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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하와 문화재

청년 김대건 길 (2) 열반종 총본산, 와우정사(臥牛精舍)

by 모산재 2024. 12. 25.

 

은이성지를 둘러본 다음 '청년 김대건 길' 트레킹에 나선다. 은이산의 완만한 계곡을 따라 울창하게 우거진 숲길이 길게 이어진다. 길은 마을을 지나고 시원한 계곡 물소리에 마음조차 맑아진다.

 

은이성지에서 미리내성지까지는 세 개의 고개, '삼덕고개'를 넘어야 한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나타내는 신덕고개, 망덕고개, 애덕고개가 그것이다. 이 길은 이촌동 새남터에서 처형된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이민식이라는 17세 소년이 몰래 빼내어 지게에 지고 넘어갔던 길이기도 하다.

 

 

 

 

2023. 11. 01.  용인 해곡동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숲길을 걷다 보면 그리 높지 않은 은이산(363m)을 넘는 첫번째 신덕고개를 만나게 된다.

 

 

 

 

 

고개에는 신덕고개 비석과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지고 고개를 넘던 이민식 빈첸시오의 이야기를 담은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산길을 내려서면서 전나무들이 자주 보인다.

 

 

 

 

 

그리고 이내 불경 소리가 들리는 열반종(涅槃宗) 총본산, 와우정사(臥牛精舍)에 이른다. 용인시 해곡동 연화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곳에 자리잡은 현대식 사찰인데, 독특하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 절은 1970년 북한 출신 실향민인 해월삼장법사(속명 김해근)라는 분이 1300여 년 전 신라인들이 황룡사를 창건하여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것처럼 부처님의 공덕을 빌어 민족화합과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 세운 호국사찰이라 소개되고 있다.

 

참고로 열반종은 일체중생에 불성이 있다는 <열반경>에 근거한 사상으로 중국 남북조시대와 수나라 시기에 유행하였지만 종파로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열반경>이 전해진 흔적은 있지만 종파로서 성립한 적이 없다고 한다.

 

경내에는 3천여 점의 불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입구에 조성된 황금 불두(佛頭)와 열반전에 모신 향나무 와불(臥佛)이 유명하다.

 

 

 

 

왼쪽으로 세계만불전, 오른쪽으로 이 사찰의 랜드마크와 같은 높이 8m의 불두상이 보인다.

 

세계만불전에는 인도 미얀마 스리랑카 태국 등 여러 나라의 고승과 지도자들이 세계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모셔온 세계 각국의 쌀 불상, 금불상, 오곡 불상, 은불상, 크리스탈 불상, 동불상, 나무불상, 철불상, 흙 불상 등 3천여 점의 불상과 석가모니 진신사리, 파리어 대장경과 산스크리스트어 장경(藏經) 등이 봉안되어 있다. 

 

 

 

 

거대 불두(佛頭)

 

 

 

왼쪽 비탈길을 따라 오르면 중간에 대웅보전, 맨 위쪽에 와불울 모신 열반전에 이른다. 

 

 

 

세계만불전의 백의관음 벽화

 

 

 

통일의 탑 : 열반전에 이르는 계단 옆에 세계 각국 성지에서 가져온 각종 돌로 쌓아올린 탑이다. 

 

 

 

 

 

신축 열반전과 와불(누워 계신 부처님) : 열반전에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져온 통 향나무를 다듬어 조각한 부처님 열반상을 모시고 있다. 높이 3m, 길이 12m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나무불상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었다고... 

 

 

 

열반전 뒤편 대각전이라는 작은 석조 건물에 옥으로 새긴 석가모니 고행상이 모셔져 있다. 석가모니불의 6년 고행을 새긴 불상으로 92년 한.중 수교기념으로 인간문화재들이 불상은 백옥, 좌대는 청옥으로 조각하였다. 

 

 

미륵반가사유상 : 대웅보전 서쪽 뜰에 국보 78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그대로 본떠  6m 높이의 크기로 만든 청동 불상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집, 대웅보전

 

 

 

대웅보전에는 장륙존상(丈六尊像) 오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인도에서 가져온 8만 5천 근의 황동으로서 조성되었다고 한다. 장륙존상은 부처님을 일장육척으로 조성하여 봉안함으로서 장륙존상이라 한다. 

