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함박꽃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작약(芍藥)은 여름이 들어선다는 입하 무렵이면 남도지방에서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꽃이 함지박만하게 크고 시원하여 함박꽃이란 이름이 붙었겠지만, 늦봄의 화창한 햇살을 받으며 피어나는 화려한 꽃은 함박웃음처럼 밝고 명랑한 분위기를 만든다.
↓ 합천
작약은 현재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서는 작약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기술하고 있지만 미나리아재비과로 분류하고 있는 백과사전도 적지 않다. 같은 작약과 식물로 모란이 있는데 꽃이 피는 시기도 비슷하거니와 화사하고 풍성한 꽃이나 갈래진 잎의 모양이 많이 닮았다.
꽃의 아름다움이야 비슷하지만 모란은 예로부터 부귀를 상징하는 꽃으로 동양화의 단골소재로 등장하며 사랑을 받아온 데 비해, 작약은 예술적 대상으로서는 그다지 대접을 받아오지 못한 듯하다. 다만 실용적인 면에서 약용으로 또는 관상용으로 귀하게 재배되어 왔다.
검붉은 모란 꽃과 선홍의 작약 꽃이 주는 느낌의 차이만큼일까. 모란의 꽃말이 '부귀'인데 작약의 꽃말은 '수줍음'인 점도 흥미 있는 대비를 이룬다.
그러나 작약이 풀이라면 모란은 나무라는 점에서 쉽게 구분된다. 작약은 가을이면 줄기가 말라 사라지지만 모란은 목질의 줄기가 그대로 남아서 겨울나기를 한다. 이듬해 봄이 되면 작약은 뿌리에서 싹터 흙을 뚫고 새싹이 나오지만 모란은 지난해의 가지에서 새싹이 튼다.
서양에서는 작약과의 식물을 피어니(peony)라고 부르는데, 모란과 작약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피어니(peony)라고 한다. 굳이 구별하여 부를 때는 모란을 '트리 피어니(tree peoy)'라 하고 작약을 '허베이셔스 피어니(herbaceous peoy)라고 한다. ※ 학명은 모란(Paeonia suffruticosa), 작약(Paeonia lactiflora)
↓ 이하 서울대공원
작약이나 모란은 향이 없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이러한 오해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선덕여왕과 모란꽃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당태종이 모란을 그린 그림을 보내왔는데 선덕여왕은 모란 꽃을 그린 그림에 나비와 벌이 함께 그려져 있지 않은 것으로 꽃의 향기가 없음을 알았다고 하였다. 당태종이 독신으로 지내는 걸 풍자한 것으로 받아들인 이야기로 전하지만, 이 이야기와는 반대로 모란의 향기는 꽤 은근하고 진하며 작약의 향기도 비슷하다.
검붉은 모란 꽃잎이 시들어 땅에 떨어질 무렵에 선홍의 작약 꽃이 피기 시작한다.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듯한 작약과 모란 꽃에 대한 그럴 듯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파에온이라는 공주가 이웃 나라의 왕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사랑하는 왕자는 전쟁터에 나가게 되었고 전쟁이 끝나고도 왕자가 돌아오지 않는다. 기다림에 지친 공주에게 왕자가 죽어서 모란꽃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공주는 그 모란꽃을 찾아가 그 곁에 영원히 남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미쳐 공주는 작약꽃이 되어 모란꽃과 함께하게 되었다.
모란은 중국이 원산지이지만 작약은 한국·몽골·동시베리아 등 동북아시아 지역에 널리 분포한다. 중국에서는 진(晉)과 명(明)시대에 이미 관상용으로 재배되어 그 재배 역사는 모란보다 오래되었다. 송(宋)을 거쳐 청(淸)시대에는 수십 종류의 품종이 기록되어 있다. 꽃색은 붉은색·흰색 등 다양하며 수많은 원예 품종이 개발되어 있다.
백작약( Paeonia japonica)은 국내에만 자생하는 특산 식물로 원줄기 끝에 흰 꽃이 한 송이씩 달리며, 털백작약(P. japonica var. pilosa)은 백작약의 변이종으로 잎 뒷면에 털이 있다. 산작약(P. obovata)은 꽃이 붉고 잎 뒷면에 털이 있으며 암술대가 길게 자라서 뒤로 말리며, 민산작약(P. obovata var.glabra)은 산작약의 변이종으로 잎 뒷면에 털이 없다.
그리고 참작약(Paeonia lactiflora var. trichocarpa)은 작약의 변이종으로 2009년 국립수목원이 '6월의 풀'로 선정한 희귀식물이다. 동북부와 극동러시아 및 북한지역에 자생하는 여러해살이풀로 6월에 흰색의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1909년 함북 무산령에서 최초로 표본이 채집된 이후 드물게 중부지역에서 발견되었으나 1954년 광릉에서 채집된 개체를 마지막으로 자생지가 발견되지 않았으나 2006년 경북 일원에서 자생지가 보고된 희귀식물이다.
작약은 염색이 잘 되는 식물로 작약의 잎을 따서 잘게 썬 다음 끓여서 염액을 추출하는데, 매염제에 대한 반응도 좋아서 각각의 색이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작약은 약재로 널리 이용된다. 작약의 뿌리에는 안식향산과 아스피라긴 등이 함유되어 있어 진통, 해열, 진경, 이뇨, 조혈, 지한 등의 효능을 가지고 있으며 복통, 위통, 두통, 설사복통, 월경불순, 월경이 멈추지 않는 증세, 대하증, 식은 땀을 흘리는 증세, 신체허약증 등에 좋다고 한다.
가을에 뿌리를 캐서 수염뿌리를 제거하고 뿌리의 껍질을 벗겨 끓는 물에 가볍게 데친 다음 햇볕에 말린다. 쓰기에 앞서서 잘게 써는데, 때로는 썬 것을 불에 볶아서 쓰기도 한다. 말린 약재를 1회에 2-5g씩 200㏄의 물로 반량이 되도록 달이거나 가루로 빻아 복용한다.
작약 줄기는 여러 개가 한 포기에서 나와 곧게 서고 높이 60cm 정도이며 잎과 줄기에 털이 없다. 뿌리는 여러 개가 나오지만 가늘고 양끝이 긴 뾰족한 원기둥 모양으로 굵다.
잎은 어긋나고 밑부분의 것은 작은잎이 3장씩 두 번 나오는 겹잎이다. 작은잎은 바소꼴 또는 타원형이나 때로는 2∼3개로 갈라지며 잎맥 부분과 잎자루는 붉은색을 띤다. 윗부분의 잎은 모양이 간단하고 작은잎이 3장씩 나오는 잎 또는 홑잎이다. 잎 표면은 광택이 있고 뒷면은 연한 녹색이며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꽃은 5∼6월에 줄기 끝에 1개가 피는데 크고 아름다우며 재배한 것은 지름 10cm 정도이다. 꽃받침은 5개로 녹색이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며 끝까지 붙어 있는데 가장 바깥쪽의 것은 잎 모양이다. 꽃잎은 10개 정도이나 기본종은 8∼13개이고 달걀을 거꾸로 세운 듯한 모양이며 길이 5cm 정도이다.
수술은 매우 많고 노란색이며 암술은 3∼5개로 암술머리가 뒤로 젖혀지고 달걀 모양의 씨방에는 털이 없거나 약간 있다. 열매는 달걀 모양으로 끝이 갈고리 모양으로 굽으며 내봉선을 따라 갈라지고 종자는 구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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