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경주 남산 (8) 용장사지 삼층석탑, 마애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

모산재 2010. 12. 27. 17:59

 

금오산 아래서부터는 큰길을 따라서 편안히 걷는다. 삼화령으로 접어드는 곳에서 용장사터로 내려서는 샛길이 나타난다.

 

 

지금은 사라지고 절터만 남은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 머물면서 <금오신화>를 썼던 곳이다. 용장사터에는 보물급 문화재가 셋이나 기다리고 있다. 삼층석탑과 삼륜대좌불(석조여래좌상), 마애여래좌상이 그것이다.

 

 

안내도를 보니 용장사터까지는 약 400m쯤 가파른 능선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얼마쯤 내려선 곳에는 탑의 일부를 구성했던 것으로 보이는 석물이 방치되어 있다.

 

 

 

 

 

그 앞 낭떠러지로 이어지는 너럭바위에는 등산객들이 앉아서 도시락 점심을 먹고 있다.

 

벌써 점심시간이 되어 배는 슬슬 고파지는데 점심을 따로 준비해 오지 못한 것이 아쉬워진다. 신선암 마애불과 칠불암 마애불상군까지는 아직 가야할 길이 좀 많은가. 아무래도 오늘 점심은 굶어야 할 듯하다.

 

 

너럭바위를 지나 가파르게 내려서는 능선 끝에 드디어 용장사터 삼층석탑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 남산 용장사터 삼층석탑 / 보물 제186호

 

 

남산에서 가장 높은 고위산을 마주보고 남산에서 가장 너른 품을 가진 용장골을 굽어보며 멀리 태화강의 상류 기린천을 바라보는 삼츨석탑의 늠름한 자세는 절로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이 가파른 암벽 능선에 어떻게 터를 잡고, 탑을 만드는 석재는 어떻게 날라 조각하고 탑을 올렸을지 상상조차도 잘 되지 않는다. 신라인들의 신앙심과 예술혼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 

 

 

 

 

 

 

절을 감싸고 뻗은 산줄기 바위 능선의 높은 봉우리에 우뚝 서 있는 3층 석탑. 그 석탑을 받치고 있는 것은 하나의 기단이다.

 

그런데 이 탑의 기단은 하나가 아니라 이중 기단이라고 해석한다. 네모 반듯하게 잘 다듬은 인공 기단은 이중기단의 위층일 뿐, 그 아래를 받치고 있는 자연암석이 아래층 기단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그 아래를 받치고 있는 래 바위산 전체가 아래층 기단이라는 이야기니, 용장사터 삼층석탑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석탑이 되는 것이다. 유홍준 선생의 설명이었던가? 

 

 

200m가 넘는 높은 바위 봉우리를 하층기단으로 삼아 그 위에 잘 다듬은 상층기단을 얹고 삼층석탑을 쌓았으니, 하층기단인 바위산은 제석천이 지키는 수미산이고 탑 위의 푸른 하늘은 수미산정의 천상계가 되니, 굽어보는 서라벌 벌판은 부처님이 굽어살피는 불국토가 되는 것이다.

 

신라 사람들은 남산의 하늘 위에서 부처님이 자신들을 보살펴 준다고 믿으며 이 탑을 우러러 보면서 천상의 세계를 꿈꾸었을는지 모른다.

 

 

 

 

 

 

기단은 네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조각을 새기고 2장의 판돌로 덮어 기단을 마감하였다. 탑신은 지붕돌과 몸돌을 별도의 석재로 조성하였다. 1층 몸돌은 상당히 높은 편이고 2층부터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층 4단이고 처마는 직선을 이루다가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들려 있다. 상륜부는 없어져 원래의 상태를 알 수 없고 쇠막대를 꽂았던 구멍만 남아 있다.

 

이 탑은 쓰러져 있던 것을 1922년에 재건하였는데, 사리장치는 없어진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고 한다. 탑의 전체적인 조화가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가파른 바위 능선에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솟아 있는 자연과의 조화가 더욱 장관을 이루고 있는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삼층석탑이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처럼 산을 기단으로 삼은 탑은 최근 복원한 잠늠골(비파골) 삼층석탑과 늠비봉 오층석탑에서도 나타난다.

 

 

 

석탑 마당 끝에 서면 머리 없는 불상 마애여래좌상이 내려다보인다.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길은 밧줄까지 잡아여 하는 험한 비탈을 이루고 있다.

 

석불상 못 미쳐 오른쪽 암벽에는 아름다운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유의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인 위치에 부처님은 고요히 앉아 있다.

