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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만 여행

실크로드(8) : 아름다운 초원 달판성과 천산의 서늘한 남산 목장

by 모산재 2006. 9. 11.

 

<제 8일> 2000년 8월 5일 토요일

 

아름다운 초원 달반성과 천산의 서늘한 남산 목장

 

투르판  → 달반성(達返城)  →우루무치 → 신장위구르자치구박물관

 → 텐산남산목장(백양폭포, 파오촌 숙박)


 

 

아름다운 초원 달반성을 지나며

 

예정에 있었던 천불동, 베제크릭 천불동은 공사중이라 방문하지 못해 아쉬웠다. 이곳의 천불동은 이슬람교를 믿는 위구르인들에 의해 많이 파괴되었다 한다.

 

그리고 어제 봐 두었던, 50여 중국 인종의 전통 복장 도안을 세트로 만든 우표를 사려고 했었는데, 개점을 하지 않아 구입하지 못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9시 40분 녹주호텔을 출발 우루무치로 향하다. 고속공로는 한산하고 넓으며 시원스럽게 달린다. 20분쯤 달리자 멀리 오른편 북쪽방향으로 텐샨의 설산 봉우리가 보인다. 왼편으로는 오아시스마을이 끝나고 낙타풀조차 없는 자갈 평원과 더 멀리 민둥산이 걸려 있다. 민둥산 사이로 잠시 넓은 호수가 보이는가 했는데, 오른편에는 화염산 서쪽 줄기가 나타나 함께 달린다.

 

한 시간쯤 지나자 오른 편으로 거센 황토물살이 여울져 흘러내려오는 제법 큰 계곡이 나타난다. 무슨 강인가 지도를 펴고서 확인해 보니, 수면이 해발 -151m라는 투르판의 아이딩(艾丁)호로 흘러들어 수명을 다하는 ‘백양하(白楊河)’라는 하천이다. 계곡 건너 텐산의 구릉으로 기다란 기차가 터널을 나들며 달리고 있다.

 

협곡이 한동안 이어지며 상류로 갈수록 수량이 더 많아지고 물살은 더욱 세다. 텐산의 눈이 녹아 흘러내린 듯하다. 힘찬 물살을 보며, 최성수 선생 사막의 홍수에 얽힌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다. 

 

11시 15분 계곡을 다 올라 넘어서는가 하는 순간, 오른쪽 멀리 하늘을 찌를 듯 장엄하게 솟은, 뭉게구름을 머리에 인 설산이 나타난다. 보그다(博格達)봉이다. 길병호씨는 최고봉이 6680m라는데, 지도를 보니 5445m이다. 길병호씨는 아마 천산산맥의 최고봉을 말한 듯하다.

 

동시에 광활한 초원이 나타난다. 머릿속에 늘 그리던 모습 그대로의 명실상부한 대초원,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과 소떼들이 풍경화를 이루고 있다. 여기가 달판성(達坂城)! 그리고 신장성 최대의 염호(鹽湖)가 왼편으로 나타난다. 

 

11시 30분, 잠시 달판성의 휴게소에 들르다. 뒤로는 그림 같은 보그다 설산을, 왼편으로는 대초원, 그리고 오른편 앞쪽으로는 염호가 자리 잡은 명당이다.

 

  인민음악가 왕뤄빈 흉상 앞에서

 

여기엔 대형 기념품 가게가 있고, 인민음악가 왕뤄빈(王洛賓, 1913-1996) 기념관이 있다. 앞마당엔 그의 흉상과 수레를 타고 노래하는 조각상들이 세워져 있고, 그에 삶과 예술에 대해 기록해 놓은 빗돌이 있다. 대표작은 '달판성의 아가씨(達坂城的姑嫏)', '아라무한(阿拉穆罕)' 등….

 

공기는 가을처럼 서늘하고 상쾌하다. 마당가에 자라는 독특한 풀을 채취하다.

