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소풍놀이터였던 영암사지 서금당지와 두 개의 귀부

모산재 2012. 11. 4. 18:45

 

영암사의 드넓은 금당터 바로 서쪽 숲속에는 또 하나의 절터가 있습니다. 숲속에 고운 금잔디가 깔린 이 아늑한 공간을 서금당터라 부릅니다. 

 

중학교 시절 소풍을 오면 점심 도시락을 먹고 자유시간을 가진 뒤 전교생(이래야 300명 정도)이 모여 장기자랑을 했던 추억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철 없는 아이들은 절터 양쪽에 자리잡고 있는 돌거북을 타고 놀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금당은 남아 있는 주춧돌로 정면 3칸 측면 2칸임을 알 수 있고,금당을 오르는 돌계단이 동서 양쪽으로 배치되어 있는 점이 특이합니다. 계단을 오르면서 부처님을 바로 대할 수 없도록 비켜선 구조입니다.

 

이 금당 자리엔 어떤 부처님이 모셔졌는지 확인할 길 없지만, 주법당의 서쪽 자리인 걸로 봐서 아마도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극락전이 자리잡고 있지 않았을까 내 나름으로 추측하고 있었는데,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에서 조사당터로 생각한다고 써 놓았더군요.

 

 

 

 

 

그를 뒷받침이나 하듯 금당의 양쪽에는 고승의 묘탑과 함께 세우기 마련인 탑비의 받침돌인 커다란 귀부 둘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금당 앞마당에는 위 받침돌과 화사석을 잃어버린 석등의 간주석과 받침돌만 덩그러니 남아 있어, 쓸쓸한 폐사지의 정서를 한껏 자아냅니다

 

 

모산재의 바위절벽이 흘러내려 잠시 평지를 이룬 절터, 두 마리 거북은 마치 모산재 어느 바위 속에 숨어 있다가 내려온 듯 목을 곧추 세우고 여의주를 입에 문 채 금당 마당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높이는 동쪽 귀부 1.22m, 서쪽 귀부 1.06m로 동쪽 귀부가 조금 더 큰데, 조각 기법이 아름다워 보물 제48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2기의 귀부(거북받침돌)는 모두 비몸과 이수(螭首)가 사라져 그 주인공을 알 수 없습니다. 유홍준 교수는 동쪽 귀부의 주인공을 적연국사(932-1014)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 315쪽)  80세때 이곳에서 주석하다 83새로 입적하며 적연국사라는 시호를 받은 분이니 개연성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동쪽 귀부

 

적연국사 탑비 귀부로 추정되는 귀부입니다.

 

 

 

동쪽 귀부의 등갑에는 6각형 겹무늬가 또렷하며, 등 가운데 네모난 비좌(碑座) 주변에는 인동운권문(忍冬雲卷文)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곧추선 목 위에는 용머리가 조각되었고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입니다.

 

당당한 몸에 비하여 발은 거의 장식적인 수준으로 작게 표현되어 있고, 꼬리도 거의 형식적으로 왼쪽으로 꼬부라진 모양으로 새겨 놓았습니다.

 

 

 

 

거북은 8각형의 받침돌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인데, 받침돌과 거북의 몸이 하나의 통돌로 되어 있습니다.

 

 

 

 

 

● 서쪽 귀부

 

 

 

서쪽 귀부는 동쪽 귀부에 비해 납작한 편이며, 등갑에는 6각형의 겹무늬 흔적이 있지만 희미하여 무늬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비좌의 4면에는 안상(眼象)을, 가장자리에는 연꽃잎을 새겼습니다.

 

양식적으로 동쪽 귀부와 비슷한데, 다만 발은 훨씬 사실적으로 또렷하게 표현되었습니다.

 

 

 

 

거북의 받침돌은 여러 개의 장대석으로 되어 있는데, 일부 유실된 모습입니다.

 

두 개의 귀부는 쌍사자석등과 삼층석탑 등과 함께 통일신라 전성기 9세기의 양식을 보여 주고 있는 석조 유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홍준 교수는 이 두 귀부가 하나는 신라 하대의 것으로 영암사 개창조의 사리탑비로, 다른 하나는 고려 초기 중창조의 사리탑비로 보고 있습니다. 고달사, 연곡사, 해인사, 봉암사 등 유서깊은 선종사찰에 신라 말의 개창조 사리탑과 이를 모방한 고려 초의 사리탑이 공존하는 것을 근거로 그렇게 본 것입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6권 312-313쪽)

 

그러면 어느 것이 원본인 신라의 것일까. 양식적으로 훨씬 정교한 동쪽 귀부가 바로 신라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귀부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피어 있는 작은 흰 꽃을 발견합니다. 큰벼룩아재비! 손가락 두 마디 키의 앙증맞은 이 풀꽃은 가을날 무덤이 있는 잔디밭에서 종종 만날 수 있는 마전과의 한해살이풀이랍니다.

 

 

 

 

 

이제 영암사를 두루 돌아보았으니, 모산재를 오를 차례입니다. 모산재는 황매산을 오르는 고개로 나의 닉네임이 되었습니다.

 

 

 

※ 영암사지와 쌍사자석등 이야기 => http://blog.daum.net/kheenn/15855958

황금들녁과 기암절벽이 어울린 환상의 모산재=> http://blog.daum.net/kheenn/15855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