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5

가락국 마지막 왕의 무덤 구형왕릉과 왕산사지, 유의태 약수터

산청읍에서 북서쪽 길을 잡아 고갯길을 굽이굽이 타고 넘어 30릿길을 지나면 금서면 면소재지가 나타난다. 면소재지 도착하기 직전에 길 왼쪽으로 넓게 조성된 커다란 전통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바로 덕양전이다. 덕양전은 가락국 10대왕 양왕(구형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 조선 정조 17년(1793)에 왕산사에서 전해오던 나무상자에서 구형왕과 왕비의 초상화, 옷, 활 등을 발견하였는데, 이를 보존하기 위해 ‘덕양전’이라는 전각을 짓고 오늘날까지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바로 이곳에서 왼쪽 산길을 따라 약 1킬로미터쯤 올라가면 골짜기가 끝나는 곳에서 구형왕릉이 나타난다.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구형왕릉이 있는 산을 왕산이라고 하는데, 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의 무덤이 ..

보물 제374호 대웅전, 보물1316호 괘불탱을 보유한 산청 정수산 율곡사

산청 정수산 율곡사 2007. 02. 04 율곡사는 산청군 율현면 정수산 기슭에 자리잡은 작은 절로, 부근에 밤나무가 많은 계곡이 있어서 율곡사라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밤절', 또는 '목침절'이라 부른다. 율곡사가 자리한 정수산은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데, 정상에 서면 천왕봉 등 지리산의 연봉과 의령의 자굴산 등이 조망되어 등산로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651년(진덕여왕5) 원효가 지리산 동쪽 지맥에 창건한 이래, 930년(경순왕 4) 감악이 중창한 뒤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율곡사의 문화재로는 보물 제374호 대웅전, 보물1316호인 괘불탱,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373호 목조 아미타삼존불상 등이 있다. 특히 대웅전은 못 하나 사용하지 않고 지은 것으로 ..

전망 아름다운 멋진 암자, 산청 둔철산 정취암

산청 둔철산 정취암(淨趣庵) 2007. 01. 04 정취암을 산청의 수종사라고 할 수 있을까. 둔철산 거의 꼭대기에 가까운 절벽 위에 자라잡은 정취암을 오르는 길은 양수리 운길산의 수종사를 오르는 길만큼이나 좁고 가팔라 아찔하기만 하다. 몇 년 전 가족들과 함께 찾아 느꼈던 감동을 이번 여행을 함께 했던 분들께도 전하고 싶어 다시 찾았다. 정취암은 산청에서 동남 방향 약 10km에 위치한 신등면 양전리 대성산(일명:둔철산)의 기암절벽 사이에 자리한 사찰로 그 상서로운 기운이 가히 금강에 버금간다 하여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일컬었다고 한다. 신라 신문왕 6년(병술, 서기 686년)에 동해에서 장육금신(부처님)이 솟아올라 두 줄기 서광을 발하니 한줄기는 금강산을 비추고, 또 한줄기는 대성산을 비추었다. 이..

남명 선생의 발자취 (2) : 산천재, 그리고 남명기념관

남명 선생의 발자취 (2) 산천재, 그리고 남명 기념관 2007. 01. 04 산천재(山天齋)는 멀리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덕산 사리마을의 끝 덕천강가에 자리잡고 있다. 남명 조식 선생이 벼슬에 뜻을 품지 않고 61세되던 1561년(명종 16)에 사리에 내려와 11년 뒤 돌아가실 때까지 후진 양성에 몰두하던 곳이 바로 산천재이다. 당시 남명 선생의 제자로는 임진왜란 당시 유명한 의병장이었던 곽재우를 비롯하여 오건, 정구, 김우옹, 최영경, 조종도 등이 있었다고 한다. 선생이 거처했던 김해의 산해정·삼가의 뇌룡정등이 있으나 만년에 거처했던 산천재가 조식 선생의 가장 대표적인 유적이다. 산천재는 1561년(명종 16년)에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방치되다가 1817년(순조 17년)에야 복원되었다고 한다...

남명 선생의 발자취 (1) : 덕천서원(德川書院)

남명 선생의 발자취 (1) 덕천서원(德川書院) 2007. 01. 04 산청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식사도 미룬 채 지리산의 한 자락인 밤머리재를 넘어서 덕산으로 향한다. 오전에 남명 선생의 흔적을 살펴본 다음 정취암과 율곡사를 들러서 서울로 향하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다. 덕산에 도착하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장이 섰다. 장 구경은 덕천서원을 둘러 본 다음 하기로 한다. 덕산에서 다리를 건너면 제일 먼저 맞이하는 것은 남명 선생의 시조비이다. 두류산 양단수(頭流山 兩端水)를 녜 듯고 이제 보니 도화(桃花)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겻세라. 아희야 무릉(武陵)이 어디오 나는 옌가 하노라. 이 시조는 남명 선생이 지리산이 바라보이는 이곳에 은둔 생활하면서 쓴 것인데, 이 시기에 씌어진 또 다른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