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이야기

물봉선 꽃에 담긴 비밀, 우리도 몰랐던 물봉선 이야기

모산재 2012. 10. 14. 01:52

 

물봉선은 봉선화과의 한해살이풀이다. 산골짜기의 물가나 습한 땅에 무리를 지어 자라는데, 응달 양달 그리 가리지 않고 왕성한 생명력과 번식력을 자랑한다.

 

아침 저녁 가을 기운이 느껴지는 8~9월 무렵 물봉선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물봉선의 꽃 모양은 여느 꽃과는 다른 특이한 아름다움을 준다.

 

 

 

 

 

 

 

 

● 물봉선 꽃에 담긴 비밀

 

 

물봉선은 꽃대가 밑으로 드리워져 꽃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으로 핀다. 매달린 꽃의 앞쪽은 꽃잎을 활짝 벌린 모습이고 뒤쪽은 길게 좁아지는 깔때기가 도르르 말린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꿀주머니' 또는 '거(距)'라고 한다.

 

꽃을 정면에서 보면 3장의 꽃잎이 좌우 대칭의 형태로 윗꽃잎은 작고 아래입술꽃잎은 넓고 둥근데 두 갈래로 되어 있다. 곤충들이 안전하게 꿀을 빨 수 있도록 아래입술 꽃잎이 넓고 크게 설계된 넉이다. 좌우 대칭에 꿀주머니가 구부러진 꽃은 방사 대칭인 꽃에 비해 진화된 형태다.

 

꿀주머니 속의 깊숙한 꿀샘의 꿀은 흡입 대롱이 있는 나비나 나방만이 빨아 먹을 수 있다. 꽃 안 쪽에 점점이 찍힌 선명한 무늬점은 "여기 꿀이 있어~!" 하고 곤충을 부르는 꿀샘 안내 표지인 셈이다. 꽃 대롱부에는 꽃밥이 서로 붙어 있는 5개의 수술이 있고 암술은 꽃밥 밑에 숨어 있다가 꽃밥이 떨어지면 밖으로 나온다. 구부러진 꿀주머니는 곤충이 꿀을 따러 들어오면 곤충의 몸에 꽃가루가 완벽하게 묻도록 설계되었다.

 

꽃에는 이렇게 자손을 번성하게 하려는 식물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

 

 

 

 

 

 

 

● 물봉선 Impatiens textori

 

줄기는 곧추서며 60㎝까지 자란다. 잎은 넓은 피침형으로 어긋나는데, 잎끝과 잎밑이 뾰족하며 잎가장자리에는 뾰족한 톱니들이 있다.

8~9월에 홍자색의 꽃이 줄기 끝에 총상꽃차례로 피는데, 꽃대가 밑을 향해 숙여 있어 꽃이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꽃은 3장의 꽃잎으로 이루어졌으며, 꽃의 뒤에는 꼬리처럼 생긴 거(距)가 있고 이 속에 꿀샘이 들어 있다. 수술은 5개이나 꽃밥은 서로 붙어 있고, 암술은 꽃밥 밑에 숨어 있다가 꽃밥이 떨어지면 밖으로 나온다. 열매는 삭과로, 다 익으면 5조각으로 나뉘면서 그 속에 들어 있던 씨들이 멀리 퍼진다.

 

 

 

물봉선과 흰물봉선

 

 

 

 

 

 

● 8종으로 다양한 자생 물봉선

 

 

물봉선과 유사한 종으로는 미색물봉선, 흰물봉선, 노랑물봉선, 가야물봉선 등이 있다. 노랑물봉선은 노란 꽃이 피며 잎끝이 동글하고, 가야물봉선은 검붉은 꽃이 피며, 흰물봉선은 흰 꽃이 핀다. 

 

 

 

노랑물봉선

 

 

 

 

흰물봉선

 

 

 

 

 

 

 

그런데,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등록된 물봉선은 모두 8종이나 된다. 그러나 비교적 흔히 접하는 것으로는 물봉선과 그 변종인 흰물봉선, 노랑물봉선과 그 변종인 미색물봉선, 그리고 검붉은 꽃이 피는 가야물봉선 등 5종이다.

