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항쟁14 제주도 (7) 아름다운 해안 산책길, 함덕 서우봉(망오름, 서모봉) 김녕을 지나 조천읍 함덕에 이른다. 동승한 사내들이 함덕해안에서 막걸리나 한 잔 하고 있겠다 하여 함덕해수욕장에 떨어뜨려 주어 홀로 서우봉을 오르기로 한다. 거센 바람이 소리를 내며 불어대는데, 좁은 함덕해수욕장 백사장으로 바다는 연신 흰 파랑을 일으키며 달려든다. 백사장을 건너 서우봉 길로 접어들자 모래바람이 귀를 따끔하게 때리며 빠르게 지나간다. 서우봉(犀牛峰)은 함덕해수욕장 동쪽에 바다를 끼고 솟아 있는 오름이다. 제주올레길 19코스가 바로 이 서우봉 해안으로 통과한다. 완만한 등성이에는 두 개의 봉우리가 남북으로 나란히 솟아 있는데, 남사면은 완만하고 북사면은 바다쪽으로 절벽에 가까운 가파른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북쪽 봉우리를 '망오름'이라 하고 남쪽 봉우리를 '서모봉'이라 하며 둘을 합쳐 '서.. 2012. 4. 9. 제주도 (4) 따라비오름, 수많은 오름을 조망하는 오름의 여왕 제주도의 둘쨋날, 이 선생님은 표선면 가시리의 따라비오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1136번 도로를 타고 가시리 마을 방향으로 가다보면 성읍리와 서귀포 방향을 표시한 가시리 사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성읍리 방향으로 약 100여m쯤 가면 왼쪽으로 난 시멘트 포장길이 나타난다. 그 길을 따라 가면 정면에 따라비 오름이 나타난다. 가시리 마을 북서쪽 약 3㎞ 떨어진 지점에 있다. 출처 : 다음 지도 가시리마을은 4.3의 아픔을 간직한 마을이다. 1948년 11월 중순 오순도순 살아가던 500여 명의 주민이 느닷없이 들이닥친 군경과 서북청년단에 의해 떼죽음을 당한... 가시리 마을을 지나는 마음은 착잡하다. 오름 앞 좀 떨어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름 산행은 시작된다. 방목하는 말들이 통과하지 못하도록 입구는 .. 2012. 4. 5. 제주 4.3의 슬픈 증언 (11) 다음 글은 제주 4.3의 아픈 진실을 공유하기 위하여 굴렁쇠님의 글 http://blog.ohmynews.com/rufdml/143059을 퍼온 것입니다. 1~10회의 글은 '한국근현대사 자료' 카테고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주 4.3을 더 잘 알려면 굴렁쇠님의 홈페이지(http://blog.ohmynews.com)를 방문하시는 게 더 좋을 것입니다. ▲ 제주 표선면 가시리 마을. 4.3의 아픔을 파묻은 채 59년의 세월을 버티어 왔지만 그날의 눈물은 아직도 마르지 않고 있다. 중산간마을 가운데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낸 비운의 마을. 이 마을에서 무려 500여명의 무고한 양민이 학살됐다. 폭염도 이 슬픔을 녹일 수 없다. 쏟아지는 땀도 이 노여움을 대체하지 못한다. 중산간마을을 찾아다닐 때마다.. 2012. 4. 2. 제주 4.3의 슬픈 증언 (10) 다음 글은 제주 4.3의 아픈 진실을 알리기 위하여 굴렁쇠 님의 글 http://blog.ohmynews.com/rufdml/140616을 퍼온 것입니다. 1~9회분은 '한국 근현대사 자료' 카테고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잃어버린 마을, 제주 화북 곤을마을 전경. 별도봉 산자락 바닷가에 70여 가호가 모여살던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지척에 두고도 찾아갈 수 없었다. 이별오름 별도봉을 걸어다녔던 수많은 시간동안 먼발치서 내려다보면서 얼마나 가슴만 쓸어내렸던가. 제주 4.3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화산섬 검붉은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진 마을. 저 살육과 폐허의 현장 속으로 피울음만 남기고 58년 전의 시간에서 그대로 멈춘 제주 화북 곤을마을에서 느끼는 나의 감정은 텅빈 수레처럼 심하게 흔들렸다. 대량살육.. 2012. 4. 2. 제주 4.3의 슬픈 증언 (9) 아래 글은 제주 4,3의 이픈 진실을 알리기 위해 굴렁쇠님의 글 http://blog.ohmynews.com/rufdml/136538을 퍼온 것입니다. '한국근현대사 자료' 카테고리에서 1회에서부터 8회까지 퍼온 글을 볼 수 있습니다. ▲ 조천 선흘마을 주민들이 은신했다가 집단총살 당했던 목시물굴. 