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오천항, 오천성, 갈매못 성지 돌아보기

모산재 2006. 6. 9. 22:47

06. 05. 27(토) 오천항 주변

 

 

 

 

민박집 입구 화단에 핀 수염패랭이

 

 

 

 

 

 

 

아침 식사하러 나서는데 비는 내리고.

 

 

 

 

오천성 돌아보기

 

 

 

 

성 안에서 본 성문

 

 

 

 

팽나무

 

 

 

 

 

 

오천성은 충청 수영이 있던 곳이다.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은 서해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위해 돌로 높이 쌓아올린 석성(石城)이다. 조선 중종 4년(1509)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이장생(李長生)이 축성, 충청수영(忠淸水營)의 외곽을 두른 1,650m의 장대한 성(城)으로 자라(鱉)모형의 지형을 이용 높은 곳에 치성(稚城) 또는 곡성을 두어 바다와 섬의 동정을 살폈고 해안방어의 요충지였다. 사방(四方)에 4대 성문(城門)과 소서문(少西門)을 두었고, 동헌을 비롯한 관아건물 영보정(永保亭), 관덕정(觀德亭), 대섭루(待燮樓), 능허각(凌虛閣), 고소대(姑蘇臺) 등이 있었으나 허물어졌고, 서문 망화문(望華門)과 건물로는 진휼청(賑恤廳), 장교청(將校廳), 공해관(控海館)이 보존되고 있다. 망화문은 화강석을 다듬어 아치(Arch)형으로 건립하여 발전된 석조예술을 볼 수 있으며, 오천항(鰲川港)은 백제때부터 중국과 교역하던 항구로서 회이포(回伊浦)라 불리었고, 고려시대에는 왜구를 물리치기 위하여 많은 군선(軍船)을 두었으며, 세조 12년(1466년)수영(水營)을 설치, 충청수군의 최고사령부로 서해안을 방어하였다.

 

 

컴프리

 

 

 

 

 

진휼청 

 

 

 

 

성 위에서 본 오천항 전경

 

 

 

 

 

오천은 예전부터 보령 북부권의 삶과 생활의 중심지였다. 보령 북부권의 모든 길들은 오천과 통한다는 말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실제로 주포,주교,청소 등 오천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만 세 갈래나 된다

예전의 영화는 많이 퇴색되었지만, 오천항은 천수만 일대의 주요 어항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오천항은 만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까닭에 방파에 등 별도의 피항시설이 필요 없을 만큼 자연적 조건이 좋은곳이다. 따라서 방파제 없이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진 선착장에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1일과 6일에 서는 오천장을 찾으면 각종 해산물과 만날 수 있다. 특히 오천항에서 이루어지는 잠수기 어업으로 채취한 키조개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특산물이고, 어른 주먹만한 크기의 홍합 역시 인기다.

 

 

 

복분자

 

 

 

 

닥나무

 

 

 

 

 

담배풀

 

 

 

 

 

 

 

일행들과 함께 요트를 타고 오천항 앞바다 돌아보기

 

 

 

 

 

 

양식장에서 키조개를 거두는 어민들

 

 

 

 

 

 

갈매못 성지

 

오천항에서 좁은 만을 벗어나 넓은 바다로 나설 무렵 왼쪽(남쪽) 갯가로 갈매못 성지가 나타난다.

 

 

 

 

바닷가 모래사장이었던 갈매못은 병인박해 때에 군문효수를 당했던 다블뤼 안 안토니오 주교, 위앵 민 마르티노 신부, 오메크로 오 베드로 신부와 황석두 루가 회장, 그리고 장주기 요셉 회장과 그밖의 수많은 무명 순교자의 피로 물든(1866년 3월 30일 성금요일) 처형장이었다.

 

대원군이 이 자리를 처형장으로 택한 것은 명성황후의 국혼이 예정된 시기로서 수도에서 200리이상 떨어진 곳에서 형을 집행해야 탈이 없으리라는 무당의 예언도 있었고, 러시아와 프랑스 함대가 침략을 시도한 서해의 외연도가 아스라히 바라다보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인근의 오천성은 좌수영 및 우수영과 함께 영향력있었던 충청수영이 있던 곳으로서 다른 지방과 다르게 전국의 죄인들이 여기까지 와서 처형당하기도 했던 역사가 있지 않았나하는 의견도 있다. 치명터임이 확인된 1927년부터 이 곳이 성지로 관리되기 시작했고, 1975년에 순교비가, 1999년 경당이 완공되어 순례자들을 맞고 있다.

전래적으로 무서운 곳으로 알려져 마을 사람들이 누구도 이 근처에 가지 말도록 해왔던 이 곳은 길도 없어 인근 오천성에서 배를 타고 오던 곳이었으나 성지로 개발되어 지금은 경당 앞 천수만변 도로를 통해 수많은 순례 단체가 줄을 이어 방문하고 있다.

 

매주 일요일 11시 30분에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서해의 섬들과 천수만이 바라다보이는 이 곳은 순교 성인들의 피를 연상시키는 듯, 낙조가 의미심장하고 아름답다.

 

 

 

요트의 선수 너머로 멀리 보이는 안면도의 남쪽 끝

 

 

 

 

 

 

달섬(월도)의 가두리양식장에서

 

 

바다대벌레

 

 

 

 

 

 

잠수해서 잡아온 해삼과 키조개 등등

 

 

 

 

돌게

 

 

 

 

 

해삼

 

 

 

 

찐 돌게와 키조개 관자

 

 

 

 

 

바로 옆에 보이는 달섬(월도)

 

 

 

 

주교 고정반도 남동쪽 1.8km 지점에 떨어져 있고 주교면 고정리 중부화력 발전소 앞 바다에 위치하고 있는 섬으로 면적이 0.45㎢이고 15가구에 5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육지에서 보면 섬이 반달처럼 생겼다 하여 '월도'라 부르는데 반달 같은 섬 (十五夜) 밝은 달에 十五字가 맞는다 하여 섬에 15호 이상 살게 되면 불운이 온다하여 가구 수가 15호 이상 늘지 않게 한다고 한다. 일찍이 자가 발전등 문화시설을 갖춰 비교적 부유한 생활을 하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