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만 여행

실크로드(10) : 다시 시안에서, 폭우 속에서 만난 한무제의 흔적들

모산재 2006. 9. 11. 23:08

 

<제 10일> 2000년 8월 7일 월요일

 

다시 시안에서, 폭우 속에서 만난 한무제의 흔적들

 

 우루무치 공항 → 시안 공항 → 함양박물관 → 한무제릉(무릉) 박물관

 

 

 

시안으로 돌아가는 하늘에서

 

6시 30분 일어나 24층 뷔페식 라운지에서 죽과 빵으로 식사를 하다.

 

동쪽 보고타봉에서 일출이 시작되고 있었다. 서쪽, 호텔 앞으로 지나가는 큰 길이 ‘GREEN AVENUE'라 이름붙어 있다. 교통과 녹지의 기능을 동시에 하고 있는 길다란 숲길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보도는 물론, 도로 중앙선 녹지대도 무척 넓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숲에 가려 차들은 보이지 않는다.

 

7시 30분, 호텔 출발하여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우루무치 공항으로 향하다. 기나긴 타클라마칸 여행을 끝내고 다시 시안에서의 마지막 여정을 향해...

 

9시 30분 이륙하다.

 

멀리 오른쪽으로 보고타봉을 끼고 비행을 한다 싶었는데, 어느 새 은빛 보고타봉은 손에 잡힐 듯 눈 앞에 장엄하게 다가온다. 오른켠 구멍창 옆으로 설산과 동행을 한다. 설산에서 미끄럼타듯 내려뻗은 사막 능선의 굴곡도 환히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해발 2-3000m는 돼 보이는 이어지는 산허리의 대평원은 샛노란 밀밭들이다. 너무 아름다운 이 풍경들을 담아보려고 수첩에 스케치를 해 보는데 뜻대로 그려지지 않는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보고타봉과 흘러내리는 산록

 

그리고 한동안 간간이 오아시스가 있는 넓은 사막을 건넌다.

 

10시 30분, 다시 오른쪽으로 장엄한 치렌산맥의 첩첩 설산이 대규모로 펼쳐진다. 그리고 금방 비행기는 설산 위를 달린다. 다시 30분쯤 지나자, 치렌산맥 너머로 보라빛 호수가 보인다. 칭하이호가 아닌가 했더니, 10분쯤 후 하얀 솜구름들에 둘러싸인 더 거대한 호수가 나타나는데, 바로 칭하이호이다. 

 

사막지대가 끝나면서 구름에 막혀 더 이상 지상의 풍경이 내려다보이지 않는다. 황하 위를 날고 있다는 안내 방송. 기내식으로 점심을 때우다. 

 

상학 씨, 웬 빨간 팬티차림인가 했더니, 비행기를 처음 타는데 이륙시 그만 실례를 해 옷을 갈아입었다며 또 너스레다. 

 

 

함양박물관

 

날씨는 흐리다. 시안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성구(渭城區),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들어서 외진 곳에 있다. 진 함양역사문물진열관, 진시황 병마용과 비슷한 미니 병마용을 전시한 병마용관, 함양최신출토문물정품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입구 기념품점이 양쪽으로 10m 거리를 두고 있는데, 구연업씨던가, 탁본을 사는데 한쪽에선 40원, 한쪽에선 10원을 달라 한다. 우리는 바가지로 설명하지만, 수요와 공급에 의한 물가체계가 확립된, 완전한 자본주의에 이르기에는 아직도 거리가 먼 것이 중국의 현실 아닐까? 

 

 

한무제릉을 지나 무릉박물관

 

곽거병묘 가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다. 우리가 실크로드 여행을 떠난 사이. 이곳엔 비가 많이 왔단다. 비포장 들판길을 한동안 달려(게다가 철도 건널목에서 차단기 수리 작업으로 지체하다) 도착하다. 

 

무릉박물관 입구

 

무릉 박물관 입구를 들어서면 오른편으로 연못이 있고 그 위를 건너는 돌다리들이 얽혀 있다. 그 안쪽에는 편종고악청(編鐘古樂廳)이 있다. 다시 안으로 들어서면 중앙 연못이 있고, 왼편으로는 문물진열실, 오른편으로는 진귀문물전람관이 배치돼 있다.

 

그리고 맨 뒤 중앙엔 우람한 곽거병묘가 머리에 남승정(覽勝亭)이란 정자를 이고 향나무 숲에 덮여 솟아 있고, 왼쪽으로 위부인묘가 있다. 더 뒤로는 좀 작은, 위부인 동생 위청의 묘가 있다. 

 

곽거병 묘

 

☞ 곽거병, 위청, 그리고 한무제     

 

장건의 서역 파견 이후, 서한은 흉노와 몇차례 대규모 전쟁을 펼친다. 기원전 127년 한무제는 위청(衛靑) 장군과 3만 기병대를 보내 내몽고 지역을 수복하고, 기원전 121년 곽거병(霍去病) 장군이 1만 기병을 이끌고 하서지역을 수복하였다. 기원전 119년 한무제는 재차 대군대를 파견하여 흉노를 격퇴하니, 흉노는 패하여 저 변방 북쪽으로 물러나고, 서역의 실크로드 교통로는 서한이 장악하게 되었다. 

 

서한말부터 동한 초까지 중원에서 큰 혼란이 빚어질 때, 이 하서 지역만큼은 비교적 안전하여, 내지의 많은 유민들이 이 하서지역으로 와서 피난하였다.