 

 

 

 

■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 보물 제913호

 

 

높이 156cm이다. 불상은 연꽃이 새겨진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으며, 머리광배와 몸광배는 2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전체적으로 여래상의 어깨가 당당하고, 무릎을 널찍하게 처리하여 안정감이 있으며, 손모양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상호(相好)는 원만하고 각 부분이 정제되어 있다. 양쪽 귀는 길게 늘어져 있어, 목의 삼도와 잘 조화되어 존엄하면서도 인자한 인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螺髮)에 육계(肉髻)를 갖추었으며 원만한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법의는 양 어깨에 걸쳐 내린 통견으로, 양쪽팔과 어깨로부터 흘러내린 옷무늬가 평행선을 이루며 매우 유려하다.

 

 

 

 

 

양식과 조상수법이 8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신광 좌측면에 3줄로 된 10여 자의 판독하기 어려운 명문(銘文)이 있어 눈길을 끈다. 

 

 

 

 

 

남산에 있는 마애불로서 이처럼 섬세하고 유려한 솜씨를 보이는 것은 드문 듯하다. 남산 바위 속에 숨어지내는 부처님이 투명인간처럼 가만히 모습을 내민듯 신비롭다.

 

 

마애불을 지나면 바로 머리 없는 부처님이 삼륜대좌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 보물 제187호

 

 

자연석으로 된 기단 위에 3층으로 된 원반형의 높은 대좌와 불상을 올렸다. 삼륜으로 된 대좌가 아주 높은 데 비해 불상이 작아 독특한 느낌을 준다.

 

 

 

온전한 모습이었다면 부처님의 얼굴은 어떤 표정이었을까.

 

삼층 좌대 위에 하늘을 배경으로 높이 올라 앉아 자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신앙심 깊은 신라 사람들은 부처님의 상호 뒤로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아마도 천상의 세계를 실감했을 것이다.

 

 

 

 

 

 

 

 

전체 높이는 4.56m, 불상 높이는 1.41m.

 

기단은 커다랗고 투박하고 자연석이며 그 위에 올린 3층 대좌는 아래 두 대좌는 장식이 없는 원반형이지만 맨 위의 대좌는 연꽃무늬를 새겨 놓았다. 불상은 장식적 요소가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전체적으로 하강할수록 단순해지고 자연미에 가까워진다면 상승할수록 인공적 예술미가 높아진다. 자연미와 인공미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천상계와 지상계를 석불상 안에 구현하고 있다.

 

 

 

 

 

불상은 머리 부분은 없어졌고 손과 몸체 일부가 남아 있는데, 남산의 다른 좌불들과는 달리 불상의 몸맵시가 세속인의 모습처럼 사실적인 느낌이 강하다.

 

목에는 번뇌도·업도·고도를 의미하는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어깨는 좁은 편이며 가슴과 허리의 볼륨감이 특별히 강조되지 않은 모습이다. 불상이 입고 있는 옷은 양 어깨를 모두 감싸고 있으며, 옷자락이 대좌(臺座) 윗부분까지 흘러 내리는데, 마치 레이스가 달린 것처럼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삼릉계곡 석조불상처럼 옷매듭이 눈길을 끈다.

 

 

대좌에 비하여 불상이 유난히 작고 빈약해 보이나, 특이한 대좌와 석불 자체의 사실적 표현이 주목할 만하고 매끈한 조각 솜씨와 맵시 있는 세부 처리 등에서 뛰어난 작품성을 읽을 수 있다.

 

 

 

 

 

 

통일신라 시대의 승려 대현(大賢)과 관련이 있어 <삼국유사> 권4  '현유가조(賢瑜珈條)'의 자씨석장육상(慈氏石丈六像)이 이 불상이라는 설이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유가종(瑜伽宗)의 대덕이신 대현 스님이 염불하면서 돌면 이 불상의 머리도 따라 돌았다고 한다. 대현의 활동 기간에 제작되었다고 보아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석불상이 놓여 있는 배경은 암벽을 이루고 있고, 푸른 하늘 위로 솟아 있는 삼층석탑의 머리가 올려다보인다.

 

 

 

 

 

 

 

 

천상계와 지상계가 만나는 지점인 듯한 이 용장사터에서 세 가지 소중한 문화재를 한꺼번에 만나고 가는 기쁨은 벅차고 크다.

 

 

 

 

칠불암으로 향하기 위해 다시 되짚어 올라가는 길, 관목처럼 낮게 자라는 소나무 덤불에 안겨 피어 있는 붉은 꽃을 이 겨울에 만난다. 멀리서 발견했을 때에는 진달래 꽃봉오린 줄 알았는데 가까이 다가서 보니 뜻밖에도 며느리밥풀꽃이다.

 

 

 

 

 

시베리아의 얼음장 공기 속에서 아름답게 핀 꽃이 부처님인 듯 마음이 따스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