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만 여행

실크로드(5) : 사람 사는 둔황, 명사산에서 듣는 모래바람 소리

모산재 2006. 9. 11. 21:51

 

제 5일 : 2000년 8월 2일 수요일

 

사람 사는 둔황, 명사산에서 듣는 모래바람 소리


둔황고성 → 백마탑 → 둔황 교외 오아시스 마을 이왕련 씨 민가  

→둔황박물관 → 명사산, 월아천

 

 

 

 

둔황고성

 

9시, 호텔을 출발하다. 교외의 경작지 경계선이나 도로가에는 포플러 숲이 열을 지어 섰지만, 시내 가로수는 회화나무, 대추나무, 자두나무, 살구나무 등이 대부분이다.

 

시내를 벗어나니, 다시 오른편 방향으로 펼쳐진 광활한 사막! 왼편으로 저 멀리 명사산 줄기를 끼고 서쪽으로 수 킬로를 달린다. 누런 명사산 등성이 아래 저지대, 막고굴에서 흘러온 강줄기를 따라 오아시스의 푸른 숲도 겨우겨우 이어진다. 명사산, 오아시스, 도로가 함께 나란히 달리는 형국이다. 오아시스를 막 벗어난 곳은 예외없이 죽은자들의 세계, 묘지가 펼쳐진다.

 

 

앞쪽 아득히 눈을 인 치렌산이 보이고, 오아시스가 끝나는 지점에 둔황고성이 나타난다. 1987년, 일본이 영화세트장으로 250만 위안으로 지었다는데, 돈값에 비해서는 엄청난 건축물이다.

   

둔황고성 위에서

 

입구에는 ‘中日文化交流的結晶’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여기서는 가는 데마다 일본의 손때가 묻어 있다. 그러나 수백 년 전 둔황의 모습을 살려낸 데는 손색이 없어 보인다. 식견이 없어 이 곳에 대해서는 쓸 것이 별로 없다.

 

다만, 입구를 들어서면 왼편에 나타나는 ‘다장(茶莊)’과 옆켠 ‘접대부(接待部)’ 주련의 글귀가 재미있어 베껴 보았다. 풀이는 내 멋대로 한 것인데 바르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莫論冷暖厚薄 차고 따뜻하거나, 후하고 야박한 것을 논하지 말고

要知高低深淺 높고 낮거나, 깊고 얕은 것에 대해서만 알려고 하라. (다장의 주련)

 

行萬里路的眼淸心 만리길을 가는데 바른 눈은 마음을 맑게 하고

喝一杯茶敗火解渴 한잔의 차를 마시면 불을 식히고 갈증을 푼다네.

 

성루에 올라 멀리 펼쳐진 사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 대만에서 온 아가씨들인지 둘이서 귀염을 떨며 사진을 찍어대는 것을 보며 ‘역시 사람이 제일 이쁜 것이여’ 생각하며….

 

 

 

백마탑

 

둔황고성에서 다시 시내로 들어와서 길 오른켠에 있다. 어김없이 노점들을 지나가야 한다.

 

 

전진 때 타클라마칸 사막 너머 하늘이 보내준 백마를 타고 구마라지라는 스님이 와서 묵은 곳. 스님이 잠들었는데, 꿈속에 백마가 나타나 돌아가겠다며 웃고 하늘로 떠나더란다. 이튿날 아침 깨어보니 과연 백마는 죽고 그 자리에 탑을 세웠단다.

   

 

 

 

 

오아시스 속 민가, 이왕련 씨 집 방문

 

백마탑에서 남쪽으로 난 길을 쭉 달려가니 완전히 농촌이다. 좁은 비포장 시골길로 들어서니 포플러 숲 속에 민가와 집들이 포근히 들어앉았다. 수로에는 희고 누런 빛이 감도는 탁한 물살이 제법 힘차게 흐른다. 햇살은 따가우나 공기는 너무 상쾌하다. 건조지대라선지 옷에 때가 타지 않는다. 땀이 젖을 틈도 없이 바로 증발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왕련씨는 란저우대학의 관광영어과를 나와 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여성이다. 영어를 곧잘한다. 나무 이름들을 물었더니 자기 나라말은 제쳐두고, 애프리컷(apricot), 엘름트리(elm tree) 등 영어로, 발음도 유창하게(병철 형과 얼마나 비교가 잘 되는지!) 대답하는 게 아닌가? 그게 중국말인 줄 알고 하도 이상해서 다시 물어보니, 살구나무, 느릅나무(楡樹)였다.

