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옥상의 민들레꽃'보다도 더 위대한 갯버들의 생명력

모산재 2006. 10. 9. 21:28

 

'옥상의 민들레꽃'보다도 더 위대한 생명

 

- 아크릴 지붕 흙먼지 속에 뿌리 내린 갯버들

 

 

 

 

1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버거워질 때가 가끔씩 있다.

 

문득 자신을 돌아보면서 초라한 능력, 쪼들리는 경제력,

볼 것 없는 외모를 문득 자각할 때,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을 때 

어쩌다 한번쯤은 지구로부터 뿅~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메마르고 가파른 생존경쟁의 현실 속에서,

아무리 아둥바둥해도 도저히 좁혀질 수 없는 상대적 박탈감,

거대한 권력과  재력,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현실의 위력들 앞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시시함'에 시달려 보기도 한다.

 

그것까지도 다 견뎌낼 수 있는데,

내게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 때나

내가 소중히 여기던 그 무엇이 무너진다고 느낄 때

그 상실감 앞에서 모든 것을 아주 놓아 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2

 

 

박완서의 소설에 <옥상의 민들레꽃>이란 작품이 있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누구나 그곳에서 살면 행복해질 거라고 부러워하는 궁전아파트에서할머니가 둘씩이나 베란다에서 몸을 날려 자살한다. 주민들의 대책 회의에 어린 막내아들인 '나'는 엄마를 좇아 참석한다. 어른들은 할머니의 죽음에는 관심이 없고 아파트값 떨어질까봐 전전긍긍이다. 베란다에 철창을 만들자는 의견이 나오지만꼬마인 나는 그것으로 할머니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어버이날 내 고사리 손으로 접은 카네이션 선물이 쓰레기통에 쳐박혀 있는 것을 보고, 어린 나 치닥거리로 힘들다는 어머니의 통화를 엿들은 나는 살고 싶지 않아 옥상으로 올라 간 일이 있었다. 옥상의 구석 한 줌의 먼지에 뿌리내린 민들레가 단추만한 샛노란 꽃을 피운 것을 보면서 나는 부끄러워져 옥상을 내려온 일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나서서 말하려고 하지만, 그러나 어른들은 어린 '나'에게 말할 기회를 끝내 주지 않는다.

 

 

 

 

3

 

 

서울 어느 고등학교 교정.

 

본관과 정보관 사이의 2층 연결 통로 아크릴판 지붕에는

갯버들 한 그루가 위태로운 생명을 키우고 있다.

 

날아온 씨앗 하나가 지붕 끝 알루미늄 샤시 틈서리에 앉아

흙먼지와 빗물을 자양분 삼아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며

회초리보다 굵은 줄기로 당당히 자라난 두 살짜리 갯버들...

 

뜰에서 맨 눈으로 올려다 봐야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12배 줌 카메라로 바짝 당겨 보았다.

 

처음엔 무슨 나무인지조차 몰랐는데, 컴퓨터 모니터에 띄워 보고서야 갯버들임을 알 수 있었다.

 

저 지붕 끝 마감재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저 키높이로 자랄 수 있었을까!

 

 

 

 

 

 

어떻게 뿌리내리고 살 수 있었을까, 생존의 비밀이 궁금해진다.

 

3층 교실로 올라가서 창문을 통해 내려다본다

 

 

 

 

 

 

 

놀랍게도 먼지 같은 흙이 보인다.

 

하지만 저 큰 덩치가 뿌리박기엔 너무나 흙먼지의 양이 적다

뿌리가 보이지 않는데, 아무래도 저 마감 금속재 밑의 좁은 공간을 따라 길게 뻗었을 것 같다.

 

그곳에도 공중을 떠돌던 흙먼지들이 빗물에 씻겨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그 흙먼지를 더듬어 찾으며, 있을 것 같지 않은 그 흙먼지의 습기를 타는 목마름으로 핥으며,

금속과 플라스틱의 딱딱한 감촉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옥상의 민들레꽃이 뿌리박은 한줌의 먼지는 이 갯버들에 비하면 호화 사치일 것이다.

 

 

 

 

 

 

때마침 거세게 부는 바람에도 허리를 아주 굽혀 바람을 보내드리고

다시 오똑 자세를 정돈한다.

 

저 아슬아슬 얕은 뿌리로 어떻게 버텨내나 싶게...

 

 

 

 

 

 

 

4

 

 

건조한 가을 속에서 더 이상 습기를 얻기도 힘든 저 악조건 속에서도

저 풍성한 땅에서 자라는 생명들 못지 않은 당당함 보이며,

 

이제 또 더 냉혹한 겨울을 기꺼이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다.

 

다시 돌아올 봄을 믿으며, 아주 묵묵히, 담담하게...

 

 

 

 

 

 

 

그 존재 조건이 어떠하든, 생명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어떤 생명인들 저 흙먼지만큼의 작은 사랑을 가지지 못했겠는가!

 

어떤 인간이 저 거부의 금속성 물질보다도 더 위태로운 대지를 가졌겠는가!

 

하물며, 뭇생명들의 혜택을 온전히 입고 사는 우리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서...

 

 

 

 

 

 

도시로 부는 바람을 탄 민들레 씨앗들은 모두 시멘트로 포장한 딱딱한 땅을 만나 싹 트지 못하고 죽어 버렸으련만 단 하나의 민들레 씨앗은 옹색하나마 흙을 만난 것입니다. 흙이랄 것도 없는 한 줌의 먼지에 허겁지겁 뿌리 내리고 눈물겹도록 노랗게 핀 민들레꽃을 보자 나는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고 싶지 않아 하던 게 큰 잘못같이 생각되었습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온 가족이 나를 찾아 헤매다 돌아와서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나를 껴안고 엉엉 울면서 말했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구나, 막내야. 만일 너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나도 살아 있지 않으려고 했다."

엄마는 내가 무사히 돌아온 것만 반가워서 말없이 집을 나간 잘못에 대해선 나무라지도 않았습니다. 나 역시 엄마의 잘못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고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안 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그 일도 그렇게 끝났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통해 사람은 언제 살고 싶지 않아지나를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없어져 줬으면 할 때 살고 싶지가 않아집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가족들도 말이나 눈치로 할머니가 안 계셨으면 하고 바랐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살고 싶지 않아 베란다나 옥상에서 떨어지려고 할 때 막아 주는 게 쇠창살이 아니라 민들레꽃이라는 것도 틀림없습니다. 그것도 내가 겪어서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어른들은 끝내 나에게 그 말을 할 기회를 안 주었습니다.

- 박완서, '옥상의 민들레꽃'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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