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안성 여행 (7) 민중의 혼과 숨결이 깃든 칠장사 / 칠장사 원통전 벽화

모산재 2006. 2. 12. 13:00

 

안성 여행 (7) 민중의 혼과 숨결이 깃든 칠장사

 

2006. 02. 02

 

 

 

 

 

청룡사, 석남사를 품에 거느린 서운산의 동쪽, 중부 고속도로가 그리 멀지 않은 칠현산 기슭에 등을 기대고 동쪽을 바라보며 울창한 숲 속에 안겨 있는 절이 칠장사이다. 풍광도 아름답지만, 국보와 보물을 비롯하여 살펴볼 만한 문화재가 많고, 특히 임꺽정, 도둑 등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지는 민중적인 체취가 물씬 풍기는 절이다.

 

 

신라 선덕여왕 5년(636년)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는데, 고려 충렬왕 34년(1308년)에 혜소국사가 홍제관을 짓고 일곱 도적을 교화 제도하여 산 이름도 칠현산이 되고, 그의 유덕을 기념하여 칠장사란 절이 세워졌다고 한다.

 

 

또한 칠장사는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서 정암 조광조가 임꺽정의 정신적 지주였던 병해대사(갖바치)를 찾아가 토론한 장소로도 잘 알려진 절이기도 하다. 백정의 신분으로 수탈과 억압에 짓눌린 민중들을 규합해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의적 활동을 벌이던 임꺽정은 역시 백정 출신으로 칠장사에 머무는 갖바치를 만나기 위해 안성 땅에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 철당간과 당간지주

 

 

당간이란 부처와 보살의 공덕고 위엄을 알리는 당(일종의 깃발)을 매다는 깃대. 완전한 형태를 갖춘 높이 11.5m의 철제 당간으로 절의 입구에 세워져 있다. 

 

 

 

 

 

원래는 30간의 원통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14개만 남아 있다. 당간지주는 아무런 문양이 없는 간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칠장사 사적비

 

 

당간 바로 뒤쪽에 세워져 있다. 칠장사의 역사 등에 관한 거의 유일한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조선 현종 12년(1671년)에 세워졌다.

 

 

 

 

일주문과 절 입구 풍경

 

 

 

 

 

주차장에서 올려다 본 풍경 ; 왼쪽부터 범종각, 제중루, 홍제관

 

 

 

 

 

 

 

 

 

● 소조 사천왕상

 

 

칼을 든 지국천왕(동), 창을 든 광목천왕(서), 여의주를 든 증장천왕(남), 비파를 든 다문천왕(북) 등 4천왕은 불법을 수호하는 제석천의 명을 받아 천하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행동을 살피고 보고하는 신이다. 모두 악귀 위에 걸터앉은 모습으로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몸에는 채색된 갑옷에 바람에 날리는 천의를 입고 있다.

 

얼굴은 짙은 눈썹, 부릅뜬 눈, 오똑한 코, 수염이 있는 입 등으로 표현되는데, 험상궂다기보다는 해학적인 표정이다. 위엄보다는 친근함이 느껴진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115호. 흙으로 빚었다. 조선 영조 2년(1726년) 천왕문과 함께 조성되었다.

 

 

↓ 증장천왕(남)과 광목천왕(서)

 

 

 

 

↓ 다문천왕(북)과 지국천왕(동)

 

 

 

 

 

 

● 범종각

 

 

 

 

 

 

 

 

칠장사 법당 전경

 

 

 

 

 

 

● 3층탑과 대웅전(경기도 유형문화재114호)

 

 

 

 

 

단청이 많이 퇴색하였지만 오히려 세월의 깊이가 전해주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저녁 무렵 대웅전 뒤 숲속 나무 위에 까마귀가 떼를 지어 깃든 모습도 산사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더욱 돋운다.

 

 

 

 

서북쪽 높은 석축 위에 동향으로 지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맞배지붕집이다. 칠장사는 648년 자장율사에 의해 개창되었다. 사적기에 따르면 1694년(숙종 20년)에 세도가들이 절을 불태운 후 1704년(숙종 30년)에 대웅전을 옮겨 세운 것을 1828년(순조 28년)에 승려 완진이 다시 지었다 한다. 1982년에 해체 수리하였다.