 

집은 정갈하다. 방은 침대 위주로 공간 배치되어 있고, 화장실은 우리의 전통 뒷간과 다름없다. 다만 건조지대라 파리가 없어 보다 위생적으로 느껴진다. 문에는 ‘福’자를 거꾸로 붙여 놓았는데, 복이 돌아오라는 뜻에서 그렇게 한단다.

 

왕련씨의 부모가 건살구, 사과배, 수박 등을 먼저 대접해 주는 바람에 실컷 먹고 과수원 구경을 하다. 살구, 자두, 복숭아가 주종을 이루고 곁에는 오이, 가지, 무, 마늘, 콩 등 작물들이 자란다. 명아주, 비름, 피 등의 잡초도 우리와 같다.

 

점심으로 국수를 먹고, 맥주를 마시다. 닭의 발이 나왔길래,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상학씨 “봉황발이요!”라고 냉큼 받아 한바탕 웃다. 봉황발은 병철형의 차지가 되었다.

 

 

 

둔황박물관

 

둔황 시내 네거리의 동쪽길 시장 거리 맞은편에 있는 둥황박물관에 들러 실크로도 시의도(示意圖)와 몇몇 유물들을 돌아보다.

 

 

☞ 초원 루트와 오아시스 루트     

 

실크로드는 당나라 이후에 개발된 해로를 제외하면 육로로는 초원 루트와 오아시스루트가 있다.

 

초원 루트는 대체로 북귀 34-40도 부근을 지나는 길인데, 흑해와 카스피해 북쪽을 따라 타시켄트, 알마아타, 이닝, 하미, 허시후이랑, 장안에 이른다. 이닝에서 카라코람, 베이징으로 이르기도 한다.

 

오아시스 루트는 여러 갈래가 있으나, 가장 보편적인 통로는 북위 35-40도 부근을 지나는 텐산남로와 서역남로다. 텐산남로는 텐산산맥 남쪽 기슭의 오아시스를, 서역남로는 쿤룬산맥의 북쪽 기슭에 잇는 오아시스를 각각 거치게 돼 있는데, 어느 쪽이든 서역의 관문인 둔황을 거쳐 허시후이랑으로 빠져나가 장안으로 이른다.

 

실크로드는 장안과 로마를 종착지로 하나, 신라의 새벌(서라벌)에까지 연결되었던 것이 사실이고, 둔황박물관에는 실크로드의 길이 실제로 새벌에까지 그려져 있다.

 

 

 

박물관에서 학자티 나는 한국인 여행객 2명을 만났는데, 양관과 워와츠로 가는 길이 공사중이긴 하나, 갈 수 있다는 말을 하다.

 

 

이 사실을 확인한 최성수 선생이 고함씨에게 따지다. 얼마나 멀리서 찾아온 길인데, 여행사에서 이럴 수 있느냐? 속이는 게 아니냐? 고함씨의 반응은, 갈 수는 있지만 길이 좋지 않아 차량에 문제가 생기면 일정을 맞춰주지 못할 수도 있다. 책임질 수 없다. 무책임한 태도에 최성수 선생은 좀 화가 나다. 고함씨는 눈물을 흘리고. 괜히 내가 난처해서 최성수 선생께, 갈 수는 있다고 그러니, 불가능한 상황이면 돌아오면 되니 따지지 말고 그냥 갑시다.

 

어쨌든 이런 상황을 거쳐 내일 오전 자유 시간을 양관과 워와츠로 가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호텔로 돌아와 신 선생님과 바둑을 두다.

 

 

 

 

아름다운 사막의 명사산과 월아천

 

저녁 식사 후 6시 명사산으로 출발하다.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일몰과 일출 시간에 맞춰 오르는 거란다. 사람들이 엄청 붐빈다. 입구 대형 문 한켠에는 ‘애국주의 교육기지’라고 적혀 있다.

