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비 6

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탑비(보물 제361호) /국립중앙박물관

■ 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탑비 보물 제361호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활약한 승려인 대경대사의 탑비로, 보리사터에서 발견되어 경복궁으로 옮겨졌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앞뜰에 있다. 대경대사(大鏡大師)는 9세에 출가하여 교종을 배웠으나, 나중에는 선(禪)을 연구하였다.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경순왕의 스승이 되었으며, 고려 태조는 그를 존중하여 보리사의 주지로 머물게 하였다. 69세에 이 절에서 입적하니 태조는 시호를 ‘대경’, 탑 이름을 ‘현기’라고 내렸다. 비는 거대한 비머리돌(이수)에 비해 받침돌인 돌거북(귀부)가 작고 납작해서 조화와 균형을 잃은 모습이다. 비문에는 대사의 생애와 공적 등이 새겨져 있는데, 당시의 문장가였던 최언위가 글을 짓고, 이환추가 글씨를 썼으며, 제자인 최문윤이 글..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과 탑비(보물 제362호) / 국립중앙박물관

■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 보물 제362호 통일신라 말기 선종산문 중의 하나인 봉림산문을 세운 진경대사( 855~923)의 사리탑으로 경상남도 창원시 봉림동 봉림사 터에 있던 것을 1919년 탑비와 함께 옮겨온 것이다. 진경대사 심희(855∼923)는 임나(任那)의 왕족으로 김유신(흥무대왕)의 후손이다. 9세에 출가하여 혜목산 원감대사 현욱(玄昱)에게 구족계를 받고 명산을 다니면서 수행을 하다가 경남 창원에서 봉림사를 창건하니, 이때부터 선문9산 중 하나인 봉림산문의 기운이 크게 일어났다. 궁으로 들어가 경명왕에게 설법을 하기도 하였고, 그 후 다시 봉림사로 돌아와 제자들을 지도하다 923년(경명왕 7년) 68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왕은 진경대사(眞鏡)이라는 시호와 ‘보월능공(寶月凌空)이라는 탑호를 ..

실상사 극락전, 증각대사응료탑과 탑비, 수철화상능가보월탑과 탑비

2010년 4월 24일, 오후 담장을 벗어나 산기슭 방향으로 걷다보면 연꽃이 자라는 연못 너머로 담장에 둘러싸인 극락전이 나타난다. 담장 밖에 따로 다시 담장을 두르고 세워진 절집이 워낙 외딴 곳에 치우쳐 있어 그 존재를 알지 못하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솔숲을 이룬 야트막한 언덕을 배경으로 연못 곁에 흙돌담장을 두른 절집 풍경은 고향집처럼 정겹다. 봄기운 가득 받아 뜰과 나무에 파릇파릇 돋아난 새싹들이 싱그럽다. 일주문 형태를 가진 문으로 들어서면 극락전이 정면으로 보인다. 마당에는 요사채를 지을 것인지 목수들이 목재를 다듬고 있다. 극락전은 원래 이름은 홍척국사와 수철화상의 부도가 있어 부도전(浮屠殿)이었으나, 요사채를 수리한 뒤 부도전(扶道殿)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832년(순조 32)에 극락전으로..

폐사지 여행(4) 묘탑·탑비의 최고 걸작, 법천사지 지광국사 현묘탑·탑비

거돈사를 들러 법천리 서원마울의 법천사에 이르렀을 때는 해가 서녘하늘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거돈사를 돌아보는 것으로 이번 여행을 끝내려나 싶었는데 우리 신 선생님은 정성을 다해 우리를 안내한다. 여행 길라잡이로 수없이 찾은 이곳에 이골이 났을 텐데도 말이다. 십 수 년 전에 찾아보고서는 처음 와 보는데 풍경이 달라진 것인지 낯설어서 자꾸 두리번거린다. 예전엔 논밭과 민가가 어우러져 있지 않던가. 어렴풋이 기억되는 길가 낮은 땅들은 절터 발굴이 상당히 진행되어 휑한 들판이 되어 있다. 법천사 절터 입구에 서 있는 느티나무 노거수, 수령이 얼마나 되었을까. 장정 여럿이 둘어서 손을 잡아야 할 만큼 굵은 허리통, 속살들이 풍화되어 텅 빈 자리는 사라져 버린 법천사 절터와 닮았다. 아마도 법천사의 흥망성..

폐사지 여행 (3) 원주 거돈사지 삼층석탑, 원공국사승묘탑과 탑비

청룡사에서 되돌아나와 남한강길을 따라 달리다 원주 부론으로 들어선다. 부론에는 거대한 폐사지가 둘이나 있으니 바로 거돈사와 법천사(法泉寺)이다. 우리는 먼저 거돈사로 향한다. 사적 168호인 거돈사지(居頓寺址)를 찾아 도착한 현계산(賢溪山)이라는 산기슭 작은 골짜기, 절터 앞 도로에서 내리면 가파른 언덕이 시야를 가로막고 선다. 언덕에 난 계단을 올라서자 볕바른 산언덕을 끼고 넓은 절터가 아늑하게 펼쳐진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민가가 들어서 있었던 절터는 몇 년 간에 걸친 발굴 조사와 정비 과정을 통하여 유적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거돈사(居頓寺)는 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창건된 절이다. 고려초기에 확장되고 중창되면서 큰절이 되었으며 조선 전기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임진왜..

폐사지 여행 (2) 청룡사지의 국보 보각국사 정혜원융탑, 탑비와 석등

충주에서 여주로 이어지는 남한강 주변엔 수없이 많은 옛 절터들이 널려있다. 중원 미륵사지를 시작으로 목계나루에서 멀지 않은 청룡사지, 그리고 원주 부론의 거돈사지· 법천사지· 흥법사지, 여주 고달사지 등이 그것이다. 목계나루를 떠난 우리는 19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 소태면 오량리로 향하는 길로 들어선다. 작은 고개를 하나 넘어서자마자 나타나는 평범한 산골짜기, 여기에 무슨 절이 있을까 싶은데…. 청룡사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나타난다. 청룡사는 고려말 이곳 청계산 중턱에 자리잡은 암자에 보각국사(普覺國師, 1320∼1392)가 은거하자 태조(이성계)가 대사찰로 세우도록 했다고 전하지만 창건된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삼국유사를 쓴 보각국사 일연과는 다른 인물이다.) 고려 말의 승려인 보각국사는 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