 

 

다시 차는 출발하고, 염호는 왼쪽 멀리 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진다. 지도로 이름을 확인하니 채와보 호수(柴窩保湖). 좀 지나자 멀리 산 밑까지 수면이 붉은 빛을 띤다. 한화그룹이 공장이 보이는데, 이 염호로부터 공업 원료를 얻어 다시 우리 나라로 역수입하고 있다는 실크로드 개발에 대한 TV 다큐멘터리가 생각난다. 호숫가에는 흰 양과 검은 소떼들이 풀을 뜯고 있다.

 

염호는 다시 누런 물빛으로 더 멀리 이어지는데, 다시 풀이 듬성듬성 보이는 사막지대가 된다.

 

그리고 멀리 앞으로 하얀 풍력발전소 풍차떼가 나타난다. 접근할수록 엄청난 장관이다. 고속공로를 따라 왼편으로 약 3km에 걸쳐 수백 대쯤 보이는데, 길병호씨는 5600여 대라 한다. 대당 5000kw의 전력을 생산한다 한다.

 

화학비료 공장을 지나 금방 요금 내는 곳(收費站), 보고타봉은 구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흙탕물을 치며 흐르는 강을 건너 텐산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 북향하니, 금방 우루무치(烏魯木齊)시가 나타난다. 오후 1시!

 

 

우루무치(烏魯木齊)

 

우루무치 시내, ‘아리랑’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 김치가 나와 다들 원시적 욕망을 드러내다. 사실 별 맛도 없는 것인데, 하도 오랜만에 보는 것이라 결국 하나 더 시켜 먹다. 이곳은 채소가 귀해 값이 많이 비싸단다.

 

우루무치는 위구르어로 ‘아름다운 초원’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넓이는 총 160만 ㎢, 중국 전체의 1/6을 차지하는 중국 최대 면적과 인구를 가진 신장위구르자치구의의 구도. 천산산맥이 잠시 틈을 벌여 놓은 천산산맥의 서북 기슭, 표고 924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에는 알타이산맥(러시아와 몽골의 경계), 남쪽으론 쿤룬산맥(티벳과의 경계)이 놓여 있다. 아래로 텐산과 쿤룬 사이에 타클라마칸 사막이 타림분지를 이루고, 천산(우루무치) 북서쪽으로는 준가르사막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을 거쳐, 러시아, 키르키즈스탄, 카자흐스탄(알마아타), 아프가니스탄으로 이어진다.    인구 80만. 위루르 족이 가장 많지만 카자흐, 키르기스, 오로스 족등 13개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신장위구르자치구박물관, 두 가지 볼거리

 

꽤 오랜 시간 구경하다. 선사시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위구르인의 생활과 풍속을 볼 수 있다. 비전문가에게 대개 그러하듯 박물관 전시물이 따분하게 보이기 마련인데, 그래도 나의 눈길을 확 붙잡은 것은 두 가지!

 

하나는 벽화

!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가 고구려 고유의 양식인 벽화로만 알고 있었는데, 여기에 전시된 ‘烟色地狩猪印花絹’이라는 그림 앞에 섰을 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당대의 그림이라는데, 무용총 벽화와 똑 같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산을 그린 필법도, 뒤를 돌아 활 시위를 당기는 병사의 모습도, 달아나는 호랑이의 날랜 다리의 모습도!

 

이 모습을 보고서야 그 아득히 멀고도 삭막하게만 생각했던 실크로드가 문화 전래의 통로로서 비로소 실감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미라들!

 

1980년에 출토된 4000여 년 전 누란의 미녀 미라! 키는 152cm(생전 추정 157cm), 혈액형은 O형인 유럽인. 선선국으로 이주했던 누란의 마지막왕의 부인이라는 설이 있단다. 피부만 검을 뿐 온전한 모습이다.

 

 

그리고 1985년에 쿤룬산맥 북부 자홍글루 2호묘에서 발굴된, 3000년 전의 미이라!

 

1남 3녀가 함께 발굴되었는데, 남자의 미라는 두상과 두발 피부, 수염이 살아 있는 사람처럼 온전하다. 양피옷을 입은 키 176cm의 유럽계의 이 남자는 무릎을 가볍게 끌어당긴 자세로 편안하게 누웠다. 마치 방금 잠에 든 사람처럼…. "여보세요! 이제 일어나세요." 하고 외치고 싶을 정도다.