 

물봉선 Impatiens textori var. textori : 잎끝이 뾰족하다.

흰물봉선 Impatiens textori var. koreana : 물봉선의 변종으로 꽃이 희다.

가야물봉선 Impatiens atrosanguinea : 검정물봉선이라고도 하며 꽃이 검붉다.

노랑물봉선 Impatiens nolitangere var. nolitangere : 꽃이 샛노랗고 잎끝이 둔하다(둥글다).

   미색물봉선 Impatiens nolitangere var. pallescens : 노랑물봉선의 변종으로 연노랑 꽃이 피며 노랑물봉선과 같이 자란다.

처진물봉선 Impatiens koreana : 흰빛이 도는 연분홍 꽃이 처져 달리며 거제도에 자생하는 한국 특산종이다.

산물봉선 Impatiens furcillata : 흰 꽃. 꿀주머니 끝이 안으로 말리지 않는다. 

제주물봉선 Impatiens aphanantha : 물봉선과 비슷하며 꿀두머니가 뭉툭하고 잎의 톱니가 날카롭다.

 

 

 

 

● '날 건드리지말아요', 이름에 얽힌 이야기 

 

 

물봉선을 봉선화(또는 봉숭아)와 마찬가지로 영어권 사람들은 'Touch-me-not'이라 부른다. '날 건드리지 마세요'라니, 이름 한번 특이하다. 특이한 이름 그대로 봉선화과 식물은 씨앗을 살짝만 건드려도 열매가 터져 씨가 밖으로 튀어나온다.

 

의심스럽다면 늦은 가을날 꽃이 지고 열매가 달린 물봉선 덤불 속으로 발을 들여다보라. 사방에서 터지는 타타탁탁탁 소리와 함께 폭죽처럼 날으는 씨앗의 비행을 짜릿하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봉선화 식물을 가리키는 속명 Impatens는  '참을 수 없는'이란 뜻을 가진 영어 'impatient'와 같은 어원의 말로, 건드리기만 하면 바로 터지고 마는 열매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콩깍지가 햇볕에 수분이 마르면서 수축하는 힘에 의해 터지는 것과는 달리 봉선화 종류는 깍지 내부가 팽창하는 압력에 의해 열매가 터진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물봉선이 딴꽃가루받이도 하고 제꽃가루받이도 하는데, 딴꽃가루받이를 한 꼬투리에서 만들어진 씨앗이 2배 이상 멀리 튀어 나간다고 한다. 근친 교배가 열등형질을 만든다는 것은 생명의 진리인 모양이다.

 

 

 

 

● 서양인이 들려주는, 우리도 몰랐던 물봉선 이야기

 

 

그리스 신화에도 물봉선 이야기가 나온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데, 내용은 '나를 건드리지 말아요'라는 영어 이름에 얽힌 이야기와 맥락이 닿아 있다.

 

 

올림푸스(Olympus)의 궁전에 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이때 손님들에게 대접할 황금사과 하나가 없어졌다. 손님으로 온 장난기가 많은 에로스(Eros) 신이 숨겨 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손님에게 음식을 나르던 한 요정이 도둑으로 몰리게 되었다. 이 요정은 억울한 자신의 누명을 벗고자 간곡히 호소하였으나 결백을 증명하지 못하여 결국 산골짜기 물가로 쫓겨났다.

이 요정은 끝내 자기의 누명을 벗지 못하고 병이 들어 숨을 거두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 요정이 불쌍하여 냇물과 가까운 골짜기에 묻어 주었다. 다음해 무덤가에서 하나의 풀이 자라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꽃에 지고 열매가 달리자 누명을 쓴 요정이 결백이라도 주장하려는 듯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씨주머니를 터트렸다.

 

 

 

그럼 물봉선에 대한 우리의 전설은 없을까? 유감스럽게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손톱에 물봉선 아닌 봉숭아 꽃물 들이는 추억 이야기야 많지만...

