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풀꽃들에게서 배운다

모산재 2006. 11. 22. 10:06

 

 

풀꽃들에게서 배운다

- 꿈꾸게 하는 교실은 언제일까

 

 

 

 

들꽃에 푹 빠져 카메라를 메고 산으로 들로 쏘다니는 내 모습은 누가 봐도 촌놈이다. 올해 이 학교에 처음 와서 야생화반을 하겠노라고 광고했더니, 아이들은 별 촌스러운 걸 다 한다는 표정이다. 딴은 촌놈 출신이 사실이니 별 억울할 것은 없지만, 뜨악해하는 반응에 섭섭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가까이에서 봐! 잡초란 없다

 

교원노조 결성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나 있던 1990년 봄, 갑자기 시간이 많아진 나는 그 전까지 잘 찾지 않던 산을 자주 오르게 되었다. 그러다가 산길 주변 여기저기 돋아나는 풀나무들의 싹과 꽃들에 절로 눈길이 가게 되었고, 생명들의 경이로움에 빠져들었다.

 

어느 늦은 봄날, 길가에 흔하게 자라는 마디풀을 바라보다가 잎줄기 겨드랑이에 좁쌀보다 작은 꽃이 핀 것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카메라로 접사하여 보니 반투명한 꽃잎 다섯 장이 선명히 달린 암술과 수술까지 갖춘 비할 수 없이 아름다운 꽃! 잡초라고 부르며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저절로 느끼게 되었다.

 

 

 

▲ 마디풀

 

 

 

어디 마디풀만이겠는가! 잡초라고 부르는 풀들도 저마다 이름이 버젓이 있고, 쉽게 눈에 띄지는 않을지라도 아름다운 꽃이 있었고, 대부분 귀중한 약초로 쓸모도 가지고 있었다.

 

생명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작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무심히 스치는 풀꽃들, 그저 멀리서 볼 때에 별스런 느낌이 없던 생명들이 자세히 보면 저마다 아름다운 구석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모습도 이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어느 아이인들 저마다의 아름다운 구석이 없겠는가!

 

 

 

생명들은 스스로 자란다, 줄 세우지 말아줘!

 

내가 야생화를 주로 배운 곳은 대모산이다. 대모산에는 자연학습원이 있는데, 여기에 구역을 나눠 여러 가지 야생화들을 인위적으로 심고 야생화 이름을 적은 팻말을 세워 놓았다. 그런데 몇 년 뒤에는 희한한 일이 생겼다. 팻말 이름은 할미꽃인데 그 자리엔 엉뚱하게 피나물꽃이 피어나는 뒤죽박죽 현상이 나타났다. 조건이 맞지 않은 땅에 심어진 꽃들은 비실비실해지거나 사라지고, 그 자리를 다른 씨앗이 날아와 자란 탓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팻말만 믿고 엉뚱한 정보들을 얻을 수밖에….

 

내가 아는 어느 학교 화단에는 야생화가 다양하게 많았는데, 지난 5월 초 찾았더니 야생화들을 옮겨 심었는지 화단이 어수선했다. 그런데 습기 많은 곳에 자생하던 피막이풀을 다 걷어내고 그 자리에 습기를 싫어하는 제비꽃과 할미꽃을 몽땅 옮겨 심어 놓았다. 그리고 서울에서는 귀한 금창초가 자라던 자리와 아직 싹이 나오지 않은 용머리 자리도 몽땅 파헤쳐지고 생뚱스럽게 원예종 메리골드를 줄 세워 잔뜩 심어 놓았다. 금창초를 잡풀로 생각했을 것이고, 용머리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모든 생명들이 좋아하는 성장 조건들은 다 다르다. 할미꽃은 양지바르고 메마른 땅을 좋아하고, 피나물은 그늘지고 습기 있는 땅을 좋아한다. 양지를 좋아하는 제비꽃이 있고, 음지를 좋아하는 제비꽃도 있다. 생명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가 살 자리를 선택하고, 그래서 생태계는 스스로 조화를 이룬다. 생명들의 습성도 모르면서 줄세워 심은 생명들은 인간의 도움이 사라지면 대부분 도태할 수밖에 없고, 결국 그 자리에는, 해마다 돈으로 디자인되는 획일적인 생명들로 가득하게 된다.

