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신사(神社), 그리고 고후쿠지(興福寺)
2006. 01. 12
도다이지에서 가까운 나라국립박물관을 지나 긴테스 나라역 방향으로 10여 분 걸어가면 고후쿠지에 닿는다. 나라역에서는 5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있다.
● 일본의 신사
도중에 자그마한 신사(神社)를 만나게 되어 잠시 들러 보았다. 신사는 일본의 고유 종교인 신도(神道)에서 신령을 모시는 곳 또는 신령을 부르는 곳인데, 일제 말기 '신사 참배' 강요나 전쟁 원흉을 안치한 '야스쿠니 신사' 등이 떠올라 궁금증이 생긴다.
신사는 원래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에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도시의 한 가운데에 흔히 자리잡게 되었고, 전국적으로 10만 여 개의 신사가 있다고 한다. 신사의 신성한 영역은 '도리이(鳥居)'라고 하는 출입문으로 구별되어 있다.
신사의 입구 도리이(鳥居)
신사로 들어가는 중문 앞에는 신사를 지키는 농경신인 여우상이 있다.
신사 내부 '하이덴(拜殿)'이라고 하는 곳으로, 이곳에서 손을 씻은 후 손뼉을 두번 친 다음 앞에 늘어뜨린 줄을 잡고 참배를 한다고 한다.
신사는 크게 세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첫째는 신령을 모시는 혼덴(本殿, 또는神殿)으로 신관(神官)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둘째는 신관에 의해 종교의식이 행해지는 헤이덴(幣殿)으로, 기도를 올리는 곳이라 하여 노리토덴(祝詞殿)이라고도 하며 가미(神)를 부르고 되돌려 보내는 곳이다. 셋째는 경배하고 기도하는 공간인 하이덴(拜殿)이다.
규모가 큰 신사에는 가구라덴(神樂殿 : 의식무용을 추는 곳), 샤무쇼(社務所 : 신사의 사무실), 데미즈야(手水屋 : 경배하기 전 손과 입을 씻는 세면대), 고마이누(拍犬 : 수호동물의 상), 도로(燈籠 : 봉헌에 의해 세워진 석등 또는 청동등) 등과 같은 다른 구조물이 있다고 한다.
● 고도 나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고후쿠지(興福寺)
나라국립박물관 앞을 지나 넓은 도로의 지하도를 지나면 나라현청과 마주하고 있는 숲속에 고후쿠지(興福寺)가 나타난다. 이곳 숲에서도 사슴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고후쿠지는 710년 헤이안 천도에 따라 아스카에서 우마야사카지를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만들어진 절이라 한다. 창건 당시에는 175채나 되는 대사찰이었으나 전화로 인해 현재는 12채의 건물만 남아 있다. 일본에서 두 번째로 높은 오중탑(五重塔) 과 많은 불상조각들이 있는 절로, 13~14세기에는 수만 명의 승병을 거느리고 있던 절로 유명하다.
동금당(東金堂), 5중탑(五重塔), 삼중탑(三重塔), 북엔당(北円堂) 등의 건물과 건칠팔부중립상(乾漆八部衆立像), 건칠십대제자립상(乾漆十大弟子立像), 동조불두(銅造仏頭), 목조금강력사립상(木造金剛力士立像) 등의 조각상 등이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고후쿠지는 나라 시의 가스가타이샤를 포함한 몇몇 사원들, 헤이조 궁 유적, 기타 장소들을 포함해 '고도 나라의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어 있다.
절 마당으로 들어서니, 금당과 5층탑만 우람하게 보이고, 앞쪽으로는 휑하다. 넓은 공터는 복원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원래 금당은 셋이었으나 내전과 화재로 동금당(東金堂)만 남았다.
동금당(東金堂)과 5층탑(五重塔)
5층탑(五重塔)
높이 50.8m. 730년에 세워졌다. 화재로 5번이나 불탔으며 현재의 건물은 1426년에 재건되었다. 절 아래에 사루사와이케라는 연못에 비친 모습과 밤에 조명을 받아 우뚝 서 있는 모습은 나라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동금당(東金堂)
입장료는 여기에 들어갈 때만 받는다.
국보급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는 국보관이 서편에 있으며, 아수라상이 특히 유명하다고 한다.
화원경(華原磬)
고후쿠사에 있는 여러 유물 중 일본이 자랑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813년 후지와라 후유쓰구(藤原冬嗣)가 부친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세운 남엔당에는 겐자쿠관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해마다 10월 17일에만 일반에 공개한다. 팔각형 건물인 북엔당은 나라시대에 세웠다가 가마쿠라시대에 다시 지은 것으로, 일본 국보인 미륵여래좌상을 봉안하고 있다.
고후쿠지는 후견인인 후지와라씨(藤原氏)가 권력을 잡고 있는 동안 아주 번창하였는데, 불교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황실을 넘어서는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수도를 헤이안쿄로 옮긴 뒤에 도다이지 등 남도 7대사가 쇠퇴하는 때에도 고후쿠지는 후지하라 씨와의 관계 덕분에 영향력을 유지하였다.
※ 후지와라 가문(藤原氏)
아스카 시대인 668년에 창건됐다. 아스카 시대를 대표하던 가문 소가씨(蘇我氏)가 645년 '을사의 변'으로 몰락하자 그 자리를 채워앉아 나라 시대 때 기반을 다지고 헤이안 시대 때 섭정 가문으로 권세를 누렸다. 이 가문의 창시자인 나카토미 가마타리는 왕위 계승자 나카노오에 왕자와 함께 반란을 음모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사신들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왕실의 강력한 정적 소가노 이루카(蘇我入鹿)를 목베어 버린다. 덴지 덴노로 왕위를 계승한 왕자는 가마타리에게 정부의 일을 위임하였고 가마타리가 죽은 해에 덴노는 그에게 '등나무 정자'라는 뜻의 '후지와라(藤原)'라는 성을 주었다. 그것은 두 사람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음모를 짜던 장소를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었다.
가마타리의 아들 후지와라 후히토는 후지와라 성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이다. 그는 딸을 쇼무(聖武) 덴노에게 시집보내 왕실의 일원이 되는 첫발을 내디뎠다. 9세기 후반 덴노의 장인이자 왕위 후계자의 조부였던 후지와라 요시후사는 덴노가 죽자 9세의 외손자를 덴노로 즉위시키고 자신은 섭정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덴노를 비교적 이른 나이에 퇴위하게 한 뒤 어린 덴노를 즉위시키고 자신들이 섭정으로 군림하는 관행을 만들어냈다.
그리하여 그로부터 12세기까지 약 200년 동안 이런 식의 퇴위가 8회 있었고 7명의 어린 덴노가 즉위했다. 섭정직을 확고하게 장악함으로써 후지와라 씨는 왕실을 제거하거나 해임시키지 않고도 사실상의 통치자가 될 수 있었다. "이 세상은 모두 나의 것. 저 보름달처럼 부족함이 없노라." 최전성기를 구축한 후자와라 미치나가가 연회 중에 달을 보고 읊었다는 유명한 와카 '망월의 노래(望月の歌)'의 한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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