 

 

그런데 우리가 몰랐던 물봉선 전설을 일제시대인 1932년에 미국 선교사가 기록하여 전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J. C. 크레인 부인(Florence H. Crane), 한국명을 '구예인(具禮仁)'으로 했던 이 선교사는 130여 종이나 되는 우리 꽃 이야기를 채록하여 1932년에 <한국의 풀꽃 이야기>(원명: Flowers and folk-lore from far Korea)라는 책을 저술했는데, 그 속에 물봉선 전설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옛날 어느 아름다운 소녀는 밤하늘의 별을 좋아하였다. 밤마다 그 소녀는 마당으로 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별을 향해 노래를 부르곤 하였다. 너무나 노래를 잘 불렀기 때문에 밤하늘의 별 하나가 소녀의 노래를 듣다가 몸을 너무 낮게 기울여 그만 땅으로 떨어져 죽었다. 이 일로 소녀는 매우 슬퍼하면서 그 별의 정령을 땅에 묻어 주었다. 이듬해 무덤가에서 풀이 자라 아름다운 꽃이 피었는데 이꽃이 바로 물봉선이다. 

 

 

소녀의 노래를 듣다가 땅에 떨어져 죽은 별의 정령이 물봉선이 되었다는 아름다운 전설. 밋밋한 서양의 전설과 달리 얼마나 서정성이 빼어난 이야긴가...!

 

우리도 몰랐던 우리 꽃 이야기를 채록하였던 크레인의 책은 1969년에 번역되어 출판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의 존재는커녕 사라질 뻔했던 소중한 우리 꽃 이야기를 채록해 준 어느 이방인의 이름도 들어본 적 없이 살고 있다.

 

 

 

 

 

 

☞ 우리꽃 들려준 여인은 누굴까
     - 한겨레 2006.04.07


과거로 가는 20일간의 시간 여행은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권의 책에서 비롯되었다. 3월9일 종로구 혜화동의 헌책방 혜성서점을 찾았을 때 주인 전순인씨는 <Flowers And Folk-lore From Far Korea>란 책을 건넸다. 보통 단행본의 두 배 크기에 하드커버, 금색 제목을 인쇄해 언뜻 보아도 예사롭지 않았다. 속살 역시 고급종이에 수채화 꽃그림 40여장을 따로 인쇄해 붙여 출판 문외한이 보아도 범상치 않았다.

몇 권의 다른 책과 함께 배낭에 넣고 회사로 들어온 나는 그 책을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한국의 꽃과 전설'로 번역됨직한 제목의 이 책의 지은이는 플로렌스 헤들스턴 크레인. 1969년 서울 가든클럽에서 삼보출판사를 통해 찍은 1000부 한정본 가운데 43번이다. 초판은 1931년 일본 산세이도출판사에서 펴내고 미국 맥밀런사에서 배포했다.

1931년, 그 이른 시기에 한국의 야생화를 그리고 전설을 채집하여 책으로 엮은 자는 도대체 누군가. 초판과 재판의 서문은 지은이의 정체를 조금 보여주었다.

<미시시피 출신. 1913년 갓 결혼해 남편인 존 커티스 크레인 목사와 함께 한국에 옴. 미 남장로교회 관할인 순천지역에서 머물며 남편과 함께 선교활동의 일환으로 학생들에게 산업미술을 가르쳤음. 틈틈이 야외에 나가 야생화를 스케치하고 노인들로부터 꽃에 얽힌 전설을 채집하고 남편은 한국의 옛책에서 정보를 찾아냈음. 1926년 휴가 때 미국에 간 그는 물주를 잡아 1931년 이 책을 펴냈음. 분류와 학명은 도쿄대학 식물학과 타케노신 나카이 박사와 케이조대학 쯔토무 이시도야 박사의 자문을 구했음.>

