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간첩은 '녹음기'를 노린다?

모산재 2006. 1. 22. 05:03

 

<우리말 여행 1>

 

간첩은 ‘녹음기’를 노린다?

 

 

 

 

 

 

 

 

눈이 부시도록 투명한 아침

싱그러운 햇살 속에 잠든 너의 숨결 위로 묻어나는 행복.

별이 되어 바람이 되어 추억에 잠기면

어느새 잠에서 깨어 날 부르며 웃는 너.

baby never say goodbye.

단 한사람 너만 있어 주면 돼, 이 세상 무엇도 널 대신 할 순 없어.

baby don't you ever cry .….

 

 

지금 나는 내 블로그 음악으로 김종국의 노래를 듣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이 " 왜 그러셔? 갑자기 젊은 노래를 다 듣고..." 라며 밉지 않은 핀잔도 준다. 노래가 좋은데 어쩌라고!

 

그럼에도 곡과 노랫말이 다 좋은 이 노래가 자꾸 내 맘에 걸리는 것은 노랫말 속에 섞여 있는 별 것 아닌 영어다. 그냥 우리말로 했으면 더 좋았을 걸….

 

 

지난해 초 2박 3일간 경북 남동부 지역을 여행하였다. 교사로서 15여 년 동지의 인연을 이어가는 선생님들과의 여행은 마음이 잘 맞아 언제나 즐겁다.

 

계획도 없이 무작정 떠난 여행인데도, 어느 새 국사를 가르치는 신 선생님이 안내자가 되어 전탑(벽돌탑), 모전석탑(벽돌 모양의 돌탑)을 탐방하는 주제 여행이 되어 있었다. 안동 영양 일대에는 국보, 보물급의 이런 탑들이 여럿 있다. 국보인 신세동 전탑과 봉감 모전석탑은 올려다보면 너무도 장대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안동 신세동의 위풍당당한 전탑은 철길과 방음벽에 갇혀 있어, 마치 백두산 호랑이가 우리에 갇힌 듯 우리 마음을 아프게 했다. 탑을 지나 가까이 있는 ‘군자정’이라는 전통가옥으로 가고 있는데, 최 선생님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어, ‘지금 변소’네.” 라며 허허 웃는다. 방음벽과 마주하고 있는 높다란 담벼락에 ‘소변 금지’라고 씌어 있다. 거꾸로 읽으니 과연 '지금변소'! 엉뚱하게 뜻이 정반대가 되면서 현실은 오줌 누는 변소임이 드러나는 절묘한 역설에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저녁, 동해 파도에 씻기우는 대왕암이 바라보이는 횟집에서 소주 한 잔 주고받다가 자연스레 어린 시절 겪은 한자말 이야기가 안주가 되어 있었다. ‘오줌 누지 마세요.’라고 하면 될 걸, 근엄한 한자말 명령어 ‘소변 금지’가 뭐람! 이런 이야길 하다가….

 

최 선생님 : 초등학교 때 반공 표어로 “간첩은 녹음기를 노린다.”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해가 돼야지. 간첩들은 ‘라디오’나 ‘카메라’는 놔두고 왜 하필 ‘녹음기’만 노리는지….

 

김 선생님 : 동네에 ‘벽안의 여인’이란 영화 포스터가 붙었는데, 여자가 왜 벽 안에 들어가 갇혔는지 통 알 수가 없더라고.

 

: 어릴 때야 회를 먹을 수나 있었나. 그런데 횟집마다 ‘활어회’라고 써 붙여 놨으니 ‘활어’가 어떻게 생긴 물고긴지 참 궁금하더라고. 광어, 도다리야 많이 들어봤지만….

 

오 선생님 : 신임 교사로 나와서 당혹했던 일은, 어느 날 교무실 칠판에 ‘弄璋之慶’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써 놓은 거야. 뭔 말인지 통 알 수가 있나. 나중에는 ‘弄瓦之慶’까지…. 내가 이리 무식하나 싶더라고.

 

 

저마다 한 마디씩 한자말로 해서 생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열띤 시간을 보냈다.

 

‘녹음기(綠陰期)’를 ‘수풀이 우거지는 때’, ‘벽안(碧眼)’을 ‘푸른 눈’, ‘활어(活魚)’를 ‘산 물고기’라고 하면 어디 덧날까? , ‘농장지경(弄璋之慶)’ ‘농와지경(弄瓦之慶)’(이 말들은 남자 아이는 노리개, 여자 아이는 기와 실패를 갖고 논다는 전근대적인 생각이 배어 있는 성어이다)을 ‘아들 낳은 경사 축하합니다.’ ․ ‘딸 낳은 경사 축하합니다.’라고 하면 얼마나 정감이 흐르겠는가?

 

경조사에 관습적으로 쓰는 ‘賻儀’(이 말은 '초상난 집에 돈이나 재물을 보내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祝華婚’과 같은 어려운 한문 대신에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 ‘결혼을 축하합니다.’라는 우리말을 쓰면 어떨까? 쓰기도 편하지만 좀더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지 않을까?

 

 

말은 쉬울수록 좋다. 어쩔 수 없이 쓰는 어려운 말은 정말 ‘어쩔 수 없지만’, 별 것도 아닌 걸 어렵게 쓰는 것은 지적 허영심에 빠져 드는 것이고, 우리 것을 깔보는 문화적 열등감을 드러내는 행동이다.

 

쉬운 우리말을 맛나게 쓰는 신세대들을 보면 참 예쁘다. 그런데 요즘, 인기 가수들이 ‘별것도 아닌’ 영어를 멋인 양 섞어 부르는 게 유행이 되고 있으니 ‘별것 아닌’ 한자말을 젠체하며 쓰는 기성세대의 허영심을 닮아가는 게 아닐까 싶어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