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경주 남산 (9) 천상에서 굽어보는,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모산재 2010. 12. 27. 21:24

 

다시 남산 순환로로 나와 신선암 마애보살과 칠불암 마애불상을 향해 걷는다.

 

길은 남산에서 가장 품이 넓은 골짜기인 용장골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400m가 넘는 정상의 허리를 두르며 반듯하게 나 있다.

 

 

지도를 보니 지금 걷고 있는 이 높은 길이 삼화령(三花嶺) 길이다. 삼화령을 지나면 내리막길, 다시 산세가 가파라지는 곳에서 큰길은 남산의 동쪽, 서출지와 통일전 방향으로 구부러져 내려선다. 그 지점에서 큰길을 벗어나 이영재와 봉화대능선을 따라 한 시간 정도 걸어야 한다.

 

 

 

 

 

길섶에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연보랏빛 쑥부쟁이꽃이 피어 있다.

 

 

 

 

 

억새와 소나무가 정다운 삼화령 길이다. 오른쪽으로는 넓고 넓은 용장골...

 

 

 

 

 

 

삼화령(三花嶺)은 '삼화수리'라고도 하는데, 금오산과 고위산, 그리고 두 봉우리와 삼각형을 이루는 곳에 있는 이 곳 봉우리를 삼화령이라 불렀다. 이곳은 신라 시대 화랑이 수련을 하던 장소이면서 미륵 사상이 융성했던 곳이라 한다. 

 

길가에는 삼화령에 얽힌 전설을 소개해 놓은 안내판이 있다. 선덕여왕 시절 생의 스님이 미륵불을 모시고 삼화령 꼭대기에 절을 지었다는 이야기와 향가 '찬기파랑가'와 '안민가'를 쓴 충담사가 미륵불에게 차를 공양했다는 전설을 기록하고 있다.  

 

 

 

 

 

 

도로 위 봉우리에 미륵불이 있었던 연화대좌가 있다는 것과, 도로 아래에 생의사로 추정되는 절터가 있다는데, 구체적인 표지가 없어 두리번거리기만 한다. 다만 안내판 바로 위에 비슷하게 생긴 둥글고 커다란 바위가 솟아 있고, 돌 아래에는 신이대로 둘러선 넓은 터가 보여 그곳인가 짐작할 뿐...

 

 

더보기
※ 삼화령과 돌미륵, 충담사

 

●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삼화령 돌미륵 이야기

선덕왕 때 승려 생의(生義)는 언제나 도중사에 머물렀다. 꿈에 어떤 승려가 그를 데리고 남산으로 올라가서 풀을 매어 표시를 하게 하고, 산의 남쪽 골짜기에 이르러 말하였다. "내가 이곳에 묻혔으니, 대사께서 꺼내어 고갯마루 위에 묻어 주시오." 꿈에서 깨자 친구와 함께 표시해 둔 곳을 찾아 그 골짜기에 이르러 땅을 파니 돌미륵이 나왔으므로 삼화령 위에 모셨다. 선덕왕 13년(644)에 절을 지어 살았는데 후에 생의사라고 이름 지었다.

 

●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충담사와 돌미륵 이야기

3월 3일에 경덕왕이 신하들과 함께 귀정문(歸正門)의 누각에 나가서 이르기를, 덕과 위의를 갖춘 승려를 데려 오라고 하였다. 마침 위의가 있고 깨끗한 고승이 배회하고 있어 데리고 오니 왕은 "내가 말하는 스님이 아니다."하고 돌려보냈다. 이 때 장삼에 망태기를 짊어진 한 스님이 오고 있었는데 왕은 기뻐하며 누각 위로 영접하였다. 승려가 들고 있는 망태기 속에는 다구(茶具)만이 가득하였다. 왕이 연유를 물으니 "소승은 3월 3일과 9월 9일에 차를 달여서 남산 삼화령의 미륵 세존께 드리는데 오늘도 차를 드리고 오는 길입니다."라고 하였다.

 

충담사가 차를 공양했다는 전설을 좇아 경주에서는 매년 삼월 삼짓날(3월 3일) '신라문화원' 주최로 충담재를 열고 있다고 한다. 올해로 벌써 19회째라는데 3월 3일 새벽에 이곳 연화대좌에 차를 올린다고 한다.

 

 

 

그리고 미륵불이 있었다는 삼화령의 위치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있다. 남산의 북쪽에 있는 남산신성 부근을 삼화령으로 보는 주장인데, 이 부근에서 돌미륵이라 여겨지는 미륵삼존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남산 안내지도에도 이곳을 '전(傳)삼화령'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 미륵삼존상은 '삼화령 애기부처'라는 애칭으로 현재 경주박물관 신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에 '남산의 남쪽 골짜기'에서 미륵불을 발견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반박되고 있다.

