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5

부여 (15) 아름다운 절집 만수산 무량사, 조선 최고의 건축미 극락전

무량사를 찾게 된 것은 금오산인 김시습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단종 임금이 쫓겨났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고 21세의 청년기에 방랑길을 떠난 김시습이 십여 년이 지난 뒤 경주 남산(금오산)에서 이 땅 최초의 한문소설 를 짓고 만년에 다시 방랑하다 입적한 곳이 무량사이기 때문이다. 작년 경주 남산을 찾았을 때에도, 그리고 덕유산을 갔다 덕유산 백련사 일주문 옆에서 김시습의 부도로 오해되고 있는 '매월당 부도'를 만났을 때에도, 무량사를 꼭 한번 찾으리라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그리고 임진왜란 중 "왜적의 재침을 막고 나라를 바로잡겠다."는 기치를 들고 홍산에서 난을 일으킨 이몽학이 승려들과 함께 난을 모의하고 군사를 조련했던 곳이 또한 무량사였다는 점도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시외버스를 타고 부여..

고창 (6) 선운사 일주문, 미륵보살이 거처하는 도솔산으로 들어서다

천연기념물인 송악을 둘러보고 선운사를 향해 발길을 옮긴다. 화창한 날씨인데도 도솔산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는 바람은 시리게 차갑다. 그래도 맑은 솔향기 느껴지는 바람이 상쾌하다. 그리고 금방 부처님 세상임을 알리는 일주문이다. 선운사가 있어 선운산이라 부르지만 원래 도솔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일주문에도 '도솔산 선운사(도솔산 선운사)'라고 써 놓았다. 집안 아저씨 뻘인 김충현의 멋드러진 글씨로... 도솔산이란 이름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는 것일까. 잠시 '도솔(兜率)'이 뭔지 알아보고 가자. 그래야 도솔산과 도솔계곡에 담긴 부처님 세계가 조금 이해될 거 같다. 이 땅에는 도솔이란 말이 참 많이 쓰인다. 유리왕이 지었다는 '도솔가'도 있었고 월명사가 지었다는 '도솔가'란 말이 전해진다. 불교에는 '도솔천'이..

전각 구조가 독특한 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 부도와 고암스님 부도

원당암을 돌아보고 난 다음 다들 해인사 본절로 향하였으나 나는 홍제암으로 발길을 돌린다. 암자들을 돌아볼 기회를 갖지 못했기에. 홍제암은 해인사 본절과 계곡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편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다. 해인사 대부분의 건물들이 그러하듯 홍제암의 전각들도 최근에 신축한 것이어서 산사 특유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없는 점이 많이 아쉽다 홍제암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이곳에 은거하던 사명대사가 입적한 곳으로 유명하다. 세수 예순일곱으로 사명대사가 입적하자, 광해군은 스님의 열반을 애도하여 '자통홍제존자(慈統弘濟尊者)'라는 시호(諡號)를 내리고 이곳에 스님의 비를 세운다. 이로부터 '홍제암'으로 불리게 되었다. 광해군 6년(1614)에 혜구대사가 사명대사의 초상을 모시기 위해 건립하였으며, 1979년 10월에..

폐사지 여행 (3) 원주 거돈사지 삼층석탑, 원공국사승묘탑과 탑비

청룡사에서 되돌아나와 남한강길을 따라 달리다 원주 부론으로 들어선다. 부론에는 거대한 폐사지가 둘이나 있으니 바로 거돈사와 법천사(法泉寺)이다. 우리는 먼저 거돈사로 향한다. 사적 168호인 거돈사지(居頓寺址)를 찾아 도착한 현계산(賢溪山)이라는 산기슭 작은 골짜기, 절터 앞 도로에서 내리면 가파른 언덕이 시야를 가로막고 선다. 언덕에 난 계단을 올라서자 볕바른 산언덕을 끼고 넓은 절터가 아늑하게 펼쳐진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민가가 들어서 있었던 절터는 몇 년 간에 걸친 발굴 조사와 정비 과정을 통하여 유적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거돈사(居頓寺)는 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창건된 절이다. 고려초기에 확장되고 중창되면서 큰절이 되었으며 조선 전기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임진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