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 대만 여행

실크로드(6) : 양관, 타클라마칸 사막과 푸른 호수 워와츠 사이

by 모산재 2006. 9. 11.

<제 6일> 2000년 8월 3일 목요일


양관, 타클라마칸 사막과 푸른 호수 워와츠 사이

 

워와츠 → 양관(점심) → 둔황 → 유원(둔황역)

 

 

 

 

워와츠(渥漥池) 가는

  

7시 45분, 짐을 챙겨 출발하다. 엊저녁 술 마신 후 새벽까지 병철형과 바둑 두느라 아침도 못 먹다.

 

둔황고성으로 달리던 길을 지나 서쪽으로 달리다. 오늘은 사막 속 호수 워와츠를 구경하고 양관을 찾아 타클라마칸 사막을 본다.

 

나 참, 웬일이야. 아침부터 노래를 돌아가며 부른다. 오 선생님은 뜬금없이 "꽃 피는 동백섬에…"라는 이국 땅에서 별로 어울리지 않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쯧... 사막에 갑자기 뱃고동이 울리고 갈매기가 울기 시작한다.

 

 

왼편으로 저수지와 댐이 나타난다. 저 멀리 치렌 산맥에서 흘러온 물인가 보다. 그리고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으랜다. ‘와불산’이라고 하는, 마치 와불(臥佛)처럼 보이는 산줄기가 멀리 정면 지평선 끝에 누워 있다.

 

 저 구릉 너머로 보이는 포플러숲이 오아시스 지대로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1시간쯤 달리자 왼편으로 오아시스 마을이 나타난다. 가이드 상학 씨에게 물으니 ‘남호(南湖)’라고 한다.(그런데 어쩐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10여분 더 달리니 오른쪽 구릉에 벽돌로 지은 통풍 잘 되게 얼기설기 지은 포도 건조창고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능선 저 멀리 흙구조물이 보이는데 그것이 양관의 봉수대란다.

 

 

갈래길에서 왼쪽(남쪽)길로 접어들자 남호마을이다. 대마와 포도밭이 많다. 가로수는 살구나무.

 

 

고함씨, 차에서 몇 번이나 내려 묻고 물어 마침내 마을 뒤편 워와츠로 올라서다.

 

 

 

기대했던 것보다 작고 아담한 호수. 관광객의 흔적은 없다. 오리배 1대 등 6대의 작은 배들이 호수에 떠 있다. 물속에 발을 디디니 신기하게도 작은 물고기들이 달려들어 발가락과 발등에 사정없이 입질을 한다. 닥터피시라고 하던가. 그 앙증맞은 입질의 간지름에 모두 웃으며 즐거워하다.

 

크진 않지만 이 호수의 수문을 통해 엄청난 물들이 흘러내려 마을의 젖줄이 되고 있다. 수문 앞 수로 곁에서 풀(이 풀이 잔디인데 풀잎 끝은 바늘처럼 찌른다)을 뜯는 당나귀와 어린 새끼를 잠시 희롱하다.

 

 

 

 

 

돌아나오는 길에 구릉 위 묘지 지대에서 차를 세우고, 독특한 묘지를 가까이서 관찰하다.

 

 

 

양관(陽關) 가는 길

 

다시 되짚어 나와 아까의 갈라진 길에서 양관마을 쪽으로 들어서다. 그러나 마을에서 공사중인데, 가이드들이 뭐라고 말을 붙여보는데, 통과할 수 없나 보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단다. 또 다른 길로 접어들어 실패한 후,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 다닌 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 사막 위 사잇길로 달려 드디어 성공.

  

 

찾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양관마을 뒤 모래 언덕 위 능선. 역시 ‘애국주의교육기지’라고 씌어 있는 양관문물관리소를 지나자 전면에 ‘양관고도(陽關古道)’ 라고 적힌 긴 회랑건물이 나타난다. 오른쪽 언덕 위에는 봉수대 유지(遺趾)가 솟아 있다.

 

 

앞으로 타클라마칸 사막이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서역! 이란 말이 더욱 실감난다. 왼쪽으로 커다란 오아시스 마을 남호, 오른쪽으로는 양관 마을을 후방에 거느리고 있다.

 

 

양관 입구에는 여러 가지 시들을 적은 게시판이 있는데, 왕유의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시가 낯익다.

 

渭城朝雨浥輕塵    위성 땅 아침 비가 흙먼지를 적시니

客舍靑靑柳色新    객사의 버들잎 푸른빛 산뜻하구나.

勸君更進一杯酒    그대에게 한 잔의 술 또다시 권하노니

西出陽關無故人    서쪽 양관으로 나가면 벗이라곤 없는 것을. (풀이는 필자)

이 황량하고 막막한 사막으로 절친한 벗을 떠나 보내는 마음이 어떠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 양관에서. 저 뒤편으로 죽음의 타클라마칸사막이 끝없이 이어진다.

 

 

       ☞ 타클라마칸 사막    

 

타림분지 내에 있다. 타클라마칸은 '모래의 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비나 물이 거의 없는 곳이며, 폭풍이 잦은 곳으로 죽음의 땅으로 알려져 있다. 기온은 여름의 대낮에는 40도-50도를 오르내리며, 겨울에는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진다. 일교차도 매우 크다.

