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23

캐논 550D*시그마17-70 첫 촬영, 긴병꽃풀 둥굴레 꽃사과 살갈퀴

하이엔드 카메라 캐논 파워샷 s2is가 만 4년만에 수명을 다했습니다. 2월말 가족들과 어머니 생신 기념차 해인사 여행을 하던 중에 경통이 이상 작동하더니 결국 움직임을 멈춰 버린 겁니다. 거의 매주 200~400매 정도의 사진을 4 년간이나 찍어댔으니 과로를 견디지 못한 듯합니다. 캐논 서비스센터에 맡겼더니 모터가 나가버려 수리를 하려면 내부를 완전히 바꾸어야 하는데 30만원 가까이 든다고 합니다. 새 것을 사는 것이 나을 정도로 돈이 드니 수리는 포기하기로 합니다. 주인 잘못 만나 과로사한 캐논 파워샷 s2is와 영영 이별하자니 마음이 아픕니다. 내 블로그를 이만큼이나 키워주고 떠난 카메라... 이제 똑딱이 카메라 자리에 dslr 카메라를 두기로 합니다. dslr에 대해서 잘 모르니 두어 달이나 미적..

사는 이야기 2010.05.17

팔순 노모, 메밀묵을 만드시다

설 명절을 사흘 앞두고 늙으신 어머니 혼자 계시는 고향집으로 갑니다. 아버지 차례상에 올릴 제수 장도 봐야 하고, 사랑방 난방을 위해 땔감도 해야 하고, 산소 주변 찔레와 칡덩굴 얽힌 덤불도 쳐내야 할 것 같고... 그런데 며칠 전부터 내리던 비와 눈이 그치지를 않습니다. 자고 일어난 아침 어머니와 함께 장을 보러 삼십 리 길을 갑니다. 늙으신 몸에 오래 전부터 좋지 않은 무릎관절로 걸음이 불편한 노모는 장을 미리 두 번이나 봐서 어물은 마련해 두었답니다. 막내동생은 과실을, 그 윗동생은 떡을 해오기로 했으니 오늘은 돼지고기, 쇠고기, 닭고기 등 육류만 사면 된답니다. 육류 외에도 사야 할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젊은 내가 들고 다니기에도 버거운데 당신 혼자서 어떻게 그 무거운 제수들을 챙길 수 있었을까..

사는 이야기 2010.02.26

대통령, 큰고니 헤엄치는 남한강 한번이라도 가 보신 적이 있는가…

미륵사지를 돌아본 다음날, 충주에서 여주까지 폐사지 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많은 시간 강길을 끼고 달리며 남한강을 구경할 수 있었다. 목계나루의 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며 아침햇살 반짝이는 남한강물을 눈이 시리도록 바라보았고, 청룡사지를 돌아나오는 길 소태면 복탄리 넓은 강에..

사는 이야기 2009.12.06

대학병원 담장 밑에 핀 봄까치꽃

응급실 의자에서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가 담장 밑에 환하게 핀 큰개불알풀 꽃송이들을 발견한다. 열흘이나 지나다니면서도 보지 못했던 꽃인데... 다시 병실을 들러 배낭에 넣어 두었던 카메라를 가지고 나와서 정성껏 담아 본다. 새끼손가락의 손톱보다도 훨씬 작은 이 하늘빛 꽃송이들, 내 지친 심신을 다 헹구어버릴 듯한 맑은 표정... 저 파릇파릇한 기지개, 저 환한 불꽃송이들! 꺼져가는 이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모두 이처럼 깨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골짜기의 논과 밭에, 그리고 산에서 나는 모든 것을 다 져 나르던 강철 두 다리는 젓가락처럼 말라 버렸고, 앙상한 두 어깨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떨고 있다. 그렇게 누우신 지 벌써 열흘이 지났다. 너무도 차분한 어머니의 전화 목소리를 ..

사는 이야기 2008.02.27

고향의 설날, 봄꽃은 피는데...

차례를 마치고 성묘길에 나선다. 입춘을 지난 날씨는 아름답다. 바람은 향기롭고 햇살은 부드럽다. 양지바른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서 사촌들과 조카들은 모두 함께 엎드려 절을 올린다. 강철 새잎, 질기고 싱싱하여라. 증조할아버지 산소에는 꿩의밥이 파란 잎을 뽐내고 있다. 저 거친 흰털로 칼바람 막으며 모진 겨울을 잘도 이겨내었다. 입춘이 지났는데, 화신(花信)인들 없을까... 그럼 그렇지! 뒷편 언덕을 두리번 거리던 내 눈에 불꽃 같은 양지꽃 한 송이가 들어온다. 물감이 뚝뚝 흐를 듯한 다섯 장의 노란 꽃잎과 묻어날 것만 같은 꽃밥의 색감이 좀 아름다우냐!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동생들에게 맷돌바우에 들렀다 가자고 한다. 3집만 남은 동네 맷돌바우엔 팔순의 집안 어른 두 분이 사신다. 사실 날이 많지..

사는 이야기 2008.02.27

풀꽃들에게서 배운다

풀꽃들에게서 배운다 - 꿈꾸게 하는 교실은 언제일까 들꽃에 푹 빠져 카메라를 메고 산으로 들로 쏘다니는 내 모습은 누가 봐도 촌놈이다. 올해 이 학교에 처음 와서 야생화반을 하겠노라고 광고했더니, 아이들은 별 촌스러운 걸 다 한다는 표정이다. 딴은 촌놈 출신이 사실이니 별 억울할 것은 없지만, 뜨악해하는 반응에 섭섭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가까이에서 봐! 잡초란 없다 교원노조 결성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나 있던 1990년 봄, 갑자기 시간이 많아진 나는 그 전까지 잘 찾지 않던 산을 자주 오르게 되었다. 그러다가 산길 주변 여기저기 돋아나는 풀나무들의 싹과 꽃들에 절로 눈길이 가게 되었고, 생명들의 경이로움에 빠져들었다. 어느 늦은 봄날, 길가에 흔하게 자라는 마디풀을 바라보다가 잎줄기 ..

사는 이야기 2006.11.22

'옥상의 민들레꽃'보다도 더 위대한 갯버들의 생명력

'옥상의 민들레꽃'보다도 더 위대한 생명 - 아크릴 지붕 흙먼지 속에 뿌리 내린 갯버들 1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버거워질 때가 가끔씩 있다. 문득 자신을 돌아보면서 초라한 능력, 쪼들리는 경제력, 볼 것 없는 외모를 문득 자각할 때,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을 때 어쩌다 한번쯤은 지구로부터 뿅~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메마르고 가파른 생존경쟁의 현실 속에서, 아무리 아둥바둥해도 도저히 좁혀질 수 없는 상대적 박탈감, 거대한 권력과 재력,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현실의 위력들 앞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시시함'에 시달려 보기도 한다. 그것까지도 다 견뎌낼 수 있는데, 내게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 때나 내가 소중히 여기던 그 무엇이 무너진다고 느낄 때 그 상실감 ..

사는 이야기 2006.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