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시제 지내는 날, 아이들은 들꽃이 된다

모산재 2009. 1. 12. 20:34

 

시제 지내는 날, 아이들은 들꽃이 된다


2008. 11. 09. 일요일

 

 

 



음력 10월 첫번째 일요일인 오늘은 우리 집안 시제 지내는 날.

오전 이른 시간 맷돌바우 제각을 향해 조카 아이들과 함께 걷는다.

 


검바구에서 내려오는 물과 등골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만나는 다리,

작은 묏봉우리처럼 솟은 독뫼를 돌아 걷는 개울길에 아이들은 신났다.

 

안경 쓴 민수가 앞장 서서 사촌 동생 진우를 끌고 가는데,

오랜만에 만난 육촌 오빠들이 쑥쓰러워 멀찌감치 떨어져 아장아장 뒤따르던 민지는 무얼 발견했는지 쪼그리고 앉아 딴전을 피운다.


 

 

 


그러다가 다시 거리를 두고 늘어서서 걷는 아이들...

 


 

 

 


길 옆 언덕에는 때늦은 고들빼기가 환한 웃음처럼 흐드러지게 꽃을 피웠고,


 

 

 


고들빼기 옆에는 쑥부쟁이도 해맑은 표정으로 꽃을 피웠다.

 


 

 


가을 걷이가 끝난 논바닥에는 메뚜기들이 어지럽게 뛰는데,

아이들은 꽃보다는 메뚜기가 더 신기한 모양 메뚜기를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뛴다.

 


 

 


가래 잎이 떠 있는 웅덩이에서 다슬기와 달팽이를 보면서 아이들은 마냥 신기하기만하다.

 


 

 

 


때늦게 핀 금창초 꽃

 


 

 


이제야 꽃대를 올리고 있는 고들빼기에겐 겨울은 아직 먼 이야기인 듯...

 


 

 



집에서 5분쯤 걸어오니 제각 앞에 도착한다.

 



느티나무가 이렇게 아름다운 단풍을 자랑하기 쉽지 않다. 

 

민지 아빠가 제사음식을 실어서 끌고 왔던 빈 리어카가 풍경의 주인이 되었다.

 


 

 


 

지은 지 40년이나 된 데다 사람이 살지 않아 퇴락해버린 제각은

너머띠와 등골에서 내려오는 개울이 만나는 터에 자리잡아 풍광이 제법 아름답다.


 

 

 

 


제각 입구 커다란 바위에는 '회암 풍호대(回岩風乎臺)'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회암(回岩)'은 물이 돌아흐르는 이곳 마을 이름 '맷돌바위'를 일컫는 이름이고

'풍호(風乎)'라는 말은 '바람을 쐰다'는 뜻이니 <논어> '선진'편의 그 유명한 구절에서 따온 말.

 


공자가 장래 바라는 바를 물었을 때 증점이 대답하기를

"늦은 봄 봄옷이 다 지어지면

어른 대여섯과 아이 예닐곱으로 기수에서 목욕하고(浴乎沂),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風乎舞雩) 노래하며 돌아오겠습니다(詠而歸)." 하였으니

공자께서 "나도 너와 함께 하겠노라."한 데에서 나온 것이다.

 

무욕의 유유자적,

그것이 옛 선비들의 삶이다.

 



 

시제를 다 지내고 난 다음

 

집안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음복(飮福)을 한다.

 


 

 


식사를 마친 후,

퇴락한 제각의 대문을 통하여 

빈 논에서 신이 나 노는 아이들 모습이 내다보이고...

 


 


 

어느 새 아이들은 경계를 허물고

여기저기 편하게 어울려 피어나는 들꽃이 되어 있었다.

 

예전의 나와

민지, 민수, 진우 아빠가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쑥쓰러워하던 민지도 어느 새 육촌 오빠들과 어울려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