 

곽거병 묘 앞에는 대형 석조 마답흉노상(馬踏匈奴象)과 월마상(越馬象)이 있는데, 전자는 말이 흉노족을 짓밟고 있는 모습으로, 당시 한나라가 흉노족에 얼마나 많은 괴로움을 당했는지 역설적으로 깨닫게 해 준다. 묘의 왼쪽 회랑을 따라, 누운말(臥馬), 엎드린 범(伏虎), 두꺼비(蟾), 개구리(蛙), 물고기(石魚), 사람과 곰(人與熊)등 해학적인 표정의 석상들이 전시되어 있고. 뒷편에는 괴수흘양(怪獸吃羊), 멧돼지(野猪), 코끼리 와상(臥象), 누운 소(臥牛) 등의 석상들이 있다.

 

회랑 주변에는 어린 배롱나무 붉은 꽃이 빗방울에 젖어 하늘거리며 요염을 떨고 있다. 

 

곽거병 묘 위에 이르렀을 때는 빗방울이 굵어지다. 서둘러 나오는데, 편종고악루에서 연주를 한다 한다. 오전 오후 각 3회씩 연주를 한다는데, 그것을 보는 행운을 가지다. 좋았지만 다만 깨끗하지 못한 옷차림 등 잘 관리되지 않는 느낌이 들어 개운하지 못했다. 

 

돌아나오는 길 비가 억수같이 퍼부어, 무릉은 잠깐 차를 세워 그냥 멀리 바라보고 돌아와야 했다.

 

 

물난리 난 시안에서의 마지막 밤

 

시안 시로 들어서는 길, 일행은 피로로 대부분 졸고 있다. 차창 밖 들판의 옥수수는 달콤한 빗물에 한껏 젖었다.

 

시내에 들어서니 물난리다. 워낙 건조지대다 보니, 하수시설이 제대로 안되어, 우리가 탄 차는 하수구로부터 역류하는 물에 갇혀 몇번이나 시동이 꺼지고(꾸벅꾸벅 졸던 일행들 이때부터 웬 생기! 난처한 일을 당했는데도 물난리를 재미있어하다), 1회당 10원짜리 시안버전 푸시맨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호텔로 돌아오다. 

 

저녁식사는 시안에서 둘밖에 없는 한식집이라는 ‘한라산소고(燒烤)’에서, 삼겹살과 된장찌개, 그리고 소주를 곁들여 맛있게 먹다. 

 

저녁에는 모두들 쇼핑을 나서다. 비 내리는 거리 우산을 쓰고 거리를 나서는 기분도 괜찮다. 고루(鼓樓) 4거리 대형 지하 쇼핑센터를 돌았는데, 막상 기념품으로 사갈 만한 것은 마땅치가 않다. 투르판에서 위구르 모자와 옷들을 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보다 싸고 특징적인 것이 없는데…. 결국, 이리특주 등 주류로만 한 보따리 사다. 

 

밤 11시, 평가회를 열다. 회족시장을 다녀왔다는 팀들은 이미 양꼬치에다 술을 한잔씩 걸쳤는지 기분이 좋아 보인다.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했는데, 나는 그저 대만족이라 말했던 것 같다. 별 기대하는 것 없었기에 오히려 만족스러웠던 여행이 아니었나 싶다. 다들 만족스럽다는데는 이의가 없는 것 같다. 

 

잠시 상학씨 가이드비 지불하는 문제를 이야기하다 또 예민해지다. 그러자 “야, 그것 다시 꺼내 읽어야 돼!” 그것이란 최 선생이 여행 자료집에 실었던 구절이다, 다음의….

 

여행 중에는 서로 감정이 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에 차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서로 이해하고 도와주는 즐거운 여행을 합시다. 서로 얼굴을 모르는 채로 태어나 어느 순간 만나 안면을 익히고, 이렇게 먼 나라 먼 땅으로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인연입니다. 즐겁고 행복한 여행을 함께 하는 기간이 되기를 빕니다. 아울러, 우리의 여행은 실크로드, 당, 한으로의 시간 여행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지녔던 시간 개념을 버리고 떠납시다. 그러면 아무리 길고 험한 길도 지루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이지 여행을 하면서 꼭 마음에 새겨둘 만한 내용이다. 

 

새벽 1시, 신병철 형과 바둑을 두다 4시를 넘긴 시간 잠이 들다.(룸메이트 김원기 선생님)

 

 

 


 

<제 11일> 2000년 8월 8일 화요일


기나긴 여행은 끝나고…

 

 

 

8시에 일어나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혹시 기념품이 될 만한 것이 있을까 싶어 오정훈 선생과 호텔 건너편 시장으로 나가다. 그러나, 농수산물만 있어 별 성과 없이 돌아오다. 

 

10시 호텔을 출발, 시안공항으로 향하다. 공항 면세점에서 다들 쓰다 남은 인민폐를 다 소비하느라 선물될 만한 것들을 사기에 바쁘다. 다시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서울로 돌아오다. 기내식으로 점심을 때우고.

 

다시 습도 높은 후덥지근한 서울 공기를 맛보며 기나긴 여행은 끝났다. 사막으로 다니며 시간이 사라진 천상의 세계를 끊임없이 흘끔거리며 바라보다 다시 지상으로 내려온 것처럼 느껴진다. 

 

되돌아온 서울, 속도에 다시 몸을 얹어야 하는 꽉 짜여진 일상이 낯설어지고 버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