 

그 외에도 많은 미라가 있었지만 귀찮아서 안 적을란다.

 

 

 

남산 목장 가는 길

 

잠시 의무방어전으로 ‘신장천달정품(天達精品)광장’이라는 상품전시관을 들르다. 사람들 누란포도주를 많이 구입하다(120원 달라는 걸, 1병 63원에).

 

내일의 숙소인 호텔(環球大酒店, HOTEL WORLD PLAZA)에 짐을 맡긴 후, 우루무치로 진입했던 길을 되짚어나가 남산 목장으로 향하다. 남서쪽 75km를 달려야 한다.

 

 

중심가를 벗어나자 위구르인들이 많이 보인다. 한동안 도로변에만 포플러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메마른 평지를 달린다. 출발한지 3,40분이 지날 무렵(6시20분)부터 노랗게 익은 밀밭과 파란 목화밭이 어울려 바둑판무늬를 이루는 넓은 들판이 펼쳐진다.

 

 

 

그리고 금방 초원지대다.

 

주변산의 구릉지대는 나무와 풀들이 제법 우거지고, 산들은 옅은 녹색으로 단장되었다. 전형적인 스텝지대의 모습이다. 들이 지나자 널찍한 골짜기가 나타나고, 제법 수량이 풍부한 하천이 흐른다. 하천 건너는 연두빛 산 능선 아래 온통 노란 밀밭! 마치 대관령 목장지대로 접어든 느낌이다.

 

텐산의 위용이 가까워짐에 따라 차창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시원함에서 서늘함으로 바뀌고, 다시 오른쪽 작은 골짜기로 접어들면서 골짜기는 산그림자에 젖다. 멀리 설악동 계곡처럼  바위 봉우리가 솟아 있다. 계곡은 흙탕물이 소용돌이치며 흘러내리고, 계곡 왼쪽 응달에는 삼나무 숲이 하늘을 찌르고 섰다.

 

 

 

남산 백양구(白楊泃) 백양폭포

 

드디어 넓은 공간이 열리며 수백의 파오촌이 나타난다. 말 그대로 초원인 남산 목장!

 

남산목장에 도착한 시간은 6시 40분, 넓은 공터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이다.

 

30원에 일행 14명이 말을 타고 폭포를 향하다. 흙탕물이 여울져 내리는 계곡을 따라 오르며 난생 처음 타보는 말이 재미있다. 다들 초보자라 뒤에는 카자흐 여인들과 아이들이 고삐를 잡고 앉았다.(이곳에는 카자흐족이 많다고 한다) 앞서가는 강은미 선생 뒤에는 까맣게 탄 순박한 카자흐 사내가 탔는데, 강 선생과의 조화가 좀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약 2km쯤 올라가 다리가 있는 공터에서 내렸다. 산 공기가 추위를 느낄 지경으로 선들선들하여 긴팔셔츠를 받쳐 입다.

 

 말에서 내려 백양폭포 오르는

 

카자흐족      카자흐족은 하자크족, 또는 코자크족 이라고도 하는데, 카자흐 공화국이 바로 이 종족이 세운 나라이다. 이들은 현재 신장성에 60만 명 정도 사는데, 생김새는 눈이 약간 찢어져서 위구르족과는 또다르다. 하자크란 말은 원래 방랑자(ahgawk)를 뜻하는 터키어라고 한다. 부족의 구속이 싫어서 떨어져 나간 이탈자를 하자크라 부르다 보니 부족의 이름이 되어 버렸다는 설이 있다. 현재 카자흐 공화국에는 약 500만 명의 하자크가 살고 있다.

 

 

150m쯤 걸어 올라가니 물줄기가 갈라져 내려오는데, 왼편 계곡에 일본인이 만든 ‘신양교(新楊橋)’라는 작은 무지개다리가 나타나고, 오른쪽 계곡 위편에 높이 약 25m쯤 되어 보이는 시원한 폭포가 나타난다.

 

폭포 앞에서 한 사나이가 냉면 사발만한 흰꽃을 줄기째 들고 내려 오고 있다. 나중에 확인한 바로 ‘설련화(雪蓮花)’라는 꽃인데, 이곳에서 약재로 쓰고, 이를 재료로 한 설련화주는 꽤 비싸다.

