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쌍사자석등의 변화,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 초기까지

모산재 2012. 3. 2. 20:34

 

불교와 사자의 관련성이 명확한 것은 없지만, 사찰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상징으로 사자를 조각해 두는 경우가 많다. 화엄사 4사자 삼층 석탑이나 법주사의 쌍사자 석등, 불국사의 다보탑 등에는 사자상이 있고, 문수보살은 지혜가 용맹함을 나타내는 사자를 타고 있다. 사자는 인도의 국장이기도 하고 부처를 상징하는 상징물로도 표현된다.

 

무엇보다 사자의 포효처럼 중생들을 조복(調伏)시키는 석가모니의 설법의 위엄을 나타내는 '사자후(獅子吼)'라는 고사성어에서 사자는 부처님의 위엄을 상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석가모니가 태어나자마자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일곱 발자국을 떼고 사방을 돌아보며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 우주 속에 나보다 더 존귀한 것은 없다.)" 외친 것을 《유마경(維摩經)》'불국품(佛國品)'에서는 "석가모니 설법의 위엄은 마치 사자가 부르짖는 것과 같으며, 그 강설은 우레가 울려 퍼지는 것과 같았다.(演法無畏, 猶獅子吼. 其所講說, 乃如雷震.)"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자후'는 뭇 짐승들이 사자의 포효 앞에 꼼짝도 못 하듯이 석가의 설법 앞에서는 모두 마음이 사로잡혀 따르게 됨을 나타낸다. 초기 불교의 경전인 《숫타니파타》에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유명한 구절처럼 깨달은 자 즉 석가모니 부처의 모습을 사자와 바람, 연꽃 그리고 무소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조각상에서 통일신라 시기에 사실적으로 표현되던 용맹한 사자상이 고려시대를 지나며 움츠러들고 조선 시대에 와서는 위축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사자에 대한 숭앙이 점차로 해태와 습합(習合)되거나 대체되었다.

 

 

 

 

 

<통일신라 시대의 쌍사자석등>

 

 

■ 법주사 쌍사자석등 / 국보 제5호

 

 

 

 

통일신라 전기인 성덕왕 19년(720)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며, 이후의 쌍사자 석등 제작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이는 통일신라의 대표적 석등이다.

 

 

 

 

■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석등 / 국보 제103호

 

 

출처 : 문화재청

 

 

간결하면서도 사실적인 수법이 돋보이는 통일신라 시대의 작품이다. 원래는 전남 광양 옥룡면 중흥산성 내에 있었으나, 일본인이 무단으로 반출하려 하여 경복궁으로 옮겨 놓았다가 지금은 국립광주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석등 / 보물 제353호

 

 

 

 

통일신라 전성기에 비해 다소 형식화된 면을 보이고 있어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며,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국보 제5호)과 견줄 수 있는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영암사터에 세워진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1933년경 일본인들이 불법으로 반출하여 갈 때 고개에서 마을 사람들이 막아  면사무소에 보관하였다가 1959년 절터에 암자를 세우고 원래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고려 전기의 쌍사자석등>

 

 

■ 고달사지 쌍사자석등 / 보물 제282호

 

 

 

 

통일신라 시기에 많이 조성된 쌍사자 석등의 사자는 서 있는 자세가 대부분인데, 이 석등은 웅크리고 앉은 모습이 특징적이며 조각 수법 등으로 보아 고려 전기인 10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석등은 본래 여주 고달사터에 쓰러져 있었던 것을 어느 주민이 수습하여 보관하다가, 1958년 종로4가 동원예식장 뒤뜰에 옮겨둔 것을 1959년 봄 문교부 주선으로 경복궁 경회루 옆에 옮겼고, 그후 다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동·복원한 것이다.

 

 

 

 

 

<조선 초기의 쌍사자석등과 사자석등>

 

 

■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석등 / 보물 제389호

 

 

 

출처 : 문화재청

 

 

중간받침돌은 쌍사자를 두어 신라 이래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화사석은 사각으로 고려시대 개경 일대의 양식이다. 쌍사자는 가슴과 배가 서로 붙어 입체감이 없고 쪼그리고 앉은 자세로 엉덩이가 땅에 닿아 부자연스럽다. 조선 초기의 쌍사자 석등이다.

 

 

 

 

■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각석등 / 보물 제656호

 

 

 

 

 

외사자 석등으로 아래받침돌이 앞을 향해 엎드려 있는 사자상이 새겨져 있다. 사자 모양 하대석을 둔 석등은 희귀한 예인데, 양주의 회암사지 쌍사자석등과 더불어 조선시대 사자석등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통일신라 이래로 쌍사자가 서서 화사석을 받치던 형식이 고려시대의 고달사지 쌍사자석등에서는 엎드린 쌍사자가 화사석을 받치는 모습으로,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석등에서는 앉은 채 고개를 쳐든 모습으로, 그리고 이 석등에서는 외사자로 변화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흥미롭다.

 

거기에다 탑 앞에 세우던 팔각석등이 승려의 무덤인 사리탑 앞에 놓이는 사각석등으로 변화하면서 조선 왕릉 앞에 놓이는 장명등의 형태에 한결 가까워진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석등의 진화 과정이 환하게 보인다.

조선 전기인 태조 원년(1392)에서 그 이듬해인 1393년에 걸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