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수종사, 바람은 절로 불어오고 물소리는 종소리를 내며

모산재 2006. 9. 3. 11:22

 

바람은 절로 불어오고, 물소리는 종소리를 내며

 

- 동방 사찰 제일의 전망, 수종사(水鍾寺)

 

 

 

 

며칠 전까지 찜통 같던 날씨가 갑자기 선들선들해지며 가을 분위기를 만든다. 특활발표회날이라 마음은 한가로운데, 점심을 먹고 나오니 청량한 햇살에 갑자기 '땡땡이를 치고' 싶어진다. 이런 마음 슬쩍 흘렸더니 두분이 금방 호응을 해 주는 게 아닌가?

 

 

차를 몰고 팔당댐을 지나 양수대교를 스쳐 지나가 진중리 마을을 끼고 좁고 가파른 운길산 산길을 오른다. 평일인데도 수종사를 다녀오는 차들이 왜 이리 많은가? 사륜구동 지프도 헐떡대야 하는 길을 비켜가느라 승용차를 운전하는 섐은 팥죽같은 땀을 주룩주룩 흘린다.

 

나무 그늘에 파묻혀 들어선 수종사 경내, 발아래 펼쳐지는 양수리의 풍광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멀리 남한강과 북한강이 어우러지는 두물머리 너머로, 청계산(658m), 유명산(864m), 용문산(1157m)으로 이어지는 ‘한중지맥’의 산줄기가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일주문

 

 

 

 

 

 

수종사는 그 이름처럼 물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지고 있다.

 

 

1458년(조선 세조4년) 악성 피부병으로 고생을 하던 세조는 오대산에서 요양을 하고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풍광 좋은 이곳 두물머리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잠을 자다 종소리를 듣고 기이하게 생각한 세조는 다음날 주민을 불러 종소리의 출처를 묻자 “근처에 종소리가 날 만한 곳은 없고 운길산 속에 오래된 절터가 한 곳 있을 뿐”이라고 대답하였다. 세조가 찾아보게 하였는데 뜻밖에도 절터 바위굴 속에 18나한상이 모셔져 있고, 그 바위 틈에서 맑은 물방울이 떨어지며 종소리를 내고 있었다. 물맛 또한 최고였다.

병을 고치기 위해 좋은 물을 찾아다니던 세조가 한양서 가까운 이곳을 그냥 두었을 리 없다. 세조는 8도의 이름난 석공들을 모아 경사 급한 벼랑에 축대를 쌓아 절을 짓고 왕실의 원찰로 삼았다. 대웅전 왼쪽 약사전 바위 아래서 솟아흐르는 석간수는 당연히 이 절의 보배가 되었다.

 

 

 

 

 

 

수종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지금의 수종사는 1974년부터 중건한 것으로 대웅보전과 나한전, 약사전, 산신각, 경학원과 요사가 있으며, 석조부도와 삼층석탑, 세조의 명으로 중창할 때 세운 팔각오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2호)이 아름다운 자태를 간직하고 있다.

 

문화재로는 부도에서 한 조가 되어 나온 청자개부호(청자 사리함), 금동제구층탑, 은제도금육각감 등이 보물 제259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1957년에 해체한 팔각오층석탑에서 나온 금동불 18구와 금동불감 역시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대웅보전 앞에서 동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소박하고 허름한 해탈문이 있는데, 지금은 절 뒤편으로 찻길이 나 있지만 이곳이 본래 수종사에 오르는 길이었다.

 

해탈문 옆에는 키 40여m, 둘레가 7m 이상 되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버티고 서 있어 수종사와 역사를 함께 하고 있는데, 중창을 마친 세조가 기념으로 심었다는 얘기가 전해 온다. 그 전설대로라면 은행나무의 나이가 500년이 훨씬 넘었다는 얘기가 된다.

 

 

 

대웅전

 

 

 

 

 

 

팔각5층석탑과 부도, 정의옹주 부도

 

 

 

 

'수종사탑' 또는 '수종사다보탑'으로 유명한 이 탑은 세조가 중창불사를 하면서 조성했다고 전한다. 팔각원당형으로 조성된 아담한 조선시대 탑이다.

지봉돌의 8각 모서리마다 풍경이 서너 개씩 달려 있었던 듯한데, 지금은 아래층으로 내려오면서 점점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 위로 올라갈수록 풍경이 비교적 풍성하게 매달려 있어서 바람이 불면 청아한 범음(梵音)을 낸다.

 

 

팔각오층석탑과 나란히 서 있는 부도는 태종의 다섯번째 딸 정의옹주 부도로 알려져 있다. 높이 238cm에 팔각원당형을 기본구조로 삼은 이 부도는 지대석은 4각인데 몸돌을 원형으로 하여 단조로움을 피했다. 상층기단 8각 모서리마다 두꺼비처럼 생긴 동물을 배치한 것이 재미있다.

 

 

 

시원스레 펼쳐진 아름다운 두물리 전경

 

 

 

 

 

 

가을 빛이 완연하다. 수종사를 찾는 이유가 바로 이 풍경을 보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사람들 속에 부대끼는 것이 버거워 깊은 산속을 찾았다가는 외로움에 부대끼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다면 후회할 일이 없다. 저렇게 멀리서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수종사를 동방사찰 중 제일의 전망이라고 격찬한 서거정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기고 있다.

 

 

가을이 오매 경치가 구슬퍼지기 쉬운데

묵은 밤비가 아침까지 계속되니 물이 언덕을 치네.

하계(下界)에서는 연기와 티끌을 피할 곳이 없건만

상방(上方, 절) 누각은 하늘과 가지런하네.

흰구름은 자욱한데 뉘게 줄거나

누런 잎이 휘날리니 길이 아득하네.

내 동원(東院)에 가서 참선이야기 하려 하니

밝은 달밤에 괴이한 새 울게 하지 말아라.

 

 

 

삼정헌

 

 

 

 

 

절을 찾는 분들이 많이 이용하는 삼정헌, 저기 열려진 창호문 안 방에 앉아 차를 마시며 팔당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 된다. 그게 답답하다면 저렇게 툇마루에 앉아 정담을 나누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수종사는 물맛이 알려져 차를 즐기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았던 모양이다. 수종사에서 시오리쯤 떨어진 능내리 마현에 살던 다산 정약용이 말년에 지은 시 중에 “수종산(운길산)은 그 옛날 나의 정원으로 삼아 /  생각만 나면 훌쩍 절문 앞에 당도했지” 하는 구절에서 보듯 수종사는 차를 즐겼던 다산이 젊은 시절 자주 찾던 절이다.

 

또 다산과 친하게 지내던 ‘차의 달인’ 초의선사도 한양에 올 때마다 수종사에 곧잘 들렀다고한다. 수종사 샘물은 초의선사가 그토록 자랑하던 일지암 유천보다 그리 뒤지진 않았던가 보다. 그 차맛을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경내 차실 삼정헌(三鼎軒)이다. 평일에 찾았건만 ‘삼정헌’ 다실은 차를 마시는 사람들로 빈 자리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윽한 차향에 묻혀 눈 아래 펼쳐지는 한강 풍광을 바라보는 운치는 정말 그럴 듯하다.

 

 

산신각 탱화

 

 

 

 

 

 

범종각

 

 

 

 

삼정헌과 마주하고 있는 요사채

 

 

 

 

 

동쪽의 해탈문

 

 

 

 

 

 

 

해탈문 밖으로 나서면 500년 묵은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서 있고, 그 곁에서 유유히 흐르는 북한강을 바라보면 일상에 찌들은 가슴 속이 시원해짐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