140여 개 식물은 한창 때를 기준으로 월별로 나눠 학명, 향명, 쓰임새 외에 꽃말과 얽힌 이야기를 붙였다. 엉겅퀴, 나팔꽃, 찔레, 고들빼기, 동백, 철쭉, 모란, 민들레, 패랭이꽃, 괭이밥 등 눈에 익은 것 외에 히어리, 개불알꽃, 병꽃나무, 범부채, 금불초, 물칭개나물(노야긔), 순비기나무, 달네깨비(닭의장풀), 큰각시취, 청미래덩굴 등 생소한 것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털마삭줄, 동의나물, 큰꽃으아리, 설무초, 송이풀, 덥글력굴(누른종덩굴), 자주꿩의비름, 전출라, 마타리, 네귀쓴풀은 듣도보도 못한 이름의 식물이다. 그게 그것인 줄 알았던 제비꽃도 그냥 제비꽃 외에 호제비꽃, 알록제비꽃, 털제비꽃, 흰젖제비꽃, 흰털제비꽃, 고깔제비꽃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해당화에는 용궁처녀와 지상총각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맨드라미에는 닭싸움으로 잃은 황금닭을 묻은 데서 피어나 닭벼슬을 닮았다는 전설을, 할미꽃은 잘 나가는 두 딸한테 박대받고 나무꾼 아내인 셋째딸을 찾아가다 죽은 할미 이야기를 덧붙여 까맣게 잊힌 옛 이야기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지상의 처녀를 사랑한 별의 정령이 서린 봉선화, 사랑하는 여인에게 꽃을 꺾어 주려다 익사한 총각을 기리는 물망초, 풀과 나무를 다 태우는 용을 물리친 장사의 피가 흘러 피어난 비비추, 종달새의 곡예비행에 넋이 빠져 넘어지는 통에 절름발이가 되었다는 제비꽃 등은 서양설화. 1929년 당시 일본을 통한 서양의 영향이 무척 컸음을 보여주었다. 배롱나무(백일홍나무)에는 동서양의 전설이 한꺼번에 뒤섞여 채록돼 있다. 또 제비꽃에서는 고개숙인 꽃을 따 서로 걸고 당겨 누가 이기는가를 내기했던, 고추에서는 "어려서 파란치마, 커서는 붉은치마를 입는 게 뭐게?"라며 수수께끼놀이를 했던 어렸을 적 기억을 되살려 주었다.

주말이면 산을 쫓아다녔으면서도 구절초와 쑥부쟁이를 겨우 구별하고 물봉선과 동자꽃을 눈동냥한 정도인 나의 눈에 상당부분 모르는 식물들에 관한 책을 엮어낸 한 서양인의 노고가 책에 포함된 수채화만큼이나 아름답게 비쳤다. 본격적인 탐색을 시작했다.

교회사연구소(소장 옥한음)에서 알려준 지은이의 남편 크레인 목사에 관한 사실.

<미시시피대학, 유니언신학교 졸업. 1913~1938년 한국에 머물며 평양 장로회 신학교서 조직신학을 가르쳤고 순천선교부에 소속돼 순천 매산학교, 전주 신흥학교, 광주 소피아학교, 목포 정명학교 등 미션스쿨의 창립 운영 감독을 맡았음. 신앙이 깊어 폐교를 불사하며 신사참배에 반대했음. 1946~1956년 2차로 한국에 와 순천에서 활동>

이어 순천 매산고등학교, 광주 호남신학대학교에 전화를 걸고, 인터넷에서 미국의 족보를 뒤진 결과는 몇가지 단편적인 사실을 추가하는 것으로 그쳤을 뿐 속절없이 일주일이 흘렀다. 그러다 우연히 <크레인 가족의 한국선교>(임춘복 지음, 한국장로교출판사 펴냄)란 책을 발견했다. 1999년에 발간된 그 책에는 그들 가족의 활동상이 상술돼 있을 뿐더러 크레인 목사 부부, <한국의 야생화>에 실린 수채화 외에 크레인 목사 부부의 묘비사진까지 실려있는 게 아닌가. 기쁜 동시에 실망스러움. 정확히 말해 무척 당혹스러웠다. 더 이상 알아보고 자시고 할 일이 없어진 것. 하지만 미국의 한 집안 사람들이 한국에 와 이름없이 봉사한 사실은 기독교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는 내게도 이해하긴 힘들지만 적지않은 감동을 주었다.