여긴 내 집이 아니라네 내가 거처할 곳이 아니라네 잠시 살러온 것 뿐이라네 저기,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두 참 남짓 멀지 않은 곳이라네 굴에서의 삶은 입에 곡기가 없었다네 굴 속에서 끌려나온 나의 몸이 총탄을 실컷 먹었다네 그건 나의 집의 밥이 아니었다네 그 위에다 휘발유, 내 몸 위에 불이 얹어졌다네 그건 나의 집의 온돌이 아니었다네 그 위에 나의 시신 위에 살아남은 자들이 흙을 덧씌워줬다네 그건 나의 집.. 2012. 4. 2. 제주 올레 6코스 (4) 정방폭포의 절경, 그리고 4.3 대학살의 아픈 역사 정방폭포에서 서쪽으로 300여 m 쯤 걸어가자 정방폭포 입구 주차장이 나타난다. 입구 매표소 주변은 몰려든 사람들로 몹시 붐빈다. 영주 12경의 하나로 꼽히는 국가 명승이자 바다로 떨어지는 유일한 동양의 폭포라는 정방폭포, 장대하게 펼쳐지는 해안 절벽에 하얀 비단 두 폭이 드리워진.. 2011. 10. 6. 제주 4.3의 슬픈 증언 (8) 이 글은 4.3의 진실을 널리 알리고 있는 굴렁쇠님의 블로그 http://blog.ohmynews.com/rufdml/130384에서 퍼온 것입니다. 65여 년 전 그날의 아픔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기를 바라며... 통곡마저 사치스러운 절망의 땅에서 ▲ 아픔의 현장을 찾아가는 길에 세워진 안내판. 길목마다 수없이 세워져 있다. 제주 모슬포로 가는 길에는 겨울을 재촉하는 싸늘한 기운이 마중 나와 있었다. 수없이 이 길을 걸어 다녔지만 다시 찾을 때마다 명치끝을 찍는 아픔은 여전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유배왔던 땅, 이재수 민란의 거점지, 제주민중의 아픈 속살처럼 태평양 전쟁의 상처가 곳곳에 몰골을 드러낸 곳. 아, 그리고 통곡마저 사치스러운 제주 4.3의 아픔이 한국전쟁까지 이어진 절망의 땅. 짙은 .. 2007. 4. 5. 제주 4.3의 슬픈 증언 (7) 이 글은 굴렁쇠님이 쓴 글(http://blog.ohmynews.com/rufdml/128018)을 퍼온 것입니다. 4.3의 아픈 진실을 아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천명 / 강요배 그림 섬, 그 민중의 뿌리가 초토화 되다 제주도를 '빨갱이섬'이란 딱지를 붙인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기어이 화산섬 제주를 '피의 섬'으로 만들어 버렸다. 섬, 그 민중의 뿌리는 대량학살의 광풍으로 흔들리고 뽑히고 짓이겨졌다. 1948년 11월 중순부터 약 4개월간 전개된 '초토화 작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제주 4.3에서 가장 참혹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중산간 마을을 초토화시킨 이 강경진압작전은 송요찬 9연대장의 지휘아래 이루어졌다. 10월 17일, 송요찬 중령은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상 떨어진 중산간 지대를.. 2007. 4. 5. 제주 4.3의 슬픈 증언 (6) 1~8회에 걸쳐 연속해서 싣는 이 글은 굴렁쇠님의 글 http://blog.ohmynews.com/rufdml/125645에서 퍼 온 것입니다. 4.3의 아픈 진실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기대합니다. ▲ 다랑쉬굴의 슬픈 역사를 알고 있을까. 잃어버린 마을 '다랑쉬'를 지켰던 팽나무와 다랑쉬오름. 제주 4·3 대량학살을 이끈 '초토화 작전' 1948년 11월부터 1949년 2월까지 약 4개월 동안 벌어진 '초토화작전' 때 대부분의 중산간마을이 불에 타 사라졌다. 제주섬은 그야말로 불바다가 됐다. 불의 섬이 화산폭발 때 말고도 또 있었을까. 초토화작전은 반인륜적 범죄로 국제법으로도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법이었다. 11월 중순 이전에는 주로 젊은 남자들이 희생됐지만 이 때부터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 2007. 4. 5. 제주 4.3의 슬픈 증언 (5) 이 글은 4.3의 아픈 진실을 알리기 위해 굴렁쇠 님의 글 http://blog.ohmynews.com/rufdml/122066을 퍼온 것입니다. ▲ 부모들 / 강요배 그림 제주 4.3에 새겨진 '빨갱이'라는 이름 유태인과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와 학살에서 출발한 나치 독일의 파시즘을 가리켜 '생명이 없는 송장사회'(carceral society)라 부르기도 했다. 