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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고려시대 사각석등, 개성 현화사지 석등 / 국립중앙박물관

모산재 2012. 2. 28. 15:04

 

높이 4.2m로 탑을 연상시킬 정도로 대형 석등으로, 현화사 창건 뒤인 1020년(현종 11)에 건립되었다.

 

개성 현화사지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옛 박물관 자리이던 덕수궁으로 옮겼다. 그 뒤 다시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 뜰에 이건하였으나 해체되어 박물관 유물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자리에 다시 세운 것이다.

 

 

 

 

 

 

 

 

헌화사지 석등은 전형적인 팔각석등 양식에서 벗어난 사각석등이라는 독특한 양식을 보이는데, 이는 고려시대 개성 일대에 유행했던 양식이다. 

 

화창(火窓)을 낸 화사석(火舍石)이라는 닫힌 형식이 아니라 네 기둥만 세워진 열린 형식이다. 화사석은 하나의 돌이 아닌 4개의 원형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기둥은 석등의 간주석을 축소해 놓은 것과도 같은 고복형 기둥임이 특징이다.

 

 

 

 

 

 

 

네모꼴의 지대석 위의 하대석은 둥근 연꽃무늬를 새기고, 아랫부분의 네모꼴받침에는 면마다 안상(眼象)을 셋씩 새겼다. 그 위에는 3단의 간석받침이 마련되어 있다.

 

하대석과 대칭을 이루고 있는 상대석은 윗부분의 방형받침이 다른 석등들에 비하여 약간 높게 다듬어졌으며, 그 위에는 연꽃무늬를 새긴 4개의 원형 화사석 기둥이 받치고 있다.

 

 

 

 

 

 

 

이 석등은 간주석(竿柱石)이 8각의 양식에서 벗어나 장구형으로 되어 있는 고복형양식(鼓腹形樣式)으로, 화려하면서도 안정감을 주고 있다.

 

고복형의 간주석은 원기둥 모양으로서 3단의 고복으로 구분이 되는데, 중간부분의 고복에는 국화무늬가 새겨져 있고 위아래의 고복은 앙련(仰蓮)과 복련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붕돌 받침은 1단으로 되어 있고, 지붕돌 낙수면은 매우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이에 비하여 전각의 반전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다.

 

상륜부 중 옥개석 바로 위의 노반(露盤 : 지붕돌 위에서 상륜부를 받치는 쟁반 모양의 장식)은 낮게 조성되었는데, 노반 위에는 네모꼴로 앙화(仰花)가 놓였고 그 위로 원형의 보륜이 놓여 있다. 꽃무늬가 질서 있게 장식된 보륜 위에는 육각형의 보개(寶蓋)가 얹혀져 있는데, 귀에는 귀꽃이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예전 사진을 보면 석등 맨 꼭대기 보개 위에는 은진 관촉사석등처럼 화염에 싸인 보주가 놓여 있었는데 어떤 연유인지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배례석 중앙에는 정교한 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 석등의 당당한 품격과 신선하고 세련된 조형미는 고려시대 문화의 전성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석등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아름답고 의미있는 석등은 현재 문화재로 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 왜 그런 걸까...

 

 

 

 

 

※ 사각석등

사각석등은 개경 일대 사찰에서 주로 보이는 고려시대 석등으로 헌화사지 석등 외에도 개국사 석등, 관촉사 석등, 그리고 미륵사 사각석등 등에서 볼 수 있다.



■ 개국사 돌등(개성 고려박물관)

 

 

 

■ 충주 미륵사 사각석등

개경 일대 사찰에서 주로 보이는 석등양식이 지방으로 전파되는 양상을 엿볼 수 있는 유물로 평가된다. 1977년도 미륵리 사지 발굴 작업 때 묻혀 있던 것을 찾아내어 옮겨와 세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