 

 

 

욕심은 그만! 있는 그대로 봐 주세요

 

할미꽃 중에 동강할미꽃이라는 꽃이 있다. 동강의 절벽에 피는 할미꽃인데, 꽃대가 짧고 꽃의 색깔이 바이칼 호수 같은 보랏빛인데 그 매력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예전에는 흔했던 꽃인데 하도 많은 사람들이 캐가는 바람에 동강의 절벽에만 남아 있는 꽃이다.

 

 

 

▲ 동강할미꽃

 

 

 

그런데, 사람들이 욕심에 캐간 그 꽃들이 정원에서 잘 자라고 있을까? 그렇다면 그나마 용서될 수 있겠다. 그러나 정원에 심어진 할미꽃은 꽃대가 길게 자라나고 꽃은 붉은 빛으로 바뀌어 3년이 못되어 죽었다. 왜 그럴까? 동강지역은 석회암지대로 알칼리성 암석 지대에서 꽃대가 짧게 자라고 꽃이 푸른 것은 당연한 환경 적응의 결과였다. 그런데 산성 땅에서 자라게 했으니 어찌 그 특성을 지키며 생존할 수 있었겠는가?

 

지난 4월말 불암산 야생화를 관찰하러 갔는데, 다른 산에는 많이 핀 각시붓꽃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산하는 길에 등산로 바로 옆에 단 한 포기만 피어 있는 보랏빛 각시붓꽃을 발견했다. 했는데... 그 순간 지나가던 부부가 그걸 ‘홀라당’ 캐가지고 가버리지 않는가!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풀들도 있지만 생존 조건이 까다로운 풀들이 많다. 이러한 생명들의 무수한 씨앗들이 자기에게 맞는 땅을 찾아 싹틀 확률은 극히 낮고 제대로 자랄 확률도 낮다.

 

 

 

꿈꾸게 하는 교실은 언제일까

 

아무도 길러주지 않아도 들꽃은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땅을 찾아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며 자라나 다른 생명들과 조화와 균형을 찾고 질서를 이룬다. 사람도 들꽃과 별 다를 것이 없다. 저마다 다른 취향과 적성, 개성을 가진 아이들이 자신에게 맞는 차별화된 교육 과정을 선택하고 공부하며 세상 속에서 자기 역할을 찾아나가게 하는 것이 정상이다.

 

스웨덴 등 북유럽 나라들은 교과 교육 원리는 적성 교육, 생활 교육 원리는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아이들이 민주주의를 생활화하고, 자신의 적성에 맞는 학과를 선택하는 교육을 하게 하는 것이다.

 

 

 

 

▲ 학부모님과 아이들이 함께 했던 학급 종업식

 

 

 

그러나 우리 교육은 아직도 아이들을 하나의 틀 속에 가두어 두고 있다. 거의 모든 과목을 똑 같이 배워야하고, 학교가 정해준 틀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이기기 위한 교육 속에서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창조하는 교육, 개성과 다양성을 꽃피우는 교육은 사라졌다. 소수만이 살아남는 획일적인 경쟁 교육 속에서 다수의 아이들은 하품을 하며 교실에서 시들어 가고 있다. 이렇게 시들어 버린 아이들은 또다시 같은 내용을 되풀이하는 학원으로 보내져 회복할 수 없이 푹 삶겨 버린다.

 

비바람 속에서 튼튼한 꽃이 피어나는 법인데, 아이들의 시행착오를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하는 부모와 교사들 앞에서, 아이들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나고 있다. 현실과 부딪히며 성취와 좌절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가능성과 한계를 확인하고, 그 가능성 속에서 소질과 개성을 찾아나가게 하는 교육, 그 속에서 아이들의 꿈은 꽃으로 피어날 것인데….

 

꿈꾸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희망으로 가득한 법이다. 들꽃은 아이들의 꿈을 들여다보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나는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2006. 0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