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등 7

쌍사자석등의 변화,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 초기까지

불교와 사자의 관련성이 명확한 것은 없지만, 사찰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상징으로 사자를 조각해 두는 경우가 많다. 화엄사 4사자 삼층 석탑이나 법주사의 쌍사자 석등, 불국사의 다보탑 등에는 사자상이 있고, 문수보살은 지혜가 용맹함을 나타내는 사자를 타고 있다. 사자는 인도의 국장이기도 하고 부처를 상징하는 상징물로도 표현된다. 무엇보다 사자의 포효처럼 중생들을 조복(調伏)시키는 석가모니의 설법의 위엄을 나타내는 '사자후(獅子吼)'라는 고사성어에서 사자는 부처님의 위엄을 상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석가모니가 태어나자마자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일곱 발자국을 떼고 사방을 돌아보며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 우주 속에 나보다 더 존귀한 것은 없다.)" 외친 것을 《유마경(維摩..

웅장한 고려시대 사각석등, 개성 현화사지 석등 / 국립중앙박물관

높이 4.2m로 탑을 연상시킬 정도로 대형 석등으로, 현화사 창건 뒤인 1020년(현종 11)에 건립되었다. 개성 현화사지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옛 박물관 자리이던 덕수궁으로 옮겼다. 그 뒤 다시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 뜰에 이건하였으나 해체되어 박물관 유물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자리에 다시 세운 것이다. 헌화사지 석등은 전형적인 팔각석등 양식에서 벗어난 사각석등이라는 독특한 양식을 보이는데, 이는 고려시대 개성 일대에 유행했던 양식이다. 화창(火窓)을 낸 화사석(火舍石)이라는 닫힌 형식이 아니라 네 기둥만 세워진 열린 형식이다. 화사석은 하나의 돌이 아닌 4개의 원형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기둥은 석등의 간주석을 축소해 놓은 것과도 같은 고복형 기둥임이 특징이다..

나주 서문 석등(보물 제364호) / 국립중앙박물관

전라남도 나주읍성 터 서문 안 절터에 파손된 채로 남아 있던 것을 1929년 옮겨온 것이다. 석등의 기둥 돌에는 읍성의 안녕과 부귀를 빌며 삼세불께 공양하고자 석등을 세운 내력과 함께 석등이 세워진 시기가 기록되어 있다. 석등의 본체인 화사석(불밝이집)은 파손되어 조선총독부 시절 옛 모습대로 만들었으며, 맨 꼭대기의 꽃봉오리 모양의 보주는 부서진 것을 옛 모양대로 새로 만든 것이다. 지붕은 처마 밑에 드림 장식을 하고 처마와 추녀 끝에는 귀꽃 장식을 하여 고려시대 중엽에 새로이 드러내는 매우 장식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지붕 위에는 현재 작고 아담한 덧지붕이 놓여 있다. 정사각형 지대석 위에 8각의 연화대인 하대석이 놓였다. 상대석은 간주넉을 사이에 두고 하대석과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연꽃이 새겨져 ..

국립중앙박물관, 그리고 정원의 아름다운 사리탑과 석등

참으로 오랜 세월이 지나 국립중앙박물관을 찾는다. 용산으로 옮긴 새 박물관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답사 여행 때마다 박물관에 가 있다는 석조유물의 모습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에 영하의 날씨에 집을 나섰다. 이촌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박물관 서문으로 들어선다. 박물관 앞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거울못'이란 커다란 연못이 나타난다. 연못가에는 '청자각'이란 정자가 서 있다. 길게 늘어선 하얀 박물관은 '카사블랑카'(하얀 성)란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가운데는 넓은 마당을 두고 양쪽으로 전시실을 두었다. 그 열린 공간으로 남산타워가 보인다. 그런데 눈 앞에 보이는 이런 공간 구성이 모두 치밀한 건축원리에 의해 의도된 것이라 한다. 남산을 의지하여 한강을 바라보는 배산임수의 원리에 따라 자리잡..

영주 부석사 (2) 최고의 건축 무량수전, 선묘와 의상의 사랑으로 열린 극락세계

때로는 성벽처럼 위엄으로 마주치고 , 때로는 고향집 축담처럼 다정하게 다가서는 9단 대석단의 돌계단을 하나하나 오르다 안양루 누각의 마루 위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 환한 빛 속에 9품왕생을 기원하는 듯한 석등 하나가 눈 앞에 다가서고 극락세계 무량수전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사바세계에서 천상의 극락세계로 들어서는 문은 이렇게 좁고 작았습니다. 석등 하나만 앞에 두고 시야를 꽉 채우는 무량수전(無量壽殿)(국보 제18호) 팔작지붕의 기와선은 물흐르듯 흘러내리다 금새 멈추어버린 듯 편안하고, 그 아래 여섯 개의 배흘림 기둥 이 만든 다섯 개의 공간은 세상 모든 것을 다 품어 줄 듯 너그럽고 아늑하기만 합니다. 이보다 더 소박할 수 없는 격자 창살문은 또 어떤가요... 천상의 극락세계가 이렇게 편안하게..

부여 (15) 아름다운 절집 만수산 무량사, 조선 최고의 건축미 극락전

무량사를 찾게 된 것은 금오산인 김시습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단종 임금이 쫓겨났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고 21세의 청년기에 방랑길을 떠난 김시습이 십여 년이 지난 뒤 경주 남산(금오산)에서 이 땅 최초의 한문소설 를 짓고 만년에 다시 방랑하다 입적한 곳이 무량사이기 때문이다. 작년 경주 남산을 찾았을 때에도, 그리고 덕유산을 갔다 덕유산 백련사 일주문 옆에서 김시습의 부도로 오해되고 있는 '매월당 부도'를 만났을 때에도, 무량사를 꼭 한번 찾으리라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그리고 임진왜란 중 "왜적의 재침을 막고 나라를 바로잡겠다."는 기치를 들고 홍산에서 난을 일으킨 이몽학이 승려들과 함께 난을 모의하고 군사를 조련했던 곳이 또한 무량사였다는 점도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시외버스를 타고 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