지 당간지주와 창림사지 삼층석탑까지 둘러보려고 했는데, 그러자면 오늘도 또, 이미 늦었지만, 점심을 굶어야 할 것 같다.

 

결국 더 이상의 욕심을 접고 콜택시를 불러 시내로 들어가기로 한다.

 

 

이틀간을 다녔건만 가봐야 할 곳이 남았다. 남산의 가장 남쪽인 천룡사 삼층석탑과 열암골 마애불 등... 다시 경주를 찾아야 할 이유는 많이 있지 않은가. 다음 기회로 돌리기로 하고 이틀간의 남산 도보여행은 이렇게 모두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