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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고향, 벌초하는 날

by 모산재 2008. 11. 30.

 

한번도 참여하지 못했던 벌초 행사에 올해는 참여하기로 합니다. 나흘 전 당숙 어른이 돌아가셔서 찾은 고향인데 벌초를 위해 또 찾습니다.  

 

고향에서 먼 서울에 산다는 이유로 참여하지 않아도 누가 뭐라하지 않았고, 대신 불참 벌금을 내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벌초도 벌초지만 혼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고향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추석날 아버지 차롓상을 준비해야 합니다. 좀 고달프긴 하지만 어찌보면 다행이라할 수 있습니다. 일주일 뒤에는 추석, 또 그 다음 주말엔 사십구재인데 또 내려와야 하겠지요.

 

저녁 늦게 고향집에 도착합니다. 멀리 어둠이 다가오는 언덕에 아버지의 산소가 보입니다. 어쩐지 아버지가 거기에 있지 않고, 개울길 따라 걸어오는 자식을 맞이하기 위해 사랑채 옆 삽짝에 서 계실 것만 같습니다. 어머니 혼자 반갑게 저를 맞이할 때 가슴이 얼마나 휑한지...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어머니와 단 둘만의 시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을 보내고 아침 일찍 일어나 아버지 산소로 가서 잡초를 뽑습니다. 당숙어른 돌아가셨을 때도 아침 시간 내내 잡초를 뽑았는데 불과 나흘만인데도 잡초가 가득합니다.

 

아침 식사를 마칠 무렵쯤해서 창원 진주 사는 두 동생이 오고, 부산 울산 등지에 살고 있는 큰집 작은집 사촌형제들과 조카들, 삼촌들이 속속 도착하여 모두 예초기와 낫을 들고 산소로 향합니다.

 

 

아침햇살을 받고 환하게 피어난 둥근잎나팔꽃

 

 

 

호랑나비

 

 

 

개억새

 

 

 

가을이라 하기에는 아직은 햇살이 너무 따갑습니다. 모두들 부지런히 낫질하지만 틈틈히 그늘을 찾아 호흡을 골라야만 견딜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것도 낫질 하는 사람의 경우일 뿐, 예초기를 진 사람은 고생이 말이 아닙니다. 비오듯 흐르는 땀은 등줄기를 적시고...

 

 

 

할아버지 산소, 벌초를 마치고 난 우리는 간소하게 준비한 술 한잔 올리고 이렇게 절합니다. 

 

 

 

칡꽃

 

 

 

졸참나무 도토리

 

 

 

참취 꽃

 

 

 

은꿩의다리

 

 

 

거꾸로여덟팔나비

 

 

 

저수지, 물가에 가재 한 마리가 보인다.

 

 

 

물달개비

 

 

 

골짜기의 밭들은 모두 묵어서 키를 넘는 개망초만 우거졌다.

 

 

 

벌초를 마치고 제각에 모여서 점심 식사를 하면서 막걸리 한잔에 집안의 친목을 도모합니다.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여자들의 몫이라 마음 쓰고 수발드는 고생이 적지 않습니다. 젊은 세대들에게까지 이런 전통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인지... 벌초 대행업체에 맡기자는 이야기도 나오는 걸 보면 십여 년 뒤쯤에는 이런 풍경도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벌초꾼들이 이렇게 모여 식사하는 시간, 옆방에 홀로 앉아 계시는 작은아버지의 모습이 참 쓸쓸해 보입니다. 한달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당숙까지 지난 주 돌아가시고 나니 이제 이런 자리에 함께 할 편한 사람이 없습니다. 어린 시절 늘 말석이었던 작은아버지가 이제 아버지 세대의 마지막잎새인 듯 외로워 보입니다. 

 

 

 

한 세대가 그렇게 저물어가고 민초들의 역사도 그렇게 바뀌게 되는가 봅니다.

 

 

수까치깨

 

 

 

바늘꽃

 

 

 

배초향에 앉은 이 나비는...작은멋쟁이나비!

 

 

 

아버지 산소입니다. 


왼쪽에 아버지를 모셨고, 오른쪽은 언젠가 어머니가 누울실 곳입니다. 집에서도 빤히 바라보이는 가까운 곳이라 아버지도 그리 외롭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식들이 집을 찾을 때마다 저기에서 빤히 바라보고 계시겠지요. 우리도 집을 찾을 때마다 집보다도 먼저 바라보고 집에 왔노라 인사를 드립니다.  

 

 

 


이제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할 시간,

추억처럼 나 있는 개울길을 걸어 나와  다리 위에서 인사를 드립니다.

 

다음 주말 추석에 또 오겠습니다...

 

사랑채 옆에 나와 떠나가는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던 예전의 아버지 모습이 자꾸 떠오릅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들과 함께 삼가로 나가 아버지 차롓상에 올릴 시장을 본 다음

어머니와도 작별합니다.

 

"조심해서 잘 가거라."


손 흔드는 어머니와 멀어지며 차는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