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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

일본 여행 (5) 나라, 세계 최대의 목조 대불전과 청동 불상의 도다이지(東大寺)

by 모산재 2006. 1. 21.

 

세계 최대의 목조 대불전과 청동 불상의 도다이지(東大寺)

 

2006. 01. 12. / 나라

 

 

 

일본 화엄종의 대본산이라는 나라의 도다이지(東大寺), 정말 거대한 절이었다. 그래서 감동스럽고, 그래서 허망스럽기도 한 절이었다.

 

이 절의 금당인 대불전(大佛殿)은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 건물이고 그 안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비로나자불이 모셔져 있다. 금당을 비롯하여 남대문, 개산당(開山堂), 종루, 법화당(法華堂, 三月堂), 이월당(二月堂), 전해문 등이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나라 시의 신사 등 7개의 다른 문화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긴테스 나라역에서 10 분 남짓 걸으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도다이지는 숲으로 덮인 공원 지역인데, 입구에서부터 사슴들이 관광객을 맞이하여 먹이를 구하며 어슬렁거리는 풍경이 눈길을 끈다.

 

 

난타이몬(南大門). 멀리서 보아도 거대하다. 12세기 말에 송나라의 건축 양식을 도입해서 재건되었다 한다. 금강역사상이 모셔져 있는 걸로 보아 우리 나라의 금강문에 해당하는 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남대문 안 좌우에는 8.5m 높이의 두 개의 거대한 금강역사상(1203년 조성)이 있지만 철망에 갇혀 있어 이미지를 잡지 못했다.

 

일본의 절들에서는 사천왕의 경우 거의 철망에 가려져 있는데, 우리의 자비로우면서도 위엄이 가득한 사천왕상과는 달리 위엄은 없고 무섭고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낼 뿐이다. 금강역사상은 불상 조각가 운케이, 가이케이와 작업 인부들에 의해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멀리 다이부쓰덴(대불전)이 보인다.

 

 

 

 

 

중문회랑. 금강문인 난타이몬을 지나서 일직선으로 가는 통로에 중문이 다가선다. 중문에는 천왕상이 모셔져 있으니 우리의 천왕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중문은 목책으로 차단되어 있고, 양쪽으로 천왕상이 각각 있는데 역시 철망으로 가려져 있다. 여기서 입장료를 낸다.(5000엔)

 

 

 

 

천왕상 발목 아래로 천왕상과는 달리 아름다운 조각상이 있다.

 

 

 

 

 

목책으로 차단된 중문에서 바라본 대불전

 

 

 

 

 

중문을 들어서자 사람들이 가득 모여들어 향불 연기를 쐬고 있다. 향을 쐬면 모든 액을 막는단다.

 

 

 

 

 

본전인 다이부쓰덴(大佛殿)이다. 높이 48m, 좌우 길이 57m, 앞뒤 길이 50.5m로 실로 거대한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이다.

 

756년 쇼무천황은 신라승 심상의 화엄경 설법에 심취하여 도다이지를 세우고 노사나불상을  만들어 화엄종 교리로 불교계를 이끌도록 하였다고 한다.

 

 

 

 

도다이지의 기록에 따르면 도다이지의 불상과 대불전을 건설하는 데 260만 명 이상이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두번의 화재로 상당 부분 소실되었고, 1692년 재건되고 1709년에 완공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남았다고 한다. 재건하면서 원래 크기보다 1/3 정도 줄어들었다고 하니 원래의 절이 얼마나 컸는지 상상할 수 있다.

 

 

 

 

대불전의 노사나청동대불!

 

16m 높이의 청동 불상은 주조를 통해 만들어졌고 머리와 목은 별도로 주조되었다. 머리 높이만 5.4m, 눈 길이 1m, 귀 길이 2.5m, 대좌 높이 3m. 무게 452톤.

 

불교에 의한 나라의 평화와 번영을 바라던 쇼무천황이 전국의 동을 모아 9년에 걸쳐 여덟 번의 주조로 만들어내었다고 하는데, 청동의 대부분을 소모해버리는 바람에 일본 경제를 파탄 지경에 이르게 만들었다고 한다.

 

 

 

 

불상의 제작은 시가라키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몇 번의 화재와 지진을 견딘 후, 제작은 745년에 나라에서 다시 시작되어 751년에 마침내 완성되었다.

 

1년 후인 752년에 불상의 완성을 기념하는 의식에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했다. 특기할 만한 것은 노사나대불의 개안식에는 700여 명에 달하는 신라 사절이 초청되었다는 것이다. 삼라만상까지 노사나불의 빛을 받고 중생들이 번영하는 것을 발원하고자 하는 뜻이었다.

 

그런데 1567년 화재로 불타고 현재의 노사나대불은 1692년에 개안식을 행한 당시의 것으로, 창건 당시의 것으로 남은 것은 좌대 등 극히 일부라고 한다. 불상의 손은 아즈치모모야마 시대(1568~1615)에 만들어진 것이고 머리는 에도 시대(1615~1867)에 만들어진 것이다.