존 커티스 크레인 목사(1888~1964) = 미시시피 야주시 출신. 미시시피대 동창으로 식물학과를 졸업한 플로렌스와 1912년 결혼. 1913년 전남 순천 배치. 흙집에서 학생 12명으로 매산학교를 열었음. 순천지역 주일학교 15곳. 70개 교회 개척. 1923년부터 평양신학교에서 조직신학 가르침. 1927년 유니온신학교에서 박사학위. 37년 평양신학교 조직신학 전임교수. 평양으로 이사. 일제 탄압으로 연금돼 있다 1941년 탈출해 귀국. 4년동안 <조직신학> 저술. 1946년 다시 한국행. 49년 심장 나빠져 귀국. 1954~56년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플로렌스 헤들스턴 크레인(1888~1973) = 대학 졸업반 때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월드페어에서 미술부 최우수상. 남편과 함께 1913년 한국행. 미술 가르침. 학교에 공예실과 양잠실 만들어 단추, 테이블보, 손수건 만들기, 명주짜기를 가르쳐 학생들에게 학비를 벌게 함. 한달에 한번 지역인사, 학자들과 모임 열어 시를 읊고 감상하고 장식해 놓은 들꽃들의 이름과 용도 전설 등을 물어 채집함. 평양외국인학교, 평양여자신학교에서 가르침. 시간이 나면 꽃과 들풀 그리기를 즐김.

재닛 크레인(1885~1979) = 크레인 목사의 3년 위 누나. 동생으로부터 한국에 관해 듣고 1919년 한국행. 전주 젼킨여자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공예부를 지도. 코바늘, 뜨개질을 가르쳐 학비를 벌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 했음. 무료로 피아노 가르침.

폴 스캐킷 크레인(1889~1919) = 크레인 목사의 동생. 형에 이어 한국에 와 목포에 배치되어 교육분야 맡음. 1919년 수원에서 교통사고사. 막내동생 윌리엄 얼 크레인은 두 아이를 두고 사망한 둘째형의 형수 캐서린과 결혼해 해로.

릴리언(1915~?) = 크레인 목사의 딸. 순천 생. 1936년 선교사 톰슨 서덜과 결혼해 1938년 한국행. 순천에 배치돼 아버지가 평양에 가면서 빈 자리를 메움. 1940년 감시 심해 귀국.

폴 쉴즈 크레인(1919~2005) = 크레인 목사의 아들. 존스홉킨스대 의대 졸업. 평양외국인학교 시절 동창인 소피 몽고메리(존스홉킨스대 간호대학 졸)와 1942년 결혼. 1947년 한국행. 이듬해 전주 예수병원을 다시 열어 일본 의사들이 떠난 공백기에 환자들을 돌봄. 50년 간호학교 세워 근대 간호교육 과정 운영. 6·25때 야전병원서 총상환자 치료, 군의관 지도. 1958년 예수병원 밖에 버려진 7살 여아한테서 회충 1천마리가 나온 것 알고 여론을 환기해 기생충 박멸운동에 불붙임. 61년 박정희-케네디 회담 등 4차례 한-미 정상회담 통역. 65년 6주간 미국 남부 순회 40만달러 모아 예수병원 현대식으로 지음.

이상 아홉 명의 크레인 가족이 대를 이어 먼 한국땅에서 사랑을 실천한 희귀한 사례 앞에서 옷깃을 여미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1967년에 나온 또 한 권의 책을 앞에 두고 있다. 폴 쉴즈 크레인이 지은 <Korean Patterns>(국제출판사 펴냄). 3월30일 서울역 앞 북마트에서 발견한 이 책은 초보 외국인을 위해 한국인의 습성과 관례, 예절 등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권말의 '한약조제에 쓰이는 한국의 야생화'는 그의 어머니 플로렌스가 지은 책의 내용과 상당부분 겹쳐 있다. 36년 거리를 두고 어머니와 아들이 책을 통해 정겹게 만나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떨어져 다른 헌책방에 묻혔던 두 권의 책을 한데 모아 잠시나마 그들의 행적을 좇아보았던 20일간의 여행은 행복 그 자체였다.

※ <한국방송>은 2004년 플로렌스의 책을 처음 발견한 양 보도했으나 그 전 해인 2003년에 이미 <한국의 야생화 이야기>(윤수현 옮김. 민속원 펴냄)로 번역서까지 나와 있었다.   - 임종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