 

 

 

오존상이 화각에 들어오지 못해 가운데 비로자나불,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삼존상만 담겨 있고 양쪽의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은 빠졌다.

 

 

 

감실 형식으로 환조한 석조관음좌상

 

 

 

 

대웅보전 동쪽의 범종각과 통일의 종 : 통일을 기원하며 황금과 동과 주석으로 만든 12톤 무게의 황금범종, 88 서울 올림픽 개회식에서 타종하였다. 

 

 

 

대웅보전 너머로 보이는 열반전

 

 

 

 

트레킹 일정이 바쁜 관계로 여유롭게 돌아볼 시간이 없이 서두르다 보니 석가모니 열반상(와불)도 고행상도 모두 사진으로 담지 못하고, 또 세계만불전의 불상들은 아예 돌아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일행들을 좇아 나선다. 

 

 

 

<참고> 정류장의 버스노선표

 

 

 

 

 

● 열반종(涅槃宗)   


대승불교 경전인 <열반경(涅槃經)>에 근거하여 불신이 상주함과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음'을 설하는 교의를 연구하고 선양했다. 구마라집(鳩摩羅什)의 문하에서 배출된 도생과 혜관(慧觀) 등이 열반경을 석가모니 설법의 귀결이라고 판단한 이래 수나라(隋:581~619) 때까지는 남북 각지에서 유행하여 당시의 불교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천태종이 일어나 <법화경(法華經)>과 <열반경>에 동일한 가치를 부여함에 이르러 천태종에 합류되었다.

<열반경>의 '금강신품(金剛身品)'에서는 부처의 몸은 불생불멸의 상주하는 몸이고 영원히 부서지지 않는 금강의 몸이며, 이것이 곧 법신이라고 설한다. 또 '사자후보살품(獅子吼菩薩品)' 등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불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선의 뿌리가 끊겨 성불할 가능성이 없다고 하는 일천제(一闡提, icchantika)까지도 불성이 있어 성불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전자를 '불신상주(佛身常住)', 후자를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의 교의라 한다. <열반경> 연구는 남북조시대(439~589)에 최전성기를 맞았지만 천태종의 흥륭으로 쇠미해졌고, 당나라 초기에 삼론종·법상종·화엄종이 성행하게 되면서 명맥마저 끊어진다.

중국 남북조 때 열반종이 불교의 학종(學宗)으로 있었지만 하나의 종파로 성립되지는 못하였다. <열반경>이 우리나라 삼국시대부터 전하여진 흔적은 있지만 종파로까지 발전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고구려 보장왕 때의 승려 보덕(普德)이 전주로 이동하여 개종(開宗)하고 신라 무열왕 때 번성하였으며 이후 시흥종(始興宗)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진 종파라는 설도 있고, 개성흥왕사의 대각국사 의천 묘지(墓誌)에 법상종과 열반종을 포함한 6학종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열반종이 종파로 성립되었다는 기록과 근거는 미약하다.


● 대한불교열반종(涅槃宗)

대한불교 열반종은 경기도 용인시 해곡동 와우정사(臥牛精舍)를 총본산으로 하는 한국 불교 27개 종단 가운데 하나다. 열반 사상을 기반으로 전법도생(傳法度生), 즉 법을 널리 전해 중생을 인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623년 고구려 보덕성사(普德聖師)가 처음 설립했다. 고구려가 도교를 받아들이면서 불교를 탄압하자 650년 백제의 영토였던 전라북도 완주군 고대산으로 옮겨 열반종을 전파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율종(律宗), 법성종(法性宗), 화엄종(華嚴宗), 법상종(法相宗) 등과 함께 5대 종단을 이뤘다. 대한불교 열반종은 1424년 조선 세종(世宗)의 불교 배격 정책으로 종단의 이름을 잃었다.

1970년 해암해곡 삼장법사(海巖海谷三藏法師)가 대한불교 열반종을 다시 세우면서 부활했다. 1978년 와우정사를 총본산으로 정하고 1991년 대한불교 열반종이라는 종단 이름을 등록하였으며 1992년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 가입했다.

 

 

 

 

☞ 청년 김대건 길 (1) 김대건 신부의 사목지, 은이성지 => https://kheenn.tistory.com/15864319  

☞ 청년 김대건 길 (3) 김대건 신부 묘소가 있는 미리내성지 => https://kheenn.tistory.com/15864321