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사지 7

소풍놀이터였던 영암사지 서금당지와 두 개의 귀부

영암사의 드넓은 금당터 바로 서쪽 숲속에는 또 하나의 절터가 있습니다. 숲속에 고운 금잔디가 깔린 이 아늑한 공간을 서금당터라 부릅니다. 중학교 시절 소풍을 오면 점심 도시락을 먹고 자유시간을 가진 뒤 전교생(이래야 300명 정도)이 모여 장기자랑을 했던 추억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철 없는 아이들은 절터 양쪽에 자리잡고 있는 돌거북을 타고 놀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금당은 남아 있는 주춧돌로 정면 3칸 측면 2칸임을 알 수 있고,금당을 오르는 돌계단이 동서 양쪽으로 배치되어 있는 점이 특이합니다. 계단을 오르면서 부처님을 바로 대할 수 없도록 비켜선 구조입니다. 이 금당 자리엔 어떤 부처님이 모셔졌는지 확인할 길 없지만, 주법당의 서쪽 자리인 걸로 봐서 아마도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폐사지 여행(4) 묘탑·탑비의 최고 걸작, 법천사지 지광국사 현묘탑·탑비

거돈사를 들러 법천리 서원마울의 법천사에 이르렀을 때는 해가 서녘하늘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거돈사를 돌아보는 것으로 이번 여행을 끝내려나 싶었는데 우리 신 선생님은 정성을 다해 우리를 안내한다. 여행 길라잡이로 수없이 찾은 이곳에 이골이 났을 텐데도 말이다. 십 수 년 전에 찾아보고서는 처음 와 보는데 풍경이 달라진 것인지 낯설어서 자꾸 두리번거린다. 예전엔 논밭과 민가가 어우러져 있지 않던가. 어렴풋이 기억되는 길가 낮은 땅들은 절터 발굴이 상당히 진행되어 휑한 들판이 되어 있다. 법천사 절터 입구에 서 있는 느티나무 노거수, 수령이 얼마나 되었을까. 장정 여럿이 둘어서 손을 잡아야 할 만큼 굵은 허리통, 속살들이 풍화되어 텅 빈 자리는 사라져 버린 법천사 절터와 닮았다. 아마도 법천사의 흥망성..

폐사지 여행 (3) 원주 거돈사지 삼층석탑, 원공국사승묘탑과 탑비

청룡사에서 되돌아나와 남한강길을 따라 달리다 원주 부론으로 들어선다. 부론에는 거대한 폐사지가 둘이나 있으니 바로 거돈사와 법천사(法泉寺)이다. 우리는 먼저 거돈사로 향한다. 사적 168호인 거돈사지(居頓寺址)를 찾아 도착한 현계산(賢溪山)이라는 산기슭 작은 골짜기, 절터 앞 도로에서 내리면 가파른 언덕이 시야를 가로막고 선다. 언덕에 난 계단을 올라서자 볕바른 산언덕을 끼고 넓은 절터가 아늑하게 펼쳐진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민가가 들어서 있었던 절터는 몇 년 간에 걸친 발굴 조사와 정비 과정을 통하여 유적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거돈사(居頓寺)는 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창건된 절이다. 고려초기에 확장되고 중창되면서 큰절이 되었으며 조선 전기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임진왜..

폐사지 여행 (2) 청룡사지의 국보 보각국사 정혜원융탑, 탑비와 석등

충주에서 여주로 이어지는 남한강 주변엔 수없이 많은 옛 절터들이 널려있다. 중원 미륵사지를 시작으로 목계나루에서 멀지 않은 청룡사지, 그리고 원주 부론의 거돈사지· 법천사지· 흥법사지, 여주 고달사지 등이 그것이다. 목계나루를 떠난 우리는 19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 소태면 오량리로 향하는 길로 들어선다. 작은 고개를 하나 넘어서자마자 나타나는 평범한 산골짜기, 여기에 무슨 절이 있을까 싶은데…. 청룡사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나타난다. 청룡사는 고려말 이곳 청계산 중턱에 자리잡은 암자에 보각국사(普覺國師, 1320∼1392)가 은거하자 태조(이성계)가 대사찰로 세우도록 했다고 전하지만 창건된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삼국유사를 쓴 보각국사 일연과는 다른 인물이다.) 고려 말의 승려인 보각국사는 경기..

폐사지 여행 (1) 북쪽을 바라보는 유일한 석굴사원, 중원 미륵사지

굴업도를 찾아보자고 약속한 토요일, 새벽같이 나서 전철을 타는데 파도가 높아 배가 뜨지 않는다는 연락이 온다. 한동안 따스한 날이 이어지더니 갑자기 거센 바람과 함께 시베리아 한파가 몰아친다. 이미 나선 걸음,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도 아까워 전화를 주고 받은 끝에 일단 충주 미륵사지와 하늘재로 가 보자. 그렇게 해서 결국은 1박 2일 폐사지 여행이 되었다. 서울에서 출발해 두어 시간 남짓 달려 수안보에서 얼마 멀지 않은 미륵사지 입구 주차장에 도착한다. 차를 세우고 바로 옆 식당에서 동동주 몇 잔과 함께 점심을 먹은 후 폐사지를 향해 걷는다. 산모롱이를 돌아가는 길이 한적해서 편안하고, 갑자기 밀려온 찬 바람이 월악산 솔숲에서 실어온 산소가 청량해서 상쾌하고, 약속도 없이 이런 번개 여행을 함께 하는 사..

양주 천보산 회암사지, 지공· 나옹· 무학이 머물렀던 대가람

회암사지는 경기도 양주와 포천을 가로지르는 천보산 서남쪽 자락에 안겨 있는 절터이다. 회암사는 고려 말 전국 사찰의 총본산으로지공화상, 나옹선사, 무학대사로 이어지는 걸출한 선승들이 머물며 이름을 날리며 번성했던 대가람이었다. 고려 충숙왕 때인 1328년에 승려 지공(指空)이 창건하고, 1376년(우왕 2) 지공의 제자인 나옹(懶翁)이 삼산양수지기(三山兩水之記)의 비기(秘記)에서 이곳은 인도의 나란타사(羅爛陀寺)와 지형이 같으므로 가람을 지으면 불법이 크게 흥한다고 하여 이 절을 중창했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무학대사를 이곳에 머물게 하는 등 각별히 관심을 가졌으며, 왕위를 물린 후에도 이 곳에서 머무르며 수도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명조 때에는 보우를 신임한 문정왕후의 비호로 다시 전국 제일의 수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