 

흙탕물 폭포는 물보라를 날리며 물줄기가 내리꽂히는데, 오정훈 선생이 사막왕 쌍안경으로 살펴보니 자갈들이 함께 굴러 떨어진다고 한다. 텐산의 눈 녹은 물줄기가 만들어 낸 풍경이다. 

 

천산의 눈 녹은 물이 흙탕물이 되어 내려꽂히는 백양폭포

 

 

사진을 찍고 다시 말을 타고 되짚어 내려오다. 계곡 언덕에는 싱겁게 생긴 흰색 엉겅퀴꽃들이 피어 있다.

 

내 뒤에 탄 까만 얼굴의 카자흐 여인, 아까 오를 때에는 고삐를 찾느라 그런 것인지(내가 손에 잡고 있는데 말이야) 자꾸 내 사타구니께를 더듬어 신경이 곤두섰는데, 내려오는 길엔 웬 노래(당연 카자흐 노래겠지만)를 그렇게 흥얼흥얼 불러대는지….

 

 

내려와서 보니, 저 바위산 꼭대기 중턱 푸른 초원엔 하얀 점들이 점점이 보이는데, 양떼들이다. 오정훈 선생의 사막왕 쌍안경이 오늘부터 힘을 발휘한다.

 

 

 

남산 목장에서의 하룻밤

 

 남산목장의 파오촌

 

 

골짜기 왼쪽 언덕 위, 넓은 잔디밭이 펼쳐진 파오에 숙소가 정해지다. 지름 6-7m쯤 되는 파오의 내부는 생각보다 넓고 편안하다. 입구 전면에는 많은 식구들이 잘 수 있는 넓은 마루(침대)가 있고, 오른쪽에는 신혼부부용 침대가 화려한 휘장 아래에 놓여 있다. 이 침대는 외부 손님이 사용하는 것이 실례라 하여, 우리도 신경을 써야 했다. 천장 한가운데엔 지름이 2m가 채 안 되는 정도의 트임이 있어, 끈 달린 가리개로 덮어 조절하며 환기구 구실을 한다.

 

자리에는 과자류와 차들이 준비되어 있다. 배가 고파 집어먹는데, 양유에 차를 넣은 파오식 차가 나오고, 곧이어 양꼬치구이, 양갈비가 나온다. 양꼬치구이가 맛있다. 오늘 저녁에 잡아먹을 양을 고르러 다들 나갔는데, 이미 나온 양고기만으로도 배가 부를 만하다. 게다가 볶음밥까지도 나왔다. 사이 구연업, 김홍식, 강은미, 이상학씨 등과 함께 우리는 가져온 소주를 한잔 마시고….

 

양을 잡으러 갔던 팀들이 돌아오고, 마침 오늘이 구연업 씨 생일이라 우루무치에서 준비해온 케이크로 축하의 시간을 가지다. 누란포도주가 한 바퀴 돌다. 조용하던 봉고차 기사 아저씨가 이 소식에 소수 민족식 축하주를 돌려 원샷으로 권하고, 카자흐 노래까지 부르며 가파르게 분위기를 잡아나가다. 45도짜리 이리특곡은 순식간에 바닥이 나고, 구연업 씨의 숨은 노래 솜씨가 펼쳐지면서 분위기 농익다. 나는 반대로 기분이 가라앉고, 온 몸에서 에너지가 쏙 빠져 달아난 느낌이다. 노래 부를 기분도 안 된다.

 

고조된 술자리, 마침내 12시가 넘어 양 바비큐가 들어오다. 맛있다며 다시 술잔이 바쁘게 돌다. 길병호씨 가족 이야기를 들으며 최성수 선생은 통일을 외치고, 계속된 원샷에 강은미 선생은 흐늘거리고, 조용하던 오정훈 선생이 신명을 내며 분위기를 주도하며 초원을 길길이 뛰고 휘저으며, 신병철, 노혜경 선생과 함께 별이 총총한 초원 파오촌의 밤하늘을 고성방가로 마음껏 뒤흔들어 놓다.

 

패잔병처럼 먼저 쓰러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