 

지표면은 침식돼 버섯모양의 토주(土柱)를 이룬 기기묘묘한 경관을 이루는데, 이를 이곳 사람들은 '용퇴(龍堆)'라고 한다. 바람에 운반되어 높이가 90-200m에 이르는 초승달 모양의 사구가 수없이 발달해 있다.

 

이곳 사막의 기후는 건조기와 습윤기가 몇 차례 바뀌어 그 때마다 사막의 넓이가 축소, 확대되고 있으며, 누란 등 사막에서 폐허화된 오아시스 도시를 발견하게 되는 것도 기후 변동과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정부가 핵실험을 해왔다.

 

오아시스가 비교적 많고, 지하수도 있는 고비 사막은 타클라마칸 사막에 비하면 훨씬 좋은 환경을 갖고 있다.

 

 

 

관광객을 붙잡기 위해 낙타와 말을 끌고 따라 다니는, 얼굴을 가린 위구르 여인들의 생계전쟁이 눈물겹다.

 

물품 가게에서 뜻밖에 둔황에서도 못본, 나무로 정교하게 조각한 반탄비파상을 만나 참 맘에 들었지만 200위안을 아까워하다(한국이라면 샀을 텐데, 너무 금방 돈값을 알아버린 탓으로) 그냥 발길을 돌리다.

 

 

아까 통과하지 못했던 그 길로 양관마을에 들어와 점심식사를 하다. 국수에 가져간 고추장을 비벼 먹다. 무공해밀로 만든 국수라선지 면발이 정말 쫄깃쫄깃 맛있다. 이 지역의 밀가루는 품질이 최상급이라는 이야기다. 식당 앞 청포도밭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그늘 아래 사진을 찍고, 안주감으로 청포도를 산다.

 

 

 

 청포도 밭에 앉아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 둔황 안내도

 

 

 

 

 

투르판행 기차를 타러 유원역(둔황역)으로

 

오후 1시 양관을 출발하다.

 

돌아오는 길 북쪽 방향으로 신기루를 보다.

 

생각보다 대단한 것은 아니다. 복사열에 의해 지평선 가까이 호수처럼 보이는 허상이 길게 펼쳐져 보인다. 오아시스와 구별되는 점은 숲이 보이지 않는 점. 우리나라에서도 뜨거운 여름날 길게 뻗은 아스팔트에서도 비슷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유원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볼 수 있었다.

 

 

다시 둔황에 들러, 앞마당에 수양버들이 휘휘 땅까지 늘어진 ‘둔황영암야광배청(敦煌靈岩夜光柸廳)’이란 간판을 단 야광배 제조 공장과 야광배 전시장을 둘러 보다. 다들 야시장에 비해 비싸다는 반응이다.

 

 

5시20분, 유원에 도착, 40여분 자유 시간을 가지다.

 

오정훈 선생과 역앞 유원시장 거리를 구경하다. 우리의 60년대 시골 읍내 풍경처럼 보인다. 시장에 나온 물건들도 거의 그런 수준이다. 물건을 파는 엄마 옆에 앉아 간자(簡字)를 알파벳 음표기와 함께 적으며 숙제하는 아이의 모습도 그러해, 시간을 거슬러 여행하는 감동에 잠시 젖어들게 한다. 껌만 파는 가게 , 조잡한 신발과 옷, 플라스틱 생필품 등, 영세한 모습이다. 둥글둥글하게 생긴 가지, 둔황에서 본 것과는 다른 껍질이 누렇고 커다란 하미과가 특히 눈에 띈다.

 

 

다시 역 앞으로 돌아오니 일행은 양꼬치구이에 맥주를 마시고 있다. 같이 맛을 보고 역앞 왼편에 마주보이는 ‘유원주가(柳園酒家)’에서 저녁을 먹다. 뜻밖에 모든 요리들이 향신료가 거의 들어 있지 않은 채소나물볶음, 가지나물, 우거지볶음 등이 어릴 적 먹어보았던 그런 맛들이라 맛있게 먹다.

 

 

식사 후 잠시, 역 앞 도로 한켠 마당에서 김원기 선생, 상학씨와 함께 1원짜리 포켓볼을 치다.

 

 

 

저녁 시간, 투르판행 기차를 타다

 

로컬 가이드 고함씨와 작별하고, 7시 40분발 투르판행 기차를 타다. 요금은 218원. 6호차 2번 2층 침대를 배정받다. 룸메이트는 김홍식, 강명진, 구연업씨.

 

 

상냥한 목소리의 여승무원에게 우리 나라 동전을 전하면서, 한동안 화폐인물과 특징에 대해 설명하느라 시간을 보내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사막을 보다말다 하는데, 그 여승무원이 신장산 토종 하미과가 있는데 먹어보지 않을 거냐고 권한다. 하미과를 주문하여 모두 감동하며 맛을 즐기다. 오늘은 술을 쉬자고 했는데, 결국 나와 구연업씨 등이 그럴 수 없다며, 맥주를 간단히 곁들이다.

 

 

10시를 지나 여독으로 일찍 잠들다. 이 시간쯤 아마 우리는 하미과의 고향 하미를 지나가고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