 

 

↓ 삼화령에서 바라본 고위봉

 

 

 

 

 

용장골 주변의 산과 골짜기를 안내판과 비슷한 각도로 담아 본다. 왼쪽으로 남산의 최고봉으로 수리봉으로 불리는 고위봉, 오른쪽 끝으로 용장사지 삼층석탑이 보인다.

 

 

 

 

 

 

이영재로 내려서는 곳에서...

 

 

 

 

 

 

남산 순환도로가 왼쪽으로 꺾어지는 지점에서 칠불암으로 가는 등산로가 나타난다. 이곳을 이영재라고 부른다. 용장골을 사이에 두고 남산에서 가장 높은 두 봉우리인 금오산과 고위산(수리산)을 이어주는 낮은 능선의 고개다. '이영'이란 이름은 아마도 두 산을 '이어'주는 능선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것이 아닐까...

 

 

이영재에 서 보면 용장골로 불어온 서풍은 바로 이곳을 넘어서 동쪽의 오산골로 넘어갈 수밖에 없게 낮은 고개임을 느낄 수 있다. 

 

 

 

 

 

 

이영재를 지나면 능선길은 완만하게 높아지며 길게 이어지는데, 이 능선을 봉화대 능선이라 한다. 칠불암 뒤를 지나는 능선의 끝에는 봉화대(476m)가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 능선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용장사 삼층석탑과 석불

 

 

 

 

 

지나온 길. 금오산, 삼화령, 용장골이 한눈에 보인다.

 

 

 

 

 

바위를 움켜쥔 소나무

 

 

 

 

 

소나무와 바위가 나란히 양쪽으로 도열한 사이를 지난다.

 

 

 

 

 

 

그리고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과 칠불암 마애불상군이 있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타나고, 길은 가파른 능선을 따라 동쪽 오솔길로 내려선다.

 

 

 

그리고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입구.

 

 

 

 

 

석불로 들어서는 길은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 위로 아슬아슬하게 나 있다.

 

 

 

 

 

낭떠러지 밑으로 칠불암 마당이 내려다보인다. 칠불암 마애석불군은 낭떠러지에 바짝 붙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바위를 안고 돌아서서야 겨우 안심할 만한 좁은 공간이 나타난다. 그 공간에 들어 서서 돌아보고서야 불상이 안고 돌아선 암벽에 새겨져 있음을 발견한다. 한눈에 전율이 흐를 정도로 감격스럽다.

 

 

 

 

■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 보물 제199호

 

 

칠불암 위 깎아지른 듯한 절벽 꼭대기 남쪽으로 향한 바위면에 새겨져 있는 보살상은 마치 천상의 세계에 앉아서 사바세계를 굽어보는 듯 신비롭기만하다.

 

 

 

동트는 새벽, 저 경주 들판 너머에서 햇살이 비쳐들 때는 얼마나 황홀한 모습일까...

 

 

 

 

 

 

 

멀리 비켜선 안전한 공간에서 사진을 담다가 용기를 내어 정면 낭떠러지 위로 다가서서 바라본다. 

 

 

갈색빛이 감도는 바위의 색깔이 편안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고, 도톰하게 돋을새김한 불상의 윤곽은 마치 살아 숨쉬는 듯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불상을 감싸고 있는 전신의 광배는 마치 나무를 조각한 듯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섬세하게 새겨졌다. 광배는 그 자체로 감실을 이루어 보살상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아래만 빼고 사방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앉은 보살은 두둥실 구름 위에 앉았다. 천상의 보살...

 

 

 

 

 

도톰한 얼굴에 머리에 삼면보관을 쓰고 있고 손에 든 꽃 등으로 보아 관세음보살상으로 보인다. 옷자락으로 덮여 있는 의자 위에 걸터앉아 오른손에 꽃을 들고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려서 설법인을 표시하고, 지그시 두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다.

 

천의(天衣)는 아주 얇아 신체의 굴곡이 사실적으로 드러나 보이며, 옷자락이 유려하게 흘러 내려 대좌를 덮고 길게 늘어져 있다. 광배는 배모양으로 온 몸을 둘러싼 주형거신광(舟形擧身光)으로 3가닥의 섬세한 선으로 표현하였다. 

 

 

 

 

 

 

오른발은 의자 아래로 내려 연화대를 밟고서 반가좌를 하고 있고, 발 아래는 화려한 구름이 동적이어서 구름에 떠가는 자유자재한 보살을 묘사하고 있다.

 

불상의 높이는 1.4m. 통일신라시대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보인다.

 

 

 

 

감격에 젖어 불상 곁에 한동안 서성이다가 낭떠러지 아래에 있는 칠불암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 정도의 조각이라면 보물이 아니라 국보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남산의 유일한 국보 칠불암 마애불상은 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자꾸만 가슴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