 

손바닥 위엔 16명이 올라 설 수 있는 정도라 한다.

 

 

 

 

 

대불의 두 협시불 : 허공장보살(虛空藏菩薩)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

허공장보살(虛空藏菩薩)은 밀교(密敎)에 들어와 신앙의 대상이 된 보살로 허공과 같이 광대무변한 지혜와 복덕을 갖추고,대자비로써 사람들의 위난을 몰아내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구제한다고 한다.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은 6관음의 한 분으로 여의보주의 삼매에 들어 있으면서 뜻과 같이 설법하여 6도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고 온 세상에 이익을 주는 것을 본뜻으로 하는 보살이라고 한다.

 

 

 

 

청동연화대에 섬세하게 새겨진 불상

 

 

 

 

대불전 앞에는 등신대의 목불상 1위가 자리하고 있다.

 

부처님 시대 16나한 중 제 1존자인 '빈두로존자(賓頭盧尊者)'라는데, 자신의 아픈 부위에 해당되는 곳을 쓰다듬으면 병이 낫는다고 하여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목책으로 막아 놓았다.

 

 

 

 

 

또 하나,

 

도다이지의 대불전이나 대불을 조성한 것이  당시 기술적인 측면에서 일본 단독으로 될 수 없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8세기 일본 불교가 사상적으로 신라 불교의 도입 자체였고, 건축술이나 조불 기술이 당시 일본인의 손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대불의 개안식에 신라 사절 수백 명이 초청되었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 부분으로 보인다.

 

 

쇼소인(正倉院).

 

대불전 뒤쪽에 쇼무천황의 유품 등 각종 보물을 보관하는 쇼소인이라는 건물이 있다. 나라 시대부터 일왕의 칙명으로 봉인되어 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완전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나라 시대의 귀중한 문화재와 생활 도구는 물론, 한반도와 중국 인도 등으로부터 전래된 각종 고 미술품들이 1만여 점이라고 한다.

 

일반인에게는 공개를 하지 않아 누구도 볼 수 없고, 다만 매년 가을에 한번씩 소장품의 일부를 공개하고 있는데, 기간은 10월 하순부터 11월 상순이다. 전시는 '국립나라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한다. 또한 건물의 외관도 일반 공개를 제한하여 1년에 2번, 즉 4월 상순의 1주일간과 10월 하순의 1주일간만 공개한다.

 

 

 

석양에 비친 중문과 회랑

 

 

 

 

 

승려는 없고 관광객만 북적대는 도다이지, 지구에서 제일 큰 절과 제일 큰 부처를 봤음에도 허망하다는 생각만 든다. 뒤돌아 보면서도 회랑 안의 대불전이 있는 공간이 그냥 텅 빈 것처럼 느껴진다. 거대한 유물만 남았을 뿐, 오늘로 이어지는 정신의 위엄은 찾을 수가 없었다. 화엄의 사상과 그에 심취한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인지...

 

 

도다이지를 나와서 일본 법상종의 대본산, 고후쿠지(興福寺)를 향한다. 가는 길에 승용차 가득한 주차장을 거느린 신사(神社)가 눈에 들어왔다.

 

 

 

※ 도다이지(東大寺)에 대하여  

728년, 도다이지의 전신인 긴쇼센지(金鐘山寺)가 어린 나이에 죽은 모토이 황자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세워졌다. 나라시대의 전성기인 덴표(天平)시대(729~748)에 일본은 거듭되는 재해와 전염병으로 고통받았다. 이러한 일을 겪은 후에 쇼무 천황은 전국 곳곳에 고쿠분지(国分寺)의 건설을 장려하는 칙령을 내렸고, 긴쇼센지는 야마토 국의 고쿠분지로 지정되었다.

743년, 쇼무 천황은 부처의 힘을 빌려 국가를 재앙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사원을 설립하라는 칙령을 반포하였다. 대불상의 초기 작업이 시가라키에서 시작되었고, 745년 수도가 헤이조쿄로 돌아온 후 대불은 나라에서 다시 만들어져 752년 대불 개안식이 행해졌다.

나라시대 율령체제 하의 도다이지는 난토 6종(법상종, 화엄종, 성실종, 삼륜종, 율종, 구사종)의 고쿠분지들을 위한 중앙 관리 사원 역할을 했다. 나라 시대에 도다이지는 '6종 겸학의 절'로 여겨져 대불전 내에는 각 종파의 경론을 넣어둔 '6종 주자'가 있었다.

일본 불교는 이 기간에 율의 계통을 유지하고 있었고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승려들은 도다이지에서 계를 받아야했다. 중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승려 감진은 754년에 고켄 천황과 쇼무 천황을 포함한 황족들이 도다이지에서 보살계를 받을 수 있게 하였고 일본 불교에 수계 제도를 정착시켰다.

그러나 일본 불교의 힘의 중심은 나라에서 히에이 산과 천태종으로 이동했고 일본의 권력 중심이 가마쿠라로 이동하면서 도다이지의 권위도 쇠퇴하기 시작하여 율의 계통이 사라지고 도다이지에서 수례식도 행해지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