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개성 여행

금강산 여행 (4) : 효봉스님이 출가했던 신계사

모산재 2006. 3. 1. 13:06

 

복원되는 금강산 신계사

 

2006. 02. 24

 

 

 

 

목란관에서 모두들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중간에 지나가게 되는 신계사를 보고 싶어서 혼자 중간에 내려 신계사에 들렀다.

 

 

 

이곳이 금강산을 대표하는 신계사라는 절이 맞나 싶을 정도로 너무도 고요한 절, 혼자뿐이니 괜히 고립된 듯한 느낌인데 다른 팀에 있는 여성 한 사람이 눈에 띄어 그나마 위로가 된다. 옛 모습은 찾아볼 길 없는 절은 지금 한창 복원 공사 중이다. 

 

 

 

 

 

 

 

세존 연봉 줄기가 굽이쳐 내린 봉우리를 앞에 두고, 상관음봉 중관음봉 하관음봉으로 흘러내린 줄기를 의지하여 자리잡은 절, 관음보살과 석가모니의 영기를 다 받은 명당자리에 자리잡은 절이 신계사이다.

 

세존연봉 바깥으로는 집선연봉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다. 절의 왼쪽 봉우리는 붓을 닮아 문필봉이라 하는데, 문필봉을 넘으면 바로 온정리이다.

 

 

신계사는 유점사·장안사·표훈사와 함께 금강산의 4대 사찰로 꼽힐 뿐만 아니라, 근 현대의 고승인 석두(石頭)·효봉(曉峰)·한암(寒巖) 등을 배출한 이름난 절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명성을 전혀 엿볼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다.

 

 

신라 법흥왕 6년(519) 보운 스님이 창건하였다. 19세기 말 전각이 21채에 이를 정도로 대찰이었던 신계사는 1911년 정문 누각인 만세루 2층 15칸과 최승전 60여칸이 불에 타면서 퇴락의 길을 걷게 된다. 1920년대 대웅전 앞 석축과 만세루, 요사채 등이 복원 되었으나 전통적인 절집의 배치와 1000년 이상 된 삼층탑 자리의 놓임새, 구조가 일본인들에 의해 크게 왜곡되어 복원도 쉽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해방 전까지 거대한 사찰을 유지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군 공습으로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가 남북관계 진전을 이루고 금강산 관광이 본격화되면서 신계사 복원도 시작되었다. 조계종 총무원이 북쪽과 협의해 지난해 11월 대웅전을 복원했고, 지금은 만세루와 요사채 등의 건물 복원공사를 진행 중이며, 명부전을 비롯한 나머지 11개 전각도  2007년까지 복원을 마칠 계획이라고 한다.

 

 

6. 25로 폐허가 되기 전의 신계사 모습

 

 

 

 

 

 

절의 원래 이름은 신계사(新溪寺)라 하였으나, 뒤에 '귀신 신(神)' 자의 신계사로 바뀌었다. 이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진다.

 

 

신계사 절터 계곡인 신계천에는 해마다 많은 연어가 올라와 사람들이 이 연어를 잡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를 본 보운이 살생을 금하는 불교 교리에 따라 신통력을 발휘해 연어떼가 계곡으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때부터 신계사의 신(新) 자가 신(神)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 절은 효봉 선사(1888~1966)가 출가한 사찰로 유명하다. 여기에도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조선인 최초의 일제 판사 이찬형은 1923년 3.1운동에 참여한 조선인 독립투사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자신만의 살길을 찾던 그에게 독립투사는 의연한 죽음을 선택했고, 그 모습에 그의 영혼은 송두리째 흔들렸고, 그 길로 처자식을 떠나 엿장수를 하며 3년간 전국을 방랑하게 된다. 1925년 엿장수의 몸으로 신계사를 찾아 ‘금강산 도인’으로 불리던 석두 선사에게 막무가내로 머리를 깎아달라고 청했다. 그의 나이 38세. 신계사 건너편 법기암에서 하루 1끼 식사만 하며 불철주야로 정진한다.

 

 

효봉의 제자로는 송광사를 일군 구산 선사와 법정 스님, 환속한 박완일 전 동국대 교수, 고은 시인 등이 있다. 

 

 

뒤편 멀리 하관음봉을 배경으로 새로 복원한 대웅전과 만세루

 

 

 

 

 

만세루

 

 

 

 

 

만세루 뒤에 대웅전이 있다. 대웅전 앞마당 양쪽에 커다란 보리수 두 그루가 보인다. 

 

 

 

 

 

신계사 삼층석탑은 신계사에 남은 유일한 옛 건축물인데, 한국전쟁 때 심하게 파손되어 보기에 안쓰럽기만 하다.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정양사삼층탑, 장연사삼층탑과 함께 '금강산 세 옛 탑'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기단에 남아 있는 조각은 매우 섬세하고 아름답다. 

 

상층기단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중상(八部衆像)이 부조되어 있고 하층기단에는 비천(飛天)과 천인상(天人像)이 새겨져 있다.

 

 

 

 

 

 

신계사 마당에서 바라보면 금강산의 아름다운 연봉들이 모두 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왼쪽 뒤편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높은 봉우리가 세존봉이다.

 

 

 

  

 

오른쪽 앞으로 보이는 집선연봉

 

 

 

 

 

절 앞은 금강송이라고도 불리는 미인송이 울창한 금강송이 숲을 이루고 있다.

 

 

 

 

 

 

 

 

 

 

 

신계사 엽서의 금강산 신계사도(작자 미상)

 

 

 

 

 

달맞이꽃 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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