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보물 제374호 대웅전, 보물1316호 괘불탱을 보유한 산청 정수산 율곡사

모산재 2007. 1. 17. 00:32

 

산청 정수산 율곡사

 

2007. 02. 04

 

 

 

 

율곡사는 산청군 율현면 정수산 기슭에 자리잡은 작은 절로, 부근에 밤나무가 많은 계곡이 있어서 율곡사라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밤절', 또는 '목침절'이라 부른다. 율곡사가 자리한 정수산은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데, 정상에 서면 천왕봉 등 지리산의 연봉과 의령의 자굴산 등이 조망되어 등산로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651년(진덕여왕5) 원효가 지리산 동쪽 지맥에 창건한 이래, 930년(경순왕 4) 감악이 중창한 뒤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율곡사의 문화재로는 보물 제374호 대웅전, 보물1316호인 괘불탱,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373호 목조 아미타삼존불상 등이 있다. 특히 대웅전은 못 하나 사용하지 않고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율곡사는 대웅전과 삼성각, 그리고 요사 등 단출한 규모로 구성되어 있다.

 

 

주차장에서 조금 올라가면 경내가 시작되는데, 비교적 널찍한 편이다. 중앙 위쪽에 대웅전이 자리하고, 그 왼쪽에 삼성각이 있다. 대웅전 앞에는 삼층석탑이 있다. 요사는 전부 3동인데, 대웅전 오른쪽 아래로 잇닿아 있다.

 

주차장 뒤편에는 조선시대 부도 4기가 모아져 있다.

 

 

 

● 대웅전(보물 제374호), 관음보탑

 

대웅전은 조선 중기에 지은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단층 팔작지붕을 얹은 다포집계 불전이다. 지붕 무게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 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앞쪽 문의 문살은 여러 문양으로 복잡하게 꾸며 건물에 더욱 다양한 느낌을 주고 있다.

 

 

 

 

 

 

내부에는 마루를 깔고 뒷벽 중앙에 불단을 만들었는데, 살미첨차 끝에 쇠서가 없는 공포에, 전면 문살은 빗살·띠살 무늬로 장식하고 궁판과 불발기로 복잡하게 구성하였다. 천장은 우물천장인데 불단 위에는 화려한 닫집이 걸려 있다.

 

산 속에 있는 비교적 큰 규모의 조선 중기 건물로 간결하면서도 웅장한 멋을 갖추고 있는 건축 문화재이다. 현재의 대웅전은 조선 숙종 4년(1679)에 대대적으로 중수(重修)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대웅전 앞에 새롭게 조성한 5층석탑은 일명 '관음보탑(觀音寶塔)'이라고 부른다. 한 돌로 이루어진 이중 기단 위에는 탑신을 5층으로 쌓았는데, 탑면에는 아무런 조식이 없다. 전체적으로 형태가 가늘고 긴 모습이다.

 

 

 

 

 

 

 

 

 

 

● 율곡사 괘불탱(보물 제1316호)

 

화면 가득 보살형의 인물만을 단독으로 그린 그림으로, 가로 475㎝, 세로 827㎝ 의 크기이다. 이 보살형 인물은 머리에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보관을 쓰고 있는데, 보관의 중앙에는 5구의 작은 화불이 모셔져 있다.

 

 

 

 

 

둥그스름한 얼굴에 치켜 뜬 듯한 눈썹과 긴 코, 작은 입, 적당히 큰 귀 등 이목구비가 매우 단정하며,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다. 옷은 부처가 입는 법의 형태로 속옷의 끝단과 소매자락, 윗부분 등에 걸쳐 여러 형태의 꽃무늬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겉옷의 왼쪽 아래 끝자락을 황금색실을 이용하여 처리한 것이 특징이다.

 

두 손으로는 흰색과 붉은색의 꽃송이가 피어난 연꽃가지를 들고 있으며, 당당한 양 어깨 위로는 귀를 감싸고 흘러내린 머리칼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넓은 가슴에는 큼직한 연꽃을 매단 가슴장식이 되어 있고 국화모양의 귀고리를 하고 있으며, 연꽃 받침을 딛고 서 있는 두 발은 매우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그림 바탕의 좌우로는 8열로 대칭되게 모란꽃이 그려져 있는데, 녹색 잎사귀에 붉은색, 흰색, 분홍색, 회색, 주황색 등 다양한 꽃색을 하여 화면의 명랑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조선 숙종 10년(1684)에 그려진 이 그림은 화면 아랫쪽에 화기(畵記)가 마련되어 있어 이 그림을 그린 사람과 조선 영조 5년(1729) 중수된 기록까지 확실히 알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인물의 두 발 사이에 왕과 왕비와 세자의 안녕을 기원하는 글이 있는데, 이는 다른 괘불탱에서는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전반적인 보존 상태가 양호할 뿐만 아니라, 단정하고 세련된 필선과 우아하고 균형 잡힌 신체 비례, 호화로우면서도 안정감 있고 조화로운 색채, 다양하고 섬세한 문양 표현 등이 매우 뛰어나 17세기 불화 연구에 자료적 가치가 충분하다.

 

 

율곡사 전경

 

 

 

 

 

 

 

※ 율곡사 가람 배치도

 

 

 

 

 

 

※ 율곡사 목침절과 새신바위에 얽힌 전설

율곡사 대웅전을 중건 할 때인데 하루는 대목수 한 사람이 찾아와서 자기가 맡아서 짓겠다고 하였다. 절에서는 마침 목수를 찾고 있는 중이어서 몇 가지 물어보고 곧 일을 맡기게 되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한 목수가 하는 일이라고는 매일 목침(木枕)만 다듬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기다린 것이 석 달이 되어도 목침 다듬는 일만 하고 있기에 답답한 스님이 목수 몰래 다듬어 놓은 목침 한 개를 감추어 버렸다. 그랬더니 며칠 뒤에 느닷없이 목수가 연장을 챙겨서 공사를 중단하고 떠나겠다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주지가 그 연유를 묻자, 다듬어 놓은 목침이 모자라니, 이러한 정신으로는 이 큰 불사를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떠나는 것이었다.

급한 김에 절이 발칵 뒤집혔는데 그 때 목침을 감추어 둔 스님이 나와서 목침을 내어놓고 사과를 하니 그제야 목수가 말하기를, 아직까지 그렇게 정성이 부실한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하면서, 다시 일을 시작하여 완공을 보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율곡사를 ‘목침절’로 부르기도 한다.

공사가 끝나고 단청을 할 때 일이다. 화공이 일을 하면서 대웅전 내부단청을 제일 뒤에 하게 되었는데 그때 스님들에게 이르기를 앞으로 7일 동안은 누구도 법당내부를 들여다보지 말 것을 누누이 당부하고 일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한 번 안으로 들어간 화공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아무런 기척도 없이 6일이 경과 되었다.

모두가 궁금하게 생각되어도 화공의 당부가 너무 간곡했기에 들여다 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지막 7일째 되는 날, 정오가 지나도 조용하기만 한 법당 안을 참다 못한 상좌승이 몰래 문에 구멍을 내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랬더니 안에서는 한 마리 새가 입에 붓을 물고 날아다니면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가 갑자기 붓을 떨어뜨리고 문틈으로 날아서 절 위쪽에 있는 새신바위에 앉아 버렸다. 그 길로 새는 간 곳 없고, 바위 이름은 새신바위가 되었다.

법당의 그림에는 천정 밑 좌우 벽면에 산수화 그림 두 점이 있었는데 그 때부터 미완성으로 알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