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고향의 설날, 봄꽃은 피는데...

모산재 2008. 2. 27. 01:47

 

 

차례를 마치고 성묘길에 나선다.

 

 

입춘을 지난 날씨는 아름답다. 바람은 향기롭고 햇살은 부드럽다.

 

양지바른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서 사촌들과 조카들은 모두 함께 엎드려 절을 올린다.

 

 

강철 새잎, 질기고 싱싱하여라.

 

증조할아버지 산소에는 꿩의밥이 파란 잎을 뽐내고 있다.

저 거친 흰털로 칼바람 막으며 모진 겨울을 잘도 이겨내었다.

 

 

 

 

 

 

 

입춘이 지났는데, 화신(花信)인들 없을까...

 

 

그럼 그렇지!

 

뒷편 언덕을 두리번 거리던 내 눈에 불꽃 같은 양지꽃 한 송이가 들어온다.

 

 

물감이 뚝뚝 흐를 듯한 다섯 장의 노란 꽃잎과 묻어날 것만 같은 꽃밥의 색감이 좀 아름다우냐!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동생들에게 맷돌바우에 들렀다 가자고 한다.

 

3집만 남은 동네 맷돌바우엔 팔순의 집안 어른 두 분이 사신다.

 

사실 날이 많지 않아 뵐 수 있는 날이 얼마일지 모르지 않는가...

 

 

동네 옆을 흐르는 골짜기엔 얼음도 거의 녹아 고드름 몇 가락만이 남았다.

 

싱그럽고 힘찬 물소리!

 

 

 

 

 

 

 

 

 

시리게 푸른 대밭을 끼고 난 이 고샅길을 지나며

내게서 사라져버린 세상을 다시 만나는 듯 마음이 푸근해져옴을 느낀다.

 

 

 

 

 

 

 

 

팔순의 아지매와 명절에만 만날 수 있는 먼 친척 형들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홀로 사시는 여든 다섯의 당숙을 뵈러 아랫집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런데, 당숙은 병이 깊어 종형댁으로 모셔가고 안 계시는데,

종형은 종제와 함께 차례 모시느라 거꾸로 고향집에 와 있다.

 

앓는 어른을 모시느라 몹시 힘이 들텐데

호흡이 고르지 못한 할아버지가 입안의 음식물을 밥상에 튀기어도

손자 손녀들이 태연하게도 밥을 먹어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며

종형은 "요즘 아이들 같지 않게도..."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이야기를 하신다.

음복 술 한잔의 취기를 숨기지 않으시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독뫼를 지나며

이 마른 겨울에도 쉬임없이 흐르며 넉넉한 깊이를 만드는 개울에 한동안 마음을 빼앗긴다.

 

 

 

 

 

 

 

 

어른이 계셔서 찾는 고향,

해가 다르게 안 뵈는 어른은 늘고 

뵈는 어른들은 더욱 쇠잔해진 모습이다.

 

 

낮시간인데도 아버지는 자꾸만 자리에 누우신다.

가장 기력이 좋은 모습을 보이시던 이 좋은 봄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