어떤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혈통에 대한 생물학적 환상이 낳은 결과는 끔찍했다. 유태인의 대량학살이 그것이다. 이런 사례는 세계의 폭력적 질서를 형성하는 전형적인 뿌리가 되고 있다. 여기에는 파시즘 폭력과 피와 혈통의 정치만이 민족과 인종, 그리고 종교의 이상을 회복한다는 극단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인디언을 몰아내고 필리핀·아이티·니카라과 등.. 2007. 4. 3. 제주 4.3의 슬픈 증언 (4) [스크랩] 제주 4.3사건의 슬픈 증언[4] 아래 글은 굴렁쇠님의 글 http://blog.ohmynews.com/rufdml/82219에서 퍼온 것입니다. 4.3의 아픈 진실이 널리 알려지기를 기원합니다. ▲ 강요배 / 4.3의 슬픈 진실 움직이는 것은 모두 우리의 적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보고 쏘았지만 그들은 보지 않고 쏘았다. 학살은 그렇게 시작했다. 그날 하늘에서는 정찰기가 살인 예고장을 살포하고 바다에서는 함대가 경적을 울리고 육지에서는 기마대가 총칼을 휘두르며 모든 처형장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던 그날 빨갱이 마을이라 하여 80여 남녀 중학생을 금악벌판으로 몰고가 집단학살하고 수장한 데 이어 정방폭포에서는 발가벗긴 빨치산의 젊은 아내와 딸들을 나무기둥에 묶어두고 표창 .. 2007. 4. 3. 제주 4.3의 슬픈 증언 (3) [스크랩] 제주4.3의 슬픈 증언(3) ※ 아래 글은 굴렁쇠 님의 글 http://blog.ohmynews.com/rufdml/81940에서 퍼온 것입니다. 4.3의 아픈 진실이 보다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 팽나무 / 강요배 그림 '도피자 가족에 대한 대량학살의 기억 지나간 역사의 진실을 캐는 과정에서 꼭 거쳐야 하는 것이 있다. 기억이다. 기억은 한 사회의 다양한 생각이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것이다. '그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가 아닌 '그 때 그 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에 시선이 고정된다. 이 '기억'은 한 개인의 고유한 경험이기도 하지만, 사회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인적 기억'도 사회적 현상이 된다. 기억의 사회성을 처음 지적한 알박스(Maurice Halbwac.. 2007. 4. 3. 제주 4.3의 슬픈 증언 (2) ※ 다음 글은 굴렁쇠님의 글 http://blog.ohmynews.com/rufdml/81452에서 퍼온 것입니다. 4.3의 아픈 진실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4.3은 항쟁이기도 하지만 살아있는 삶을 파괴한 죽음의 기록이다. 제주 섬사람들이 저항했던 분노의 함성만큼 죽음의 숫자가 역사에 또렷이 새겨져 있다. 무덤에 있지 않고 살아있는 죽음을 본 일이 있는가. 반세기 동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혼백과 더불어 헤매고 있을 4.3의 실체와 진실찾기가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며칠 제주를 돌아 다니면서 제주의 풍광을 가슴에만 넣어 두었다. 사진에 기록할 수가 없었다. 눈을 감지 못한 이 죽음의 땅, 항쟁의 섬에서 그 무슨 4월의 아름다움이란 말인가. 4.3영령들에 대한 작디작은 예의만이라도 드.. 2007. 4. 3. 제주 4.3의 슬픈 증언 (1) 오늘은 잠들지 않은 남도 제주도에서 4.3항쟁의 비극이 일어난 지 59돌이 되는 날입니다. 이 날을 되새기고 기억하기 위하여 스크랩한 자료를 게시합니다. 1~8회에 걸쳐 연속해서 싣는 이 글은 다음에서 퍼 온 글임을 밝힙니다. => http://blog.ohmynews.com/rufdml/130384(내 마음속의 굴렁쇠) ▲ 녹두 / 강요배 그림 4월, 그 슬픈 아우성 해마다 4월이 오면 제주는 눈물의 섬이 된다. 4월에 꽃망울을 터트린 노오란 유채꽃에도 그날의 슬픈 영혼이 되살아 난다. 지천을 떠돌고 있는 섬사람들의 피울음이 산천을 떠돌면서 살아남은 자들을 향해 통곡한다. 애달픈 우리들의 억울한 죽음을 해원해 달라고, 왜 우리가 죽어갔는지,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밝혀 달라고 슬픈 아우성이다. 7년.. 2007. 4. 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