 

대웅전 내에는 삼존불과 함께 국보인 5불회괘불탱과 보물인 3불회괘불탱 등의 중요 문화재들이 보존되고 있다. 삼존불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석가모니불을 협시하고 있다.

 

 

 

 

 

 

● 5불회괘불탱(국보 296호)

 

 

3단 구도로 도솔천궁을 묘사한 괘불이다. 미륵이 부처가 된 후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해 연 법회인 '용화회'를 그린 그림이다. 그림 기록에도 '용화회'라고 명시되어 있으나, 미륵불이 아닌 삼존불을 주존으로 그린 점이 특이하다.

 

 

 

 

길이 6.56m, 폭 4.04m 크기로 구름을 이용하여 상·중·하 3단으로 구분되었다. 맨 윗부분은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석가불과 노사나불이 좌우에 모셔진 삼신불을 묘사하고 있고, 중간은 약사불과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여러 보살들이 있어 삼세불을 표현하였으며, 맨 아래에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그려져 수미산 정상의 도솔천궁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3단 배치는 예배자들에게 삼신불과 삼세불의 세계를 통해 진리를 깨우치게 하고,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의 구원으로 도솔천궁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괘불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하겠다. 채색은 녹색을 주로 하고 황색과 황토색을 대비시켜 다소 어두워 보이나, 옷 처리를 붉은색으로 하여 경쾌함을 느낄 수 있다.

이 괘불은 조선 인조 6년(1628)에 법경(法烱)이 그린 것으로 괘불함 없이 종이에 싸서 대웅전에 보관하고 있다. 이 괘불에서 보이는 단아하고 세련된 인물의 형태와 짜임새 있는 구도, 섬세한 필치 등은 당대를 대표하는 것으로, 이 작품은 17세기 전반의 불화 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삼불회괘불탱(보물 1256호)

 

 

영취산에서 석가가 법화경을 설법하는 모임인 영산회를 그린 그림이다. 가로 4.54m 세로 6.28m.

 

 

 

 

화면 구성은 석가불을 중심으로 한 하단과 노사나불과 아미타불이 있는 상단으로 구성된다. 사각형의 광배를 한 석가불의 주위를 팔대 보살과 십대제자, 사천왕 등이 에워싸고 있는 형상이다. 대좌 아래에는 사리불이 석가의 설법을 듣고 있다. 상단에는 아미타불과 보살처럼 화려한 보관을 쓴 노사나불이 사래보살에 의해 둘려 쌓여 있다. 아미타불과 노사나불 사이에는 보탑을 두어 화면을 구분하고 있다. 보탑 위로 반원형의 큰 광배 안에 9구의 보살을 중심으로 천상세계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숙종 36년(1710)에 그려진 이 괘불은 석가불이 그려진 하단 단독으로도 영산회상도를 묘사할 수 있는 독특한 구성을 보여주며, 상단과 합쳐서는 삼신불을 간략하게 표현한 구성을 하고 있다. 이러한 간략화한 구성 방식은 조선 후기에 유행하는 방법으로 이 괘불은 이런 구성을 잘 보여주는 훌륭한 작품이다.

 

 

 

대웅전 내에는 이밖에도 향토 유적인 조선말기의 동종과 인목대비 친필 족자가 보관되어 있다. 인목대비가 반정 직후 1623년(인조 원년) 억울하게 죽은 친정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대군을 위해 칠장사를 원당으로 삼아 다시 세우면서 내린 7언시인데, 늙은 소의 고달픔과 이를 바라보는 주인의 애처러운 마음을 자신의 처지에 빗대어 표현한 작품이라고 한다.

 

 

↓ 대웅전 처마, 포

 

 

 

 

 

 

 

원통전(圓通殿) 주련과 벽화

 

 

 

 

 

寶陀山上琉璃界(보타산상유리계)   보타산 위 맑은 세계 유리계에 계시는

正法明王觀世音(정법명왕관세음)   정법명왕이신 관세음보살님

影入三途利有情(영입삼도이유정)   그림자는 삼도에 가 모든 유정 보살피고

形分六道曾無息(형분육도증무식)   모습은 육도 나퉈 일찍이 쉼 없다네.

