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 13

중국 산동 (14) 쯔보(치박) / 린쯔(임치) 고차 박물관(古車博物館)

강태공 사당을 둘러본 다음 고차 박물관(古車博物館)으로 향한다. 고차박물관은 시안(西安)의 진시황 병마용과 비견되는, 제나라 때의 마차와 말이 묻힌 대형 차마갱(車馬坑)이 발굴된 현장을 그대로 박물관으로 만든 매장 문화재이다. 버스로 이동하기에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 강(확인하니 강 이름은 '치하'다)을 하나 건넌다 싶은데 고속도로 곁을 달린다. 그리고 금방 차는 고속도로 곁 대숲 쪽으로 꺾어들며 주차장에 선다. 고차박물관의 위치는 제나라의 무덤들이 많은 제릉진(齊陵鎭) 후리촌(后李村) 서북쪽이라고 한다. 보니 대숲 너머로 '중국고차박물관(中國古車博物館)'이라고 쓴 붉은 글씨가 보인다. ↓ 치하(淄河). '임치'와 '치박' '치하'는 모두 '검은빛'이라는 뜻을 가진 '치(淄)'자를 쓴다. 1990년 5..

중국 산동 (13) 쯔보(치박) / 린쯔(임치) 강태공 사당과 의관총

주촌 옛거리, 주촌고상성(周村古商城)을 돌아본 다음 동으로 한 시간쯤 달려서 임치(린쯔)에 도착한다. 주촌과 임치는 둘 다 치박(쯔보)에 속하는 작은 도시인데, 주촌은 치박의 서쪽에 임치는 치박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다. 지금은 치박의 한 작은 도시에 지나지 않지만, 임치는 2천여 년 전까지만 해도 8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제나라의 도읍으로서 동방에서 가장 크고 번화한 도시 중의 하나였다. 기원전 11세기에 강태공이 제나라를 세워 도읍으로 정한 곳이 임치 북부의 영구(營丘)였고, 춘추시기에 제환공이 관중을 등용하여 '5패의 으뜸'으로서 이른바 '만승지국(萬乘之國)'의 터를 닦은 곳이 바로 임치였다. 제나라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이곳 임치에서 강태공 사당과 고차박물관을 돌아보기로 한다. 먼저 찾은 곳은..

중국 산동 (12) 쯔보(치박) / 주촌 옛 상업 거리, 대덕통표호, 대염방

연예광장 앞 큰길(絲市街)로 잠시 걷다가 금방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길이 상업 금융시장인 은자시장(銀子市場) 거리이다. '은자(銀子)'는 '은돈'을 가리키니, 은자시장은 금융 거리라 할 수 있다. 청나라 초기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은자시장임을 증명이나 하듯 길 가운데 마름모꼴의 나무..

중국 산동 (11) 쯔보(치박) / 주촌 옛 거리, 또는 주촌고상성(周村古商城)

지난(濟南)에서 잠시 황하를 구경한 다음 다시 버스는 쯔보(淄博)를 향해 동으로 동으로 달린다. 차창으로 드는 정오의 뜨거운 태양을 느끼며 졸다 깨다 하는 동안 주촌(周村) 옛 상업거리, 주촌고상청(周村古商城)에 도착한다. 쯔보의 서쪽에 있는 주촌 옛 거리는 수백 년 전, 명청 시기의 상업거리가 잘 보존되어 '중국의 살아있는 고상업 건축 박물관군'으로 평가 받는 곳이다. 소주, 항주와 함께 비단이 유명해 '비단의 고향(絲綢之鄕)'으로도 불렸다. 2001년 산둥성의 주요 관광자원으로 지정돼 대대적인 유적 보수와 대외 개방을 시작했다고 하며, 천불사(千佛寺), 대염방(大染坊), 삼익당(三益堂) 인쇄전관, 표호전람관(票號展覽館), 쯔보 예술 박물관(淄博艺术博物馆) 등이 보수되어 공개되었다. 이 밖에 당나라 때..

중국 산동 (10) 샘물의 도시, 지난(제남)에서 본 황하 하류의 물굽이

공자의 도시 곡부에서 3공(공부, 공묘, 공림)을 모두 돌아보고 하룻밤을 보내고 8시경 지난(濟南)을 향해 출발한다. 호텔 프론트 옆 입간판에는 기온 33도 습도 76%라고 적혀 있다. 아침인데도 후텁지근하다. 취푸(곡부)를 떠나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 봉일씨는 곡부에 대해 설명한다. 곡부의 기차역은 시내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데, 공자의 유적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65만 인구 중 15만이 공씨일 정도로 곡부는 공자의 후손들의 도시이고 이들의 영향력은 대단하다는 것이다. 취푸는 3공 외에도 수많은 유가 사상가들의 유적이 있는데 공자의 수제자인 안회를 모시는 안묘가 있고, 취푸에서 남쪽으로 약 25km 떨어진 쩌우청(추성=鄒城)은 맹자의 고향이다. 쩌우청에는 취푸처럼 맹모삼천으로 유명한 맹자의..