 

 

 

 

명사산은 시가지에서 남쪽으로 5km 쯤에 솟아 있는 동서 40km, 남북 20km, 높이가 수십 미터에 달하는 모래와 돌이 퇴적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모두가 알이 고운 모래로만 이루어진 모래산이다. 명사산이라는 이름은 맑게 갠 날에 모래소리가 관현악기 소리처럼 들리거나, 수만의 병마가 두들기는 북이나 징소리같이 들리는데서 유래한다.

 

 

처음 타 보는 낙타(58번), 롱다리 걸음의 진폭 큰 율동을 엉덩이로 한껏 느끼며 명사산을 오르다. 낙타를 끄는 후줄그레한 긴 바지 긴 팔 차림의 아저씨, 아주머니들, 그리고 머리카락처럼 긴 속눈썹이 선량한 낙타들을 보면서 괜히 슬픈 생각이 언뜻 스치기도 했다. 시지프스! 어쩌면 명사산 오르내리는 이 길이 저 사람들의 평생 삶이 아닐까?

 

 

 낙타 타고 명사산 오르는 길 - 맨 뒤가 필자

 

 

생명의 힘은 모질다. 낙타를 타고 올라가는 길 주변, 수분이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은 모래밭에 여린 가시의 어린 낙타풀이 드문드문 귀여운 모습으로 돋아나 있다.

 

 

봉우리 아래에서 내렸을 때 우리 여행을 책임진 강명진 씨, 지갑을 잃어 상학씨와 함께 되돌아갔다는 소식. 그러나, 불고하고 우리는 나무 계단으로 능선을 오른다. 송편을 마감한 선처럼 고운 모래 능선 위에 서보니 사람의 손을 타지 않는 능선들이 좌우로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김원기 선생, 이 능선에서 제자를 만나다.

 

 

여기서의 화제는 단연 서갑숙! 여기서 서갑숙이 누드 촬영을 했단다. 그리고 우리는 서갑숙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서갑숙이 제법 있었다. 짧은 치마를 입고 아슬아슬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여인들! 나도 오아무개 선생의 인도를 받아 묘한 감동에 젖기도 했다.

 

 

다시 10원을 내고 모래썰매를 타고 백수십 미터를 내려오고, 낙타를 타고 산 허리를 되짚고 돌아 어둠이 깃드는 월아천으로 향하다. 월아천은 모래 속에서 솟아나온 초승달 모양의 호수인데 맨 밑바닥까지 투명한 물은 신비하기만 하다. 3000여년 이상이나 물이 마르지 않았다는 신비한 샘이다.

 

 

입구 인공 호수를 지나 월아천과 아름다운 누각이 보이다. 여기서 다시 다른 쪽 산 능선을 오르는 팀과 낚시가 가능하다는 말에 유혹된 팀으로 나뉘다.

 

나, 구연업, 김용식, 노혜경, 강은미 선생은 능선을 오르기로 하다. 능선을 다 오르자 어둠이 완전히 터를 잡았다. 산 너머 모래 골짜기에 앉으니, 너무도 고요해 귀가 먹먹하다. 시간이 정지되어 버린 느낌이다. 태초의 고요가 이러했을까?

 

남자 셋 주저앉아 담배 한 대씩 피는 맛이란…! 산을 내려오니 누각 안 마당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맥주는 물론 이곳 특산이라는 행피주스(살구주스)가 기막히다.

 

 

10시, 낙타를 되타고 어둠 속을 헤쳐 주차장으로 돌아오다. 강명진 씨, 지갑을 찾지 못하고, 상학 씨와 경찰서에 가서 보험처리를 위해 분실 신고했는데, 처리가 잘 되지 않는다는데, 또 상학 씨는 그 와중에 핸드폰 잃었다고 난리…, 강명진씨에게 맡긴 사실을 잊고!

 

 

 

 

호텔로 돌아와서

 

11시, 다시 일정에는 없건만 빠지지 않는 술자리. 김원기 선생은 제자 만나러 가고...

 

여기서의 일은 신 선생님이 적었으면...

 

다만, 둔황에서의 일정 문제로 어려움이 있었던 일에 대해 다시 이야기되면서 잠시 예민해진 시간이 있었다.

  

 

 

둔황 관광 안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