 

○ 보타산(寶陀山) : 보타락가산(寶陀落迦山)의 준말이며 낙가산(洛伽山)이라고도 한다. 인도 남쪽 해안에 있는 산으로 관세음 보살의 상주처(常住處)를 말한다.

○ 유리계(琉璃界) : 유리로 된 아름다운 궁전이 있는 세계. 극락을 말함.

○ 정법명왕여래(正法明王如來) : 관세음보살이 과거세에 성불 했을 때의 명호. 정법명여래(正法明如來)라고도 함.

○ 삼도 : 지옥, 아귀, 축생의 세 가지 세계

○ 육도(六道) : 인간이 삿된 집착과 업(業)으로 인하여 사후에 가게 되는 여섯 갈래의 길. 이는 곧 지옥ㆍ아귀ㆍ축생ㆍ수라ㆍ인간)ㆍ천상의 여섯 가지 세계. 이 육도의 세계는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의 3계와 함께 중생들이 윤회전생하는 범위로 인정되며, 육도 가운데 지옥도ㆍ아귀도ㆍ축생도를 삼악도(三惡道)라 하고, 수라도ㆍ인간도ㆍ천도를 삼선도(三善道)라 한다.

 

 

 

 

칠장사 대웅전과 원통전에는 전각 안팎을 화려하게 수놓은 벽화들이 눈여겨 볼 만한데, 특히 원통전 내부 북측면에 그려져 있는 천녀봉과도, 천녀타주장고도, 천녀타경도 등 민화적인 요소를 가미한 8점의 벽화가 볼 만하다.

 

 

<불교신문>

 

 

 

 

● 봉업사터 석불입상(보물 983호)

 

 

본래 봉업사터에 있던 부처를 죽산중고등학교 교정에 옮겨두고 있던 것을 다시 칠장사로 옮겨온 것이다.

 

 

 

 

신체 비례의 조화미와 섬세하고 부드럽게 흐르는 옷주름의 조각 기법이 8세기 통일신라시대 양식의 수작이라 할 수 있는데, 안내판에는 고려 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소개하고 있다.

 

불상의 얼굴 특히 눈과 코 부분의 마모가 심한데, 오랜 동안 방치된 탓에다 아들을 얻기 위한 민간 신앙이 불러들인 재앙 탓으로 보인다. 광배가 두광과 함께 신광이 함께 표현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안면의 훼손이 심하다. 좌대는 깨끗해 만든 지 그리 오래돼 보이지 않는다.

 

 

 

 

 

 

 

● 혜소국사비(보물 제488호)

 

 

대웅전 뒤 돌계단을 올라 기슭에 있다. 현재 비는 비받침인 귀부와 비몸돌·머릿돌이 각각 따로 놓여 있다. 흑대리석으로 만든 비몸돌의 양쪽 옆면에는 상하로 길게 두 마리의 용을 새겨 놓았는데 그 솜씨가 뛰어나다.

 

고려 문종 14년(1060) 혜소국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대사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혜소국사(972~1054)는 말년을 칠장사에서 수도하며 이 절을 크게 중창하였고, 이 절에서 83세로 입적하였다.

 

 

 

 

이 비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의 장수인 가토가 이 절에 왔을 때, 어떤 노승이 홀연히 나타나 그의 잘못을 꾸짖자 화가 난 가토가 칼을 빼어 베었다. 노승은 사라지고 비석이 갈라지면서 피를 흘리니 가토는 겁이 나서 도망을 쳤다 한다. 현재 이 비의 몸돌이 가운데가 갈라져 있어 이러한 이야기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문화재청 자료>

 

 

 

 

● 홍제관과 3층탑

 

 

 

 

 

 

재미 있는 조각의 수조

 

 

 

 

 

 

 

 

 

제중루(濟衆樓) 현판

 

 

 

 

 

 

 

더보기

※ 칠장사 원통전 내부 벽화

 

 

 

 

원통전 내벽화 위치도

 

 

 

 

천녀봉과도

 

 

 

 

천녀타장고도

 

 

 

 

천녀타경도

 

 

 

 

천동앙람도

 

 

 

 

천녀무용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