중국 산동 (9) 취푸(곡부) 공림(孔林), 세계 최대의 씨족 묘지

공림(孔林)은 세계 최대이자 최고인 씨족묘지이다. 곽말약(郭沫若)은 "공림은 매우 훌륭한 자연 박물관이며, 공씨 가족의 편년사이다." 라고 하였다. 노나라 애공 16년(기원전 479년)에 공자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제자들이 이 곳에 장사를 지냈다. 10만 그루가 넘는 소나무와 측백나무들이 울창한 숲에는 공자와 공자의 아들과 손자, 대대손손 수많은 후손들이 묻혔다. 공림에 있는 묘비만도 전부 7,000여 기라고 하며 비석이 세워지지 않은 무덤은 훨씬 더 많다. 전체 무덤은 10만 기를 넘는다고 한다. >역대 제왕들이 지원하여 묘원이 점차 늘어나 세계 최대의 씨족 묘지가 된 것. 이처럼 방대한 가족묘지는 공자 가문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었다. 곡부성 북문으로 나오면 교룡이 승천하는 듯 수백 년 묵은 측백나..

중국 산동 (7) 취푸(곡부) 공묘(孔廟), 13비정과 대성전

태산을 내려와 점심을 먹고 버스는 곡부를 향해 출발한다. 피로를 느끼며 졸음에 빠졌다가 눈을 뜨니 어느새 버스는 낮은 건물들만 편안하게 늘어선 도시의 거리로 들어서서 달리고 있다. 오른쪽으로 검은 벽돌을 가지런히 쌓아올려 만든 성이 보인다. 2시 25분, 공자의 고향이자 8백 년 노나라의 수도였던 취푸(曲阜)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숨이 막힐 정도로 햇살이 뜨겁고 습도가 높다. 성곽의 남쪽 유객복무중심과 행단극장이 있는 거리에서 성을 지나 공자의 사당인 공묘(孔廟)로 향한다. 공묘는 공자 가문의 저택 공부(孔府), 공자 가문의 묘지 공림(孔林과 함께 1994년 유네스코 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공자의 흔적이 남아 있는 취푸의 이 세 유적을 '삼공(三孔)'이라고 하는데, 모두 걸어서 다닐 만한 가..

중국 산동 (6) 태산 대관봉의 석각비문, 옥황정과 공자묘

벽하사를 지나 언덕길로 정상 옥황정(玉皇頂)을 향해 오른다. 매캐한 연기가 골짜기를 타고 오르는데, 골짜기에서는 인부 두 사람이 낫을 들고 덤불을 헤치고 다니며 풀을 베고 있다. 자연공원이지만 곳곳엔 사람들의 손길이 미치고 있다. 그리고 금방 넓은 마당이 열리며 나타나는 무수한 서각 바위 절벽. 금빛찬란한 글씨로 새긴 '천하대관(天下大觀)'이라는 벽면에서 따온 것인지 이 바위 절벽의 이름을 대관봉(大观峰)이라 부른다고 한다. 태산에는 글을 새긴 돌이 2,200여 개소나 있어 마애석각 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인데, 태산 정상의 석각만 258곳에 이른다. 석각 대부분은 역대 제왕이 봉선의식을 행할 때의 제문, 사묘(寺廟)의 창건과 중수기, 태산을 칭송하는 시문들이다. 이곳에는 태산을 올랐던 공자와 이백, 사마..

중국 산동 (5) 중국인들의 정신적 근원, '오악독존' 태산에 오르다

이위안(沂源)의 구천동 동굴을 돌아본 다음 버스는 숙소가 있는 타이안(泰安)을 향한다. 지난(濟南) 방향으로 달리다 긴 터널을 지나고 칭란고속도로(靑蘭高道)를 벗어나 봉화산(蓬花山) 풍경구 쪽 도로로 접어든다. 붉은해가 서산 너머로 숨어든다. 여행은 동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타이안까지 거의 100여분이나 달리는 동안 나와 몇몇 사람들은 한선생이 구천동에서 산 만화경(요지경)놀이에 빠져들며 지루함을 달랜다. 7시 50분쯤에 타이안시의 한국식당에 도착한다. '설악산'이란 이름의 식당에서 김치찌개로 저녁식사를 한다. 이국 땅의 한국식 음식이라 어딘지 좀 어설픈 맛이지만 늦은 저녁이라 맛있게 먹는다. 태산맥주라는 생맥주를 곁들여...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오면서 보니 옆집이 발마사지하는 집이다. 가이드 봉일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